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연표
1945
[가난한 농촌에서 출생]
브라질 페르남부쿠주의 가난한 농촌 마을 카에치스에서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으며,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 4학년의 학력이 배움의 전부였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1945년 10월 27일 브라질 동북부 페르남부쿠주의 궁벽한 농촌 마을 카에치스에서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룰라의 가족은 이탈리아계 및 포르투갈계 혈통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룰라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상파울루로 떠났고, 룰라는 10세에야 학교에 입학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학업을 중단했다.
1968
룰라는 상파울루에서 행상과 구두닦이를 하며 돈을 벌다가 금속 공장에 취직했다. 기술 학교에서 일을 배우며 18세에 금속을 깎아 가공하는 선반 자격증을 취득했으나,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는 산업 재해를 겪었다. 1968년에는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던 여성과 결혼했다.
1969
[개인의 비극이 이끈 노동 운동 투신]
첫 부인과 뱃속의 아기가 간염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은 후, 열악한 작업 환경과 부당한 대우에 맞서 노동 운동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게 되었다.
결혼 이듬해인 1969년, 룰라의 부인은 간염에 걸려 뱃속의 아기와 함께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미리 아기 옷까지 준비하며 출산을 기다리던 룰라에게 이는 큰 상처가 되었다. 부인의 병이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악화된 것이고 적절한 치료만 받았더라면 나을 수 있었다는 생각에, 룰라는 자신을 반스탈린주의자이자 민주사회주의자라고 선언하며 노동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노조 활동가가 되었다.
1974
노동조합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던 중 룰라는 여사무원 마리자 레티시아를 만나게 되었고, 1974년에 그녀와 재혼했다. 그녀는 룰라의 정치 경력 내내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1975
1975년, 룰라는 브라질 금속노조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10만 명 이상의 노조원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랐다. 그는 노동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퇴직금 정산을 시작으로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에 힘썼고, 노동자들의 두터운 신뢰를 얻으며 브라질 노동 운동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1980
[대규모 파업 주도와 노동자당 창당]
극우 군사독재정권 시절 ABC 파울리스타에서 대규모 노동자 파업을 주도하고, 브라질 노동자당 창당을 주도하여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앞장섰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룰라는 극우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브라질 완성차 업체 금속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 투쟁을 주도했다. 저임금 정책에 저항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한 이 파업은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발전했고, 이러한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은 1980년 노동자당 창당으로 이어져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 가톨릭 교회와의 연대를 통해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6
1985년 군사독재정권이 붕괴된 후 브라질 정부는 이듬해 총선을 선언했고, 1986년 룰라는 기록적인 득표율로 상파울루 주 연방 하원의원에 선출되었다. 이는 그가 노동운동을 넘어 제도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89
1989년, 룰라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처음으로 출마했다. 그는 결선 투표까지 진출했지만,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후보에게 53-47%로 패하며 아쉽게 당선을 놓쳤다.
1994
1994년, 룰라는 다시 한번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1차 투표에서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후보에게 패배하며 대통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1998
1998년, 룰라는 세 번째로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으나, 역시 1차 투표에서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 후보에게 패배하며 세 번의 고배를 마셨다.
2002
[제35대 브라질 대통령 당선]
네 번째 도전 끝에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조제 세하를 꺾고 제35대 브라질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브라질 정치사의 새 장을 열었다.
2002년, 룰라는 네 번째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고문의 조언을 따라 미디어 친화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며 캠페인을 펼쳤다. 10월 27일 치러진 2차 투표에서 PSDB(브라질 사회민주당)의 후보자 조제 세하를 꺾고 승리하며, 마침내 브라질의 제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그가 과거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정치운동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외채정책을 내세워 자본가들의 우려를 불식시킨 결과였다.
2003
오래전부터 아마존 열대우림의 보호와 벌목 규제를 주장해 온 룰라는 2003년 다단계 벌목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조치로 2004년부터 브라질의 아마존 벌목은 감소하기 시작했으나, 화석연료 감축에 대해서는 브라질 산업의 핵심이라 생각해 적극적인 지지 입장을 보이지는 않았다.
[대통령 취임 및 사회개혁 시작]
제35대 브라질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보우사 파밀리아'와 '포미 제루' 같은 대규모 사회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브라질 사회경제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2003년 1월 1일, 룰라는 제35대 브라질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첫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취임 이후 복지 프로그램을 최우선으로 삼아, 기아 근절 운동인 '포미 제루(Fome Zero)'와 빈민 지원 정책인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ília)'를 시행했다. 특히 '보우사 파밀리아'는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정책으로, 빈곤층에게 조건부 학습 지원금을 제공하며 브라질의 1인당 GDP를 3배 증가시키고 국가 신용 등급을 상승시키는 등 사회 경제적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06
2006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룰라는 2차 투표에서 제라우두 아우키민을 상대로 승리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써 그는 브라질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다.
