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티르 빈 모하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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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국부'로 불리는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약 22년간의 장기 집권과 이후 90대 노구의 총리 재임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인물입니다. 그는 의사 출신 정치인으로 말레이시아를 빈곤한 원료 수출국에서 동남아시아의 경제 강국으로 이끌었으며,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IMF 권고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극약처방으로 위기를 극복해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특유의 강단 있는 리더십과 '동방정책'으로 국가 발전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며 말레이시아 현대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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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25

[출생]

말레이 비연합주 크다주의 알로르스타르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1925년 7월 10일 말레이 비연합주에 속한 크다주의 알로르스타르에서 모하맛 빈 이스칸다르와 완 틈파완 완 하나피 사이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말레이인/인도인 혼혈 교사였고, 어머니는 순혈 말레이인이었습니다.

1947

['Che Det' 필명 사용]

더 스트레이츠 타임즈 싱가푸라에 '말레이 여성들을 자유롭게 만들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며 필명 'Che Det'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1947년 7월 20일 '말레이 여성들을 자유롭게 만들다'(Wanita Melayu Mencipta Kebebasan Sendiri)라는 칭호가 붙은 더 스트레이츠 타임즈 싱가푸라(The Straits Times Singapura)에 글을 기고하며 필명처럼 자주 사용되던 이름인 'Che Det'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55

[의대 재학 중 시티 하스마흐와 만남]

싱가포르 킹 에드워드 7세 대학교(현재 싱가포르 국립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며 훗날 부인이 되는 동창 시티 하스마흐 모하맛 알리를 만났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말레이시아가 일본에 점령당했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중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싱가포르의 킹 에드워드 7세 대학교(현재 싱가포르 국립 대학교)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그는 훗날 부인이 되는 동창 시티 하스마흐 모하맛 알리(Siti Hasmah Mohamad Ali)를 만났습니다.

1956

[의사 활동 및 결혼]

대학교 졸업 후 공직 의사로 활동하다가 동창 시티 하스마흐 모하맛 알리와 결혼했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 1956년 결혼하기 전까지 공직 의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1956년 결혼했으며, 알로르 스타르로 돌아와 마을의 첫 번째 말레이인 의사로 활동하며 크게 성공했습니다.

1957

[첫 자녀 출생]

부인 시티 하스마흐와의 사이에서 첫 아이 마리나 마하티르를 낳았습니다.

1957년,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부인이 된 시티 하스마흐와의 사이에서 첫 아이 마리나 마하티르를 낳았습니다. 그는 이후 3명을 더 낳았고, 28년 동안 3명을 입양했습니다.

1959

[총선 불출마]

총리 툰쿠 압둘 라만과의 대립으로 1959년 총선에 불출마했습니다.

마하티르는 알로르 스타르에서 의사 활동을 하던 무렵(1959년 총선 전후)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크다 주당의 의장이 되었습니다. 비록 UMNO에서 명성을 떨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시 총리였던 툰쿠 압둘 라만과의 대립 때문에 1959년 총선에 불출마했습니다. 마하티르가 압둘 라만이 자국을 독립 후에도 영연방의 일원으로 두려 하는 정책을 비판하면서, 둘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64

[연방의회 의원 당선]

총선에서 알로르 스타르의 코타 스타르 슬라탄의 연방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964년 총선에서, 마하티르는 알로르 스타르의 코타 스타르 슬라탄의 연방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966

[첫 한국 방문 및 동방정책 영감]

첫 한국 방문 이후 빠르게 변신하는 한국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으며, 이는 마하티르의 경제개발 정책인 '동방정책'의 출발 배경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하티르는 1966년 첫 한국 방문 이후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빠르게 변신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이는 마하티르의 경제개발 정책인 '동방정책'의 출발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엔 동방정책의 주요 모델은 한국보단 일본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969

[총선 패배 및 UMNO 출당]

총선에서 패배하고 대규모 인종 폭동인 '5·13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후 UMNO 최고회의에서 쫓겨나 당에서 출당되었습니다.

마하티르는 1969년 총선에서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의 유소프 라와에게 패배했습니다. 당시 동년 5월 13일에 있었던 대규모 인종 폭동(5·13 사건)이 일어나면서, UMNO는 총선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마하티르는 압둘 라만 총리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냈고, 곧 1969년 말 UMNO의 최고회의에서 쫓겨난 데 이어 당에서 출당되었습니다.

