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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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클럽, 스포츠 클럽, 잉글랜드 축구, 프리미어리그 축구 구단

맨체스터 시티 FC는 1880년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창단되어 잉글랜드 축구 역사의 부침을 함께해 온 명문 클럽입니다. 1960~70년대 황금기를 누렸으나, 1990년대에는 3부 리그까지 강등되는 암흑기를 겪었습니다. 2008년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 인수 이후 막대한 투자로 재도약하여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한 국내외 주요 대회에서 수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클럽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2023년에는 구단 역사상 첫 트레블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880

[인도주의적 정신으로 축구 클럽 창단]

맨체스터 서부 고튼 지역의 세인트 마크스 교회에서 인도주의적인 목적으로 축구 클럽이 탄생했습니다. 이는 맨체스터 시티 FC의 기원이 되었으며, 목사의 딸 안나 코넬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1880년, 맨체스터 서부의 고튼이란 동네에 있는 세인트 마크스 교회에서 인도주의적인 목적으로 축구 클럽이 탄생하였는데 이것이 맨체스터 시티 축구 클럽의 기원입니다. 두 명의 교구 위원들과 목사의 딸 안나 코넬은 지역 조직 폭력배들과 알콜 중독자들에게 종교에 개의치 않으면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안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교구 주민들의 집을 방문해 (개신교 신자들의 집까지 포함해) 관련 사항을 모색해 보았습니다. 교회의 크리켓 클럽은 이미 1875년에 창단 되었지만 겨울철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바로 잡고 또한 이러한 사회 악들에 개입해 전폭적인 격려로 교구 위원인 윌리엄 비스토우와 토마스 굿비히어와 함께 축구 클럽을 창단하였는데 그것이 세인트 마크스(웨스트 고튼)이란 클럽입니다. 안나 코넬은 메이저 축구 클럽 창단을 촉진시킨 유일한 여성입니다.

[클럽 첫 경기]

클럽의 첫 공식 경기가 기록되었습니다. 상대 팀은 매클스필드에서 온 교회 팀이었습니다.

클럽의 첫 경기는 1880년 11월 13일로 기록되었는데 상대 팀은 매클스필드에서 온 교회 팀이었습니다.

1887

[프로 전환 및 아드윅 AFC로 개명]

고튼 AFC가 프로로 전향하며 연고지를 맨체스터 동부 아드윅으로 옮겨 클럽 이름을 아드윅 AFC로 변경하고, 홈 구장도 하이드 로드로 옮겼습니다.

1887년, 고튼 AFC는 프로로 전향되었고, 연고지를 맨체스터시 동부에 위치한 아드윅이란 동네로 옮겨 클럽 이름을 아드윅 AFC로 바꾸고, 홈 구장도 하이드 로드로 옮기게 됩니다.

1894

[맨체스터 시티 FC로 정식 출범]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아드윅 AFC가 클럽의 전체적인 개편을 통해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름을 바꾸고 공식적으로 등록했습니다.

1893-94 시즌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되어 클럽의 전체적인 개편이 필요하게 되어 아드윅은 맨체스터 시티 FC로 클럽 이름을 바꾸고 1894년 4월 16일, 공식적으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1899

[첫 1부리그 승격]

맨체스터 시티는 2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후 처음으로 1부리그 승격을 달성했습니다.

1899년, 맨체스터 시티는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처음으로 1부리그 승격을 하게 됩니다.

1904

[클럽 첫 FA컵 우승]

맨체스터 시티는 볼턴 원더러스를 꺾고 클럽 역사상 첫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리그에서는 2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더블 달성을 놓쳤습니다.

1904년, 맨체스터 시티는 크리스털 팰리스에 있는 작은 구장에서 볼턴 원더러스를 1-0으로 꺾고 처음으로 FA컵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해 아깝게 더블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1906

[불법 재정자금 스캔들 발생]

불법 재정자금 혐의로 주장 빌리 메레디스를 포함한 무려 16명의 선수가 퇴출당했으며, 이 선수들 대부분이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옮겨가 유나이티드의 첫 성공기를 이끄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시즌에는 불법 재정자금 혐의를 받게 되었고 절정에 다다랐을땐 1906년도에 주장 빌리 메레디스를 포함한 무려 16명의 선수가 퇴출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맨체스터 시티 팬들이 화가났던 것은 이 퇴출 당한 선수들 대부분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옮겨가 유나이티드의 첫 번째 성공기를 가져다 주게 된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23

[홈 구장 '메인 로드'로 이전]

하이드 로드에 발생한 화재로 메인 스탠드가 파괴되면서, 클럽은 새로운 홈 구장인 '메인 로드'로 이전했습니다.

