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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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선수, 국가대표, 프로 선수 + 카테고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직 배구 선수 문성민은 명륜초등학교에서 배구를 시작해 경기대학교에서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독일과 터키 리그를 거치며 해외 경험을 쌓은 그는 국내 V-리그로 복귀하여 현대캐피탈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수많은 MVP와 올스타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2025년 은퇴와 함께 영구 결번의 영예를 안은 한국 배구의 레전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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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86

[배구 레전드의 탄생]

대한민국 부산직할시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운동 재능을 보였습니다.

문성민은 1986년 9월 14일 부산직할시에서 태어나 명륜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청룡초등학교 4학년 때 높이뛰기 선수로 활동했지만, 명륜초등학교 박판규 감독의 제의로 전학하여 배구 선수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부산동성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강력한 공격력을 키워나갔습니다.

1996

[배구 인생의 시작]

부산 명륜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하며 배구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문성민은 부산 명륜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높이뛰기 선수였으나, 명륜초 박판규 감독의 제의로 배구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배구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2004

[국제대회 첫 금메달]

아시아 주니어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대학교 재학 중이던 2004년 아시아 주니어 배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하며 유망주로서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2005

[대학 무대 최고 선수 등극]

대한배구협회 최우수선수와 현대캐피탈배 전국대학배구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며 대학 무대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2005년 대한배구협회 최우수선수와 현대캐피탈배 전국대학배구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며 대학 배구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

도하 아시안 게임 배구 결승전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한민국 배구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고 병역 혜택을 받았습니다.

2006년 월드리그를 시작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으며, 그해 도하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카타르와의 준결승전에서 주포 신진식의 부진을 메우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중국과의 결승전에서도 맹활약하며 금메달을 따는 데 기여했고, 이로 인해 병역 혜택을 받았습니다.

2007

[대표팀 소집 파동과 징계]

이후 재활을 이유로 국가대표 소집을 거부하여 6개월 근신 처분을 받았습니다.

2008

[독일 리그 진출 확정]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팀 VfB 프리드리히스하펜과 연봉 1억 5천만원에 2년 가계약을 맺으며 해외 진출을 확정 지었습니다.

2008년 여름, 스위스 국경 인근의 독일 명문 클럽 VfB 프리드리히스하펜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리스, 러시아, 폴란드 등 다른 배구 강국의 제안도 받았지만, 이탈리아 빅 리그와 가까운 독일을 선택했습니다. 7월 30일 프리드리히스하펜 클럽과 연봉 1억 5천만원, 계약 기간 2년으로 가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적 동의서 발급 승인]

대한배구협회가 논의 끝에 문성민의 이적 동의서 발급을 결정하며 독일 진출이 최종 승인되었습니다.

경기대학교와 문성민의 해외 진출 의지에도 불구하고 대한배구협회는 신인 드래프트 참가 의무 등 규정 문제로 이적 동의서 발급을 주저했습니다. 하지만 9월 2일 상무이사회를 통해 이적 동의서 발급을 결정하며, 문성민은 이희완, 이성희 감독에 이어 세 번째로 독일에 진출하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 성공적 데뷔]

독일 분데스리가 개막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서브 에이스 2개를 포함해 7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2008년 9월 4일 독일로 출국한 문성민은 언어와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10월 2일 2008-2009 분데스리가 개막전 VC 올림피아 베를린전에 선발 출전했습니다. 그는 서브 에이스 2개를 포함해 7득점을 올렸고, 특히 3세트에서 연속 디그와 백어택을 성공시키며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9

[PO 4강전 21점 맹활약]

독일 분데스리가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무려 21점을 기록하며 팀의 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언어 소통 문제와 팀 플레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문성민은 동료 선수의 부상으로 출장 기회를 늘렸고 레프트 포지션에 자리 잡았습니다. 정규시즌 후 EnBW 로젠부르크와의 8강 PO에서 활약했고, SCC베를린과의 4강 PO 1차전에서 서브 에이스 3점을 포함한 21점을 기록하며 팀의 결승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독일 리그 5연패 주역]

게네랄리 하힝과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16득점하며 팀의 리그 5연패를 달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게네랄리 하힝을 상대로 맹활약한 문성민은 4차전에서 서브 에이스 2개, 블로킹 3개를 포함해 16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5연패 달성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의 빼어난 활약으로 프리드리히스하펜은 재계약을 제안했고,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 등 많은 상위권 팀들이 스카웃 제안을 보냈습니다.

[터키 리그 할크방크 이적]

한국전력의 구애를 마다하고 터키 할크방크와 1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며 유럽 무대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독일에서의 활약 후, 문성민은 한국전력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리그 진출을 목표로 유럽에 남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2009년 5월 29일 터키 리그의 할크방크와 1년 계약, 총액 25만 유로의 조건으로 이적했습니다. 할크방크는 불가리아 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앙카라 연고의 팀이었습니다.

