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샤오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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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샤오춘
바둑 기사, 프로 기사 + 카테고리
마샤오춘은 중국 저장성 출신의 바둑 기사로, 중국 바둑 역사상 최초로 세계 챔피언에 오른 기념비적인 인물입니다. 9세에 바둑을 시작해 1983년 19세의 나이로 9단에 오르는 천재성을 보였으며, 변칙적이고 기발한 수법으로 '요도(妖刀)'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특히 1995년에는 동양증권배와 후지쯔배 두 개의 세계 대회를 석권하며 '마샤오춘의 해'를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의 이창호 9단과 수차례 결승에서 맞붙어 패배하며 '마·이 패권 다툼'에서 아쉬움을 남긴 비운의 승부사이기도 합니다. 중국 국가대표팀 총감독을 지내며 제자 뤄시허를 통해 이창호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도 한 그는,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과 저술 활동까지 겸비한 다재다능한 바둑계의 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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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64

[마샤오춘 출생]

중국 저장성 사오싱시 성저우에서 마샤오춘이 태어났습니다. 훗날 중국 바둑의 역사를 새롭게 쓸 천재의 탄생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수학 교사였고 어머니는 유치원 교사였습니다. 교육적인 가정 환경 덕분에 어려서부터 비상한 두뇌와 논리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1973

[바둑 입문]

9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바둑판의 흑백 돌이 만들어내는 무궁무진한 변화에 빠르게 매료되었고,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단기간에 실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1974

[체육학교 진학]

바둑을 배운 지 불과 1년 만인 10세의 나이로 체육학교에 정식으로 진학했습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바둑 훈련을 받기 시작하며 천재성이 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엘리트 체육인으로서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시기였습니다.

1976

[집훈대(국가대표 상비군) 발탁]

12세의 어린 나이에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아 중국 바둑 집훈대에 발탁되었습니다.
전국의 바둑 영재들이 모인 집훈대에서 훈련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기사로 성장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중국 바둑계의 기대주로 본격적인 조명을 받았습니다.

1982

[프로 7단 인정]

중국에서 프로 단급 제도가 시행되면서 그간의 압도적인 성적을 바탕으로 단숨에 7단으로 정해졌습니다.
이는 당시 그의 실력이 중국 바둑계 내에서 얼마나 독보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프로 기사로서의 공식적인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1983

[최고 단위 9단 승단]

19세의 젊은 나이에 바둑 기사의 최고 영예인 9단으로 초고속 승단했습니다.
이로써 중국 최고수 반열에 공식적으로 올랐음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이후 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일인자로서 오랜 기간 군림하게 됩니다.

1985

[쉬옌과의 첫 만남]

난징에서 열린 행사에서 16세의 톈진 출신 여자 기사 쉬옌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훗날 두 사람의 결혼으로 이어지는 로맨스의 시작이었습니다. 바둑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두 사람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1988

[제1회 후지쯔배 8강 진출]

세계 최초의 프로 바둑 세계대회인 제1회 후지쯔배에 참가하여 8강에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세계 무대에 중국 바둑의 날카로움을 선보인 첫 무대 중 하나였습니다. 본격적인 국제 경쟁력을 쌓아가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989

[제1회 명인전 우승]

중국 전통의 주요 기전인 명인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우승을 시작으로 마샤오춘은 중국 명인전에서만 무려 13번이나 우승하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며 '영원한 명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1991

[쉬옌과 첫 번째 결혼]

난카이 대학을 갓 졸업한 바둑 기사 쉬옌과 여름에 정식으로 첫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바둑계의 선남선녀 커플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안정된 가정생활은 그의 바둑 기량이 더욱 무르익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CCTV배 첫 우승]

속기 기전인 CCTV배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장고 바둑뿐만 아니라 빠른 판단이 필요한 속기에서도 뛰어남을 증명했습니다.
이후 1992년, 1994년, 1995년까지 총 4차례 CCTV배를 제패하며 속기전의 절대 강자로도 명성을 떨쳤습니다. 다방면에 능통한 기재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995

[동양증권배 세계대회 우승 (중국 최초)]

제6회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중국의 선배 녜웨이핑을 3대 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중국 바둑 역사상 최초의 세계 챔피언 등극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에 밀려 세계대회 우승이 없었던 중국 바둑계의 오랜 숙원을 풀어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중국 전역이 바둑의 열기로 들썩였고 그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후지쯔배 우승 (세계대회 2관왕)]

같은 해 열린 제8회 후지쯔배 결승에서 일본 최고의 기사 고바야시 고이치를 제압하고 연이어 세계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과거 중일 명인 대항전에서 수없이 맞붙으며 자신을 단련시켰던 숙적 고바야시 광일을 가장 큰 무대에서 넘어선 것입니다. 한 해에 메이저 세계대회 2개를 석권하며 1995년은 바둑계에서 '마샤오춘의 해'로 불리게 됩니다.

1996

[이창호와의 동양증권배 결승 대결]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진출한 제7회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한국의 천재 이창호에게 1대 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이 대결은 향후 세계 바둑계를 뜨겁게 달굴 '마샤오춘 vs 이창호' 라이벌전의 본격적인 서막이었습니다. 기발한 '요도' 마샤오춘과 두터운 '돌부처' 이창호의 상반된 기풍 대결이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창호와의 후지쯔배 결승 대결]

제9회 후지쯔배 결승에서도 또다시 이창호와 맞붙었으나 결국 패배하며 2년 연속 우승에 실패했습니다.
작년에 자신이 거머쥐었던 두 개의 세계대회 타이틀을 모두 이창호에게 내어주는 뼈아픈 한 해였습니다. 세계 1인자 자리를 놓고 벌인 한중 자존심 대결에서 쓴잔을 마셨습니다.