1970

[정권 교체와 복당 계기]

압둘 라만 총리가 사임하고 압둘 라작 부총리가 후임 총리가 되면서 마하티르의 정계 복귀의 문이 열렸습니다.

1970년 압둘 라만은 총리를 사임하였고, 부총리였던 압둘 라작이 후임 총리가 되었습니다. 라작 신임 총리는 마하티르에게 UMNO에 복당할 것을 격려했습니다.

1973

[UMNO 복귀 및 상원의원 임명]

UMNO에 복당하여 상원의원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UMNO 최고회의에 복귀하며 라작 정권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습니다.

마하티르는 UMNO에 복당한 후 1973년 상원의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같은 해 UMNO 최고회의에 복귀하면서 라작 정권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974

[교육부 장관 및 대의원 복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쿠방 파수의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대의원으로도 복귀했습니다.

1974년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한편 1974년 크다에 기반한 쿠방 파수의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대의원으로도 복귀했습니다.

1975

[UMNO 부총재 경선 도전]

건강이 악화된 라작 총리의 후계자를 둘러싼 UMNO의 부총재 경선에 세 번째로 도전했습니다.

1975년,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UMNO의 부총재에 세 번째로 도전했습니다. 이 경선은 건강이 악화된 라작 총리와 그의 후계자를 둘러싼 경쟁이었습니다. 라작이 선호했던 믈라카의 전 주수상 가파르 바바와 클란탄 출신 사업가 텡쿠 라잘레이프 함자, 그리고 마하티르가 경선에 나섰습니다.

1976

[말레이시아 부총리 취임]

말레이시아의 부총리로 취임하여 성공적인 교육부 장관 및 산업자원부 장관(1978-1981 겸직)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1976년 3월 5일 말레이시아의 부총리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성공한 교육부 장관이자 산업자원부 장관(1978-1981, 부총리 재직 시절 겸직)으로 여겨졌습니다. 임기 후반에는 중공업 정책(heavy industries policy)을 펼쳤는데, 정부지배기업(government-controlled corporation)인 하이콤(DRB-HICOM)의 설립, 국내 자동차 산업 등 제조 분야의 장기간 개발을 위한 투자 등이 그 정책에 의한 성과였습니다. 그가 부총리 겸 장관을 재직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시간을 해외 방문을 통해 세계에 말레이시아를 홍보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1981

['말레이 딜레마' 해금]

그의 첫 번째 저서인 '말레이 딜레마'가 총리 취임 이후 해금되었습니다. 이 책은 말레이인 공동체의 경제적 발전과 경쟁을 강조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소외된 뒤, 마하티르는 그의 첫 번째 책인 '말레이 딜레마'(The Malay Dilemma)를 썼는데, 이는 말레이인 공동체를 새롭게 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UMNO에 대한 말레이인들의 충분한 지지를 이끌게 하여금 경제에 대한 관심과 권한이 중국계한테만 편향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야 하고, 또 말레이인들이 충분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만약에 돈과 재산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않고 노동을 피하려 한다면 질 수 밖에 없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압둘 라만 정권에 대한 비판을 계속 했으며, 가차없이 금지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총리가 된 1981년 이후로만 해금되었습니다.

[제4대 총리 취임]

56세의 나이로 말레이시아 제4대 총리에 취임하여, 22년간의 장기 집권 시대를 열었습니다.

1981년 7월 16일,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56세의 나이로 말레이시아 제4대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취임 직후 그는 국방장관직을 겸임했으며, 정치적 동지인 무사 히탐을 부총리 겸 내무장관으로 임명하여 '2M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조치는 국가보안법 수감자 21명을 석방하는 것이었으며, 집권 초 2년 동안 당 개편을 위한 조치도 추진했습니다.

1982

[총선 압승 및 리더십 강화]

UMNO가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마하티르는 ABIM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을 UMNO로 편입시키는 등 당 리더십을 강화했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취임 초기 2년 동안 UMNO의 리더십을 굳히는 데 주력했는데, ABIM의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을 UMNO로 넣기 위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UMNO는 이슬람 부흥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안와르를 편입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ABIM을 누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UMNO는 1982년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향동학습정책(Look East Policy) 발표]

말레이시아의 경제 발전을 위해 일본과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우자는 '향동학습정책(Look East Policy)'을 발표했습니다.