[터키 리그 데뷔전 맹활약]

터키 배구 리그 개막전에서 라이트 공격수로 선발 출전하여 18점을 기록하며 팀의 시즌 첫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문성민은 터키 할크방크로 이적 후 2009년 10월 10일 터키 배구 리그 개막전 딜리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라이트 공격수로 선발 출전하여 블로킹 1개, 서브 에이스 1개를 포함한 18점을 기록하며 팀의 시즌 첫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2010

[PO 준결승 진출 좌절]

터키 리그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27점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패배하며 준결승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정규시즌 5위를 기록한 할크방크는 8강 플레이오프에서 아르카스와 맞붙었습니다. 문성민은 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지만, 3차전에서 홀로 27점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음에도 팀은 패배하며 준결승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현대캐피탈 복귀 및 이적 파동]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 입단하며 2년 만에 국내 V-리그로 복귀했으나, 이적 과정에서 신인 드래프트 제도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2년간의 해외 생활에 지쳐 국내 복귀 의사를 밝힌 문성민은 수원 KEPCO 45와의 협상 결렬 후, 주포 박철우를 잃은 현대캐피탈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았습니다. 현대캐피탈은 하경민과 임시형을 한국전력에 내주고 문성민을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습니다. 문성민은 최고 20억원 수준의 5년 계약을 맺었으나, 다른 신인 선수와의 형평성 문제로 신인 드래프트 제도 우롱이라는 비판과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적 파동 관련 최종 징계]

배구연맹 징계위원회 재심 결과, 벌금 1천만원과 2010-2011 시즌 1라운드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문성민의 현대캐피탈 입단으로 인해 발생한 드래프트 파동으로 배구연맹 상벌위에 회부된 그는 1차 징계로 경고와 1억 1천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습니다. 현대캐피탈의 재심 신청 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난 11월 29일, 벌금은 1천만원으로 감경되었지만 2010-2011 시즌 1라운드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V-리그 성공적 데뷔]

우리캐피탈과의 경기에서 19득점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한국 프로 배구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1라운드 출장 정지 징계가 풀린 문성민은 2010년 12월 28일 유관순체육관에서 우리캐피탈을 상대로 한국 프로 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폭설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많은 관중이 그의 데뷔전을 지켜봤고, 그는 공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며 공격성공률 65%에 19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2011

[생애 첫 트리플 크라운]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와의 경기에서 백어택 10개, 서브 에이스 3개, 블로킹 3개를 기록하며 생애 첫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문성민은 국내 복귀 후 현대캐피탈의 주포로 자리 잡으며 2010-2011 V-리그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최다 득표 2위를 차지했습니다. 올스타전 이후 2011년 2월 13일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와의 경기에서 백어택 10개, 서브 에이스 3개, 블로킹 3개를 기록하며 생애 처음이자 그 시즌 대한민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 달성]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와의 경기에서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으나, 처음에는 시상 불가 논란이 있었고 이후 배구연맹의 규정 개정으로 시상 및 수상 자격이 회복되었습니다.

2011년 3월 1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와의 경기에서 백어택 6개, 서브 에이스 3개, 블로킹 5개를 기록하며 두 번째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배구 연맹은 그의 징계 이력을 이유로 시상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연맹은 상벌위원회를 열어 규정을 개정하고 두 번의 트리플 크라운에 대한 시상과 함께 상금 200만원을 지급하며 신인상 등 각종 수상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2013

[동아스포츠대상 및 올스타 MVP]

제5회 동아스포츠대상 프로배구 올해의 선수상과 2012-2013 V-리그 올스타 MVP를 수상하며 국내 리그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았습니다.

2013년에 제5회 동아스포츠대상 프로배구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고, NH농협 2012-2013 V-리그 올스타 MVP로 선정되는 등 국내 리그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았습니다.

2015

[V-리그 올스타 3관왕]

2015-2016 V-리그 올스타전에서 최다 투표, 세레머니상, 그리고 올스타 MVP를 휩쓸며 독보적인 인기를 과시했습니다.

2015-2016 V-리그 올스타전에서 온라인 최다투표를 기록하고 세레머니상과 올스타 MVP까지 수상하며 팬들의 압도적인 사랑과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배우 박진아와 결혼]

배우 출신 박진아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습니다.

2015년 4월에 배우 출신인 박진아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시호와 리호를 두었습니다.

2016

[V-리그 정규리그 MVP]

2015-2016 V-리그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등극했습니다.

2016년 NH농협 2015-2016 V-리그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며 개인 최고 영예를 안았습니다.

2017

[두 번째 V-리그 정규리그 MVP]

2016-2017 V-리그 정규리그 MVP와 베스트7에 선정되며 다시 한번 리그 정상급 기량을 입증했습니다.

2017년 NH농협 2016-2017 V-리그 정규리그 MVP와 베스트7에 선정되며 변함없는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2018

[방송 출연 및 아시안 게임 은메달]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여 자녀들과의 일상을 공개했으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배구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18년 KBS2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여 두 아들과의 육아 일상을 공개하며 대중에게 친근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같은 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배구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19

[예능 프로그램 출연]

JTBC 예능 프로그램 《찰떡콤비》에 출연하여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2019년 JTBC 예능 프로그램 《찰떡콤비》에 출연하여 운동선수 외의 다양한 매력을 선보였습니다.

2025

[영구 결번과 함께하는 은퇴]

2024-2025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하며, 그의 등번호 15번은 현대캐피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24-2025 시즌 6라운드가 진행 중이던 2025년 3월 13일, 문성민은 당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일주일 뒤인 3월 20일 마지막 정규리그 홈 경기 후 은퇴식이 진행되었고, 그동안 팀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등번호 15번이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팀이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지만, 출전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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