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드 라 팔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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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드 라 팔레즈
패션 뮤즈, 액세서리 디자이너, 주얼리 디자이너, 패션 모델 + 카테고리
룰루 드 라 팔레즈(Loulou de la Falaise)는 20세기 패션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영국 출신의 패션 뮤즈이자 주얼리, 액세서리 디자이너입니다. 귀족 출신 아버지와 유명 패션 모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위탁 가정 생활 등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으나, 이를 통해 자신만의 자유롭고 반항적인 보헤미안 스타일을 확립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 뉴욕에서 보그 모델과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런던의 잡지 에디터 시절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을 만나 그의 삶과 작업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영원한 뮤즈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2년부터 이브 생 로랑 하우스에 정식 합류해 30여 년간 화려하고 대담한 주얼리와 액세서리를 디자인하며 브랜드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브 생 로랑 은퇴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비즈니스를 론칭하여 뛰어난 패션 철학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파리 좌안(Rive Gauche)의 진정한 하이 보헤미안'으로 불리던 그녀는 2011년 폐암으로 타계하기 전까지 자신만의 독보적인 스타일과 헌신적인 작업 정신으로 패션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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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7

[룰루 드 라 팔레즈 출생]

영국에서 프랑스 출신의 작가 겸 출판업자인 알랭 백작과 앵글로-아이리시 패션 모델 막심 비를리 사이의 장녀이자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세례명은 루이즈 바바 루시아 앙리에트 르 바이 드 라 팔레즈입니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의 향수 '쇼킹(Shocking)'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태어날 때부터 패션계와 깊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1948

[남동생 알렉시스 출생]

유일한 형제인 남동생 알렉시스 리처드 디온 오스월드 르 바이 드 라 팔레즈가 태어났습니다.
알렉시스는 훗날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게 되며, 앤디 워홀의 영화 'Tub Girls'에도 출연했습니다. 또한 훗날 룰루가 파리에 연 부티크 중 한 곳의 인테리어를 직접 디자인하며 누나의 사업을 돕기도 했습니다.

1950

[부모의 이혼과 위탁 가정 생활]

어머니의 외도와 프랑스 법원의 부적격 어머니 판결로 인해 부모가 이혼하면서 큰 삶의 변화를 겪습니다.
부모의 이혼 이후 룰루와 남동생은 7살이 될 때까지 여러 위탁 가정(foster families)에 맡겨져 자라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겪은 이 같은 가정환경의 불안정함은 그녀의 독립적이고 반항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1954

[영국의 기숙학교 진학]

위탁 가정을 떠나 영국의 기숙학교에 등록하여 본격적인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학교 방학 기간에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위탁 가정을 번갈아 오가며 지내야 했습니다. 스위스의 기숙학교와 뉴욕의 프랑스 고등학교(Lycée Français de New York)에도 다녔으나, 특유의 반항적인 성향으로 인해 두 곳 모두에서 퇴학당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1966

[데스먼드 피츠제럴드와의 첫 번째 결혼]

아일랜드 귀족인 제29대 글린 기사(Knight of Glin) 데스먼드 피츠제럴드와 첫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 결혼으로 그녀는 '마담 피츠제럴드(Madam FitzGerald)'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967

[첫 남편과의 별거]

결혼한 지 불과 1년 만에 남편 데스먼드 피츠제럴드와 성격 차이 등으로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했던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일찍이 독립을 선택한 시기입니다. 이 별거 이후 그녀는 패션계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뉴욕 등지로 떠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

1968

[뉴욕 이주 및 보그 모델 활동]

1960년대 후반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여 미국 '보그(Vogue)' 잡지에서 잠시 패션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보헤미안적이면서도 시크한 그녀의 독보적인 스타일이 패션 업계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이를 계기로 뉴욕 패션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됩니다.

1969

[홀스턴을 위한 텍스타일 디자인]

단순한 모델 활동을 넘어, 미국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 홀스턴(Halston)을 위해 프린트 패브릭을 직접 디자인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 경험은 그녀가 모델이라는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디자인과 창작의 영역으로 커리어를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대단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잡지 '퀸' 에디터 활동 및 이브 생 로랑과의 만남]

1960년대 말 영국의 사교계 잡지인 '퀸(Queen)'에서 주니어 에디터로 일하던 중 패션 거장 이브 생 로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 만남은 그녀의 인생과 현대 패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운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엉뚱하면서도 매혹적인 보헤미안 감성을 지닌 그녀는 곧 이브 생 로랑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영감이자 뮤즈로 떠올랐습니다.

1970

[데스먼드 피츠제럴드와의 이혼]

오랫동안 별거 중이던 첫 남편 데스먼드 피츠제럴드와 법적으로 이혼 절차를 완전히 마무리했습니다.
1966년에 시작된 짧은 결혼 생활에 공식적인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자유로운 신분이 된 그녀는 이후 파리 패션계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커리어와 라이프스타일을 더욱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갔습니다.

