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용재 오닐
리처드 용재 오닐은 비올라라는 악기의 고독한 음색을 인류의 치유와 공감의 언어로 승화시킨 거장입니다. 아픈 가족사를 딛고 줄리아드 음악원 최초의 비올라 아티스트 디플로마 획득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그는, '앙상블 디토'를 통해 한국 클래식계의 대중화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2021년 그래미 어워즈 수상으로 세계 정점에 올랐으며, 전설적인 '타카치 콰르텟'의 멤버로서 실내악의 정수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자 소외된 이들을 품는 따뜻한 연대의 기록이며, 비올라의 중저음만큼이나 깊은 인간적 울림을 선사합니다.
연표
1978
[워싱턴주에서의 탄생]
미국 워싱턴주 세킴에서 아일랜드계 미국인 조부모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조부모의 사랑 속에서 음악적 감수성을 키우며 성장합니다. 이 특별한 가족 환경은 훗날 그의 음악에 깊은 휴머니즘이 깃드는 정서적 토양이 됩니다.
어머니 이복순(마리 오닐) 씨는 한국 전쟁 당시 고아가 되어 미국으로 입양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조부모는 용재 오닐이 음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매일 왕복 4시간 거리를 운전해 레슨을 보내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가족의 헌신과 유년기의 경험은 그가 비올라라는 악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1993
[비올라로의 전향]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했으나 악기 특유의 깊고 따뜻한 음색에 매료되어 비올라로 전향합니다.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닮았다는 비올라의 중저음에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이 선택은 그를 세계적인 비올리스트로 만드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바이올린의 높은 음역대보다 비올라가 가진 고독하면서도 감싸 안는 듯한 울림이 자신의 성격과 더 잘 맞는다고 느꼈습니다. 전향 초기부터 비올라 특유의 테크닉을 빠르게 습득하며 남다른 천재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비올라라는 악기가 보조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독주 악기로서 충분히 매력적임을 증명하겠다는 포부를 이때부터 다지게 됩니다.
2001
[줄리아드 최초의 기록]
명문 줄리아드 음악원 역사상 비올리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획득합니다. 이는 연주자로서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은 것으로 학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성취였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전문 연주자로서의 기술적 완성도와 깊이 있는 해석력을 완벽히 갖추게 되었습니다.
강효 교수를 사사하며 음악적 영감을 받았고 탁월한 기량으로 줄리아드 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비올라는 오케스트라의 중간 음역을 담당하는 보조 악기라는 편견이 강했으나 오닐은 독주자로서의 위상을 당당히 세웠습니다. 이후 그는 링컨 센터 챔버 뮤직 소사이어티의 정식 멤버로 발탁되며 뉴욕 클래식 무대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세종 솔로이스츠 합류]
세계적인 현악 앙상블인 세종 솔로이스츠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한국과의 본격적인 인연을 맺습니다. 앙상블의 주축 멤버로서 전 세계 주요 공연장을 누비며 정교한 실내악의 정수를 선보입니다. 이 시기 활동은 그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탐구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종 솔로이스츠와 함께 매년 한국을 방문하며 국내 관객들과 친밀한 유대감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비올라 수석으로서 단원들을 이끌며 뛰어난 리더십과 앙상블 조율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한국의 클래식 팬들은 그의 열정적인 연주 스타일에 주목하며 서서히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2004
[인간극장 출연과 대중화]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출연하여 그의 아픈 가족사와 음악을 향한 열정이 전국에 방송됩니다. 어머니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비올리스트의 진솔한 모습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 그는 클래식 음악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전국적인 대중 인지도를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방송은 '안녕, 용재 오닐'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어 높은 시청률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어머니의 고국인 한국에 대한 사랑과 조부모님에 대한 효심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대중은 그의 비올라 연주가 왜 그토록 절절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2005
[첫 솔로 데뷔 음반 발매]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첫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독주자로서 당당히 데뷔합니다. 클래식 명문 레이블인 유니버설 뮤직을 통해 발매된 이 음반은 비올라 독주곡들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받으며 비올라 음반으로는 이례적인 판매고를 기록했습니다.
앨범 발매와 동시에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전석 매진시키며 클래식 스타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비올라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며 국내 클래식 음반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서정적이면서도 파워풀한 연주력은 비올라 전공생들에게 새로운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2006
[에이버리 피셔 그랜트 수상]
미국 클래식 음악계 최고의 권위 중 하나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합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뛰어난 연주자에게 주어지는 이 상을 통해 그의 국제적인 위상이 한 단계 격상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독주자로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건이었습니다.
