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폰시
루이스 폰시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감미로운 발라드 가수로 시작해 전 세계를 뒤흔든 '레게톤-팝'의 제왕으로 거듭난 인물입니다. 1998년 데뷔 이후 라틴 음악계의 꾸준한 스타였던 그는 2017년 'Despacito'를 통해 유튜브 역사상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공연과 다수의 라틴 그래미 수상 등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으면서도, 개인적인 시련을 음악적 영감으로 승화시키며 진정성 있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며 라틴 팝의 위대한 대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연표
1978
[산후안에서의 탄생]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후안에서 루이스 알폰소 로드리게스 로페스세페로라는 본명으로 태어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가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며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부모님인 알폰소 로드리게스와 델리아 로페스세페로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푸에르토리코 어린이 합창단(Coro de Niños de San Juan)의 단원으로 활동하며 기초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 가졌던 합창단 경험은 훗날 그가 가진 완벽한 화성 감각과 보컬 테크닉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1988
[플로리다 이주와 적응]
열 살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이주하며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낯선 환경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으며 현지 학교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갑니다. 이 이주는 그가 라틴 음악과 미국 팝 음악을 동시에 흡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이주 초기에는 영어를 전혀 못 했으나 음악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며 빠르게 언어를 익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The Big Guys'라는 아카펠라 그룹을 결성하여 학교 내외의 다양한 행사에서 공연했습니다. 그룹 멤버 중에는 훗날 유명 아이돌 그룹 NSYNC의 멤버가 되는 조이 패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95
[FSU 음악 장학생 입학]
실력을 인정받아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FSU) 음악학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합니다. 성악을 전공하며 정식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고 전문적인 보컬 기술을 연마합니다. 대학 시절의 치열한 연습은 그를 기본기가 탄탄한 가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학 시절 런던 시티 대학교 합창단과 함께 투어 공연을 다니며 국제적인 무대 경험을 쌓았습니다. 학교 생활 도중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여 유니버설 뮤직 라틴 관계자들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학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프로 데뷔를 위한 곡 작업을 병행하는 성실함을 보였습니다.
1998
[데뷔 앨범 Comenzaré]
첫 번째 정규 앨범인 'Comenzaré'를 발표하며 라틴 음악계에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타이틀곡들이 빌보드 라틴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며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푸에르토리코와 멕시코를 중심으로 거대한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이 앨범은 푸에르토리코에서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며 루이스 폰시라는 이름을 대중에 각인시켰습니다. 'Dime Como', 'Perdoname' 같은 곡들이 히트하며 감미로운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폰시는 이 앨범으로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신인상 후보에 오르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0
[교황 앞에서의 역사적 공연]
바티칸에서 열린 주빌리 행사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앞에서 노래하는 영광을 안습니다. 전 세계로 생중계된 이 공연을 통해 그의 목소리가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경건하고 영예로운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수만 명의 가톨릭 신자들과 교황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정적인 가창력을 선보여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공연 이후 그의 국제적인 인지도는 가파르게 상승하였으며 평화와 사랑의 메신저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 아티스트로서 품격 있는 무대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앨범 Eterno]
두 번째 앨범 'Eterno'를 발표하며 연속 흥행을 이어갑니다. 전작보다 성숙해진 감성과 보컬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앨범은 그가 단순한 유망주를 넘어 명실상부한 스타임을 증명했습니다.
'Imaginame Sin Ti'가 빌보드 핫 라틴 송즈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그의 첫 번째 차트 정상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직접 곡 작업에 참여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과 스페인을 포함한 대규모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쳐 글로벌 스타로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02
[Amor Secreto와 영어 데뷔]
세 번째 앨범 'Amor Secreto'를 발매하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합니다. 같은 해 첫 영어 앨범 'Fight the Feeling'을 발표하며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도합니다. 언어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청중에게 다가가려는 과감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스페인어 앨범은 빌보드 라틴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그에게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안겼습니다. 영어 앨범을 통해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은 세계적인 팝스타들과 협업하거나 투어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영미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세련된 팝 사운드를 선보이며 활동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2003
[Abrazar la vida의 대성공]
네 번째 정규 앨범 'Abrazar la vida'를 발표하며 라틴 팝의 정점에 오릅니다. 수록곡 '¿Quién te dijo?'가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길거리 어디에서나 그의 음악이 들릴 정도의 인기를 누립니다. 이 시기 그는 연기 활동까지 병행하며 엔터테이너로서 다재다능함을 뽐냅니다.