1920년, 하이드 로드에 화재가 벌어져 메인 스탠드가 파괴가 되었고 1923년, 맨체스터 시티는 메인 로드 (Maine Road) 로 홈 구장을 옮기게 됩니다.

1928

[2부리그 우승 및 1부리그 재승격]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1부리그로 다시 승격했습니다. 이 시즌에는 토미 존슨이 38골로 클럽 개인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습니다.

아깝게 승격을 놓치게 된 맨체스터 시티는 다음시즌, 우승으로 1부리그에 승격하게 됩니다. 1927-28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며 8위로 마치게 되는데 이 시즌에는 토미 존슨이 38골로 클럽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1934

[두 번째 FA컵 우승]

3년 연속 FA컵 결승에 진출한 끝에 포츠머스를 꺾고 두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클럽의 끈질긴 도전의 결실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결승에 진출하지만 에버턴에게 패하게 되며, 1934년, 3년 연속 FA컵 결승에 진출해 삼수만에 포츠머스를 꺾고 두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1937

[첫 1부리그 우승]

클럽 역사상 첫 번째 1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는 맨체스터 시티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클럽은 1937년,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만 곧바로 다음시즌에 제일 많은 득점에도 불구하고 강등 당하게 되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로 맨체스터 시티의 도전도 잠시 멈추게 됩니다.

1938

[리그 최다 득점에도 강등]

지난 시즌 우승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다 득점을 기록하고도 강등당하는 이례적인 상황을 겪었습니다. 이는 '맨체스터 시티답다'는 표현의 유래가 되기도 합니다.

클럽은 1937년, 첫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만 곧바로 다음시즌에 제일 많은 득점에도 불구하고 강등 당하게 되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로 맨체스터 시티의 도전도 잠시 멈추게 됩니다.

1949

[버트 트라우트만 영입 논란]

제2차 세계 대전 중 추축국 소속 독일군 낙하산 부대원 출신인 골키퍼 버트 트라우트만을 영입하며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2만 명의 인원이 시위에 참여할 정도로 반발이 거셌습니다.

그러나 클럽은 1949년, 은퇴한 프랭크 스위프트를 대신할 독일 골키퍼 버트 트라우트만을 영입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트라우트만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추축국중 하나인 독일군 낙하산 부대원 출신이었고 전쟁 포로에서 석방돼 랭커셔주에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입은 많은 항의를 유발시키게 되었고 약 2만명의 인원들이 시위에 참가 하기도 하였습니다.

1956

[전설적인 투혼으로 세 번째 FA컵 우승]

버밍엄 시티를 꺾고 세 번째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골키퍼 버트 트라우트만이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발휘하며 경기를 끝까지 뛰어 전설적인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1950년대에는 센터 포워드인 돈 레비를 주축으로 하는 포메이션인 이른바 레비 플랜 (Revie Plan)을 가지고 1955년과 1956년, FA컵 결승에 진출합니다. 1955년에는 패했고 1956년에는 우승을 하였는데, 56년에 우승할 당시 버밍엄 시티를 3-1로 꺾었었는데 이 경기는 가장 유명한 역대 FA컵 결승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특히 맨체스터 시티 구단이나 팬들에겐 논란 속에 영입한 버트 트라우트만이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도 경기를 계속 뛴 투혼을 발휘한 경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65

[조 머서 감독 부임 및 클럽의 암흑기]

조 머서가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메인 로드에서의 최저 관중 기록(8,015명)과 2부리그 11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클럽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1963년 강등당한 뒤 조지 포이저가 감독에 오르지만 클럽의 하락세를 막지는 못했다. 최악의 순간은 1965년, 스윈든 타운과의 1-2 홈 패배를 당할때였으며 관중 동원은 고작 8,015명 이었다. 이 경기는 메인 로드에서의 최저 관중 기록이 되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그 해 2부리그에서 11위를 기록하였는데 당시 맨체스터 시티 역사상 가장 최악의 기록이었다. 포이저는 시즌이 끝나기 전에 사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시즌이 끝날무렵 조 머서가 새로이 감독직에 오른다.