역대 수상자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며 뉴욕 평단의 확고한 지지를 확인했습니다. 부상으로 주어진 지원금은 그가 더 넓은 음악적 실험을 할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 수상을 계기로 북미와 유럽의 유수 오케스트라들과의 협연 기회가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앨범 눈물(Lachrymae) 발매]
두 번째 솔로 앨범 '눈물'을 발매하며 클래식 차트의 정상을 차지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하면서도 깊이 있는 곡들을 선곡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앨범은 한국에서 멀티 플래티넘 판매 기록을 세우며 비올라 열풍을 주도했습니다.
대중적인 감성과 클래식의 정통성을 조화롭게 엮어냈다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특히 타이틀곡은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와 겹쳐 보이며 많은 이들에게 치유의 음악이 되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일반 대중의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한 기념비적인 음반입니다.
2007
[앙상블 디토 결성과 혁명]
클래식 대중화를 목표로 젊고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모아 '앙상블 디토'를 창단합니다. 리더로서 팀을 이끌며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을 형성하는 '디토 신드롬'을 일으킵니다. 클래식 공연장에 젊은 관객층을 대거 유입시킨 한국 음악사의 일대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팀명 '디토(Ditto)'는 '공감'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관객과 소통하는 클래식을 지향했습니다. 패션 잡지 화보와 세련된 홍보 영상을 통해 클래식 음악가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정의했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내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실내악 대중화의 선봉장 역할을 했습니다.
2008
[앨범 헤리티지 발표]
자신의 음악적 뿌리와 유산을 탐구하는 앨범 '헤리티지'를 발매합니다.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까지 비올라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는 진지한 학구적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그는 단순한 인기 연주자를 넘어 깊이 있는 음악 철학을 지닌 아티스트임을 증명했습니다.
텔레만과 바흐 등 바로크 거장들의 곡을 비올라로 재해석하며 악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음반으로 다시 한번 평단의 높은 지지를 얻으며 예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유산이 곧 가족과 고국 한국에 있음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2009
[미스테리오소 앨범 발매]
비올라의 신비로운 음색을 극대화한 네 번째 앨범 'Mysterioso'를 발표합니다.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구성하여 독주 비올리스트로서의 탄탄한 기본기를 과시했습니다. 대중적 인기 속에서도 클래식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예술적 고집이 투영된 작품입니다.
수록된 곡들은 비올라가 가진 어둡고도 따뜻한 미스터리한 매력을 잘 살려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수많은 해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국제적 활동 범위를 더욱 넓혔습니다. 국내에서는 앙상블 디토 페스티벌을 주도하며 실내악의 대중적 전성기를 이끌어갔습니다.
2010
[무반주 솔로 음반 도전]
어떠한 반주도 없이 비올라 한 대로만 채워진 앨범 'Solo'를 발매하며 한계에 도전합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비올라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등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을 완수했습니다. 이는 그의 연주 인생에서 가장 대담하고 진지한 예술적 시도 중 하나였습니다.
악기 본연의 소리에만 집중한 연주로 팬들에게 깊은 명상의 시간을 선사했습니다. 화려한 기교 뒤에 숨겨진 진실된 소리를 찾으려는 그의 구도자적 자세가 돋보였습니다. 이 앨범은 비올리스트들이 바이블처럼 참고하는 중요한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2011
[안녕?!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MBC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음악 멘토로 나섭니다. 소외된 아이들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꿈꾸게 하는 과정을 이끌었습니다. 이 활동은 음악의 사회적 역할과 공헌에 대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자신 또한 다문화 배경에서 자랐기에 아이들의 아픔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단순한 레슨을 넘어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그의 진심은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훗날 국제 에미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12
[영화 앙상블 출연]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삶과 고민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앙상블'에 출연합니다. 화려한 무대 뒤의 고뇌와 동료들과의 음악적 교감을 진솔하게 보여주며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이 영화는 클래식 음악가들이 대중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되어 클래식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배우 김남길이 제작에 참여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으며 예술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했습니다. 오닐은 영화를 통해 완벽함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의 즐거움을 강조했습니다.