이 앨범은 이전보다 팝적인 요소가 강화되어 젊은 층부터 중장년층까지 폭넓게 사랑받았습니다. 멕시코 드라마 'Corazones al límite'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도 가능성을 확인받았습니다. 그는 연기와 노래를 동시에 소화하며 푸에르토리코를 대표하는 멀티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5
[Paso a Paso와 삶의 시련]
다섯 번째 앨범 'Paso a Paso'를 발표하는데, 이 앨범은 당시 암 투병 중이던 연인 아다마리 로페스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진심 어린 가사와 감절한 보컬로 대중의 마음을 울리며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음악에 투영되어 큰 공감을 얻은 시기입니다.
타이틀곡 'Nada Es Para Siempre'는 그녀의 쾌유를 비는 메시지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곡으로 그는 라틴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르며 음악적 진정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폰시는 바쁜 활동 중에도 아다마리의 치료를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는 모습으로 팬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2006
[아다마리 로페스와의 결혼]
오랜 연인이자 배우인 아다마리 로페스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립니다. 시련을 함께 극복한 두 사람의 결합에 전 라틴 세계의 축복이 쏟아졌습니다. 이 결혼은 당시 라틴 연예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세기의 커플 탄생이었습니다.
결혼식에는 수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참석하여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했습니다. 그는 결혼 생활 중에도 그녀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돌보며 헌신적인 남편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인연은 몇 년 후 성격 차이 등으로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2008
[Palabras del Silencio와 역대급 히트]
전설적인 히트곡 'No me doy por vencido'가 수록된 앨범 'Palabras del Silencio'를 발표합니다. 이 곡은 빌보드 핫 라틴 송즈 차트에서 무려 19주 동안 1위를 차지하며 그해 최고의 라틴 팝으로 선정됩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라틴 팝의 전설로 한 걸음 더 다가갑니다.
이 곡은 희망과 불굴의 의지를 담은 가사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국민 가요가 되었습니다. 앨범은 미국에서 플래티넘 등급을 받았으며 스페인과 남미 주요 국가에서 차트를 휩쓸었습니다. 그는 이 앨범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 수준의 공연을 기획하게 됩니다.
2009
[첫 라틴 그래미 수상]
'Aquí Estoy Yo'라는 곡으로 제10회 라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합니다. 다비드 비스발, 알렉스 신텍, 노엘 슈자리스와 함께 부른 이 곡은 완벽한 보컬 앙상블로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데뷔 이후 꾸준히 노력해온 성과가 최고의 권위로 보상받은 순간입니다.
이 곡은 라틴 음악계의 우정과 화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콜라보레이션 곡으로 남았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함께 노래한 동료들과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 수상은 그가 단순히 인기 있는 가수를 넘어 평론가들에게도 인정받는 아티스트임을 입증했습니다.
[노벨 평화상 콘서트 공연]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시상식 기념 콘서트에서 공연자로 초청받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수상한 해에 라틴 음악 대표로 참여하여 전 세계 지식인과 리더들 앞에서 노래했습니다. 이는 그의 음악이 가진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일입니다.
윌 아이 앰, 도나 서머 등 세계적인 팝스타들과 같은 무대에 서며 라틴 팝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히트곡들을 통해 따뜻하고 웅장한 감동을 선사하여 현장 관계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향후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2010
[아다마리 로페스와의 이혼]
아다마리 로페스와의 4년간의 결혼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며 이혼합니다. 두 사람의 파경 소식은 많은 팬에게 안타까움을 주었으며 한동안 연예계의 중심 이슈가 되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그는 음악에 매진하며 아픔을 극복하려 노력했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여러 추측과 루머가 있었으나 두 사람은 서로의 앞날을 빌어주며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그는 사생활의 변화를 겪으며 한층 더 깊이 있고 진솔한 가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는 새로운 사랑을 찾기 전까지 잠시 동안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내실을 다졌습니다.