2007
[룰라주의와 반제국주의 외교]
2차 내각을 구성한 후 우익 인사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룰라주의'를 시행하며 반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외교 정책을 펼쳤다.
2007년 2차 내각을 구성한 이후 룰라는 1차 내각의 제3의 길과는 달리 우익에게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책인 '룰라주의'를 시행했다. 그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반제국주의를 지지했으며,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등 반제국주의 지도자들과 유대를 강화했다. 2010년에는 베네수엘라 등과 함께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국제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펼쳤다.
2010
[성공적인 대통령 임기 종료]
8년간의 제35대 브라질 대통령 임기를 마쳤으며, 퇴임 직전 여론조사에서 8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2010년 12월 31일, 룰라는 제35대 브라질 대통령으로서 8년간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퇴임을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브라질 사람들의 지지율은 87%에 달했으며, 상파울루주에서는 95%를 넘는 등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2016
[수석장관 임명 논란]
지우마 호세프 정부의 수석장관에 임명되었으나, 브라질 대법원의 반발로 임명이 하루 만에 보류되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 퇴임 후에도 정치 현장에서 활동하던 룰라는 2016년 3월 17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지시로 수석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연방 사법 재판소인 브라질 대법원의 반발로 임명이 하루 만에 보류되면서 큰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부패 혐의로 기소]
연방검찰에 의해 부당한 영향력 행사, 돈세탁 등 부패 혐의로 기소되며 대규모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룰라는 퇴임 이후 '라바 자투 작전'에 휘말리면서 부패 혐의로 연방검찰에 기소되었다. 2016년 12월 15일, 브라질 연방검찰은 룰라와 그 아들 등 4명을 부당한 영향력 행사와 돈세탁 등 부패 혐의로 기소했다. 스웨덴 기업 사브와의 전투기 구매 계약 개입, 자동차 업체 세제 혜택 연장 로비, M&M 컨설팅 회사를 통한 아들 회사 지원 등의 혐의가 제기되었고,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로부터 450억 원을 받았다는 폭로도 나왔다.
2017
[부패 혐의 1심 징역형 선고]
브라질 연방 판사 세르지우 모루로부터 부패 및 자금 세탁 혐의로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으며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2017년 7월, 브라질 연방 판사 세르지우 모루는 '라바 자투 작전'의 일환으로 룰라에게 부패 및 자금 세탁 혐의를 적용해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 판결로 인해 룰라의 2018년 대통령 선거 출마 가능성이 사실상 좌절되었다.
2018
2018년 1월 말 열린 2심 재판에서 룰라는 1심보다 높은 12년 1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형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4월 7일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브라질 연방경찰에 인도되어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그의 대통령 선거 출마는 완전히 좌절되었다.
2019
[연방대법원 결정에 따른 석방]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최종 결정에 따라 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판결 하루 만에 석방되며 구속 상태에서 벗어났다.
2019년 11월, 브라질 연방대법원이 최종적이고 항소할 수 없는 결정에 따라서만 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정한 지 하루 만인 11월 8일, 룰라는 석방되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첫걸음이 되었다.
2021
[유죄 판결 취소 및 정치 복권]
브라질 연방대법원 대법관 에드송 파친이 '라바 자투' 관련 유죄 판결을 취소하면서 룰라의 정치적 권리가 복권되었고, 이후 세르지우 모루 전 판사의 편파성이 인정되었다.
2021년 3월 8일, 브라질 연방대법원(STF) 대법관 에드송 파친이 '라바 자투' 작전과 관련된 룰라의 모든 유죄 판결을 취소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룰라의 정치 복권이 이루어졌다. 이어서 3월 23일,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룰라에게 실형을 선고한 세르지우 모루 전 판사가 편파적이었다고 판결하며 룰라의 결백에 힘을 실었다. 이 판결들은 룰라의 극적인 정치적 재기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2022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선]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결선에서 현직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꺾고 당선되며 13년 만에 대통령으로 복귀했다.
정치적으로 복권된 후, 룰라는 2022년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다. 부통령 후보로는 제라우두 아우키민을 지명하며 새로운 연합을 형성했다. 10월 30일 치러진 결선 투표에서 현직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꺾고 승리하며, 13년 만에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하는 역사적인 재기를 이루었다.
2023
[제39대 브라질 대통령 재취임 및 3선]
제39대 브라질 대통령으로 재취임하며 브라질 역사상 최초의 3선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23년 1월 1일, 룰라 다 시우바는 제39대 브라질 대통령으로 취임식을 울리며 다시 한번 브라질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이는 그가 브라질 역사상 최초로 3선 대통령이 되는 기록을 세운 것으로,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의 정점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