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암 갤러거
연표
1972
[리암 갤러거 탄생]
영국 맨체스터 버니지에서 아일랜드계 부모 페기 갤러거와 토마스 갤러거의 셋째 아들인 윌리엄 존 폴 갤러거로 태어났습니다.
윌리엄 존 폴 갤러거는 1972년 9월 21일 맨체스터 버니지에서 아일랜드계 부모 페기 갤러거와 토마스 갤러거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했습니다.
1982
리암 갤러거가 10살이던 해에 어머니 페기 갤러거는 세 아들을 데리고 폭력을 휘두르던 토마스 갤러거를 떠났습니다. 그는 십대 동안 때때로 아버지와의 만남을 가졌지만 아직까지도 그들의 관계는 풀리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1987
갤러거 형제들은 모두 문제아들이었습니다. 리암은 로컬샵에서 자주 자전거를 훔치곤 했고, 15살 때 싸움으로 인한 퇴학을 당했습니다.
1991
[밴드 활동 시작]
십대 후반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학교 친구 폴 '귁시' 맥기건의 요청으로 밴드 '레인'의 보컬로 합류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노엘 갤러거는 리암이 십대 후반일적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리암은 그의 가수로써의 재능에 자신이 있었고 스톤 로지스, 더 후, 킹크스, 더 잼, 티렉스, 비틀즈와 같은 노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는 그의 기나긴 집착인 존 레논의 흉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학교 친구 폴 '귁시' 맥기건이 그의 밴드 레인에 보컬로 들어와달라 청했을 때 리암은 승낙합니다.
1992
[오아시스 결성 및 노엘 합류]
동생의 밴드 공연을 본 노엘 갤러거는 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리암의 권유로 자신이 곡을 쓴다는 조건으로 밴드에 합류했습니다. 이 무렵 밴드 이름은 '오아시스'로 바뀌었습니다.
인스파이럴 카페츠의 로디로 일하며 아메리카 투어에서 막 돌아온 노엘은 1992년 동생이 있는 밴드의 보기 드문 공연을 보게됩니다. 노엘은 밴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리암이 그에게 가입을 권유했고 노엘은 오직 자신만이 밴드의 곡을 쓴다는 조건으로 승낙합니다. 후에 노엘은 말합니다. 만약 그 시절의 내 노래들이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본헤드와 리암이 작곡한 것들을 들어봐야 한다. 이 무렵 리암은 밴드 이름을 오아시스로 바꿉니다.
1994
[오아시스 데뷔 및 미국 투어 불화]
오아시스는 레코드 계약 후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를 발매하며 빠르게 성공했으나, 첫 미국 투어 중 리암이 가사를 바꾸어 부르고 노엘과 싸워 투어가 중단되는 등 멤버 간의 불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노엘의 이끔하에 오아시스는 레코드 계약권을 따내고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데뷔앨범이 된 《Definitely Maybe》를 녹음했습니다. 언론은 리암의 보컬이 앨범에 큰 기여를 했고 그의 존재가 오아시스의 라이브를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 또한 타블로이드의 이목을 끌어, 마약과 폭력적인 행동, 그리고 난잡한 성생활등에 대한 기사를 달고 다녔습니다. 1994년의 첫 번째 미국 투어중 리암은 미국인과 노엘 둘을 동시에 골려주기 위해 노래의 가사를 조금 바꾸어 불렀습니다. 이 공연은 날아다니는 의자가 오가는 싸움으로 번졌고 노엘은 투어를 그만둡니다.
