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코 필로포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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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코 필로포비치
종합격투기 선수, 입식 타격가, 경찰, 정치가 + 카테고리

미르코 '크로캅' 필로포비치는 현대 격투기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타격가 중 한 명으로, '오른발은 병원, 왼발은 공동묘지'라는 전설적인 문구의 주인공입니다. 크로아티아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과 함께 K-1과 PRIDE, UFC라는 세계 3대 메이저 단체를 모두 섭렵하며 전설적인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그는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크로아티아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며,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리진(RIZIN) 그랑프리 우승을 차지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했습니다. 비록 뇌졸중이라는 갑작스러운 건강상의 이유로 링을 떠났으나, 그가 남긴 강력한 하이킥과 불굴의 투지는 격투기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전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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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74

[크로아티아 빈코브치에서 탄생]

유고슬라비아(현 크로아티아) 동부의 빈코브치에서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 성장하며 강인한 신체와 정신력을 길렀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경험은 훗날 그의 전사 기질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미르코 필로포비치는 크로아티아의 빈코브치 인근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무술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특히 가라테와 복싱을 독학하며 꿈을 키웠습니다. 전쟁의 참화를 목격하며 조국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게 되었고 이는 훗날 특수부대 입대로 이어졌습니다.

1990

[가라테 및 복싱 훈련 시작]

본격적으로 가라테와 복싱 체육관을 다니며 실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집 마당에 샌드백을 달아놓고 하루에 수천 번의 발차기를 연습하는 지독한 수련을 견뎠습니다. 이 시기에 단련된 왼발 하이킥은 훗날 그의 전매특허이자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매일 새벽 훈련을 거르지 않는 성실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복싱 기본기를 익히며 정교한 펀치 테크닉을 습득했고, 이는 입식 타격계에서 성공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주변 친구들과 코치들은 그의 폭발적인 파워와 타고난 운동 신경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1993

[크로아티아 군 입대 및 경찰 특수부대 근무]

크로아티아 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였으며 이후 경찰 특수부대 루치코(Lučko)에 선발되었습니다. 대테러 임무를 수행하는 최정예 요원으로서 복무하며 '크로캅(Cro Cop)'이라는 닉네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공무 수행 중에도 훈련을 병행하며 프로 격투기 선수의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경찰 특수부대 요원으로서의 경력은 그에게 고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는 부대 내에서도 뛰어난 무술 실력을 인정받아 동료들에게 무술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상관들의 배려 덕분에 야간 근무와 훈련을 병행하며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서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996

[K-1 정식 데뷔 및 제롬 르 밴너와의 승리]

일본에서 열린 K-1 그랑프리 예선에서 당대 최강자인 제롬 르 밴너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무명의 신예가 최정상급 래퍼를 꺾은 이 사건은 전 세계 격투기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승리를 통해 미르코는 단숨에 K-1의 차세대 스타로 급부상했습니다.

미르코는 강력한 펀치와 킥의 조화로 르 밴너의 맹공을 막아내며 효율적인 경기를 펼쳤습니다. 비록 다음 경기에서 어네스트 호스트에게 패했으나 그의 잠재력은 충분히 증명되었습니다. 이 데뷔전 이후 그는 '크로아티아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일본 팬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99

[K-1 월드 그랑프리 준우승]

K-1 월드 그랑프리 결승전에서 전설 어네스트 호스트와 맞붙어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8강에서 마이크 베르나르도, 4강에서 샘 그레코를 꺾으며 최정상급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결승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타격가 중 한 명임을 공인받았습니다.

당시 미르코는 갈비뼈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결승까지 진출하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하이킥은 상대 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대회 최고의 화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 준우승은 그가 훗날 입식 격투기의 정점에 서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중요한 성취였습니다.

2001

[PRIDE 데뷔 및 후지타 가즈유키 격파]

종합격투기(MMA) 단체인 PRIDE에 진출하여 일본 레슬링의 자존심 후지타 가즈유키와 대결했습니다. 그는 후지타의 태클을 방어하고 강력한 니킥으로 TKO 승리를 거두며 MMA 데뷔를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이 경기를 기점으로 미르코는 입식 격투기에서 종합격투기로 활동 무대를 넓혔습니다.

후지타 가즈유키는 당시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었으나 미르코의 날카로운 타격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미르코는 레슬러를 상대로 한 방어 능력을 보여주며 MMA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시각을 불식시켰습니다. 이후 그는 타격가 출신이 MMA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행보를 걷게 됩니다.

