미하일 레르몬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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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낭만주의 작가 + 카테고리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비극적인 가정사를 겪으며 염세적 성향을 보였고,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바이런의 영향을 받아 수많은 명작을 남겼습니다. 푸시킨 사망을 비판한 시로 인해 두 차례 캅카스로 유배되었으며, 결국 결투로 생을 마감했으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인간 심리 묘사로 러시아 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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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14

[미하일 레르몬토프 탄생]

러시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미하일 레르몬토프가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귀족 가문에서 1814년 10월 15일 태어났습니다.

1817

[모친 사망과 불우한 유년기]

어머니가 그가 3세일 때 사망하면서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부친과의 불화로 가정의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3세가 되던 해(약 1817년)에 모친이 사망하여 펜자주의 귀족인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게 됩니다. 외할머니와 부친 사이의 불화는 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고, 이는 그의 성격과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1829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이다]

15세의 나이에 이미 시, 희곡, 소설을 쓰는 등 문학적 재능을 보였으며, 회화, 음악, 수학에도 뛰어났습니다.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지나치게 조숙하여 15세(1829년)에 이미 시와 희곡,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문학 외에도 회화, 음악, 수학 분야에서도 비범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1830

[모스크바 대학 입학]

16세에 모스크바 대학 윤리정치학과에 입학했지만, 다음 해 학생운동에 가담하여 퇴학당했습니다.

1830년, 16세의 나이로 모스크바 대학 부속 귀족기숙학교를 마치고 모스크바 대학 윤리정치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학생운동에 가담한 일로 인해 대학에서 퇴학당하게 됩니다.

1834

[사관학교 졸업 및 근위표기병사관 임관]

대학 퇴학 후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근위표기병사관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까지 평생 쓸 시작의 4분의 3을 썼으며 바이런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모스크바 대학 퇴학 후 사관학교를 졸업한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1834년에 근위표기병사관으로 임관했습니다. 이 무렵 그는 이미 평생 쓰게 될 시의 약 4분의 3을 완성했는데,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영향이 작품에 크게 드러납니다.

1835

[희곡 <가면무도회> 집필]

희곡 <가면무도회>를 집필했으나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1835년,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희곡 <가면무도회>를 집필했으나, 이 작품은 1842년에 간행되었으며 당시에는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1837

[<시인의 죽음> 발표와 캅카스 유배]

푸시킨이 결투로 살해당하자 <시인의 죽음>을 발표하여 전제주의를 옹호하는 귀족들을 비판했고, 니콜라이 1세의 분노를 사 캅카스로 좌천되었습니다.

1837년, 23세의 나이에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결투로 살해당하자,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시 <시인의 죽음>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는 푸시킨 살해의 진범으로 전제주의를 옹호하는 귀족들을 날카롭게 비난했고, 니콜라이 1세의 분노를 사게 되어 캅카스로 좌천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838

[본국 귀환 및 애국적 작품 집필]

조모와 주콥스키의 주선으로 10개월 만에 본국으로 돌아와 대 나폴레옹 전쟁을 노래한 <보로지노>와 역사시 <상인 카라시니코프의 노래>를 발표하며 애국심을 노래했습니다.

조모와 시인 바실리 주콥스키의 끈덕진 주선으로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10개월 후(약 1838년) 러시아 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 그는 대 나폴레옹 전쟁을 노래한 시 <보로지노>(1838), 이반 대제 시대를 다룬 역사시 <상인 카라시니코프의 노래>(1838)에서 애국심을 읊었고, 낭만적 서사시 <므츠이리>(1840)에서는 자유에 대한 열렬한 동경을 노래했습니다.

1840

[연애 결투로 인한 두 번째 캅카스 추방]

연애 갈등으로 벌어진 결투가 원인이 되어 내전 중인 캅카스로 또다시 추방되었습니다.

1840년, 연애의 갈등에서 벌어진 결투가 원인이 되어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내전이 한창인 캅카스로 다시 한번 추방당하게 됩니다.

1841

[러시아 최초의 심리소설 <현대의 영웅> 발표]

두 번째 캅카스 추방 중에 유일한 소설이자 러시아 최초의 심리소설인 <현대의 영웅>과 서사시 <악마>를 완성했습니다.

두 번째 캅카스 추방 중이던 1841년,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전년부터 쓰고 있던 유일한 소설 <현대의 영웅>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러시아 최초의 심리소설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15세 이래 계속 퇴고해 오던 서사시 <악마>도 이 시기에 완성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친구와의 결투로 비극적 죽음]

캅카스 퍄티고르스크에서 사소한 일로 친구 마르티노프의 결투 도전을 받아 사망했습니다.

1841년 7월 27일, 미하일 레르몬토프는 캅카스의 퍄티고르스크에서 사소한 일로 인해 친구 마르티노프로부터 결투를 도전받았고, 그 결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짧고 비운의 생애는 이로써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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