2011
[Tierra Firme 발매와 재기]
여섯 번째 앨범 'Tierra Firme'를 발표하며 복귀합니다. 'Gritar'라는 곡이 차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여전한 그의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이 앨범을 통해 그는 한층 더 단단해진 예술적 기반과 성숙해진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앨범 제목인 'Tierra Firme'는 확고한 땅이라는 의미로, 자신의 인생관을 투영한 이름입니다. 그는 앨범 홍보를 위해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 지역을 순회하며 팬들과 다시 긴밀히 소통했습니다. 평단은 그의 보컬이 이전보다 더욱 섬세해졌으며 감정 전달력이 깊어졌다고 호평했습니다.
[첫 딸 미카엘라의 탄생]
스페인 모델 아게다 로페스와의 사이에서 첫 아이인 딸 미카엘라가 태어납니다. 아버지가 된 그는 삶의 큰 환희를 맛보며 육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자녀의 탄생은 그의 음악적 가치관을 더욱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SNS를 통해 딸의 소식을 전하며 팬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딸 미카엘라는 훗날 그의 음악 활동에 영감을 주는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게다 로페스와는 이 시점부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며 예술적 시너지를 내기 시작합니다.
2014
[앨범 8의 발표와 실험]
자신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인 '8'을 발표합니다. 유명 프로듀서 마틴 테레페와 런던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며 이전과는 다른 세련된 사운드를 시도합니다. 이 앨범은 그가 전통적인 라틴 팝에서 글로벌 팝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타이틀곡 'Corazón en la maleta'는 경쾌한 멜로디로 다시 한번 차트를 점령했습니다. 후안 루이스 게이라와의 듀엣곡 'Llegaste Tú'는 딸 미카엘라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음악적으로 정체되지 않고 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아티스트임을 입증했습니다.
[아게다 로페스와의 결혼]
오랜 파트너인 아게다 로페스와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에서 극비리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소수의 가족과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진실한 서약을 나누며 공식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 결혼은 그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어 이후 창작 활동에 큰 원동력이 됩니다.
결혼식은 두 사람의 성향처럼 우아하고 소박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 이후 라틴 연예계의 대표적인 잉꼬부부로 불리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아게다는 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거나 행사장에 동행하며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습니다.
2016
[아들 로코의 탄생]
둘째 아이이자 첫 아들인 로코가 태어나며 두 자녀의 아버지가 됩니다. 공교롭게도 딸 미카엘라와 생일이 같아 가족에게는 더욱 특별한 축복의 날이 되었습니다. 그는 더 큰 책임감을 느끼며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추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아들의 탄생은 그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었으며 곧이어 터질 대형 히트곡의 전조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소 인터뷰에서 자녀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인생 최고의 평온함을 누리며 창의적인 곡 작업에 몰입했습니다.
2017
[Despacito 전 세계를 뒤흔들다]
대디 양키와 함께한 'Despacito'를 발표하며 대중음악 역사를 다시 씁니다. 라틴 팝과 레게톤을 절묘하게 결합한 이 곡은 공개 즉시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그가 발라드 가수를 넘어 글로벌 팝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역사적 변곡점입니다.
이 곡은 9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유튜브 조회수는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십억 뷰를 돌파하며 역사상 가장 많이 본 영상이 되었습니다. 'Despacito'의 성공은 제3세계 음악이 영미권 주류 시장을 완전히 점령한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저스틴 비버 리믹스 버전 발표]
세계적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참여한 'Despacito' 리믹스 버전을 공개합니다. 이 버전은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6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마카레나 이후 21년 만에 스페인어 곡의 정상 등극을 실현했습니다. 루이스 폰시의 위상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정상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저스틴 비버가 스페인어로 가사를 부른 것이 큰 화제가 되어 영미권 팬들의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이 협업은 라틴 아티스트와 글로벌 팝 아티스트 간의 교류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폰시는 이 곡으로 전 세계 라디오와 스트리밍 플랫폼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라틴 그래미 4관왕 석권]
제18회 라틴 그래미 어워드에서 'Despacito'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노래'를 포함한 4개 부문을 휩씁니다. 한 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는 시상식의 가장 화려한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평단과 대중 모두로부터 음악성과 상업적 가치를 동시에 인정받은 순간입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이 곡이 라틴 문화의 힘을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하며 푸에르토리코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후 그래미 어워드 본 시상식에서도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 위상을 확인했습니다. 그는 이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곧바로 데미 로바토와의 협업 등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2018
[기네스 세계 기록 7개 수립]
'Despacito'의 유례없는 성공으로 총 7개의 기네스 세계 기록을 공식 수립합니다. 유튜브 역사상 최다 조회수, 가장 오래 차트 1위를 기록한 곡 등 전설적인 지표들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현대 음악 산업에서 그가 세운 업적이 얼마나 독보적인지를 증명하는 명확한 훈장입니다.