2002

[클라우디아와의 결혼 및 가정보호]

오랜 연인이었던 클라우디아(Klaudija)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습니다. 사생활을 철저히 보호하며 아내와 두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다정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족의 존재는 그가 수많은 부상과 패배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매스컴에 가족을 노출시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며 평온한 가정생활을 유지했습니다. 두 아들 이반(Ivan)과 필립(Filip)은 아버지를 존경하며 함께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미르코는 인터뷰에서 '내가 싸우는 유일한 이유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무승부]

당대 최고의 주짓수 파이터 노게이라와 스페셜 매치를 벌여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그라운드 지옥이라 불리는 노게이라의 서브미션 시도를 모두 막아내며 타격의 우위를 점했습니다. 이 경기를 통해 미르코는 그래플링 방어 능력이 최정상급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9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 국립 경기장에서 그는 침착하게 경기를 운영했습니다. 비록 서브미션을 시도하지는 못했으나 톱 클래스 주짓수 파이터를 상대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후 미르코는 노게이라, 표도르와 함께 PRIDE 헤비급의 3대 강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2003

[밥 샙을 상대로 한 전설적인 KO승]

당시 160kg에 육박하는 거구였던 밥 샙을 단 한 발의 레프트 스트레이트로 쓰러뜨렸습니다. 밥 샙의 안와골절을 유발한 이 타격은 기술이 힘을 압도하는 격투기의 묘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경기는 미르코의 인지도를 전 세계적으로 폭발시킨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미르코는 밥 샙의 돌진을 침착하게 피하며 정확한 타이밍에 카운터를 꽂아 넣었습니다. 거대한 체구의 밥 샙이 안면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우는 모습은 전 세계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미르코는 PRIDE 무대에서 가장 위협적인 파이터로 공인받으며 타이틀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크로아티아 국회의원 당선]

크로아티아 총선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격투기 현역 선수로서 국가 입법 기구에 참여하는 매우 이례적인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스포츠 발전과 군/경찰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사민당(SDP) 소속으로 출마하여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낮에는 링 위에서 싸우고 밤에는 법안을 검토하는 그의 모습은 '문무겸비'의 표본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약 4년의 임기 동안 그는 정치와 격투기 선수라는 두 가지 힘든 길을 병행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2004

[케빈 랜들맨에게 충격적인 패배]

PRIDE 헤비급 그랑프리 1회전에서 레슬러 케빈 랜들맨에게 KO 패배를 당했습니다. 승리가 확실시되던 경기였으나 예상치 못한 레프트 훅 한 방에 무너지며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패배는 미르코의 커리어에서 가장 뼈아픈 시련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미르코는 상대의 테클만 경계하다가 랜들맨의 변칙적인 펀치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파운딩에 이은 KO 패는 그의 무적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으나 그는 곧바로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그는 이 패배를 계기로 자신의 방어적인 허점을 보완하며 더욱 완벽한 파이터로 진화했습니다.

[케빈 랜들맨을 상대로 복수 성공]

연말 이벤트인 '남제'에서 케빈 랜들맨과 다시 만나 1라운드 길로틴 초크로 승리했습니다. 타격가가 아닌 주짓수 기술로 레슬러를 제압하며 자신의 완벽한 발전을 증명했습니다. 이 승리를 통해 랜들맨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챔피언 도전권을 획득했습니다.

미르코는 타격전에서 랜들맨을 압도하다가 허를 찌르는 서브미션 기술로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의 주짓수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경기였습니다. 경기 후 랜들맨과 포옹하며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장면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5

[표도르 에멜리아넨코와의 세기의 대결]

PRIDE 헤비급 챔피언 표도르를 상대로 격투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이틀전을 치렀습니다. 치열한 타격 공방전을 벌였으나 아쉬운 판정패를 당하며 챔피언 등극에 실패했습니다.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실력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명승부였습니다.

경기 전부터 '인류 최강의 대결'로 불리며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았습니다. 미르코는 표도르의 안면에 정교한 펀치를 꽂아 넣었으나 체력적인 열세로 경기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 경기는 훗날 2000년대 종합격투기 사상 최고의 경기로 선정되었습니다.

2006

[PRIDE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

자신의 32번째 생일에 열린 PRIDE 무차별급 그랑프리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4강에서 반다레이 실바를 하이킥으로, 결승에서 조쉬 바넷을 TKO로 격파했습니다.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화려하고 위대한 정점을 찍은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반다레이 실바와의 대결에서 보여준 왼발 하이킥 KO는 격투기 역사상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꼽힙니다. 조쉬 바넷과의 결승전에서도 압도적인 타격 능력을 보여주며 무결점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생일날 세계 챔피언이 된 그는 링 위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전 세계 팬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2007

[UFC 데뷔전 승리]

세계 최대 격투기 단체인 UFC에 진출하여 에디 산체스를 1라운드 TKO로 꺾었습니다. PRIDE의 전설이 옥타곤에 등장하자 미국 팬들은 광적인 환호를 보냈습니다. 강력한 파운딩으로 승리를 거두며 UFC 챔피언 벨트를 향한 첫걸음을 뗐습니다.