1995
[메가 히트 앨범 발매와 블러와의 라이벌 구도]
두 번째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가 영국 역사상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되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시기, 오아시스는 언론의 부채질로 브릿팝 밴드 블러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오아시스의 두 번째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을 위한 레코딩 세션중 리암은 로컬 술집에 있는 모두를 스튜디오로 초대해 노엘을 화나게 만들었고, 갤러거 형제는 크리켓 배트까지 사용해가며 폭력적인 싸움을 벌였습니다. 1995년에는 실력 부족을 이유로 드러머 토니 맥캐롤이 오아시스를 떠나게 됩니다.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더욱 성공적이었고, 이것은 곧 영국 역사 중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오아시스는 언론의 부채질로 브릿팝 밴드 블러와의 논란에 휩싸입니다. 브릿팝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다른 스타일을 가진 이 두 밴드는 자연스럽게 라이벌이 되었습니다.(오아시스는 북부 노동자계층이었고, 블러는 서부 중산층이었습니다.) 1995년 8월 14일, 블러와 오아시스는 같은 날 새 싱글을 발표합니다. 블러의 《Country House》와 《Morning Glory》의 두 번째 싱글 《Roll with it》은 각각 일주일에 27,4000장과 21,6000장으로 블러의 싱글이 오아시스의 판매량을 앞서갔습니다. 오아시스가 Top of the Pops에서 립싱크 무대를 했을 때, 리암은 노엘의 기타를 연주하는 척 했고, 노엘은 리암의 목소리를 맡아 우스운 광경을 연출했습니다.
1997
[팻시 켄싯과의 결혼]
배우 팻시 켄싯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수많은 사건과 타블로이드 기사로 시작부터 삐걱거렸습니다.
1997년 4월 7일, 리암은 팻시 켄싯과 결혼합니다. 그들의 결혼은 수많은 사건과 타블로이드의 기사들로 시작부터 덜컥거렸습니다.
[3집 앨범 《Be Here Now》 발매]
오아시스의 세 번째 앨범 《Be Here Now》가 발매되었습니다. 노엘은 이 앨범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나 리암은 '최고의 앨범'이라며 옹호했습니다.
1997년 8월 21일, 걱정반 기대반이었던 오아시스의 3번째 앨범 《Be Here Now》가 발매됩니다. 노엘은 이 앨범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나 리암은 이것이 '최고의 앨범'이라며 변호했습니다.
1998
[캐세이퍼시픽 난동 및 팬 폭행]
호주행 여객기 내에서 승무원에게 난동을 부려 캐세이퍼시픽 항공 탑승이 금지되었고, 호주 투어 중 팬 폭행으로 고소당했으나 합의로 해결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여객기 내에서 자신에게만 스콘을 주지 않았다며 승무원에게 난동을 부렸고, 이 사건의 여파로 리암은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탑승이 금지됐습니다. 리암은 이에 대해 '차라리 걷겠다'고 반응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투어 동안, 리암은 자신은 그저 사진을 부탁했다고 주장하는 19살 팬에게 박치기를 해 고소당합니다. 이 사건은 합의로 해결되어 풀려났습니다. 리암은 이 사건은 실제 일어난 것이 맞지만 팬이 먼저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불륜으로 인한 사생아 출산]
팻시 켄싯과 결혼한 지 일주일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불륜 상대 리사 무리쉬가 리암의 딸을 낳았습니다.
1998년 1월, 그와 켄싯이 결혼한 지 일주일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불륜상대 리사 무리쉬가 리암의 딸을 낳습니다.
1999
1999년 9월 팻시 켄짓은 레논 프란시스라는 리암 갤러거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2000
[이혼과 4집 앨범 발표]
팻시 켄싯과 이혼했으며, 기존 멤버들이 떠난 오아시스 앨범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를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리암이 쓴 첫 곡인 〈Little James〉가 수록되었으나 혹평을 받았습니다.
리암과 팻시는 1년 후에 이혼했습니다. 오아시스는 2000년에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라는 앨범으로 돌아옵니다. 기존 설립 멤버였던 폴 '본헤드' 아더스와 '귁시' 맥귀건은 녹음작업 동안 떠나버리고, The Rain의 멤버로써는 유일하게 리암 갤러거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 앨범에서 오아시스 최초로 노엘이 아니라 리암이 팻시 켄짓의 아들인 제임스 커를 위해 쓴 아이같은 멜로디의 〈Little James〉 라는 곡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이 곡이 실린 이 앨범은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았습니다.
[바르셀로나 투어 중 노엘 갤러거와의 불화]
바르셀로나 투어 중 리암이 노엘의 부인에 대한 경멸적인 발언으로 심한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노엘이 오아시스의 해외 투어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00년 5월 바르셀로나 투어 중, 오아시스는 드러머인 앨런 화이트의 팔이 움직이지 않아서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으며, 대신 밴드는 그날 밤을 술을 마시며 보냈습니다. 그 날 밤, 리암은 그 당시 노엘의 부인이었던 멕 매튜스에 관해 경멸스런 언급(노엘의 딸이 과연 친자식인지 명백히 의심하는 발언)을 하여 결국 싸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사건 이후, 노엘이 오아시스의 해외 투어를 그만 두겠다고 결심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가 발표되었고,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은(노엘의 대타인 기타리스트 맷 데이튼과 함께) 남은 공연들을 계속했습니다.
