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대학교
연표
1817
[미시간 대학교 설립]
미시간 준주 디트로이트에 '카톨레피스테미아드' 또는 '미시가니아 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습니다. 존 몬티스 목사가 초대 총장에,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 가브리엘 리처드가 부총장에 올랐습니다.
1817년 8월 26일, 미시간 준주의 주지사와 판사들에 의해 디트로이트에 카톨레피스테미아드 또는 미시가니아 대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장로교 목사 존 몬티스가 초대 총장을 맡았고, 로마 가톨릭교회 사제 가브리엘 리처드가 부총장에 임명되었습니다.
1821
카톨레피스테미아드 또는 미시가니아 대학교는 1821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미시간 대학교로 변경했습니다.
1837
[앤아버 캠퍼스로 이전]
오늘날 앤아버의 중앙 캠퍼스 부지로 학교를 옮겼으며, 이 부지는 본래 오지브와 족, 오타와 족, 포타와토미 족이 살던 땅이었습니다.
미시간 대학교는 1837년 오늘날 앤아버의 중앙 캠퍼스라고 알려진 부지로 학교를 옮겼습니다. 이 부지는 원래 오지브와 족과 오타와 족, 포타와토미 족이 살던 땅이었으나, 포트 메이그스 조약에 의해 원주민으로부터 할양받아 앤아버 측이 주도 이전용으로 준비해두었던 땅이었습니다.
1841
앤아버로 이전한 미시간 대학교는 1841년에 정식으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1845
1845년 미시간 대학교는 제1회 졸업식을 개최하여 11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1866
1866년, 미시간 대학교의 재학생은 1205명에 달했으며, 이 중 상당수는 남북 전쟁의 퇴역 군인이었습니다.
1870
미시간 대학교는 1870년에 처음으로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하며 교육 기회의 문을 넓혔습니다.
1871
[제임스 버릴 에인절 총장 취임 및 교육 혁신]
제임스 버릴 에인절 총장이 취임하여 치의학, 건축학, 공학 등 전문 직업 교육으로 교육과정을 확대했으며, 미국 최초로 세미나 방식의 수업을 도입했습니다.
1871년부터 1909년까지 총장으로 재임했던 제임스 버릴 에인절은 치의학, 건축학, 공학, 행정학, 의학 등의 전문 직업 교육까지 학교의 교육과정을 확대했습니다. 또한, 미시간 대학은 미국 최초로 세미나 방식의 수업 방법을 도입하는 등 교육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1900
[미국 대학 협회 창립 회원]
미시간 대학교는 1900년에 설립된 미국 내 연구 대학 모임인 미국 대학 협회의 창립 회원 중 하나가 되어 연구 중심 대학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미시간 대학교는 1900년에 만들어진 미국 내 연구 대학 모임인 미국 대학 협회(AAU)의 창립 회원 중 하나로서, 미국 고등 교육 및 연구의 발전에 기여해왔습니다.
1920
[유대인 학생 유입 증가]
아이비 리그 대학들이 유대인 입학 할당을 제한하자, 뉴욕의 유대인 학생들이 미시간 대학교를 선호하기 시작하여 학생 구성이 다양해졌습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아이비 리그 대학들이 유대인 입학 할당을 제한함에 따라, 뉴욕의 많은 유대인 학생들이 미시간 대학교를 선호하게 되면서 학교의 학생 구성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1939
[2차 세계 대전 연구 기여]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미시간 대학교 연구진은 미국 해군의 근접신관, 초계 어뢰정, 전파방해 개발 계획 등을 지원하며 국가 방위에 기여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미시간 대학교 연구진은 미국 해군의 근접신관, 초계 어뢰정, 전파방해 개발 계획 등을 지원하며 전시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45
[전후 학생 수 급증]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학생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많은 퇴역 군인들이 군인 재정착법의 지원을 받아 입학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학생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으며, 특히 1950년에는 21,000명을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7,700명은 군인 재정착법의 지원을 받은 퇴역 군인이었습니다.
1947
[냉전 시기 연구 활성화]
냉전 시기에 우주 경쟁이 벌어지는 동안 미국 연방 정부로부터 많은 연구 지원을 받아 원자력의 평시 사용 개발을 도왔습니다.