1968

[역사적인 두 번째 1부리그 우승]

클럽은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4-3으로 꺾고 역사상 두 번째 1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이는 조 머서 감독 체제의 성공적인 결실이었습니다.

1967-68 시즌, 클럽은 시즌 마지막 날,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4-3으로 꺾고 우승을 확정해 역사상 두 번째 1부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시즌의 다른 하일라이트는 TV로 중계된 토트넘 핫스퍼와의 4-1 승리였는데 경기 당일날 경기장이 눈으로 뒤덮여져 발레 온 아이스 (The Ballet on Ice) 라고 불렸었다. 그리고 올드 트래퍼드에서 벌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맨체스터 더비에서 거둔 3-1 승리도 있었습니다.

1970

[유럽대회 우승 및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더블]

폴란드의 구르닉 자브제를 꺾고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맨체스터 시티의 처음이자 2023년 이전까지 마지막 유럽대회 우승이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 첫 리그 컵 우승을 달성하며 한 시즌 유럽 대회와 주요 컵대회를 동시에 우승한 최초의 잉글랜드 클럽이 되었습니다.

이후 맨체스터 시티는 더 많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게 되는데 1969년엔 세 번째 FA컵 우승을 달성하였고, 1970년에는 비엔나에서 폴란드의 구르닉 자브제를 2-1로 꺾고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대회 우승은 맨체스터 시티의 처음이자 현재까지 마지막 유럽대회 우승이기도 하다. 또한 그 해 첫 리그 컵 우승을 차지하였는데 맨체스터 시티는 한 시즌 유럽 대회와 유명 컵대회를 동시에 우승한 첫 잉글랜드 축구 클럽이 되기도 하였다.

1974

[맨체스터 더비 승리로 라이벌 강등 확정]

시즌 마지막 날 연고지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그들의 강등을 확정 지었습니다. 이 경기는 토니 북 선수 겸 감독의 지휘 아래 팀이 안정을 되찾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시즌 마지막날의 상대는 연고지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로써 강등을 면하기 위해서 양팀 모두 승리가 절실했던 상황이었다. 前 유나이티드 선수였던 데니스 로가 힐킥으로 득점을 성공시켜 1-0 승리를 거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강등을 확정짓게 만들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토니 북의 재임기간 동안 작은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1976년,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2-1로 꺾고 두 번째 리그 컵 우승을 거머쥐었고 1977년에는 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였다.

1976

[두 번째 리그컵 우승]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꺾고 두 번째 리그컵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클럽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토니 북의 재임기간 동안 작은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1976년,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2-1로 꺾고 두 번째 리그 컵 우승을 거머쥐었고 1977년에는 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였다.

1983

[2부리그 강등]

시즌 막판 루턴 타운에게 패하며 2부리그로 강등되는 재앙을 겪었습니다. 당시 존 벤슨 감독대행 체제였습니다.

2년뒤, 맨체스터 시티는 중위권을 달리고 있었고 감독자리가 안전할것 같아 보였지만 (당시 강등의 위험조차 보이지 않았다.) 뜻밖에도 운영진들과 논란을 일으켜 시즌도중에 해고 당하게 되며 코치직에 있었던 존 벤슨이 후임에 오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벤슨이 지휘한 19경기에서 11점 밖에 올리지 못했고 시즌 마지막 날 루턴 타운 FC에게 패하게 되어 2부리그로 강등되는 재앙을 겪게 된다.

1996

[또다시 2부리그 강등]

끔찍한 시즌을 보내며 다시 2부리그로 강등당했습니다. 앨런 볼 감독이 시즌 중 해임되고 스티브 코펠 감독이 몇 주 만에 사임하는 등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1995-96 시즌, 끔찍한 출발을 보였고 마지막날 강등권 싸움에서 패하며 또다시 2부리그로 강등 당하게 된다. 앨런 볼은 1996-97 시즌 도중에 해임 당했고 후임자인 스티브 코펠은 자신에게 너무 심한 압박을 가한다는 이유로 몇 주만에 사임을 하게 된다.

1998

[클럽 역사상 최악의 3부리그 강등]

시즌 마지막 날 승리에도 불구하고 경쟁 팀들의 승리로 3부리그로 강등당하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이는 클럽 창단 후 최초이자 유럽대회 우승을 기록했던 클럽 중 최초의 3부리그 강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즌 마지막날 스토크 시티 원정에서 5-2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같이 강등권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포츠머스, 퀸스 파크 레인저스, 포트 베일이 모두 승리를 거두는 바람에 강등이 되고 말았다. 그 의미는 결국 맨체스터 시티가 3부리그 (당시엔 Division Two) 로 강등 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클럽 창단 후 최초였다. 그리고 이 치욕은 당시 유럽대회 우승을 기록했었던 클럽들중 최초였다.

