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해전
연표
1942
[미국, 일본군 암호 해독으로 침공 계획 간파]
하와이에 주둔하던 미국 해군 정보부의 암호 해독반 '블랙 쳄버'가 일본군의 무전량이 급증하는 것을 포착했습니다.특히 자주 등장하는 'AF'라는 문자에 주목한 로슈포르 중령은 이를 '미드웨이섬'으로 추정했습니다.이들의 확신은 미드웨이섬의 담수 시설이 고장 났다는 가짜 전문을 보낸 뒤 일본군 암호에서 'AF에 물 부족'이라는 내용이 해독되면서 명확해졌고, 미국은 일본군의 다음 공격 목표를 사전에 파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미국 해군 암호 해독반은 일본 해군의 암호 체계인 'JN-25'를 이미 해독하고 있었습니다. 로슈포르 중령은 일본 정찰기의 비행경로 추적과 위장 전술을 통해 'AF'가 미드웨이섬임을 확신했고, 이는 열세인 미군이 일본군의 공격을 대비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습니다.
[미 항공모함, 즉시 미드웨이 방어를 위해 출항]
산호해 해전을 마치고 진주만에 귀환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재보급을 받자마자, 니미츠 제독의 명령에 따라 곧바로 미드웨이섬 방어를 위해 출항했습니다.이는 다가올 전투에 대한 미국의 철저한 대비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일본 나구모 함대 출항, 미 요크타운호 기적의 응급 수리]
일본 시간으로 나구모 제독의 주력 함대가 일본을 떠나 미드웨이로 향했습니다.같은 날, 산호해 전투에서 침몰 직전까지 갔던 미 항공모함 요크타운은 진주만 건선거에 입항, 3개월 걸릴 수리 일정을 단 48시간 만에 핵심 부분만 고치는 기적적인 응급 수리를 마치고 전장으로 복귀를 준비했습니다.
요크타운의 수리에는 1,400여 명의 기술자들이 투입되었으며, 항해와 전투기 발진에 필수적인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수리했습니다. 이 경이로운 수리 능력은 미군의 산업적 역량을 보여주는 동시에, 전투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일본 함대의 무전 봉쇄와 치명적인 오판의 시작]
야마모토 제독의 주력 함대가 일본을 떠나 미드웨이로 향했습니다.도쿄의 일본 대본영은 미군 항공모함들이 진주만에서 미드웨이로 이동 중이라는 무전을 청취하고 야마모토에게 보고했지만, 야마모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구로시마 소장이 '미군이 일본군의 위치를 알게 될까 우려된다'는 이유로 나구모 중장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나구모 중장은 도쿄로부터의 중요한 무전을 전혀 수신하지 못했고, 미군 항모들이 산호해 근처에 머물러 있거나 수리 중일 것이라는 불분명한 초기 정보만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무전 봉쇄와 정보 단절은 일본군 패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미국 함대 진주만 출항 및 광범위한 정찰 시작]
응급 수리를 마친 요크타운을 포함한 미군 함대가 진주만을 떠났습니다.미드웨이섬에서는 PBY 카탈리나 비행정들이 서쪽으로 최대 1,100km까지 부채꼴 모양으로 광범위한 정찰 비행을 시작하며 일본군 함대를 필사적으로 수색했습니다.일본 잠수함의 정찰을 우려한 니미츠 제독의 판단으로, 미군 함대는 이미 진주만을 떠난 뒤였습니다.
[나구모 함대, 미군 항모 부재를 전제로 한 작전 계획 수립]
나구모 제독은 기함 아카기에서 참모들과 전략 회의를 열었습니다.이들은 '미국은 일본의 계획을 모르며, 아군의 위치를 모른다', '근처에 미국 항모 기동 부대는 없다'는 두 가지 잘못된 전제 하에 미드웨이를 기습 공격하고 상륙 작전을 엄호한 뒤, 나중에 접근할 미군 항모를 격파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이 오판은 전투의 향방을 결정지었습니다.
[미군, 일본군 상륙 전대 발견 및 선제 공격]
아침, 잭 레이드 소위가 조종하는 카탈리나 정찰기가 곤도 노부나케 중장이 지휘하는 일본군 상륙 전대를 미드웨이 동북쪽 해상에서 발견했습니다.저녁에는 샌드섬에서 이륙한 카탈리나 비행정 편대가 어둠을 틈타 엔진을 끈 채 활강하며 곤도 함대에 어뢰 공격을 가했고, 2척의 수송선에 경미한 피해를 입혔습니다.이는 미드웨이 해전의 첫 교전이자 미군의 선제 공격이었습니다.
미드웨이 동북쪽 해상에서 침묵을 유지하며 대기 중이던 플레처와 스프루언스 제독의 미군 기동함대는 일본군 항공모함 함대를 끈기 있게 기다리며 주공을 아꼈습니다.
[미드웨이, 일본군 공격대 발견 및 공중전 격화]
5시 45분, 미드웨이섬 정찰기가 일본군 1차 공격대를 발견하고 보고했습니다.5시 55분에는 레이다에서도 공격대 접근이 포착되자 미드웨이섬의 모든 전투기에 즉시 발진 명령이 떨어졌습니다.6시 15분, 팍스 소령이 지휘하는 미군 전투기 27대가 일본군 편대를 기습했지만, 일본군 제로 전투기의 반격으로 17대가 격추되고 8대가 심하게 파손되는 등 미군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격렬한 공중전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일본군 폭격기 편대는 미드웨이섬의 격납고와 발전소 등 주요 시설을 폭격했습니다. 하지만 폭격대 지휘관 토모나가 대위는 추가 공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나구모 제독에게 보고했습니다.