미르코는 옥타곤이라는 철창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타격뿐만 아니라 벽을 이용한 레슬링 방어에도 집중했습니다. 첫 경기를 손쉽게 승리하며 그가 UFC 헤비급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가브리엘 곤자가에게 충격의 하이킥 패배]

UFC 70에서 가브리엘 곤자가에게 자신의 주특기인 하이킥으로 KO 패배를 당했습니다. 하이킥의 장인이 하이킥에 무너진 이 사건은 격투기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미르코는 깊은 슬럼프에 빠지며 커리어의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미르코는 곤자가의 강력한 레슬링 압박에 당황하다가 방심한 틈에 안면 킥을 허용했습니다. KO 직후 발목이 꺾인 채 쓰러진 그의 모습은 많은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그는 예정되어 있던 랜디 커투어와의 타이틀전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2008

[DREAM 복귀 및 일본 무대 재입성]

UFC에서의 부진을 뒤로하고 고향과도 같은 일본 무대인 DREAM에 복귀했습니다. 미즈노 다쓰야를 1라운드 KO로 꺾으며 여전한 일본 내 인기를 확인했습니다. 링 복귀를 통해 다시 한번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일본 팬들은 돌아온 영웅 미르코를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성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는 익숙한 링 환경에서 안정적인 타격을 보여주며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이후 알리스타 오프레임과의 경기 등 대형 매치업을 통해 다시 한번 비상을 꿈꿨습니다.

2009

[UFC 99 재입성 및 무스타파 알 턱 격파]

독일에서 열린 UFC 99를 통해 옥타곤으로 다시 복귀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무스타파 알 턱을 상대로 1라운드 TKO 승리를 거두며 복귀를 알렸습니다. 비록 이전의 폭발력은 줄었으나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승수를 쌓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고 가장 힘든 무대인 UFC에 다시 도전하는 근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경기는 유럽에서 열려 많은 고국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그를 응원했습니다. 복귀전 승리 후 그는 다시 한번 정상권 선수들과의 대결을 준비했습니다.

2010

[팻 배리를 상대로 거둔 짜릿한 역전승]

자신을 롤모델로 삼은 팻 배리와 대결하여 3라운드 서브미션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초반에 다운을 허용하는 위기를 겪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끝내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 승리는 미르코의 베테랑다운 노련함이 빛난 감동적인 경기였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두 선수가 서로 경의를 표하며 포옹하는 등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미르코는 배리의 빠른 킥에 고전했으나 집중력을 발휘해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경기를 끝냈습니다. 이후 '오늘의 경기' 보너스를 수상하며 여전한 스타성을 입증했습니다.

2011

[UFC 잠정 은퇴 발표]

UFC 137에서 로이 넬슨에게 패배한 후 옥타곤 무대에서의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연이은 패배와 노쇠화에 따른 기량 저하를 인정하며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전설적인 파이터의 퇴장 소식에 전 세계 팬들이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UFC는 그의 공로를 기리는 특별 영상을 제작하여 헌정했습니다. 비록 옥타곤을 떠났으나 격투기 자체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으며 이후 입식 무대로 눈을 돌렸습니다.

2013

[K-1 월드 그랑프리 결승 우승]

자신의 조국인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K-1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했습니다. 무려 38세의 나이로 킥복싱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고국 팬들 앞에서 거둔 이 승리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감격적인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결승에서 이스마엘 론트를 꺾으며 고국의 국민 영웅으로서 다시 한번 추앙받았습니다. 입식 격투기로 시작한 그의 커리어가 17년 만에 비로소 K-1 왕좌에 오른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현장에는 크로아티아의 주요 인사들과 수천 명의 팬들이 모여 그의 우승을 축하했습니다.

2014

[IGF 챔피언 등극]

일본의 IGF 단체에서 이시이 사토시를 꺾고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습니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이시이를 상대로 압도적인 타격을 선보였습니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미르코는 이시이의 테이크다운을 완벽하게 봉쇄하며 스탠딩 상황에서 경기를 압도했습니다. 정교한 펀치 연타와 니킥으로 이시이의 안면에 큰 부상을 입히며 TKO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우승을 통해 그는 다시 한번 UFC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세 번째 옥타곤 입성을 준비하게 됩니다.

