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리카
연표
1981
10살 울리히가 딥 퍼플 콘서트에 매료되어 밴드 결심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 신문에 'Tygers of Pan Tang, 다이아몬드 헤드, 아이언 메이든 같은 연주를 할 메탈 뮤지션을 구함' 문구의 구인광고를 게재했다.
[메탈리카 공식 결성]
라스 울리히가 Metal Blade Records에 음반 제작을 문의했고, 컴필레이션 앨범 `Metal Massacre`에 수록곡 레코딩을 승낙받자 제임스 헷필드를 정식 영입하며 밴드를 공식 결성했다.
1982
[데이브 머스테인 영입]
울리히와 헷필드가 고가의 장비가 많았던 데이브 머스테인을 리드 기타리스트로 영입하고, 메탈리카의 첫 노래 를 녹음했다.
[클리프 버튼 영입]
울리히와 헷필드는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의 연주 실력에 감탄하여 그를 영입했다.버튼의 조건에 따라 밴드의 활동 지역을 샌프란시스코로 옮기면서 론 맥거브니가 탈퇴했다.
[첫 노래 `Hit the Lights` 발매]
첫 노래 가 컴필레이션 앨범 `Metal Massacre`에 수록되어 발매되었다.앨범에 팀명이 'Mettallica'로 오타가 나는 해프닝도 있었다.
1983
[Megaforce Records 계약]
공연 프로모터 조니 자줄라가 메탈리카의 데모 앨범 `No Life 'til Leather`를 듣고, 직접 레이블 Megaforce Record를 설립하여 첫 앨범 계약을 체결했다.
[첫 정규 앨범 녹음]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첫 번째 정규 앨범 `Kill 'Em All`을 녹음했다.원래 앨범 제목은 `Metal Up Your Ass`였다.
[데이브 머스테인 해고]
데이브 머스테인이 마약, 알코올 중독 및 난폭한 행동으로 인해 밴드에서 해고되었다.그의 기타 리프는 후에 메가데스 앨범에 다시 수록되기도 했다.
머스테인은 해고 후 "그는 내 일을 뺏어갔다", "나의 기타 리프를 먹칠하였다" 등 커크 해밋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Kill 'Em All` 발매]
첫 정규 앨범 `Kill 'Em All`이 Megaforce 레코드를 통해 발매되었고, 빌보드 차트 120위에 랭크되었다.
1984
[`Ride the Lightning` 발매]
두 번째 앨범 `Ride the Lightning`이 발매되어 빌보드 200 차트 100위에 진입했다.초록색으로 프린트된 앨범 커버 버전은 희귀 수집품이다.
1985
[대형 록 페스티벌 참가]
영국의 Monsters of Rock 페스티벌과 캘리포니아주의 Day on the Green 페스티벌 등 유명 페스티벌에 참가하며 입지를 다졌다.
1986
[`Master of Puppets` 발매]
세 번째 정규 앨범 `Master of Puppets`가 발매되어 빌보드 200 차트 29위에 랭크되었고, 72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다.
이 앨범은 밴드가 대단히 큰 위업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3년까지 미국 내에서만 1,600만 장이 팔린 수작으로 기록되었다.
[클리프 버튼 사망]
유럽 투어 중 이동 버스 사고로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이 사망했다.이 사고는 멤버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버튼은 카드 게임에서 이겨 해밋의 침상을 선택했고, 새벽에 버스 기사가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며 사고가 발생했다. 탑승객 중 유일하게 버튼만이 사망했다.
1987
이 비디오에는 버튼의 베이스 솔로, 홈 비디오, 사진 등 메탈리카에서 그의 3년 동안의 활약상이 담겨 있다.
1988
[`...And Justice for All` 발매]
클리프 버튼 사망 후 첫 정규 앨범 `...And Justice for All`이 발매되어 빌보드 200에서 6위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했다.
이 앨범은 베이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볼륨이 줄여져 제이슨 뉴스테드에 대한 '왕따' 취급 논란이 있었다.
1989
[그래미 어워드 첫 후보]
그래미 시상식 신설 부문 '최고 하드 록/메탈 퍼포먼스 보컬, 연주'에 `...And Justice for All` 앨범으로 처음 후보에 올랐으나, 제스로 툴에게 수상을 놓치며 이변을 낳았다.