2002
[밴드 멤버 교통사고 (리암 제외)]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노엘 갤러거, 앤디 벨, 제이 달링턴이 택시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리암은 그 자리에 없었으며, 이 사고로 인해 보스턴과 뉴욕 공연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2002년 8월 7일, 인디애나 주의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노엘 갤러거, 앤디 벨 그리고 키보디스트 제이 달링턴이 택시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인해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밴드의 이 세 멤버는 충격, 타박상, 찰과상을 위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노엘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얼굴의 타박상과 안전벨트로 인한 찰과상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달링턴은 손에 입은 찰과상으로 인해 붕대를 감았습니다. 리암은 그 사고 당시 그의 밴드 동료들과 있지 않았으며, 그의 친구들과 나가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 직후의 보스턴과 뉴욕 공연일정은 취소되었으며 재공연 일정을 잡지 않았습니다.
[뮌헨 술집 폭행 사건]
뮌헨의 술집에서 싸움에 휘말려 이빨 몇 개가 부러지고 얼굴에 상처를 입었으며, 앨런 화이트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벌금 없이 석방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뮌헨과 뒤셀도르프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그 해 12월 1일, 리암은 뮌헨의 술집에서 일어난 싸움으로 인해 그의 이빨 몇 개가 부러졌고 얼굴에 상처들을 입었습니다. 그와 앨런 화이트는 체포되었으나 벌금 없이 석방되었습니다. 오아시스는 리암의 부상 때문에 뮌헨과 뒤셀도르프의 공연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4
[양육비 및 피트 도허티 비난]
아들 레논 프란시스와 딸 몰리를 위해 2000파운드의 양육비를 내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리사 무리쉬의 또다른 아이의 아버지인 피트 도허티의 양육 자질을 의심하며 비난했습니다.
2004년, 리암은 그가 그의 아들인 레논 프란시스와 딸인 몰리를 위해 2000파운드의 양육비를 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더욱이, 그는 리사 무리쉬의 또다른 아이의 아버지(前리버틴즈, 현재 베이비솀블즈의 프론트맨인 피트 도허티)를 그가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는 자질이 있을까 의심스럽다고 비난하였습니다. 피트 도허티와 리암 사이의 관계는 갈수록 긴장으로 인해 팽팽해졌는데, 그 이유는 도허티의 심각한 헤로인 중독과 그가 약물 복용 상태에서 무리쉬를 방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2005
[6집 앨범에 자작곡 수록]
오아시스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인 《Don't Believe the Truth》에 리암이 작곡한 〈Love Like a Bomb〉,〈The Meaning of Soul〉,〈Guess God Thinks I'm Able〉 세 곡이 수록되었습니다.
2005년 오아시스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인 《Don't Believe the Truth》를 보면, 리암이 작곡한 (리듬 기타리스트인 겜 아처와 공동 작곡한)〈Love Like a Bomb〉,〈The Meaning of Soul〉그리고〈Guess God Thinks I'm Able〉, 이렇게 세 곡이 수록되어있습니다.
2008
[니콜 애플턴과의 재혼]
첫 번째 부인 팻시 켄싯과 결혼했던 웨스트민스터 동사무소에서 니콜 애플턴과 재혼했습니다. 노엘 갤러거 등 밴드 동료들은 결혼식 때까지 통보받지 못했습니다.
갤러거와 니콜 애플턴은 2008년 2월 14일 그가 첫 번째 부인이었던 배우 팻시 켄짓과 결혼하였던 장소인 웨스트민스터 동사무소에서 결혼하였습니다. 하객은 애플턴의 여동생인 나탈리와 그녀의 남편인 프로디지의 리암 하울렛이었습니다. 노엘 갤러거와 밴드 동료인 겜 아처와 앤디 벨은 결혼식이 치러질 때까지 통보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2009
2009년 8월, 노엘 갤러거의 오아시스 탈퇴 이후에 리암은 계속 이전 오아시스 멤버들인 겜 아처, 앤디 벨, 드러머인 크리스 샤록과 키보드 연주가인 제이 달링턴과 함께 계속 음악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프리티 그린이라는 의류 브랜드의 설립자입니다.