1999

[3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곧바로 승격]

3부리그로 강등된 첫 시즌 만에 플레이오프에서 질링엄을 꺾고 2부리그로 승격했습니다. 데이빗 번스타인이 새 회장으로 부임하며 클럽 외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3부리그로 강등된 뒤, 맨체스터 시티는 경기 외적에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데 잉글랜드의 사업가인 데이빗 번스타인이 새 회장이 된다. 맨체스터 시티는 3부리그로 강등되자 마자 첫시즌만에 2부리그로 승격이 되는데 질링엄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폴 디코프의 막판 동점골로 인해 승부차기까지 끌고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2000

[프리미어리그 재승격]

2부리그에서 2위를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 다시 강등되는 부진을 겪었습니다.

2부리그로 돌아온 1999-00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강등권 싸움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예상외로 시즌내내 자동 승격을 위해 도전하게 되었다. 그들은 시즌 마지막날 2위로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확정지었다.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했지만 또 부진이 뒤따르게 되는데 2000-01 시즌, 또 다시 2부리그로 강등이 되고 만다. 이 시즌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강등팀이 리그 마지막 날 전에 확정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2002

[2부리그 우승 및 프리미어리그 복귀]

케빈 키건 감독 부임 후,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 역사상 최고 승점 기록을 세우고 프리미어리그로 다시 승격했습니다.

로일은 시즌이 끝나고 해임 당하게 되었고 후임자리에는 前 잉글랜드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케빈 키건이 오르게 된다. 키건은 여러 영향력있는 선수들을 데려오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선수가 에얄 베르코비치, 알리 베나르비아, 그리고 스튜어트 피어스였다. 2001-02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는데 클럽의 승점 신기록을 세우며 승격을 하게 된다. 당시 션 고터가 30골을 기록하고 대런 허커비가 26골을 기록하였다.

2003

[새로운 홈 구장 '에티하드 스타디움' 이전]

80년간 사용했던 홈 경기장 메인 로드를 떠나, 2002년 코먼웰스 게임을 위해 지어진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현 에티하드 스타디움)'으로 홈 구장을 이전했습니다.

2002-03 시즌,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해서 맨체스터 시티는 좋은 시즌을 보냈는데 9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페어 플레이상을 수상해 25년 만에 UEFA 컵에 진출하게 되었다. 또한 그 시즌에는 80년간 홈 경기장 이었던 메인 로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그리고 본래 2002년 코먼웰스 게임 (Commonwealth Games) 개최를 위해 지어진 4만 8천석 규모의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으로 홈 구장을 옮긴다.

2008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에 인수]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 소유의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ADUG)에 의해 구단이 인수되었습니다. 이적시장 마감일에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호비뉴를 당시 기록적인 이적료인 3250만 파운드에 영입하며 전 세계 축구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본국 태국에서의 문제로 구단주 탁신 친나왓의 계좌가 동결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맨체스터 시티가 다시 매각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2008년 9월 1일 만수르 빈 자이드 알나하얀 소유의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의 구단 인수가 보도되었고, 술라이만 알 파힘이 구단주가 되면서 유럽 제패를 목표로 천명하였다. 그 후 이적시장 마감일인 2008년 9월 1일 레알 마드리드 CF로부터 호비뉴를 이적료 3250만 파운드에 영입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외에도 첼시 FC의 숀 라이트필립스,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의 셰이 기븐,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의 크레이그 벨라미 등의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선수진의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 숀 라이트필립스는 유스 시절까지 포함해 7년간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었던 선수였다.