2015

[가브리엘 곤자가와의 리벤지 매치 승리]

8년 만에 재회한 가브리엘 곤자가를 상대로 처절한 역전 TKO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초반 열세를 딛고 3라운드 강력한 엘보우와 파운딩으로 복수에 성공했습니다. 전설의 부활을 알린 이 경기는 전 세계 격투기 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미르코는 1, 2라운드 내내 곤자가의 압박에 고전했으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클린치 상황에서 엘보우를 작렬시켰습니다. 곤자가가 충격을 입고 쓰러지자 쉴 새 없는 파운딩을 쏟아부어 심판의 중단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승리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극적이고 상징적인 복수극으로 남았습니다.

[부상 악화 및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

어깨 부상 악화와 이에 따른 치료 과정의 문제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은퇴 선언 직후 약물 검사 위반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이후 성실히 소명하였습니다. 이후 한동안 링을 떠나 재활과 후진 양성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이제는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며 은퇴를 결정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팬들은 전설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아쉬움을 표하며 그의 앞날을 축복했습니다. 비록 은퇴를 선언했으나 훈련은 계속하며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2016

[RIZIN 월드 그랑프리 우승]

일본 리진(RIZIN) 단체에서 주최한 무차별급 그랑프리에서 전 경기를 KO로 끝내며 우승했습니다. 42세의 나이로 킹 모, 바루토, 아미르 알리아크바리를 차례로 꺾으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과거 PRIDE 시절의 영광을 10년 만에 재현하며 '격투기 전설'의 품격을 보여주었습니다.

대회 내내 그는 단 한 차례의 위기도 허용하지 않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결승전에서 알리아크바리를 상대로 레프트 훅 한 방으로 경기를 끝냈을 때 전 세계 팬들은 경악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그는 종합격투기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노장 파이터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2017

[작별 여정 시작 및 코사카 쓰요시 격파]

일본 리진 연말 대회에서 '은퇴 투어'의 시작으로 코사카 쓰요시와 대결해 승리했습니다. 불과 1분 2초 만에 TKO 승리를 거두며 여전히 폭발적인 타격감을 보여주었습니다.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한 경기 한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코사카 쓰요시는 일본의 베테랑 파이터였으나 미르코의 화력을 견디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미르코는 자신의 몸 상태가 허락하는 한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경기는 그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서막이 되었으며 일본 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았습니다.

2019

[벨라토르 데뷔전 및 로이 넬슨과의 리벤지 매치 승리]

미국 벨라토르(Bellator) 216 대회에 출전하여 과거 패배를 안겼던 로이 넬슨을 꺾었습니다. 44세의 나이로 3라운드 내내 압도적인 타격 우위를 보이며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그의 공식적인 선수 생활 마지막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넬슨의 장기인 강력한 펀치를 완벽하게 방어하고 정교한 연타로 점수를 쌓았습니다. 8년 전 UFC에서의 패배를 완벽히 갚아주며 전설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경기 후 로이 넬슨도 미르코의 기량에 경의를 표하며 포옹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뇌졸중 발생 및 공식 은퇴 선언]

갑작스러운 뇌졸중 증세로 병원에 이송되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완전한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링 위에 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20년이 넘는 파란만장한 전사의 여정이 이 날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는 '다시는 내 머리에 타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상황임을 팬들에게 알렸습니다. 전 세계 격투기 매체와 선수들이 그의 건강을 걱정하며 쾌유를 빌었습니다. 비록 링은 떠났으나 그는 자신이 이룬 위대한 유산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제2의 인생을 준비했습니다.

2021

[격투기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 선정]

각종 격투기 매체와 단체에서 명예의 전당 헌액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격투기 역사에 남긴 하이킥과 스포츠맨십은 영구적으로 보존될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은퇴 후에도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는 현역 시절 단 한 번도 상대를 비하하거나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수많은 후배 파이터들이 그를 롤모델로 꼽으며 그의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명예의 전당 헌액은 그가 흘린 땀과 피에 대한 전 세계 격투기계의 응당한 보답이 될 것입니다.

2024

[후진 양성 및 지도자 활동]

자신의 고향 크로아티아에서 개인 체육관을 운영하며 후배 파이터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유망주들에게 자신의 노하우와 정신력을 전수하며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체육관은 전 세계 격투기 선수들이 훈련을 위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안테 델리야 등 크로아티아의 대형 파이터들이 그의 지도 아래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미르코는 직접 스파링 파트너가 되어주거나 기술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링 위에서의 실력만큼이나 링 밖에서의 인격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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