[비디 아이 결성 및 활동 발표]
오아시스 해체 후, 리암은 기존 오아시스 멤버들과 함께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고 새 곡을 쓰고 있으며, '오아시스는 끝났어. 이건 새로운 거야.'라며 '비디 아이'의 활동을 발표했습니다.
2009년 11월, 리암은 그와 前 오아시스 밴드 멤버들이 새로운 프로젝트의 일부분으로 새 곡들을 쓰고 있으며 이르면 두어달 뒤에 공연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아시스는 끝났어. 이건 새로운 거야.'라고 말하였습니다. 2009년 11월 19일, 리암은 그가 겜 아처, 앤디 벨 그리고 크리스 샤록과 크리스마스 시즌 즈음에 녹음을 시작할 것이며, 2010년 7월쯤 앨범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MTV에서 '우리는 우리가 조금 해 놓았던 노래들의 데모 작업을 하고 있어. 조용히 그냥 그거나 하면서, 그것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않고. 크리스마스 이후에 우린 아마 녹음실로 가서 그 곡들을 녹음할 거야. 그리고 잘 되면 7월 안에 앨범이 나올거야.'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린 지금 녹음을 좀 다른 방식으로 할 거야. 난 새로운 밴드, 새로운 노래들과 다시 익숙해지게 노력할거야. 그리고 난 이 곡들이 자신있어.' '난 그 곡들이 오아시스 때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백만퍼센트 자신한다구.'라고 덧붙였습니다.
2010
[비디 아이 첫 싱글 발표]
비디 아이는 첫 싱글 'Bring the Light'를 공개하고 음원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밴드의 작업은 착실히 이루어져서, 2009년 말에는 작곡과 녹음 작업을 시작했으며, 2010년 11월 15일 자로 자신들의 싱글 'Bring the Light'를 공개하며 이것의 음원을 무료로 다운로드하게 해주었습니다.
2011
[비디 아이 첫 정규 앨범 발매]
비디 아이의 첫 앨범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이 발매되었고, 평단으로부터 작곡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첫 앨범 은 2011년 2월 28일을 기점으로 발매했습니다. 앨범에 관련한 평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애초의 그들에게 제기되었던 문제인 '작곡능력'에 대해서 이들은 자신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실지로도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들을 다수 받았습니다.
[비디 아이 첫 내한 공연]
일본 지진 여파로 취소되었던 내한 공연이 AX-KOREA에서 비디 아이의 첫 번째 내한 공연으로 열렸습니다.
현재 비디 아이는 3월을 기점으로 투어에 나섰으며, 5월 경에 내한 공연을 가질 것임을 밝혔습니다(정확한 날짜는 5월 15일). 하지만 일본지진의 여파로 내한공연이 취소되고 AX-KOREA에서 9월 3일 내한 공연을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9월 3일 AX-KOREA에서 비디 아이의 첫 번째 내한 공연이 열렸습니다.
2012
[런던 올림픽 폐막식 공연]
런던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비디 아이의 보컬로 오아시스의 히트곡인 〈Wonderwall〉을 불렀습니다.
2012년 하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비디 아이의 보컬로 오아시스의 〈Wonderwall〉을 불렀습니다.
2017
솔로 음반 목록 중 《As You Were》(2017)가 발매되었습니다.
2019
[솔로 앨범 《Why Me? Why Not.》 발매]
두 번째 솔로 앨범인 《Why Me? Why Not.》을 발매하며 솔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솔로 음반 목록 중 《Why Me? Why Not.》(2019)이 발매되었습니다.
2020
[솔로 앨범 《Acoustic Sessions》 발매]
어쿠스틱 세션으로 구성된 솔로 앨범 《Acoustic Sessions》를 발매했습니다.
솔로 음반 목록 중 《Acoustic Sessions》(2020)이 발매되었습니다.
2022
[솔로 앨범 《C'mon You Know》 발매]
솔로 앨범 《C'mon You Know》를 발매하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솔로 음반 목록 중 《C'mon You Know》(2022)가 발매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