2009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 부임]

시즌 초반의 상승세를 잇지 못하고 부진하자 마크 휴스 감독이 해임되었고, 로베르토 만치니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는 그 시즌 결국 리그 10위로 마감하였고 휴스는 팀을 더욱더 강화시키고자 여름 이적시장에서 많은 선수들을 영입하게 된다. 아스널에서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와 콜로 투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카를로스 테베즈, 블랙번 로버스에서 로케 산타 크루스, 애스턴 빌라에서 개러스 배리, 에버턴에서 졸리온 레스콧을 영입하여 막강한 스쿼드를 갖추었다. 2009-10 시즌 개막전에서 블랙번 로버스를 2-0으로 꺾었고 캄프 누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바르셀로나가 주최하는 조안 감퍼 트로피 대회 (1회성 대회)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다음 상대인 울버햄프턴 원더러스를 홈에서 꺾으며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초반의 상승세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후 11경기에서 단 3승에 그치는 등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휴스에게 상당한 부담감이 짊어지게 되었다. 결국 마크 휴스는 2009년 12월 19일 해임 당했으며, 후임으로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감독이었던 로베르토 만치니가 감독직에 오른다. 휴스의 마지막 경기는 4-3 승리를 거둔 선덜랜드와의 경기였다.

2011

[맨체스터 더비 6-1 대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더비 경기에서 맨유를 6-1로 대파하며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2011년 10월 2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더비 경기에서 맨유를 6-1로 대승을 하였다.

2012

[아구에로의 기적, 44년 만의 리그 우승]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에서 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상대로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극적인 추가시간 역전골에 힘입어 44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2012년 5월 14일, 2011-12 시즌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최종전 38라운드를 앞두고, 맨체스터 시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승점이 동률이지만 골 득실에서 크게 앞서 1위에 올라 있었고, 자력 우승을 위해선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종전 상대는 강등을 피하기 위해서 역시 승리가 필요한 퀸즈 파크 레인저스였기 때문에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었다.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전반 38분 파블로 사발레타가 선제골을 넣었으나, 수비수인 레스콧의 어처구니없는 백패스를 QPR의 공격수인 지브릴 시세에게 패스하며 후반 3분 동점골을 허용하였다. 후반 9분 QPR의 주장 조이 바튼이 테베즈에게 팔꿈치로 얼굴을 가격하는 반칙을 하며 퇴장을 당했다. 이때 조이바튼은 퇴장판정을 받은 직후 가만히 서있던 맨체스터시티의 스타 공격수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허벅지를 니킥으로 가격하며 또 한번 논란을 일으켰고 퇴장당하면서 발로텔리와 언쟁을 벌이는듯 그의 별명인 악동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리고 퇴장이후 맨체스터 시티는 다시 기회를 잡았지만, 오히려 후반 21분 제이미 마키에게 역습에 의한 역전골을 허용했고, 수 차례 잡은 득점 기회는 QPR의 골키퍼 패디 케니의 선방 속에 무산되었다. 그리하여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90분이 지났고 44년에 찾아온 우승의 기회를 또 이웃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넘겨주는 상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내 곧 스타디움 오브 라이트의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되는데 정규 90분의 플레이타임이 끝나고 추가시간에 접어든 직후 맨체스터시티의 공격수 에딘 제코의 헤딩 동점골이 터지면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94분 마리오 발로텔리의 어시스트를 받은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침착하게 수비수를 제치고 환희의 역전골을 뽑아냈다. 이 극적인 순간은 44년만에 맨체스터 시티에게 리그 우승컵을 안겨다 준 것이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우승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2013

[뉴욕 시티 FC 창단 발표]

맨체스터 시티는 뉴욕 양키스와 함께 메이저 리그 사커의 20번째 구단인 뉴욕 시티 FC를 창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시티 풋볼 그룹 확장의 시작이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 FC는 2013년 5월 21일 미국 야구 프랜차이즈인 뉴욕 양키스와 함께 메이저 리그 사커 20번째 구단인 뉴욕 시티 FC를 창단한다고 발표했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 경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부진과 보드진과의 마찰로 인해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경질되었습니다. 그는 2011-12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안긴 명장이었습니다.

이후 만치니는 결국 2013년 5월 13일 결국 경질되었다. 사유는 대륙대회에서 가장 큰 명성을 가진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의 부진과 보드진과의 마찰때문인것으로 알려졌다. 만치니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시절부터 리그 경기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에 반면 대륙대회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였고, 결국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보드진에 의하여 2007-2008시즌 경질되었다. 이후 2009년 12월에 맨체스터 시티 감독에 부임하여 프리미어 리그 우승 1회 이후 12-13 시즌에 무관에 그치자. 2013년 5월 13일 만치니 감독이 공식적으로 경질되었다고 맨체스터 시티 보드진은 전했다.