1990
[프로듀서 밥 록 고용]
기존 프로듀서와 결별하고 에어로스미스, 머틀리 크루 등 유명 뮤지션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밥 록을 고용하여 다섯 번째 앨범 작업에 돌입했다.
1991
[`Black Album` 발매]
'블랙앨범'으로 불리는 다섯 번째 정규 앨범 `Metallica`가 발매되어 빌보드 200 차트에서 세계 최초 1위에 올랐다.이 앨범은 세계적으로 3,500만 장 이상의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리며 밴드의 대중적 성공을 이끌었다.
밥 록은 원초적이기보다는 대중적이고 상업성을 중시하는 프로듀서였으며, 이 앨범 작업 과정을 담은 `A Year and a Half in the Life of Metallica` 영상이 제작되었다.
1992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
영국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레디 머큐리 트리뷰트 콘서트에 참가하여 3곡을 연주하고 제임스 헷필드는 퀸 멤버들과 함께 를 불렀다.
[합동 투어 중 헷필드 부상]
건스 앤 로지스와 합동 스타디움 투어를 진행하던 중 제임스 헷필드가 무대 장치 오작동으로 3도 화상을 입어 기타 연주가 힘들어졌다.
헷필드는 인트로 연주 중 새로 설치된 점화장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불꽃에 맞아 얼굴, 손, 다리, 팔에 화상을 입었다. 이후 리듬 기타는 존 마샬이 맡았다.
1993
[첫 라이브 박스세트 발매]
공연 실황과 영상, 기념품 등이 담긴 첫 라이브 박스세트 `Live Shit : Binge & Purge`를 발매했다.
1996
[`Load` 발매 및 논란]
당초 《Load》와 《Reload》를 더블 앨범으로 발매할 계획이었으나 분리 발매를 결정하고 《Load》를 먼저 발매하였습니다. 해당 앨범은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싱글 도 1위를 기록했다.
1997
[`Reload` 발매]
`Reload` 앨범을 발매하여 역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고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수상을 거머쥐었다.
1998
다음 날인 4월 25일에도 공연했다.
1999
[S&M 콘서트 및 앨범 발매]
지휘자 마이클 케이먼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주단과 함께 `S&M(Symphony & Metallica)` 콘서트를 열고 앨범과 DVD를 발매하였다.
2000
2001
[냅스터 고소 논란]
인터넷 MP3 다운로드 사이트 냅스터를 불법 다운로드 문제로 고소했으나, 림프 비즈킷의 프레드 더스트와 충돌하고 팬들의 비난을 샀으며, 법정에서 패소까지 했다.
그는 클리프 버튼의 그늘 아래서의 밴드 생활, 팬들과 멤버들의 따가운 시선, 곡 작업 기회 박탈, 그리고 프로젝트 기획에 대한 제임스 헷필드의 반대 등을 탈퇴 이유로 밝혔다.
2003
[`Some Kind Of Monster` DVD 발매]
메탈리카의 위기와 극복 과정, `St.Anger` 앨범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DVD `Some Kind Of Monster`를 판매했다.
제이슨 뉴스테드와 데이브 머스테인의 심경이 담겨 있다.
[로버트 트루히요 영입]
베이스 오디션에서 로버트 트루히요가 최종 합격하여 정식 멤버가 되었다.멤버들은 클리프 버튼이 지금 시험을 본다고 해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그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St. Anger` 발매 및 논란]
6년 만에 `St.Anger` 앨범을 발매했으나, 기타 솔로 부재 등 원초적인 헤비메탈 사운드로의 회귀에도 불구하고 큰 논란을 낳았다.그럼에도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전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테드는 "이 앨범은 한정판 DVD가 들어있지 않다면 팔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프로듀서 밥 록이 베이스 파트를 대타로 연주했다.
2006
2008
[프로듀서 릭 루빈 협력]
13년간 함께했던 밥 록과 결별하고, 릭 루빈과 손잡고 다음 앨범을 준비하며 완전한 스래시 메탈로의 복귀를 예고했다.
[`Death Magnetic` 발매]
아홉 번째 앨범 `Death Magnetic`이 발매되어 빌보드 200에서 역시 1위를 차지했다."성공적인 회귀"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미국 내 200만 장, 세계적으로 4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싱글 도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2013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