총리 시절 그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일본과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우자'는 소위, 향동학습정책(向東學習政策, Look East Policy)을 펼쳤습니다. 그는 2010년을 전후해 이뤄진 기자와의 몇 차례 인터뷰에서 '말레이시아는 멀리 서구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가치, 애국심, 사명감, 국가발전 등에서 교훈을 얻는 게 효율적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1983

[헌법 개정 및 공식 방한]

술탄 간의 다툼을 줄이고 국왕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1983년,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술탄(국왕을 임명하는 종교지도자)끼리의 다툼을 줄이고자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그는 후에 선출될 새 아공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선제(pre-emptively) 권력에 대한 제한을 취했습니다. 또한 그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했습니다.

1985

[페낭 대교 건설 및 이명박과의 친분]

현대건설이 말레이시아에서 아시아 1위, 세계 3위로 긴 페낭 대교를 건설했으며,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명박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마하티르의 집권 초기인 1985년 현대건설이 말레이시아에서 아시아 1위, 세계 3위로 긴 페낭 대교를 건설했는데, 당시 현대건설 사장은 이명박이었습니다. 둘의 친분은 언론에 다뤄질 정도였으며, 이명박은 마하티르를 자신의 정치적 롤 모델로 삼았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1986

[총선 압승]

마하티르가 이끄는 BN(국민전선)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1986년 총선에서 마하티르가 이끄는 BN(국민전선)이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1989

[심장 수술]

관상동맥 측관형성 수술을 받았습니다.

마하티르는 1989년 관상동맥 측관형성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시 미국 병원에 가도록 권유받았지만, 자국에서 치료받길 직접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

[공식 방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다졌습니다.

마하티르는 1990년에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 간의 협력과 우호 관계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1991

['비전 2020' 발표]

말레이시아가 2020년까지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비전 2020(Wawasan 2020)'을 발표했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1991년 제6차 경제개발 계획에서 2020년까지 선진국 수준으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비전 2020(Wawasan 2020)을 제시했습니다. 이 계획의 추진 방향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학 및 기술 기반 개발, 고급 숙련 기술 인력 개발, 환경 보전 및 보호, 성실 자율 및 근면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문화 환경 조성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1993

[공식 방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다졌습니다.

마하티르는 1993년에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 간의 협력과 우호 관계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1994

[공식 방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 관계를 다졌습니다.

마하티르는 1994년에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 간의 협력과 우호 관계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1995

[푸트라자야시 조성]

셀랑고르주로부터 토지를 구입해 푸트라자야시(市)를 만들었습니다.

마하티르 시절인 1995년 10월, 셀랑고르주(州)로부터 토지를 구입해 푸트라자야시(市)를 만들었습니다. 이 도시는 2001년 2월 포화상태에 달한 쿠알라룸푸르를 대신해 연방정부의 행정수도로 정해졌습니다. 푸트라자야는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를 지냈던 툰쿠 압둘 라만의 이름을 딴 행정수도입니다.

1996

[갤러리 페르다나 설립 제안]

마하티르 부부가 전 세계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인 갤러리 페르다나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갤러리 페르다나는 마하티르 부부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외교 활동을 하면서 각 나라의 국빈, 명사, 기업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한 박물관입니다. 마하티르 총리의 제안으로 1996년 설립된 갤러리아 페르다나는 각 나라의 특색을 볼 수 있는 7천여 점의 전시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약 2천여 점의 전시물을 진열하고 있습니다.

1997

[IMF 권고 거부 및 외환위기 극복]

아시아 외환위기 발생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권고를 거부하고 금리 인하, 고정 환율제 도입 등 독자적인 '극약처방'으로 위기 극복을 주도했습니다. 이 정책은 후에 IMF도 인정하는 경제성장을 이뤄냈습니다.

1997년 태국을 시작으로 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은 외환위기라는 위기에 휘청댔습니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선 고금리와 정부 지출 축소, 기업 구조조정 등 충격요법을 지원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마하티르는 국제사회에서 엄청난 비난과 압력을 받아야 했지만 IMF 권고안을 거부하고 금리인하, 고정환율제 도입, 외화 국외유출 금지 등 '극약처방'을 통해 위기극복에 나섰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IMF도 인정하는 경제성장을 이뤄냈습니다. 그는 '아시아의 통화위기는 정부의 정책상 잘못 때문이 아니라, 서방 환투기꾼들의 농간 때문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아시아 파워 50인' 선정]

아시아위크(Asiaweek) 선정 '아시아 파워 50인' 중 중국의 장쩌민에 이어 2위에 올랐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1997년 아시아위크(Asiaweek) 선정 '아시아 파워 50인' 중 중국의 장쩌민에 이어 2위로 올랐습니다.

