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대
연표
919
[고려 정궁 만월대 창건]
고려 태조 2년, 송악산 남쪽 기슭에 고려의 정궁인 만월대가 창건되었습니다.
왕궁의 웅장한 역사가 시작된 중요한 순간입니다.
만월대는 본래 정전인 회경전과 그 기단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으며, 궁궐 전체의 명칭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만월대라는 명칭은 고려 이후 조선시대부터 불렸으며, 음력 정월대보름달을 바라보던 망월대에서 유래했습니다.
961
[궁궐 중건사업 시작]
수영궁궐도감 설치와 함께 2년여에 걸쳐 궁성 중건 및 황성 축조가 추진되었습니다.
왕궁의 위용을 되찾기 위한 대규모 공사가 시작된 시점입니다.
1011
[거란 침략으로 궁궐 소실]
현종 2년, 거란의 2차 침입으로 만월대를 포함한 개경 궁궐이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고려 역사상 큰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만월대 복구 및 확장 시작]
거란 침입으로 파괴된 만월대의 복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현종은 단순 복구를 넘어, 유명한 회경전 등 다수의 궁궐을 확장하며 왕궁의 위엄을 되살렸습니다.
복구는 현종 3년(1011년) 10월에 시작되어 5년(1013년) 1월에 중수가 완료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기존 궁궐 복구뿐만 아니라 회경전과 다수의 궁궐이 확장되었습니다.
1020
[궁궐 확장 및 중건 완료]
현종 11년부터 14년까지 기존 건덕전 동편에 새로운 궁궐들이 추가되었습니다.
회경전, 장화전, 원덕전 등이 이때 새로 들어서며 만월대는 '중세도시 개경'의 중심으로 위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두 차례의 중건을 통해 개경은 '중세도시 개경'으로 탈바꿈했으며, 만월대 내에는 회경전 외에 장화전, 원덕전, 건덕전, 선정전, 중광전, 곤성전 등 여러 중요한 건물들이 자리했습니다.
1126
[이자겸·척준경 난으로 소실]
인종 4년, 이자겸과 척준경의 난으로 만월대가 다시 소실되었습니다.
정치적 혼란이 궁궐에까지 영향을 미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1132
1171
[화재로 궁궐 소실 (명종 대)]
명종 1년, 만월대에 또다시 큰 화재가 발생하여 궁궐이 소실되었습니다.
자연재해 또는 사고로 인한 안타까운 손실이었습니다.
1179
[만월대 중건 (명종 대)]
명종 9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만월대가 다시 중건되었습니다.
재난에도 굴하지 않고 왕궁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1225
[화재로 궁궐 소실 (고종 대)]
고종 12년, 또다시 화재로 만월대가 소실되었습니다.
끊임없는 재난 속에서도 왕궁은 계속해서 재건의 노력을 거듭했습니다.
1232
[고려의 강화 천도]
고종 19년, 몽골 침입에 맞서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했습니다.
만월대와 개경은 왕궁의 기능을 잠시 잃게 되는 큰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1270
[만월대 중건 (원종 대)]
원종 11년, 고려가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며 만월대도 다시 중건되었습니다.
이는 몽골과의 관계 변화와 함께 왕궁의 재건을 의미합니다.
1362
[홍건적 난으로 궁궐 최후 소실]
공민왕 1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만월대가 최종적으로 소실되었습니다.
고려 왕조의 쇠퇴와 함께 만월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1950
[한국전쟁 중 훼손]
한국전쟁 중 미군이 야전병원을 짓기 위해 불도저로 만월대 터를 파헤쳐 유적이 훼손되었습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의 안타까운 손상이었습니다.
2013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만월대는 '개성역사유적지구'의 핵심 유적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습니다.
그 역사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만월대와 개성 첨성대는 제37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개성역사유적지구'의 일부로 등록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인정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