그는 마이애미에서 열린 기네스 인증식에 참여하여 직접 인증서를 전달받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스트리밍 시대의 황제로 불리며 디지털 음악 시장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 기록들은 향후 수년간 깨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수치를 자랑했습니다.
2019
[앨범 Vida 발매]
전 세계가 기다려온 아홉 번째 정규 앨범 'Vida'를 발표합니다. 'Despacito'와 'Échame la Culpa' 등 그동안의 히트곡들이 집대성된 이 앨범은 즉시 차트 1위에 오릅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임을 입증했습니다.
앨범은 미국 시장에서만 수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습니다. 데미 로바토, 오즈나 등 화려한 피처링 군단이 참여하여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평단은 그가 댄스 음악과 자신의 뿌리인 발라드를 조화롭게 담아냈다고 평가했습니다.
2020
[슈퍼볼 프리쇼 공연]
제54회 슈퍼볼 프리쇼 무대에 서며 다시 한번 전 세계 야구 팬... 아니, 미식축구 팬들을 열광시킵니다. 미국 최대의 스포츠 축제에 참여하며 그의 대중적인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라틴 문화의 파급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그는 그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흔들림 없는 가창력으로 현장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이 공연은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에게 라틴 팝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슈퍼볼 무대에 선다는 것은 미국 내 주류 아티스트로서의 완벽한 인정을 의미했습니다.
2021
[La Voz(보이스) 코치 활동]
스페인과 미국 버전의 오디션 프로그램 'La Voz'에 코치로 참여하여 후배 양성에 힘씁니다. 풍부한 경험과 전문적인 조언으로 많은 참가자의 멘토 역할을 수행하며 큰 사랑을 받습니다. 이 활동을 통해 그는 친근하면서도 권위 있는 음악가로서의 대중적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팀원들을 위해 직접 곡을 써주거나 무대 매너를 지도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동료 코치들과의 유쾌한 케미스트리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는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후배 음악가들에게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며 라틴 음악의 미래를 밝히는 데 기여했습니다.
2022
[Ley de Gravedad 발매]
열 번째 정규 앨범 'Ley de Gravedad'를 발표하며 여전한 창작 의욕을 과시합니다. 로맨틱한 발라드와 리드미컬한 팝송이 조화를 이룬 이 앨범은 그의 음악적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 노련함을 보였습니다.
수록곡 'Bésame'과 'Vacaciones'가 틱톡 등 뉴미디어에서 챌린지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중년 아티스트가 가질 수 있는 여유와 품격을 노래에 담았습니다. 전 세계 투어를 다시 시작하며 팬데믹 이후의 새로운 도약을 성공적으로 알렸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특별 공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엔칸토'의 삽입곡 'We Don't Talk About Bruno'의 특별 무대를 선보입니다. 할리우드의 심장부에서 전 세계 영화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산했습니다. 이는 라틴 아티스트로서 그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원곡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보컬 스타일을 가미하여 무대를 장악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라틴 아티스트가 비중 있게 다루어진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공연 이후 영화 음악계에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2024
[Inducción al Paseo de la Fama]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하며 전설적인 아티스트로서의 위상을 공식화합니다.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라틴 음악을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자신의 이름을 별에 새겼습니다. 이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가수로서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인증식에는 가족들과 수많은 팬이 모여 그의 위대한 업적을 축하했습니다. 그는 소감에서 이 별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라틴 음악 전체의 것이라고 말하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할리우드 한복판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앨범 El Viaje와 25주년]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는 앨범 'El Viaje'를 발표합니다. 각 수록곡에 세계 주요 도시의 이름을 붙여 자신의 음악 여정을 돌아보는 독특한 컨셉을 선보입니다. 그는 여전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팬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Roma', 'Pasa la página (Panamá)' 등 도시의 분위기를 담은 곡들이 수록되었습니다.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의 지난 25년을 회고하고 팬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습니다. 현재 그는 전 세계를 도는 대규모 25주년 투어를 통해 여전한 보컬 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