1998

[타임 매거진 '아시아 뉴스 인물' 선정]

미국 '타임 매거진'이 1998년 아시아 뉴스 인물로 마하티르를 선정했습니다.

미국 '타임 매거진'이 1998년 아시아 뉴스 인물로 마하티르 빈 모하맛을 선정했습니다.

1999

[IMF의 자본통제 정책 인정]

국제통화기금(IMF)이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가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1999년 9월 8일 말레이시아의 자본통제는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IMF는 그동안 마하티르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번 보고서는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시인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국회 해산]

2000년 정부 예산 심의를 하던 말레이시아 국회가 전격 해산되었습니다.

1999년 11월 10일, 2000년 정부 예산 심의를 하던 말레이시아 국회가 전격 해산되었습니다.

[총선 날짜 발표]

마하티르 정부가 11월 29일에 제10대 총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회 해산 이틀 뒤인 1999년 11월 12일, 마하티르 정부는 오는 11월 29일 제10대 총선거를 치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제10대 총선 압도적 승리]

제10대 총선에서 마하티르가 이끄는 집권 국민전선이 전체 하원 의석 중 개헌석을 훨씬 넘는 149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999년 11월 29일 열린 제10대 총선에서 마하티르의 집권 국민전선은 전체 하원 의석 193석 가운데 개헌석인 3분의 1을 훨씬 넘는 149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마하티르는 아직도 자신들의 당이 국민의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히 증명됐다고 밝혔습니다.

2000

[아시아·유럽 정상회의 참석]

서울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국제 외교 무대에서 활동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00년에 서울 아시아·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국제 외교 무대에서 말레이시아의 입지를 강화하고 협력을 모색했습니다.

2001

[푸트라자야 행정수도 지정]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과 북남고속도로 등 주요 국가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푸트라자야를 연방정부의 행정수도로 정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01년 2월, 포화상태에 달한 쿠알라룸푸르를 대신하여 푸트라자야를 연방정부의 행정수도로 정했습니다. 이는 권력의 중심을 옮기려는 그의 계획의 일환이었으며,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과 북남고속도로 등 주요 국가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밀레니엄 성취상 수상]

리콴유와 함께 밀레니엄 성취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01년 9월 11일, 리콴유와 함께 밀레니엄 성취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2002

[이과계 과목 영어화 정책 도입]

인재양성 및 영어 실력 향상을 목표로 이과계 과목들을 영어로 바꾸는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집권 마지막해인 2002년, 마하티르는 인재양성 및 영어 실력 향상을 목표로 이과계 과목들을 영어로 바꾸는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초청 방한]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2002년 5월 22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마하티르 총리는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과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호협력 강화방안, 한반도 평화정착과 동아시아 지역협력,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한·중·일간 협력, 반테러리즘 등 공동 관심사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총리직 사임 발표 (번복)]

총리직과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대표직 사임을 전격 발표했으나, UMNO의 만류로 사의를 접었습니다.

2002년 6월 22일 마하티르 빈 모하맛이 총리직과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대표직 사임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당시 UMNO의 만류로 결국 마하티르는 사의를 접고, 이듬해 비동맹 정상회의와 이슬람회의기구(OIC) 정상회의를 개최한 뒤에야 총리직을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2003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회담]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마하티르는 2003년 8월 5일 러시아의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유엔 총회 연설]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며 국제 현안에 대한 말레이시아의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03년 9월 25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총리직 퇴임]

22년간 재임했던 총리직을 마무리하고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부총리에게 바통을 넘기며 퇴임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03년 10월 3일, 22년간의 총리직을 마무리하고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부총리에게 바통을 넘기며 퇴임했습니다. 이는 아시아 정치 지도자 가운데 최장기 집권 기록에 해당합니다.

['툰' 작위 수여]

말레이시아 국왕이 비왕족에게 수여하는 최고 작위인 '툰(Tun)' 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2003년 11월 1일 말레이시아 국왕이 비왕족에게 수여하는 작위 중 최고의 작위인 '툰(Tun)'을 수여받았습니다.

2005

[제1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참석]

제1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참석하여 ALC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05년 제1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참석하여 ALC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총 4차례 ALC에 참석했습니다.

2006

[넬슨 만델라 존경 표명]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2006년 3월 23일, 마하티르 빈 모하맛이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2007

[호흡곤란으로 입원]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세로 말레이시아 케다주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

2007년 5월 14일 마하티르 빈 모하맛이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세로 말레이시아 케다주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2008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을 포함하여 다수 방한 활동을 했습니다.