[미군 항공모함, 대규모 함재기 출격으로 반격 시작]
6시 5분, 정찰정으로부터 일본군 함대에 대한 상세 보고가 미국 항공모함 함대로 전달되자, 요크타운, 호넷, 엔터프라이즈에서 즉시 정찰기를 발진시켰습니다.7시 5분,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총 119대의 어뢰 공격기, 급강하 폭격기, 호위 전투기들을 발진시키며 일본 함대 공격을 위한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나구모 제독의 치명적인 재무장 명령과 미군 어뢰 공격대의 희생]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미군 폭격기와 어뢰 공격기들이 일본군 항공모함에 산발적으로 공격을 가했지만 모두 격퇴되었습니다.이를 본 나구모 제독은 '미드웨이 추가 공격 필요'라는 토모나가 대위의 보고가 옳다고 판단, 7시 15분, 2차 공격을 위해 대기 중이던 항공기들의 어뢰를 빼고 폭탄으로 재무장하라는 치명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이 작업은 30분이 소요되어 일본 함재기들은 무방비 상태가 되었습니다.
재무장 작업 중이던 7시 30분, 토네 정찰기가 '미군 함대 발견' 보고를 해왔지만, 항공모함 포함 여부가 불확실해 확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9시 25분부터 호넷과 엔터프라이즈의 어뢰 공격대가 전투기 호위도 없이 일본 항모에 접근하여 희생적인 공격을 감행했으나, 일본군 전투기들에게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들의 희생은 일본군 전투기들을 저공으로 유인하여 상공을 무방비 상태로 비워두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미군 급강하 폭격대의 결정적 공격: 일본 항모 3척 동시 격침]
미군 어뢰 공격대의 희생으로 일본군 전투기들이 저공으로 이동하여 상공이 무방비가 된 틈을 타, 10시 25분부터 엔터프라이즈와 요크타운의 급강하 폭격대들이 무방비 상태의 일본 항공모함 아카기, 가가, 소류를 덮쳤습니다.재급유와 재무장으로 항공기, 정비 요원, 연료, 폭탄 등이 즐비했던 갑판은 단 몇 분 만에 아비규환의 불지옥으로 변했습니다.이는 해전 역사상 전례 없는, 세계최초의 대규모 함대 항공모함 동시 격침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가가와 아카기는 여러 발의 폭탄에 직격당하며 대폭발을 일으켰고, 소류 역시 화재 발생으로 엔진이 멈췄습니다. 이 결정적인 공격으로 일본 해군의 핵심 전력이었던 항공모함 3척이 단숨에 무력화되었고, 일본의 제공권은 상실되었습니다.
[일본 항모 히류의 필사적인 반격과 최후]
기적적으로 공격을 피한 일본 항공모함 히류는 10시 40분부터 두 차례에 걸쳐 미 항공모함 요크타운에 대한 필사적인 반격을 감행했습니다.고바야시 미치오 대위와 토모나가 죠이치 대위가 지휘하는 공격대는 요크타운에 폭탄 2발과 어뢰 2발을 명중시켜 치명상을 입혔지만, 대부분의 공격기가 격추되고 두 대위 모두 전사했습니다.
미군 정찰기가 히류를 발견하자, 플레처 제독은 즉시 히류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5시,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히류를 폭격하여 폭탄 4발을 명중시켰고, 히류는 폭발과 함께 화염에 휩싸여 침몰했습니다. 이로써 일본 해군이 자랑하던 항공모함 4척 모두를 상실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야마구치 소장과 히류 함장은 침몰하는 함에 남아 전사하며 비장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일본군 정찰기 미군 함대 발견 실패 및 1차 공격대 출격]
1942년 새벽 나구모 함대가 미드웨이 서북쪽에 도착하여 정찰기를 발진시켰으나, 순양함 치쿠마에서 출발한 정찰기의 엔진 고장 등으로 미군 함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4시 45분 일본군 항공모함 4척에서 토모나가 죠이치 대위가 지휘하는 108대의 1차 공격대가 미드웨이 폭격을 위해 출격했습니다.
이 정보의 부재는 나구모 제독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USS 요크타운의 침몰 결정과 예인 시도]
히류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은 요크타운은 6월 5일 오후 2시 55분, 엘리엇 벅마스터 함장의 퇴함 명령이 내려졌습니다.니미츠 제독은 요크타운을 진주만으로 예인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예인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본군 잠수함 이-168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알류샨 열도 이투섬·키스카섬 점령 및 제로센 분석]
미드웨이 전투가 한창이던 6월 3일부터 일본군 북방 함대는 알류샨 열도 공략 작전을 개시했습니다.6월 6일, 호소가야 제독은 이투섬과 키스카섬에 육전대 12,250명을 상륙시켜 두 섬을 점령했습니다.일본은 이 점령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를 자국민에게 숨겼습니다.
알류샨 열도 전투 중, 더치하버 동쪽 아쿠탄섬에 불시착한 일본 제로센 1기가 미군에게 수거되어 철저히 분석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군은 제로기의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이용한 새로운 전투 전술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얻었습니다.
[미 항공모함 USS 요크타운, 최종 침몰]
일본 잠수함 이-168의 어뢰 공격을 받은 요크타운은 결국 6월 7일 아침, 바다에 뒤집히며 침몰했습니다.이로써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 1척과 구축함 1척을 잃었지만, 일본 해군에 훨씬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2019
[미드웨이 해전 소재 영화 개봉]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해전 중 하나인 미드웨이 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2019년에 개봉되었습니다.이 영화는 전 세계 관객들에게 이 운명적인 전투의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