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버턴
연표
1925
[배우의 탄생: 웨일스 폰트리디펜에서 태어나다]
웨일스의 폰트리디펜에서 탄광 노동자 아들로 태어난 리처드 버턴은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재능을 보였습니다.
1925년 11월 10일, 리처드 버턴은 웨일스 니스포탤벗 폰트리디펜의 탄광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나이에 학교를 중퇴해야 할 처지에 놓였으나, 교사 필립 버턴의 도움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습니다.
1943
리처드 버턴은 1943년 리버풀 무대에 데뷔하며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연극배우로 활약하며 연기력을 다졌습니다.
1949
[영화 데뷔 및 결혼]
영화계에 데뷔하고 연극 'The Lady's Not For Burning'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첫 부인 시빌 윌리엄스와 결혼했습니다.
1949년 리처드 버턴은 영화에 데뷔했으며, 같은 해 크리스토퍼 플라이의 연극 'The Lady's Not For Burning'에서 펼친 연기를 인정받아 평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함께 연기한 배우 시빌 윌리엄스와 결혼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1952
[할리우드 진출 및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영화 '수수께끼의 가인 레이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1952년 리처드 버턴은 할리우드에 초청을 받아, 영화 '수수께끼의 가인 레이첼'에 올리비아 데 하빌랜드와 함께 출연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되며 할리우드에서 그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1961
[브로드웨이 '카멜롯'으로 토니상 수상]
브로드웨이 뮤지컬 '카멜롯'에서 열연을 펼쳐 토니상 뮤지컬 부문 최우수 배우상을 수상하며 무대 연기자로서도 최고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1958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타임 리멤버드'로 토니상 후보에 지명되며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던 리처드 버턴은 1961년 뮤지컬 '카멜롯'에 출연하여 토니상 뮤지컬 부문 최우수 배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영미를 넘나드는 최고의 배우임을 입증했습니다.
1963
[엘리자베스 테일러와의 세기적인 로맨스 시작]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 중 공동 주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사랑에 빠져 세간의 큰 스캔들을 일으켰고, 결국 첫 부인 시빌 윌리엄스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1963년, 리처드 버턴은 영화 '클레오파트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역을 맡아 클레오파트라 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세계적인 스캔들을 일으켰고, 버턴은 결국 첫 부인 시빌 윌리엄스와 이혼했습니다.
1964
[세기의 결혼: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부부의 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정식으로 결혼하며 당대 최고의 '세기의 커플'로 불렸고, 여러 영화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1964년, 리처드 버턴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결혼하며 당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세기의 커플'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후 '예기치 못한 사건', '샌드 파이퍼',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여러 작품에서 부부로 출연하며 환상적인 호흡과 더불어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1970
[대영 제국 훈장 수훈]
영국 국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을 수훈하며 영국 영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리처드 버턴은 1970년 6월 5일, 영국 국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을 수훈하며 영국 영화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74
[테일러와의 이혼과 재결합, 그리고 다시 이혼]
알코올 의존증 문제 등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이혼했으나, 이듬해 재혼하는 등 파란만장한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결국 1976년에 다시 이혼하며 세기의 로맨스는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 등으로 관계가 악화되면서 리처드 버턴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74년에 이혼했습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975년 10월 10일 재혼했지만, 이듬해인 1976년 다시 이혼하며 세기의 커플은 완전히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마지막 공연은 1983년 브로드웨이 무대였습니다.
1984
[세기의 배우, 리처드 버턴 별세]
스위스 제네바 교외의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망은 전 세계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1984년 9월 5일, 리처드 버턴은 스위스 제네바 교외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사망했습니다. 향년 58세. 그의 갑작스러운 별세는 전 세계 영화계와 팬들에게 깊은 슬픔을 안겼습니다. 사망 후 테일러의 전기에서 로런스 올리비에와의 동성애 관계가 언급되었으나, 그의 유족은 이를 부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