2013
[국제 에미상 수상의 영예]
그가 참여한 MBC '안녕?! 오케스트라'가 제41회 국제 에미상 예술프로그램 부문을 수상합니다. 음악을 통해 편견을 극복하는 서사가 전 세계 전문가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그가 지향해온 음악적 진정성이 미디어를 통해서도 증명된 순간이었습니다.
한국 방송 사상 최초의 국제 에미상 수상이라는 대기록의 중심에 그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상 소식에 기뻐하며 모든 공을 함께한 아이들과 제작진에게 돌렸습니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책으로도 발간되어 다문화 교육의 모범 사례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2014
[교수직 임용과 후진 양성]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의 교수로 임용되어 본격적인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연주 노하우를 젊은 학생들에게 전수하며 미래의 음악가들을 길러내는 데 헌신합니다. 연주 활동과 교육을 병행하며 음악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습니다.
실기 지도뿐만 아니라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을 강조하는 스승으로 존경받았습니다. 그의 명성을 듣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비올라 전공생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현재는 볼더 콜로라도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후학 양성에 더욱 매진하고 있습니다.
2015
[앨범 브리티시 비올라 발매]
영국 작곡가들의 비올라 협주곡을 담은 앨범 'British Viola'를 발표하며 음악적 영토를 확장합니다. 비올라가 특히 사랑받았던 영국의 서정적인 레퍼토리들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이 앨범은 그가 가진 고전적 기교와 현대적 감각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월튼과 보언 등 비올라 음악의 정수라 불리는 곡들을 녹음하여 전문 연주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앤드류 데이비스 경이 지휘하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비올라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탐구해 온 그의 집요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음반입니다.
2016
[디토 페스티벌 10주년]
앙상블 디토의 결성 1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념 공연과 페스티벌을 개최합니다. 척박했던 한국 클래식 시장에서 실내악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린 10년의 기록을 팬들과 함께 축하했습니다. 리더로서 10년 동안 팀을 유지해 온 그의 헌신과 열정에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매진시키며 여전한 티켓 파워와 인기를 과시했습니다. 수많은 젊은 연주자가 거쳐 간 디토는 한국 클래식계의 가장 중요한 인재 양성소가 되었습니다. 오닐은 감격적인 소감을 통해 앞으로도 관객과 소통하는 음악을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17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도전]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전곡을 비올라로 연주하는 파격적인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성악가의 목소리 대신 비올라의 선율로 삶의 고독과 방황을 표현하며 관객들을 압도했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가장 깊게 파고드는 비올라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무대였습니다.
8번째 솔로 앨범으로 발매된 이 연주는 원곡의 슬픔을 배가시켰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독일 정통 가곡의 정서를 비올라의 음색으로 완벽히 치환해 내는 놀라운 곡 해석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이 연주를 준비하기 위해 수개월간 슈베르트의 삶과 가사를 연구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2018
[마라톤 풀코스 완주]
음악가로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시작한 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하며 강인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매일 꾸준한 연습과 자기 관리를 통해 얻은 결과는 그의 연주 철학인 '지속적인 헌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얻은 에너지는 무대 위에서 더욱 폭발적인 연주로 이어집니다.
단순한 취미를 넘어 매년 여러 도시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체력을 단련하고 있습니다. 마라톤은 고독하게 자신과 싸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비올라 독주와 닮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팬들은 그의 건강한 삶의 태도를 보며 더욱 깊은 지지와 사랑을 보내고 있습니다.
2019
[앙상블 디토 고별 투어]
12년 동안 이끌어온 앙상블 디토의 활동 종료를 발표하고 마지막 전국 투어를 진행합니다. 한국 클래식계의 지형을 바꾼 전설적인 팀의 마지막 무대에 수많은 팬이 아쉬움과 축하를 동시에 보냈습니다. 리더로서 박수칠 때 떠나는 용기 있는 마무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디토가 이룬 성과가 후배 연주자들에게 더 넓은 길을 열어주었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마지막 공연에서 그는 눈물을 보이며 12년간의 여정을 함께한 관객들에게 진심 어린 작별을 고했습니다. 디토의 해체는 하나의 끝이 아닌 각 멤버가 독립적인 거장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2020
[타카치 콰르텟 정식 합류]
세계 최고의 실내악단 중 하나인 타카치 콰르텟의 새로운 비올리스트로 전격 합류합니다. 45년 역사를 가진 전설적인 콰르텟의 멤버가 된 것은 한국계 연주자로서는 최초의 대단한 업적입니다. 이 합류를 통해 그는 세계 실내악 무대의 최정상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콰르텟의 창립 멤버인 제랄딘 월터의 후임으로 발탁되어 정교한 오디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의 합류 이후 타카치 콰르텟은 더욱 역동적이고 풍성한 소리를 얻었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타카치의 연간 80회 이상의 공연 일정을 소화하며 전문 실내악자로서 정점에 섰습니다.
