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 와치랄롱꼰
연표
1952
방콕 두싯 왕궁의 암바라 저택에서 태국 전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과 시리낏 왕비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5
[태국군 복무 시작]
태국군에 복무하기 시작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미군과 함께 군사 작전에 참여하며 특공대 폭파 등 다양한 군사 훈련을 받았다.
1965년부터 태국군에서 복무하기 시작했다. 1975년부터는 태국 왕립 육군 장교로, 이후 육군정보부 참모 장교, 1978년에는 국왕 경호 대대장을 역임했다. 오스트레일리아군, 영국군, 미군과 함께 군사 작전을 전개했으며 특공대 폭파 작전, 비정규전 전술 및 선진 항해 훈련을 받았다.
1970
[대게릴라전 및 전투 작전 참여]
1970년대 태국 북동부에서 태국 공산당 세력에 대항하는 대게릴라전 작전을 이끌었으며, 캄보디아 국경을 넘은 베트남 군대에 대한 전투 작전에도 참여했다.
1970년대, 그는 태국 북동쪽 지역에서의 태국 공산당 세력에 대항하는 대게릴라전 군사 작전을 이끌었으며, 또한 크메르 루주 정권 동안에는 캄보디아 국경 일대의 작전에 가담하였다.
1972
[태국 왕세자 책봉]
20세가 되던 해, 아버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에게서 '솜뎃프라보롬오라사티랏 짜오파마하와치랄롱꼰 사얌마꿋랏꾸만' 칭호를 받고 왕세자로 선포되었다.
그는 1972년 12월 28일 12시 23분에 왕세자로 선포되었고, 짜끄리 왕조의 세 번째 왕세자가 되었다.
1977
[왕자 병원 21곳 설립]
외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의료 및 건강 관리 센터 역할을 하는 "왕자 병원" 21곳을 대중 기금을 통해 설립했다.
와치랄롱꼰은 외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의료 및 건강 관리 센터 역할을 하기 위해 대중이 기부한 기금을 통해 "왕자 병원"을 설립했다. 크라운 프린스 병원은 1977년에 21곳에 세워졌다.
[첫 번째 결혼 (소암사왈리)]
어머니 쪽 사촌인 소암사왈리와 결혼했으나, 1970년대 후반부터 여배우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1977년 1월 3일, 와치랄롱꼰은 그의 어머니 쪽 사촌인 소암사왈리와 결혼했다. 그들은 1978년에 공주 한 명을 낳았다. 하지만,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여배우와 바람을 피기 시작했고 그녀와 5명의 자녀를 두었다.
1978
소암사왈리 공주와의 사이에서 1978년에 공주 한 명을 낳았다.
[불교 승려로 단기 출가]
태국 불교도의 관습에 따라 승려로 임명되어 왓 프라 스리 라타나 사사다람에서 서품받고 '바지랄롱코르노'라는 수도명으로 15일간 단기 출가했다.
1978년 11월 6일, 그는 26세의 나이에 왓 프라 스리 라타나 사사다람에서 승려로 서품되었다. 왕족의 전통처럼, 그는 와트 보우노니위트 비하라에서 "바지랄롱코르노"라는 수도명으로 15일 동안 머물렀다.
1979
[수자리니와의 첫 왕자 출산]
당시 배우 지망생이었던 수자리니와의 사이에서 첫 왕자를 낳았다. 이후 4명의 자녀를 더 두었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수자리니와의 관계에서 1979년 8월 29일 첫 왕자를 낳았으며, 이후 4명의 자녀를 추가로 낳았다.
1981
1981년 7월, 전두환 대한민국 대통령이 태국을 방문했을 때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1993
소암사왈리 공주가 수년간 이혼을 거부했지만, 와치랄롱꼰이 제기한 이혼 소송에서 1993년 7월 패소하며 이혼하게 되었다.
1994
[두 번째 결혼 (수자리니)]
수자리니와 두 번째 결혼을 했지만, 어머니인 왕비에게 축복받지 못했다. 결혼 후 수자리니는 태국 왕립 육군 소령으로 임관했다.
1994년 2월, 수자리니와 결혼했으나 어머니인 왕비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 결혼 후 수자리니는 왕세자의 배우자가 되었고 태국 왕립 육군 소령으로 임관했다.
1996
[수자리니와 이혼 및 피신]
결혼 2년 후, 와치랄롱꼰이 그녀의 간통 혐의를 궁전 곳곳에 게시하면서, 수자리니는 아이들과 함께 영국으로 피신했다.
결혼 2년 후인 1996년, 와치랄롱꼰이 수자리니가 군 간부와 간통했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궁전 곳곳에 붙였다. 이에 수자리니는 아이들과 함께 영국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2001
[세 번째 결혼 (스리라스미)]
스리라스미와 세 번째 결혼을 했지만, 이들의 결혼은 2005년 초까지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다.
와치랄롱꼰은 2001년 2월 10일 스리라스미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이 결혼은 2005년 초까지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다.
2005
[스리라스미 왕자 출산 및 공주 승격]
스리라스미와의 사이에서 왕자를 낳았고, 이로 인해 스리라스미는 공주로 승격되었다.
2005년 4월 29일 스리라스미와의 사이에서 왕자를 낳았고, 그 결과 스리라스미는 공주로 승격되었다.