마하티르는 총리 퇴임 후에도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을 포함하여 다수의 방한 활동을 했습니다.

2013

[시진핑 주석, '오랜 친구'로 칭함]

시진핑 중국 주석이 쿠알라룸푸르에서 마하티르를 만났을 때 그를 '중국인이 존경하는 오랜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2013년 10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 시진핑 주석은 쿠알라룸푸르에서 마하티르를 만났을 때 그를 '중국인이 존경하는 오랜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2014

[존경하는 서구 지도자 언급]

존경하는 서구 지도자로 매우 잔인했지만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룬 표트르 1세와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를 꼽았습니다.

마하티르는 2014년 10월 12일 기사를 통해 존경하는 서구 지도자로 매우 잔인했지만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룬 표트르 1세(1682~1725 재임)와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를 꼽았습니다.

2015

[나집 총리 비난 시작]

나집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그를 거세게 비난하며 정계 복귀의 신호탄을 올렸습니다.

마하티르는 2015년 나집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그를 거세게 비난했습니다. 이는 그의 정계 복귀의 주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6

[UMNO 탈당]

나집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을 비판하며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을 탈당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15년 나집 총리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그를 거세게 비난했고 이듬해 2016년 2월 29일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을 탈당했습니다.

[나집 총리 고소]

집권당인 통일말레이기구(UMNO) 전 당원들과 함께 나집 라작 총리를 직권 남용 및 공직자 수탁 의무 위반 혐의로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에 제소했습니다.

2016년 3월 23일 마히티르 전 총리와 집권당인 통일말레이기구(UMNO) 전 당원들이 나집 라작 총리를 직권 남용 및 공직자 수탁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에 제소했습니다. 이들은 나집 총리가 지위를 이용해 비자금 조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2018

[92세 정계 복귀 및 총리 후보 추대]

92세의 나이로 정계에 복귀하여 야권 총리 후보로 공식 추대되었습니다.

2018년 1월 8일 92세의 나이로 정계에 복귀한 마하티르 빈 모하맛이 야권 총리 후보로 공식 추대되었습니다.

[총선 승리]

총선에서 승리하여 말레이시아 정치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마하티르는 야당에 들어가 정계에 복귀했고 2018년 5월 9일 총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PH(희망연맹)는 하원 222석 중 과반인 113석을 확보하며, 나집 총리의 BN(국민전선)이 79석을 얻는 데 그치며 정권 교체에 성공했습니다.

[제7대 총리 취임 (세계 최고령)]

세계 최고령 지도자 기록을 경신하며 말레이시아 제7대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2018년 5월 10일,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총선 승리 후 말레이시아 제7대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이때 그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당시 세계 최고령 지도자로서 말레이시아 정치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1MDB 스캔들 조사 및 법치주의 회복 약속]

총리 취임 후 1MDB 스캔들에 대한 심층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실시하고 법치주의를 회복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가 집권 후 '법치주의를 회복'하고 1MDB 스캔들에 대해 심층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언론에 나집 라작 전 총리가 실수를 했다면 나집 자신이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재화용역세(GST) 폐지 선언]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화용역세(GST)를 기존 6%에서 0%로 폐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18년 5월 16일, 국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6월 1일부터 6%의 재화용역세(GST)도 폐지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장관 급여 10% 삭감]

정부 지출 억제 조치로 각 부처 장관 급여를 10% 삭감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18년 5월 23일, 정부 지출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각 부처 장관 급여를 10% 삭감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싱가포르 고속철 계획 취소]

재정 건전화를 위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018년 5월 28일 마하티르는 재정 건전화를 위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것은 최종적인 결정이다. 우리는 필요 없는 사업을 버려야 한다. 예를 들어 고속철 사업에는 큰돈이 들지만 우리는 1센트도 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회담]

쿠알라룸푸르에서 인도의 총리 나렌드라 모디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2018년 5월 31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인도의 총리 나렌드라 모디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재화용역세(GTS) 0% 시행]

재정 건전화를 위한 정책으로 재화용역세(GTS) 0%가 시행되었습니다.