1998

[난징 교통사고 사건 발생]

난징에서 마샤오춘이 탑승한 승용차가 교통사고를 당해 동승했던 여성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사망한 동승자가 유흥업소 종사자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심각한 스캔들로 비화되었습니다. 이른바 '난징 사건'이라 불리며 중국 전역의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쉬옌과의 파경]

난징 교통사고 스캔들의 여파로 결국 첫 번째 아내 쉬옌과의 결혼 생활이 파탄을 맞고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뉴욕대학교로 유학을 떠나있던 아내와의 관계는 이 사건으로 완전히 깨졌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공동 재산을 분할하여 5만 달러를 지급하는 등 개인사적으로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 대회 준우승]

국제 속기전인 TV 바둑 아시아 선수권 대회 결승에 진출했으나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사생활의 심각한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바둑판 앞에 앉아 결승까지 오르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승부사로서의 그의 투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99

[삼성화재배 결승 패배]

제3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다시 한번 숙적 이창호를 만났으나 치열한 접전 끝에 2대 3으로 분패했습니다.
풀세트까지 가는 혈투를 벌이며 이창호를 거세게 몰아붙였으나 끝내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번번이 세계대회 결승에서 만나는 이창호 콤플렉스가 더욱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LG배 결승 영봉패]

제3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도 이창호에게 0대 3으로 완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습니다. 이로써 '마·이 쟁패'는 이창호의 완벽한 승리로 굳어졌습니다.
한 해에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에서만 이창호에게 두 번 연달아 패배하며 크나큰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요도'의 예리한 칼날도 전성기 이창호의 견고함 앞에서는 무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1회 아함동산배 우승]

국제 대회의 부진을 털어내듯 국내 기전인 제1회 아함동산배 바둑 대회에서 초대 우승자로 등극했습니다.
세계대회에서의 연이은 뼈아픈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자국 내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지배력을 잃지 않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클래스를 뽐냈습니다.

2000

[제2회 춘란배 준우승]

제2회 춘란배 결승에 진출했으나 타이완 출신의 일본 기사 왕리청에게 1대 2로 패배하며 또다시 준우승의 아쉬움을 삼켰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어온 세계대회 결승 징크스를 끊어내지 못했습니다. 정상의 턱밑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며 비운의 2인자라는 꼬리표가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2006

[두 번째 결혼]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쓰촨성 청두 출신의 여성과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리며 새로운 인생의 반려자를 맞이했습니다.
새 아내는 바둑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결혼을 통해 다시금 마음의 안정을 찾고 바둑 내외적인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가대표 총감독 취임 및 제자의 통쾌한 복수]

중국 국가 바둑대표팀 총감독으로 재임하던 시절, 그의 애제자 뤄시허가 제10회 삼성화재배에서 마샤오춘의 오랜 숙적 이창호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스승이 평생을 바쳐도 넘지 못했던 거대한 산인 이창호를, 스승의 지도를 받은 제자가 극적으로 무너뜨리며 '이창호 왕조'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마샤오춘에게는 감독으로서 가장 통쾌하고 감격스러운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2013

[세 번째 결혼]

구이양 출신의 바둑계 외 인물인 돤위한과 베이징에서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의 제자인 뤄시허 등 바둑계 주요 인사들이 결혼식에 참석하여 스승의 새 출발을 뜨겁게 축하해주었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사생활이 마침내 평온한 닻을 내렸습니다.

2018

[논란의 발언: '세계 챔피언의 바둑']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세계 챔피언의 바둑은 아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남겨 대중의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특유의 직설적이고 자존심 강한 성격이 여과 없이 드러난 대목입니다. 이 발언은 대중들 사이에서 그의 오만함을 질타하는 여론과 천재의 당연한 자부심이라는 옹호로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2019

[저서 《삼십육계와 바둑》 출간]

바둑판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를 중국 병법의 정수인 삼십육계에 절묘하게 대입하여 풀어낸 전략서 《삼십육계와 바둑》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반상을 군사적 전쟁터로 바라보던 고대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훌륭한 저술입니다. 그가 왜 승부의 세계에서 '요도'라 불릴 만큼 기발하고 변칙적인 수읽기의 달인이었는지를 학술적으로 잘 보여줍니다.

[저서 《소오문평—십이승국 게비》 발간]

자신의 바둑 인생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났던 12번의 위대한 승리 대국을 직접 치밀하게 분석하고 해설한 자전적 바둑 해설서 《소오문평—십이승국 게비》를 발간했습니다.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전성기 시절의 번뜩이는 감각과 천재적인 수읽기의 비밀을 독자들에게 아낌없이 공개했습니다. 후학들에게는 전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더없이 귀중한 교재가 되었습니다.

[저서 《흑백지간—십이패국 반사》 발간]

자신에게 가장 뼈아픈 상처를 안겨주었던 12번의 패배를 덤덤하고 냉철하게 복기하며 자신의 한계를 성찰한 반성록 《흑백지간—십이패국 반사》를 발간했습니다.
이창호에게 당했던 숱한 결승전의 쓰라린 패배 등 아픈 기억들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분석했습니다. 승부사로서 가장 꺼내기 힘든 패배의 기록을 책으로 남김으로써 진정한 바둑 거장으로서의 성숙한 품격을 보여주었습니다.

2020

[피아노 연주와 여유로운 은퇴 후 삶]

치열했던 승부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난 후, 어릴 적부터 갈고닦았던 수준급의 피아노 연주 실력을 바탕으로 예술적 취미를 만끽하며 평온한 여생을 즐깁니다.
바둑판 위에서의 차가운 이성과 건반 위에서의 뜨거운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입니다. '요도'의 날카로움은 내려놓고 낭만적인 음악가이자 바둑계의 큰 어른으로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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