2014
[스리라스미 가족 왕실 이름 박탈 요청]
스리라스미 공주의 7명의 친인척에 대한 부패 혐의가 불거지자, 그녀에게 수여된 왕실 이름인 아카라퐁 프리차의 박탈을 내무부에 요청했다.
2014년 11월, 스리라스미 공주의 친인척 7명에 대한 부패 혐의가 발생했다. 이에 와치랄롱꼰은 내무부에 스리라스미에게 수여된 왕실 이름 '아카라퐁 프리차'의 박탈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스리라스미와 이혼]
스리라스미는 왕위와 왕명을 포기하고 공식적으로 이혼했으며, 합의금으로 2억 바트(약 550만 달러)를 받았다.
2014년 12월, 스리라스미는 왕위와 왕명을 포기하고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그녀는 합의금으로 2억 바트(550만 달러)를 받았다. 그들은 결혼한 지 13년 만에 이혼했다.
2016
부왕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이 2016년 10월 13일에 향년 89세로 서거했다.
[태국 제10대 국왕 즉위]
부왕 푸미폰 아둔야뎃 서거 후, 태국의 신임 국왕으로 즉위하며 짜끄리 왕조의 라마 10세가 되었다.
부왕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서거 후, 2016년 12월 1일 태국의 신임 국왕에 즉위하여 짜끄리 왕조의 라마 10세가 되었다.
2017
[왕권 관련 헌법 개정 요청 승인]
태국 의회가 국왕 집무실이 제안한 헌법 초안 개정을 압도적으로 찬성하여, 왕권 관련 조항 변경을 요청하고 승인받았다. 이는 태국 국왕의 이례적인 개입으로 평가되었다.
2017년 1월, 태국의 군사 지원을 받는 의회는 새 국왕의 집무실에서 제안한 헌법 초안을 개정할 수 있도록 임시 헌법 개정에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총리 쁘라윳 짠오차는 와치랄롱꼰 국왕의 집무실이 헌법에 왕권과 관련된 조항을 몇 차례 변경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2017년 태국 헌법 공식 승인]
2016년 국민투표에서 승인된 2017년 태국 헌법이 차크리데이인 4월 6일, 아난타 사마컴 왕좌 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마하 바지랄롱코른 국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2016년 국민투표에서 승인된 태국의 2017년 헌법은 2017년 4월 6일, 차크리데이를 맞아 아난타 사마컴 왕좌 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마하 바지랄롱코른 국왕에 의해 승인되었다.
2019
[누이의 총리 입후보 및 국왕의 거부 선언]
왕의 누이인 우볼 라타나가 총리 입후보를 발표했으나, 같은 날 와치랄롱꼰 국왕은 이를 "부적절하고 위헌에 해당한다"는 긴급 왕조령을 발표하며 거부했다.
2019년 2월 8일, 왕의 누이인 우볼 라타나가 탁신 연합 타이 락사 차트 당의 후보로 출마하여 태국 총리에 입후보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날, 와치랄롱꼰은 이 입후보가 "부적절하고 위헌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긴급 왕조령을 발표했다.
[누이의 총리 입후보 자격 박탈]
태국 선거 위원회가 국왕의 긴급 왕조령에 따라 우볼 라타나 공주의 총리 입후보 자격을 공식적으로 박탈했다.
태국의 선거 위원회는 국왕의 왕조령을 바탕으로 공식적으로 우볼 라타나 공주의 총리 입후보를 중단시키고 그녀의 자격을 박탈했다.
[네 번째 결혼 (수티다 왕비)]
대관식을 3일 앞두고 전 태국 왕립 보좌관 캠프 부서의 사령관 대행이었던 수티다와 네 번째 결혼을 했다.
2019년 5월 1일, 대관식을 3일 앞두고 와치랄롱꼰은 전 태국 왕립 보좌관 캠프 부서의 사령관 대행이었던 수티다 왕비와 결혼했다. 결혼신고는 방콕의 암폰 사탄 주거 홀에서 그의 여동생 시린드혼 공주와 추밀원 의장 틴술라논다와 함께 진행되었다.
[국왕 대관식 성대하게 거행]
2019년 5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성대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약 10억 바트가 소요된 이 행사는 15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2018년 두싯궁에서 열린 와치랄롱꼰의 대관식은 2019년 5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열렸다. 10억 바트를 쓴 대관식은 15만 명 이상의 인파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2020
[코로나19 시기 독일 체류 및 논란]
코로나19 범유행 중 태국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음에도 독일의 한 호텔에 머물며 귀국하지 않아, 태국 내 반왕정 시위를 심화시켰고 독일 외교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코로나19 범유행 중이던 2020년 태국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황에서 와치랄롱꼰은 독일 바이에른주의 한 호텔을 빌려서 생활하였다. 그는 태국에서 전국적인 반왕정 시위가 벌어진 와중에도 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에 독일 외교부는 독일 땅에서 태국을 통치하는 왕을 비판하였다.
[사생활 및 권력 남용 논란 확산]
전임 국왕과는 대조적으로 사치스러운 권력 행사와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으며, 2020년에는 태국 전역에서 그의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확산되었다.
와치랄롱꼰은 전임 왕이었던 그의 아버지와 반대로 전에 없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20년에는 태국 전역에서 그의 사치스러운 권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있으며, 그의 문란한 사생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여동생인 마하 짜끄리 시린톤이 여왕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