2014

[페예그리니 체제 하에 프리미어리그 및 리그컵 우승]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의 지휘 아래 프리미어리그와 리그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시즌 만에 리그 정상에 복귀했습니다.

2013-14 시즌을 앞두고 맨시티는 만치니의 후임으로 말라가 CF의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을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였으며, 페르난지뉴, 요베티치, 네그레도, 헤수스 나바스 등을 영입하면서 전력을 강화하였다. 2014년 5월 12일 새벽(한국시간) 맨체스터의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스트 햄과의 홈 경기에서 무승부만 기록하더라도 자력 우승이 가능했지만, 결국 2-0으로 승리하며 2시즌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2016

[펩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

펩 과르디올라가 맨체스터 시티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첫 시즌은 감독 커리어 최초의 무관이라는 불명예를 기록했지만, 다음 시즌부터 압도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14-15 시즌에는 첼시 FC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하여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5-16 시즌에는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였지만 구단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였다. 그 이후, 맨시티는 페예그리니 감독과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페예그리니 감독은 2015-16 시즌을 끝으로 맨시티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페예그리니의 뒤를 이어 FC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직을 맡았던 호셉 과르디올라가 2016-17 시즌을 앞두고 맨시티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2017

[프리미어리그 100점 우승 및 신기록 달성]

대대적인 스쿼드 보강과 리빌딩을 통해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프리미어리그에서 승점 100점이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8연승 대기록도 함께 세웠습니다.

2017-18 시즌을 앞두고 맨시티는 지난 시즌의 실패를 교훈 삼아 대대적인 스쿼드 보강 및 리빌딩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시즌 30대가 되면서 노쇠화를 보였던 파블로 사발레타, 바카리 사냐,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가엘 클리쉬 등 4명의 풀백 모두 계약 연장없이 자유계약으로 방출하였다. 방출된 4명의 빈자리를 토트넘 핫스퍼의 카일 워커, 레알 마드리드의 다닐루, AS 모나코의 뱅자맹 망디 등 20대의 젊은 수비수들의 영입으로 보강하였다. 또한 SL 벤피카의 젊은 골키퍼 이데르송을 영입하며 지난 시즌 부진한 클라우디오 브라보를 대체할 골키퍼 보강에도 성공한다. 이외에도 사미르 나스리, 헤수스 나바스, 놀리토, 조 하트 등 지난 시즌 펩 체제에서 중용받지 못하던 선수들을 정리하였고 AS 모나코의 베르나르두 실바를 영입하면서 2선 자리의 전력을 강화하였다. 대대적인 스쿼드 보강과 리빌딩 이후 시즌에 들어선 맨체스터 시티는 새 얼굴들의 활약과 더불어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에 시행착오를 겪던 선수들이 점점 적응해 나가면서 압도적인 페이스를 보여주었고, 리그에서 18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면서 4년만의 EPL 우승을 달성한다. 더불어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초로 승점 100점을 기록함과 동시에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다 득점, 최다 승리, 2위와의 최다 승점차, 최다 골득실 기록 등을 달성하면서 성공을 넘은 역대급의 시즌을 보냈다. 리그 우승과 더불어 2년만의 EFL컵 우승도 함께 달성한다.

2018

[창단 첫 국내 도메스틱 트레블 달성]

FA 커뮤니티 실드, 리그컵, FA컵, 프리미어리그를 모두 우승하며 창단 최초로 도메스틱 트레블(국내 3관왕)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룩했습니다.

2018-19 시즌에는 FA 커뮤니티 실드를 우승하며 순조롭게 시작하였고, 이후 리그컵, FA컵을 우승하는데 성공하였으며 리그에서는 리버풀 FC를 우승 경쟁에서 단 승점 1점 차이로 따돌리며 창단 첫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하였다.

2023

[구단 역사상 첫 트레블 달성 및 5관왕 위업]

프리미어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후 UEFA 슈퍼컵과 FIFA 클럽 월드컵까지 제패하며 5관왕을 달성했습니다.

2022-23 시즌, 프리미어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했습니다. 이어서 UEFA 슈퍼컵과 FIFA 클럽 월드컵까지 석권하며 5관왕의 위업을 달성,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우뚝 섰습니다.

2024

[10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

2023-24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며 클럽 역사상 10번째 리그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이는 맨체스터 시티의 지속적인 강세와 지배력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2023-24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클럽 역사상 10번째 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맨체스터 시티가 보여준 압도적인 경기력과 끊임없는 성공의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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