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스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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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데이비스
재즈 음악가, 트럼펫 연주자, 작곡가, 밴드 리더 + 카테고리

- 20세기 재즈의 흐름을 바꾼 혁신적인 트럼펫 연주자이자 작곡가 밴드 리더. - 비밥에서 시작해 쿨 재즈 모달 재즈 재즈 퓨전 힙합 재즈 등 시대를 앞선 다양한 장르를 개척. - Kind of Blue Bitches Brew 등 역사적인 명반을 통해 재즈를 대중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 - 약 50년간 재즈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재즈의 피카소라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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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26

[재즈 거장의 탄생]

미국 일리노이주 알톤에서 치과의사 아버지와 음악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10대 무렵부터 트럼펫에 흥미를 느끼며 연주를 시작했고, 고교 시절에는 지역 재즈 밴드를 결성해 어른들과 활약했습니다.

1927

[새로운 환경, 음악적 영감]

알톤에서 이스트 세인트루이스로 이사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동자 거주 구역이 많아 클럽에서 재즈 라이브가 정기적으로 열렸고, 마일스는 이곳에서 다양한 재즈 플레이어들을 접하며 음악적 영감을 얻었습니다.

1944

[찰리 파커와의 만남]

18세에 세인트루이스에서 당대 비밥 재즈의 거장 찰리 파커와 우연히 협연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후 줄리어드 음악원 진학을 중단하고 찰리 파커, 맥스 로치 등 최고 뮤지션들과 함께 비밥 재즈 신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1947

[첫 리더 세션]

찰리 파커와 맥스 로치의 지원을 받아 첫 리더 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재즈 트럼펫 연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비밥의 한계를 느끼던 그는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1948

[쿨 재즈의 서막, 쿨의 탄생]

편곡가 길 에반스와 만나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영향을 받은 앨범 (쿨의 탄생)을 제작했습니다.

이 앨범은 비밥의 뜨거움에 반대되는 차분하고 정교한 '쿨 재즈' 시대를 열며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첫 레코딩이었던 데뷔 앨범은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1953

[마약 문제 극복과 재기]

1950년대 초 마약 문제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1953년 프레스티지 레코드에서 앨범 <워킹>(Workin')을 발표하며 하드 밥의 선두주자로 화려하게 재기했습니다.

1954

[델로니어스 몽크와의 협연]

델로니어스 몽크와 공동 출연했으나, 두 거장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해 이 세션은 일반적으로 '싸움 세션'이라 불리며 재즈계의 유명한 일화로 남았습니다.

1955

[전설적인 퀸텟 결성]

존 콜트레인, 레드 갈란드, 폴 챔버스, 필리 조 존스와 함께 제1기 퀸텟을 결성하며 재즈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의 인상적인 연주를 계기로 메이저 음반사인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했습니다.

1956

[마라톤 세션의 탄생]

프레스티지 레코드와의 계약을 끝내기 위해 단 2일 만에 4장의 앨범 분량(24곡)을 모두 원 테이크로 녹음하는 전무후무한 '마라톤 세션'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기량과 집중력을 보여주는 전설적인 일화입니다.

실제로는 연속 2일간이 아니고, 2회의 세션 사이에 약 5개월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녹음된 곡들은 <워킹>, <스티밍>, <릴랙싱>, <쿠킹> 4개 앨범에 수록되어 4년에 걸쳐 발매되었습니다.

1957

[영화 음악 작업]

파리에 건너가 현지 재즈맨들과 함께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음악을 러쉬에 맞춰 즉흥 연주로 제작하며 영화 음악에도 발을 들였습니다.

1958

[빌 에반스와의 협업]

캐논볼 애덜리가 합류하여 밴드가 6인조(섹스텟)가 되었고, 피아노에 빌 에반스를 맞아들이며 클래식 음악 이론을 재즈에 접목하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빌 에반스는 모리스 라벨, 라흐마니노프 등의 클래식 음악 이론을 밴드에 접목하여 마일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일한 백인 멤버였던 빌 에반스는 인종차별 문제로 7개월 만에 탈퇴하기도 했습니다.

1959

[재즈 역사의 정점, Kind of Blue]

빌 에반스를 특별히 복귀시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즈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 를 제작했습니다.

이 앨범은 복잡한 화성을 넘어 선법(mode)을 기반으로 한 모달 재즈의 시대를 열며 재즈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1964

[황금 퀸텟 시대의 개막]

1960년 존 콜트레인 탈퇴 후 멤버 교체가 잦았으나, 1963년 허비 행콕, 론 카터, 토니 윌리암스가 합류하고 1964년 웨인 쇼터까지 가세하며 '황금 퀸텟'이라 불리는 제2기 퀸텟을 확립했습니다.

이들은 4비트 재즈 연주와 작곡에서 최고 수준을 선보였습니다.

마일스 자신도 이 퀸텟을 '위대한 밴드'라고 평가하며 네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이 많았다고 회고했습니다. , 등 뛰어난 앨범들을 발표했습니다.

1968

[일렉트릭 재즈의 선구자]

앨범 를 통해 8비트 리듬과 일렉트릭 악기를 도입하며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는 훗날 재즈 록 퓨전 붐을 예고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69

[퓨전 재즈의 폭발, Bitches Brew]

조 자비눌이 밴드에 가입하고 퓨전 재즈의 기념비적인 명반 를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은 록과 재즈의 경계를 허물며 70년대 이후의 재즈 록 퓨전 붐을 이끌었고, 대중음악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1975

[건강 악화와 은퇴 선언]

펑크(Funk) 색채를 강조한 음악으로 진화했으나 상업적 성공은 미미했습니다.

더불어 건강 상태마저 악화되어 일본에서의 라이브 앨범 , 를 마지막으로 1975년 이후 활동을 중단하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1980

[화려한 복귀와 팝과의 조화]

마커스 밀러 등의 서포트를 받아 5년간의 공백을 깨고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이듬해 복귀작 을 발표하며 팝 음악의 색채를 강하게 흡수하는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선보였습니다.

1980년대에는 마이클 잭슨이나 신디 로퍼의 작품을 채택하고, 미리 완성된 트랙 위에 트럼펫을 얹는 팝 뮤지션의 제작 스타일을 도입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습니다.

1991

[힙합 재즈 시도와 유작]

유작 앨범 에서 힙합 뮤지션 이지 모 비와 협업하여 랩과 재즈를 접목한 힙합 재즈를 선보였습니다.

이는 장르 간의 벽을 허무는 그의 마지막 음악적 도전이었습니다.

[재즈 거장의 영원한 안식]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 있는 St.

John's Hospital and Health Center에서 65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50년간 재즈 역사를 이끌었던 한 시대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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