2018년 6월 1일부터 재화용역세(GTS) 0%가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마하티르 총리가 5월 16일 발표한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 지출을 억제하고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일본 방문 및 관계 강화 약속]

일본을 방문하여 아베 신조 총리와 회담하고, 일본과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18년 6월 10일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와 회담하고, 일본과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또한 중국에 대한 채무를 줄이고 일본이 말레이시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투표 연령 하향 조정 주장]

젊은이들이 정치 상황을 더 잘 이해한다며 투표 연령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18년 6월 21일 젊은이들이 정치 상황을 더 잘 이해한다며 투표 연령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방문 및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회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갖고 민주주의 협력 및 팜오일 규제 정책에 대한 공동 대응을 논의했습니다.

2018년 6월 28일 마하티르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습니다. 마하티르와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보고르 궁전에서 만나 양자회담을 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협력과 교류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마하티르 수상은 유럽연합의 팜오일 규제 정책에 대해 양국이 협력하여 대항해야 한다고 말하며, 팜오일 농장이 환경을 파괴시킨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94번째 생일, 세계 최고령 정상 기록 경신]

94번째 생일을 맞이하며 당시 세계 최고령 국가 정상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2018년 7월 10일 마하티르 총리는 94번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그는 세계 최고령 국가 정상이었으며, 1926년 11월생인 베지 카이드 에셉시 튀니지 대통령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마하티르 이전 최고령 국가 정상은 1924년 2월생인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회동]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마하티르와 회동하여 양국 간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2018년 7월 16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마하티르와 회동했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하티르에게 필리핀과 말레이시아가 현재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2018년 8월 3일 미국 국무부 마이크 폼페이오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중국 방문 및 대규모 사업 취소]

5일간의 중국 방문을 시작하여 전 정부가 계약한 철도 및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을 취소했습니다.

2018년 8월 17일, 마하티르는 5일간의 중국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방문 중 그는 전 정부가 중국 국유기업과 계약한 철도 건설 (200억달러 규모) 및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을 취소했습니다. 중국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중국의 '새로운 타입의 식민주의' 행태를 지적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유엔 총회 연설에서 강대국 정치 비판]

제73차 유엔 총회 연설에서 우회적으로 미국의 중동 정책을 비판하고 강대국 중심의 힘의 정치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18년 9월 28일 제73차 유엔 총회 연설에서 그는 우회적으로 미국의 중동 정책을 비판하고 강대국 중심의 힘의 정치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태국 방문 및 폭력 종식 지원 약속]

태국을 방문하여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 회담하고, 태국 남부 지역의 폭력 사태 종식을 위해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18년 10월 24일 마하티르는 태국을 방문하여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 함께 환영식에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마하티르는 태국 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의 종식을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욱일동화대수장 수훈]

일본 정부로부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욱일동화대수장'을 수훈했습니다.

2018년 11월 6일 마하티르 빈 모하맛은 일본 정부로부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욱일동화대수장'을 수훈했습니다.

[자산 신고]

총리로서 3235만 링깃(약 94억1300만 원)의 자산을 신고했습니다.

2018년 11월 23일, 마하티르는 총리로서 3235만 링깃(약 94억1300만 원)의 자산을 신고했습니다.

2019

[북한과의 관계 해결 의지 표명]

말레이시아가 북한과의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2019년 2월 12일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가 북한과의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대사관을 다시 여는 계획과 관련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2017년 4월부터 평양주재 대사관을 사실상 폐쇄했습니다.

[필리핀과의 정상 회담]

필리핀 마닐라에서 정상 회담을 통해 필리핀과의 평화 증진, 안보 및 경제 성장 달성을 위한 협력을 논의했습니다.

2019년 3월 5일 필리핀 마닐라 정상 회담 중,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의 정치 지도자들이 협력을 통한 평화 증진, 안보, 및 경제 성장 달성을 논의했습니다. 공동 성명서에서, 마하티르와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는 테러와 국제 범죄와 같은 공통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협력하고, 1993년 창설 후 일곱 차례 열린 필리핀-마닐라 합동 위원회 회의를 비롯한 양국의 정책 대화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양국 정상은 또한 아세안 프레임워크 내에서 일어나는 대화에 동의하면서, 양국 무역 관계와 연결성장을 인정했습니다.

[여성 대법원장 임명]

진보적인 여성 판사 텡쿠 마이문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며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확대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19년 5월 2일 진보적인 여성 판사 텡쿠 마이문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며 여성의 사회 참여를 확대했습니다.

[영국 투자 유치 낙관론 표명]

영국 투자자들이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잠재력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으며, 투자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마하티르는 2019년 6월 18일 영국 투자자들이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잠재력을 낙관적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대(對)말레이시아 투자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회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푸트라자야에서 다시 만남을 가졌습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19년 8월 9일 이틀 일정으로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으며, 마하티르와 푸트라자야에서 만남을 가졌습니다.