2021
[한국 데뷔 20주년 기념]
한국 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아 특별 헌정 공연과 앨범 발매를 진행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자신을 아껴준 한국 관객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가장 사랑받았던 곡들을 연주했습니다. 그는 이 공연을 통해 한국이 자신의 진정한 음악적 고향임을 다시 한번 선포했습니다.
데뷔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여정을 담은 자서전적 인터뷰와 영상들이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후배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특별 앙상블 무대를 통해 클래식의 세대 교체를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팬들은 그의 20년을 추억하며 '용재 오닐은 우리 시대의 위로'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래미 어워즈 수상 쾌거]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최우수 클래식 기악 독주 부문을 수상하며 세계 정점에 오릅니다. 작곡가 크리스토퍼 라우스의 비올라 협주곡 연주로 비올리스트로서는 매우 드문 단독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는 그의 20년 음악 인생이 맺은 가장 화려하고 고결한 결실입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스승 강효 교수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습니다. 한국인 연주자가 클래식 기악 독주 부문에서 그래미를 받은 것은 역사상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 수상으로 비올라라는 악기의 독주적 가치가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증명되었습니다.
2022
[서울시 명예시민 위촉]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 명예시민이 됩니다. 한국과의 깊은 혈연적, 예술적 유대감이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으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멘토링 활동 등 그동안의 선행이 시민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는 '서울은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 도시'라며 감격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단순한 외국인 연주자가 아닌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청와대 춘추관 공연]
개방된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특별 콘서트에 출연하여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합니다. 역사적인 공간에서 열린 클래식 무대의 주인공으로서 국민들과 가깝게 소통했습니다. 그의 연주는 국가적인 경축의 자리에서도 최고의 품격을 더해주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편안하고 따뜻한 곡들로 무대를 꾸몄습니다. 공연 후 그는 한국의 역사적 장소에서 연주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 행사는 클래식 음악이 권위의 상징이 아닌 나눔의 예술임을 보여준 좋은 사례가 되었습니다.
2023
[타카치 콰르텟 내한 공연]
자신이 속한 세계 최정상의 타카치 콰르텟과 함께 내한하여 실내악의 정수를 선보입니다. 동료 멤버들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베토벤과 하이든 등 고전 명곡들을 심도 있게 해석했습니다. 한국 관객들은 세계 최고의 팀원으로서 활약하는 그의 당당한 모습에 열광했습니다.
전국 투어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타카치 콰르텟의 저력과 오닐의 티켓 파워를 동시에 입증했습니다. 공연 후 평단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수준 높은 콰르텟 연주였다는 만장일치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는 멤버들과 함께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도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2024
[유니버설 뮤직 전속 계약]
세계 최대 음반사인 유니버설 뮤직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준비 중입니다. 비올라의 현대적 가치를 재발견하는 음반 기획과 디지털 음원 발매를 통해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영향력 있는 비올리스트 중 한 명입니다.
최신 녹음 기술을 도입한 공간 음향 음원들을 선보이며 혁신적인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클래식에 낯선 젊은 세개에 비올라의 매력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의 꾸준한 음반 활동은 비올라 레퍼토리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예술과 인권 옹호 활동]
전 세계를 무대로 연주 활동을 이어가며 음악을 통한 인권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높입니다. 난민 지원과 소외 계층을 위한 자선 공연에 참여하며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행보는 실천하는 예술가의 모범 사례로 꼽힙니다.
유엔 관련 행사 등 국제 무대에서 음악이 가진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자신의 배경을 바탕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연주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따뜻한 태도에 깊은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
2025
[미래를 향한 선율과 초연]
새로운 현대 비올라 협주곡들을 위촉하고 세계 초연하며 악기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50세를 앞둔 나이에도 연주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의 20년을 비올라의 진정한 황금기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유수의 작곡가들이 그를 위해 쓴 비올라 독주곡들이 세계 무대 공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완성을 넘어 영혼을 울리는 소리를 찾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용재 오닐의 여정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 시대의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