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들린 올브라이트
연표
1937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출생]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외교관의 딸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마리에 야나 쾨르벨로바였습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1937년 5월 15일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외교관 요제프 쾨르벨의 딸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마리에 야나 쾨르벨로바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후에 유고슬라비아로 발령받아 가족과 함께 베오그라드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1939
1939년,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2살 되던 해 나치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자,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 런던에 들어선 망명 정부의 관리로 활동하게 되었고,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런던에서 지냈습니다.
1948
전쟁이 끝난 뒤 가족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로 귀국했으나, 아버지가 옛 정권의 인물이라는 이유로 공산 정권으로부터 신변에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온 가족과 함께 1948년에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고, 미국에 정착한 후 이름을 영어식인 매들린 코벨로 바꾸었습니다.
1957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웰즐리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중 1957년에 미국으로 귀화하여 미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1959
1959년 매들린은 언론 재벌 집안 출신인 조 올브라이트와 결혼하며 성을 올브라이트로 바꾸었습니다. 결혼 후 딸 셋을 낳고 한동안 주부로 지내다가 학업을 다시 시작하여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76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의 입법담당 수석고문을 지냈습니다. 이어서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지미 카터 행정부의 백악관 안보보좌담당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밑에서 일하며 외교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나갔습니다.
1978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지미 카터 행정부의 백악관 안보보좌담당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밑에서 일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녀의 외교 경력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1982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1959년에 결혼했던 조 올브라이트와 1982년에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이혼 후에는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교수로 재직하며 소련 및 동유럽 관계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1984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민주당의 제럴딘 페라로 부통령 후보의 외교 고문을 맡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이후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 대통령 후보의 외교 고문을 맡는 등 민주당의 중요한 외교 전문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8
1988년 대통령 선거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 대통령 후보의 외교 고문을 맡았습니다. 두 번의 대선에서 민주당은 모두 패배했지만, 올브라이트는 민주당 내에서 중요한 외교 전문가로 인정받았습니다.
1993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 후보와 인연을 맺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1993년 1월 27일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 후 유엔 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1기 4년 동안 유엔 대사로 재직하며 미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보스니아 내전, 아이티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1996
[국무장관 지명 및 유대인 논란]
빌 클린턴 2기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되면서, 그녀의 유대인 혈통과 홀로코스트 희생자 친척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주목을 받았습니다.
1996년 말,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빌 클린턴 2기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체코에서의 가계 조사를 통해 그녀의 집안이 유대인 출신이며, 조부모와 여러 친척들이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로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로 자랐고 결혼 후에는 성공회 신자가 되었던 올브라이트 본인도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습니다.
1997
1993년부터 활동했던 유엔 대사직을 1997년 1월 21일 공식적으로 사임했습니다.
[미국 최초 여성 국무장관 취임]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으로 취임하여, 당시까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여성이 되었습니다.
1997년 1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으로 취임하며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그녀는 2021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취임 전까지 미국 여성 중 가장 먼저 행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인물이자, 여성 장관에게 붙이는 존칭인 '마담 세크리터리'라고 불린 첫 인물이기도 합니다.
1999
[NATO 확대 및 동유럽 국가 가입 주도]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확대를 주장하며 자신의 조국 체코, 폴란드, 헝가리의 나토 가입을 주도했습니다.
국무장관 재임 중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확대를 강력히 주장했으며, 공산정권 붕괴 후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자신의 조국 체코와 폴란드, 헝가리의 나토 가입을 주도했습니다. 또한 보스니아 전쟁과 코소보 전쟁에 군사력을 투입하는 데 찬성하고 중동 평화 협상을 중재하는 등 국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습니다.
2000
[북한 방문 및 푸틴 대통령 회담]
미국의 현직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미국의 현직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하는 등 북한 비핵화 정책을 주도했습니다. 또한 미 정부 고위 관료 중 처음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으며, 브로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브로치 외교'로도 유명했습니다.
2001
2001년 1월 20일,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서 매들린 올브라이트도 국무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퇴임 후 모국 체코에서는 그녀의 정계 진출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2008
[2008년 대선 참여]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초기에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으며,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그의 외교 관련 업무를 도왔습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초기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했으나,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 후에는 대통령 당선자의 외교 관련 업무를 도우며 여전히 영향력 있는 외교 전문가로 활동했습니다.
2022
2022년 3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워싱턴 D. C.에서 84세의 나이로 암 투병 끝에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사망 소식에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은 조기를 게양했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정부 관료들이 참석한 장례식이 국립 대성당에서 TV로 생중계되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녀를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관습을 극복한 사람'으로 추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