[러시아 항공기술 관심 및 전투기 구매 고려]

말레이시아가 러시아의 항공기술에 관심을 보이며, 러시아로부터 전투기를 구매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말레이시아는 2019년 9월 5일 러시아의 항공기술에 관심을 보이며,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가 러시아로부터 전투기를 구매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동번영 비전 2030' 제시]

말레이시아를 2030년까지 더욱 번영하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공동번영 비전 2030(Shared Prosperity Vision 2030)'을 제시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19년 10월 5일 '공동번영 비전 2030(Shared Prosperity Vision 2030)'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2020년까지 선진국 대열에 오르겠다는 기존 '비전 2020'을 잇는 새로운 국가 발전 로드맵입니다.

[최룡해 북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회담]

아제르바이잔에서 최룡해 북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만나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습니다.

2019년 10월 25일 마하티르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최룡해 북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습니다. 이는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경색되었던 양국 관계 회복의 신호로 해석되었습니다.

[기자회견 중 코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국제 팜오일 콘퍼런스·전시회 기자회견 중 갑자기 코피를 흘려 기자회견이 중단되었습니다.

2019년 11월 19일 마하티르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국제 팜오일 콘퍼런스·전시회에 참석해 기자회견 질의응답을 하던 중 갑자기 코피를 흘렸습니다. 마하티르는 들고 있던 흰 손수건으로 급히 코를 닦았지만 코피는 멈추지 않아 결국 기자회견을 중단하고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자리를 떴습니다. 이후 마하티르는 승용차 안에서 코를 막고 있는 모습이 기자들의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말레이시아 총리실은 '마하티르 총리가 코피를 흘렸지만, 잠시 뒤 멈췄고 푸트라자야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재개했다'며 건강 이상설에 선을 그었습니다.

2020

[제7대 총리직 퇴임]

연정 내부의 분열로 인해 말레이시아 총리직에서 퇴임하며 두 번째 총리 임기를 마쳤습니다.

마하티르는 2020년 2월 24일 말레이시아 총리직에서 퇴임하였습니다. 2018년 재취임한 그는 연정 내부의 분열로 임기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소속 정당에서 출당]

자신이 속했던 말레이시아 원주민연합당(PPBM)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들과 함께 출당 조치를 당했습니다.

2020년 5월 28일 마하티르는 자신이 속했던 말레이시아 원주민연합당(PPBM)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들과 함께 출당 조치를 당했습니다.

[부인 생일 축하]

부인 시티 하스마 여사의 94회 생일을 맞아 페이스북에 축하 글과 사진을 올렸습니다.

마하티르는 2020년 7월 12일 부인 시티 하스마 여사의 94회 생일을 맞아 사진과 함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신당 '쁘주앙' 창당 선언]

국가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쁘주앙'(Pejuang, 투사 또는 전사)이라는 신당 창당을 선언했습니다.

2020년 8월 13일, 국가 부패를 척결하겠다며 마하티르가 창당을 선포했습니다. 마하티르는 '쁘주앙'(Pejuang)이라는 신당 이름을 정했으며, 쁘주앙은 말레이어로 '투사' 또는 '전사'를 의미합니다.

2021

[코로나19 화이자 백신 접종]

코로나19 화이자 백신을 접종했습니다. 당시 말레이시아 내 최고령 접종자였습니다.

2021년 3월 7일 마하티르는 코로나19 화이자 백신을 맞았습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 내 최고령 접종자였습니다.

[코로나 보건지침 위반으로 수사]

체온을 재지 않고 모스크에 입장했다가 코로나19 보건지침 위반으로 경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2021년 5월 13일 마하티르 전 총리가 체온을 재지 않고 모스크에 입장했다가 코로나19 보건지침 위반으로 수사에 올랐습니다.

2022

[심장병 입원 및 정치활동 재개]

세 차례 심장병으로 입원한 후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하며 회복 후 다시 정치활동에 나섰습니다.

마하티르는 2022년 1월 세 차례나 심장병으로 입원했습니다. 회복 후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그는 다시 정치활동에 나섰습니다.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 참석 방한]

2022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 참석 차 대한민국을 방문했습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2022년 7월 12일 2022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 참석 차 방한했습니다.