[조카 다니엘 드 라 팔레즈 출생]

남동생 알렉시스 드 라 팔레즈의 아들인 다니엘 르 바이 드 라 팔레즈가 태어났습니다.
다니엘은 훗날 전문 셰프이자 음식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대 쿠드레 후작(Marquis de La Coudraye)의 고귀한 작위를 물려받게 되는 인물입니다.

1972

[파리 이주 및 이브 생 로랑 오트쿠튀르 합류]

파리로 거처를 완전히 옮긴 뒤, 이브 생 로랑의 오트쿠튀르 회사에 정식 디자이너로 합류했습니다.
회사에서의 공식적인 역할은 그녀의 괴짜 같으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을 주얼리와 액세서리에 접목하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한 색상의 거대한 스톤, 에나멜 세공, 록 크리스탈 등을 활용해 하우스의 전성기를 이끄는 핵심 디자인들을 쏟아냈습니다.

[아버지의 후작 작위 승계]

영화감독이자 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의 전 남편이었던 삼촌 앙리 드 라 팔레즈가 자식 없이 사망함에 따라 아버지가 작위를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삼촌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룰루의 아버지인 알랭이 드 라 쿠드레 후작(Marquis de La Coudraye)의 지위를 계승했습니다. 이를 통해 라 팔레즈 가문의 귀족적 명맥이 직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1973

[조카 루시 드 라 팔레즈 출생]

남동생 알렉시스의 딸인 루시 르 바이 드 라 팔레즈가 출생했습니다.
조카 루시는 고모인 룰루의 피를 물려받아 훗날 훌륭한 패션 모델로 활약하게 됩니다. 또한 록 밴드 롤링스톤스의 멤버 키스 리처즈의 아들인 말론 리처즈와 결혼하며 화제를 낳기도 했습니다.

1977

[부친상 및 남동생의 작위 승계]

작가이자 번역가, 출판업자로 활동했던 아버지 알랭 드 라 팔레즈 백작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습니다.
아버지가 별세함에 따라 남동생인 알렉시스가 드 라 쿠드레 후작의 작위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알렉시스는 2004년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작위를 유지했습니다.

[타데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와의 두 번째 결혼]

유명 화가 발튀스의 차남이자 프랑스의 작가인 타데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와 프랑스 파리에서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식 당시 룰루는 이브 생 로랑 리브 고슈(Yves Saint Laurent Rive Gauche)에서 제작한 하렘 앤 터번(harem-and-turban) 앙상블을 입어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다운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안나(Anna)라는 딸이 태어났습니다.

2002

[이브 생 로랑 은퇴와 독립 브랜드 론칭]

오랜 지음이자 동료였던 이브 생 로랑이 은퇴하자, 30년이 넘는 협업을 마무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비즈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자신만의 기성복(ready-to-wear), 커스텀 주얼리, 액세서리 브랜드를 론칭하여 파리에 두 곳의 매장을 열고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최고급 영국산 트위드 블레이저와 리넨 세일러 팬츠 등 그녀의 완벽한 취향이 담긴 컬렉션으로 평단의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2004

[남동생 알렉시스의 죽음]

가구 디자이너이자 파리 매장의 인테리어를 직접 담당하기도 했던 하나뿐인 형제 알렉시스 르 바이 드 라 팔레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생의 죽음 이후 그가 보유하고 있던 드 라 쿠드레 후작의 작위는 룰루의 조카이자 알렉시스의 아들인 다니엘 드 라 팔레즈에게로 무사히 승계되었습니다.

2009

[어머니 막심 비를리의 타계]

뛰어난 패션 모델이자 무즈였던 어머니 막심 비를리가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며 큰 슬픔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머니 막심 비를리는 과거 유명 사진작가 세실 비튼으로부터 흉측한 옷을 입고도 우아할 수 있는 유일한 영국 여성이라는 극찬을 들었던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룰루의 탁월한 패션 감각의 뿌리가 되어준 어머니의 죽음은 큰 상실이었습니다.

2011

[폐암 진단]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병원을 찾은 끝에 치명적인 폐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패션 전문 매체 WWD의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의 투병 사실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절친한 지인들에게 건강 문제를 철저히 비밀로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남편 데스먼드 피츠제럴드의 사망]

룰루의 첫 번째 남편이었던 제29대 글린 기사 데스먼드 피츠제럴드가 사망했습니다.
젊은 시절 짧은 결혼 생활을 함께 했던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나며 과거의 인연이 조명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 룰루 본인 역시 극심한 병마와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프랑스 지조르에서 타계]

폐암으로 인한 오랜 투병 끝에 향년 64세의 나이로 프랑스 지조르(Gisors)에 위치한 병원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브 생 로랑의 영원한 뮤즈이자 '파리 좌안(Rive Gauche)의 진정한 하이 보헤미안'으로 불렸던 전설적인 삶이 마감되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전 세계 패션계는 위대한 스타일 아이콘의 상실에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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