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연표
1475
[르네상스 거장 탄생]
이탈리아 카프레세에서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가 태어났다.
훗날 조각, 회화, 건축, 시 등 다방면에서 전무후무한 걸작을 남길 르네상스 최고의 거장이었다.
1487
[숨겨진 재능의 발견]
어린 미켈란젤로는 조토와 마사치오의 작품을 모작하며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였으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다행히 메디치 가문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1488
[기를란다요에게 사사]
13세의 나이로 당대 유명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잠재력이 비로소 꽃피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1489
[메디치 가문 후원]
14세부터 메디치 가문의 전폭적인 보호를 받으며 베르트르드 디 조반니에게 도나텔로의 작품들을 배우며 조각 실력을 다졌다.
이는 그의 예술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492
1494
[볼로냐 성 도메니코 조각]
볼로냐 성 도메니코 성당을 위한 '성 페트로니오', '성 프로쿨루스', 그리고 '천사' 조각상들을 완성했다.
이는 그의 초기 조각 역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대리석으로 제작되었으며, 각 작품의 높이는 성 페트로니오 64cm, 성 프로쿨루스 58.5cm, 천사 51.5cm이다.
1496
[바쿠스 조각상 완성]
술의 신 바쿠스를 묘사한 대리석 조각상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키 203cm에 달하며, 현재 피렌체 바르젤로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499
[걸작 피에타 완성 (최초, 서명)]
로마에서 프랑스 추기경의 의뢰로 대리석 조각상 <피에타>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그의 수많은 피에타 상 중 최초의 작품이자 르네상스 조각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에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만큼 자부심을 드러냈다.
현재 성 베드로 대성당에 놓여 있다.
1501
[다비드 조각상 착수]
피렌체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시청의 위촉을 받아 소년 다윗을 묘사한 대리석 조각상 <다비드> 제작에 착수했다.
이 작품은 3년에 걸쳐 완성되며 르네상스 최고의 상징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작품은 높이 517cm에 달하며, 현재 피렌체 아카데미아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1503
[도니 톤도 제작]
피렌체에서 원형 형태의 회화 <성 가족(도니 톤도)>를 그렸다.
이 작품은 현재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504
[다빈치와 벽화 경쟁]
피렌체 시청으로부터 <카시나 수중 접전도> 벽화 제작을 위촉받았다.
당시 맞은편 벽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앙기아리 기마 접전도>를 그리고 있어, 두 거장의 치열한 예술적 경쟁이 펼쳐졌다.
1505
[율리오 2세 영묘 착수]
교황 율리오 2세의 초청으로 로마로 가서 그의 거대한 영묘 제작을 위촉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미켈란젤로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과업이 되었으며, 40년에 걸쳐 진행된 대작이었다.
1508
[시스티나 천장화 시작]
교황 율리오 2세의 명으로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발판 위에서 고통스러운 자세로 4년간 작업하며 <천지창조>, <아담의 창조> 등 300명 이상의 인물이 담긴 500평방미터에 달하는 대작을 홀로 완성했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업으로 관절염과 근육 경련, 눈병까지 얻는 고통을 겪었다.
1520
[메디치 예배당 및 도서관]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 예배당에 안치할 조각상들을 10년에 걸쳐 조각하고, 동시에 산 로렌초 성당 부속 도서관 입구를 건축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1529
[피렌체 방위 의원 활동]
고향 피렌체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독일 카를 5세 군의 피렌체 포위 당시 방위 의원으로 활동하며 성을 쌓는 등 고향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1534
[피렌체 떠나 로마 정착]
피렌체 방위 활동 후 메디치 가문과의 관계 악화로 사랑하는 고향 피렌체를 영원히 떠나 로마에 정착했다.
그는 떠나면서도 동료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팔아 임금으로 대신하라고 부탁할 만큼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1535
[최후의 심판 제작 착수]
교황 바오로 3세의 위촉으로 시스티나 경당의 정면 대벽화 <최후의 심판> 제작에 착수했다.
노령의 몸으로 발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겪으면서도 6년간 홀로 작업하여 웅장하고 강렬한 작품을 완성했다.
1545
[모세 조각상 완성]
율리오 2세 영묘 프로젝트의 핵심인 걸작 <모세> 조각상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교황 율리오 2세 기념 교회인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세워졌으며, 프로이트가 '새롭고 초인적인 것'을 발견했다고 평할 정도로 강렬한 정신성을 담고 있다.
율리오 2세의 영묘는 본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세워질 계획이었으나,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세워졌다. 모세상은 그의 강인한 육체와 함께 분노를 억제하는 고도의 정신적 성취를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라헬·레아 조각상 완성]
율리오 2세 영묘를 위해 <모세>의 좌우에 놓일 <라헬>과 <레아> 조각상을 완성했다.
이들은 신앙과 선행, 명상적 생활과 활동적 생활을 상징하며, 미켈란젤로가 온전히 완성한 최후의 조각상으로 기록된다.
1549
[파올리나 예배당 벽화]
바티칸 파올리나 예배당의 프레스코 벽화 <바오로의 회심>(1549년)과 <십자가의 베드로>(1550년)를 완성했다.
이 작품들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삶을 그리며 로마 가톨릭의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
1550
[만년 드로잉 작업]
1550년대 이후 죽음을 의식하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린 열두 점의 드로잉을 남겼다.
이는 그의 만년 예술 스타일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564
[로마에서 영면]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 여러 피에타상 등 미완성 작품들을 남긴 채 89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긴 생애를 마쳤다.
인류 예술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거장의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