[새로운 말레이민족 중심 정치 연합 구성 선언]

국부펀드 1MDB 공금 횡령으로 얼룩진 UMNO 외에 다른 정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새로운 말레이민족 중심 정치 연합을 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22년 8월 4일 마하티르는 새로운 말레이민족 중심 정치 연합을 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마하티르는 말레이계 국민에게 국부펀드 1MDB 공금 횡령으로 얼룩진 나집 라작 전 총리의 정당인 UMNO 외에도 다른 정치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으로 입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2022년 8월 31일 마하티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당시 97세였습니다.

[97세 총선 출마 선언]

97세의 나이로 차기 총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2022년 10월 11일 마하티르는 97세의 나이로 차기 총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당선되면 무려 102세까지 의원직을 유지하게 되며, 본인이 세운 세계 최고령 국회의원 기록을 다시 한 번 경신하게 되지만, 마하티르가 소속된 '게라칸 타나 에어(GTA)'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누가 총리가 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랑카위 지역구 총선 낙선]

랑카위 지역구 총선에서 약 4만7500개의 유효표 중 4566표를 얻는 데 그쳐 낙선하며 53년 만에 첫 선거 패배를 기록했습니다.

2022년 11월 19일 마하티르는 랑카위 지역구 총선에서 약 4만7500개의 유효표 중 4566표를 얻는 데 그쳐 낙선했습니다. 이는 1969년 이후 53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정계 은퇴 시사]

총선 낙선 후 집필 활동에 전념하겠다며 정계 은퇴를 시사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22년 11월 23일 총선 낙선한 뒤 집필 활동에 전념하겠다며 정계 은퇴를 시사했습니다.

2023

["미국이 양안갈등 부추긴다" 비판]

"미국이 의도적으로 양안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으며 미중 대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2023년 5월 8일 마하티르는 "미국이 의도적으로 양안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2022년 당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일종의 도발로, 이로 인해 양안 갈등이 고조됐다"면서 "중국이 군사력을 끌어올리고, 대만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결국 대만이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이 양안 긴장의 수혜자임을 의미한다"라면서 "양안 긴장이 없었다면 미국은 대만에 무기를 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한 "미중간 대결은 서로간에 득이 되지 않으며, 우리는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면서 "국력을 적대관계에 쓰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조선일보 감사패 수여]

조선일보로부터 2005년 제1회 ALC 참석 당시를 보도한 지면을 새긴 감사패를 전달받았습니다.

마하티르는 2005년 제1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참석한 이래 이번까지 총 4차례 참석, ALC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023년 조선일보는 이날 마하티르에게 2005년 1회 ALC 참석 당시를 보도한 조선일보 지면을 새긴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감염병으로 입원]

감염병 치료를 위해 쿠알라룸푸르 소재 국립심장병원에 입원했습니다.

2023년 8월 1일 마하티르는 감염병 치료를 위해 쿠알라룸푸르 소재 국립심장병원에 입원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병원 퇴원]

감염병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국립심장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2023년 8월 4일 마하티르가 감염 치료를 위해 입원했던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NHK 인터뷰, 일본에 미중 대립 선 긋기 촉구]

NHK와 인터뷰에서 "일본 외교가 미중 대립과 선을 그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세안 국가들의 독자 외교 노선을 강조했습니다.

2023년 12월 15일 마하티르는 미국과 중국의 긴장 상황에서 독자적인 외교를 해야 한다고 일본이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고 말했습니다. 마하티르는 이날 보도된 NHK와 인터뷰에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들이 미중 대립에서 어느 한쪽에 붙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이처럼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은 중국과 대립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는 동남아시아, 특히 남중국해에서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우리는 일본이 미국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2024

[심장 문제로 재입원]

심장 문제로 쿠알라룸푸르 국립심장병원에 다시 입원했습니다. 건강 우려가 제기되자 신문을 읽고 글을 쓰는 사진이 공유되기도 했습니다.

2024년 2월 13일 마하티르는 심장 문제로 다시 입원했습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마하티르 전 총리는 지난달 26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국립심장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건강에 관한 우려가 제기되자 마하티르 전 총리 측은 그가 신문을 읽고 글을 쓰는 사진을 공유했습니다.

[입원 50여일 만에 퇴원]

감염 치료를 이유로 입원한 지 50여일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2024년 3월 18일 마하티르는 감염 치료를 이유로 입원한 지 50여일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기침 증세로 입원]

기침 증세로 국립심장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마하티르는 2024년 7월에도 기침 증세로 국립심장병원에 입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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