냉전 시기에 우주 경쟁이 벌어지는 동안 미시간 대학교는 미국 연방 정부로부터 많은 연구 지원을 받았고 원자력의 평시 사용 개발을 돕는 등 중요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1960
[1960년대 학생 시위]
1960년대에 대학 캠퍼스는 베트남 전쟁과 대학 행정에 반대하는 수많은 학생 시위의 현장이었으며, 이는 사회적 변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1960년대에 대학 캠퍼스는 베트남 전쟁과 대학 행정에 반대하는 수많은 시위의 현장이었으며, 학생들은 사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존 F. 케네디 연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가한 당시 상원 의원 존 F. 케네디가 연설에서 하버드 대학교를 "동부의 미시간 대학교"라고 언급하며 미시간 대학교의 명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1960년 10월 14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가한 당시 매사추세츠주 상원 의원 존 F. 케네디는 연설에서 하버드 대학교를 미국 동부의 미시간 대학교라고 말하기도 하며 미시간 대학교의 위상을 인정했습니다.
1964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연설]
미국의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미시간 대학교 졸업식에서 그의 핵심 정책인 '위대한 사회'의 개요를 설명하는 역사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1964년 봄 졸업식에서 미국의 대통령 린든 B. 존슨은 그의 정책인 위대한 사회의 개요를 설명하는 연설을 하여 미시간 대학교 캠퍼스에서 중요한 정치적 발표가 이루어졌습니다.
1965
[미국 최초 학부생 주도 토론회]
미시간 대학교 학생회는 미국 최초로 학부생이 주도하는 토론회를 개최하여 3천여 명의 학생들이 미국의 동남아시아 정책을 규탄했습니다.
1965년 3월 24일, 미시간 대학교 학생회의 3천여 명의 학부생들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학부생이 주도하는 토론회를 갖고 미국의 동남아시아에서 펼치고 있는 정책을 규탄하며 중요한 사회적 발언을 했습니다.
1968
[흑인 학생 시위 및 요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암살 이후, 흑인 학생 수십여 명이 행정동을 점거하고 흑인 학생, 교수, 교직원 증원을 요구하며 인권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1968년 4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암살된 뒤, 미시간 대학교의 흑인 학생 수십여 명이 행정동을 점거하고 흑인 학생과 교수, 교직원 등을 더 뽑을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2003
[인종 차별 대우 개선 프로그램 합헌]
미시간 대학교의 인종 기준에 따라 입학 사정 시 가점을 주는 처우 개선 프로그램이 2003년 미국 대법원에 의해 합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03년, 미시간 대학교가 인종 기준에 따라 입학 사정 시 가점을 주는 인종 차별 대우에 대한 처우 개선 프로그램을 갖고 있던 것이 미국의 헌법과 일치한다는 미국 대법원의 결정에 의해 지원받았습니다.
2006
[차별 대우 개선 프로그램 금지]
미시간주 주민 투표에 의해 모든 공립 학교 및 공공 기관의 차별 대우 개선 프로그램이 금지되었으며, 이로 인해 미시간 대학교도 인종이나 성별을 입학 기준으로 삼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06년 11월, 미시간주 주민 투표에 의해 모든 공립 학교 및 공공 기관의 차별 대우에 대한 처우 개선 프로그램을 금지한다는 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시간 대학교가 인종 혹은 성별을 입학 기준의 일부로 삼는 행위는 금지되었습니다.
2009
[미국 최대 연간 연구 기금 기록]
미시간 대학교는 2009년에 약 10억 달러의 연간 연구 기금을 기록하며, 미국 내 대학 연구 기관 중 가장 많은 연구 기금을 다루는 기관이 되었습니다.
미시간 대학교는 미국에서 대학 연구 기관으로서는 가장 많은 연간 연구 기금을 다루고 있으며, 2009년에는 약 10억 미국 달러를 기록하여 연구 분야에서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2017
[앤아버, 미국 최고 교육도시 선정]
미시간 대학교가 위치한 앤아버가 2017년 미국 최고의 교육도시로 선정되며 학교와 도시의 교육적 위상을 함께 높였습니다.
미시간 대학교가 위치한 앤아버는 2017년 미국 최고의 교육도시로 선정되기도 하여, 학교의 교육 환경이 매우 우수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스테판 로스 최대 기부 및 경영대학원 개명]
동문 스테판 로스가 2017년까지 총 3억 7천 8백만 달러를 기부하며 미시간 대학교 역사상 최대 기부자가 되었고, 이를 기념해 경영대학원은 '로스 경영대학원'으로 개명되었습니다.
미시간 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이자 미국의 부동산 개발 사업가 스테판 로스는 2017년까지 총 3억 7천 8백만 달러 (약 4,265억 원)를 기부하여 미시간 대학교 역사상 최대의 기부자가 되었습니다. 미시간 대학교는 이를 기념하여 스테판 로스의 이름을 따 경영대학원의 이름을 로스 경영대학원(Ross School of Business)으로 바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