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나이웨이

num_of_likes 60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루이나이웨이
바둑 기사, 프로 기사 + 카테고리
세계 바둑계의 '철녀(鐵女)'라 불리는 루이나이웨이 9단은 여성 바둑의 한계를 뛰어넘어 남성 기사들과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세계 최초의 여성 9단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나, 시대적 상황과 갈등으로 인해 일본과 미국을 거쳐 한국에서 객원 기사로 활동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2000년 한국 국수전에서 이창호와 조훈현을 꺾고 여성 최초로 메이저 기전 우승을 차지한 사건은 바둑 역사에 영원히 남을 이정표입니다. 오청원 9단의 마지막 제자로서 정교한 수읽기와 강력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수십 년간 세계 여자 바둑계의 정상을 지켜온 그녀는 진정한 바둑 예술가이자 승부사로 추앙받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63

[루이나이웨이 탄생]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세계 바둑계를 뒤흔들 여제의 탄생이었습니다.
전자 계통 기술자였던 아버지로부터 10세 무렵 처음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초등학교 시절 이미 상하이 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80

[중국 국가대표팀 합류]

바둑 입문 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여 중국 바둑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실력을 연마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전국의 강자들과 대국하며 실력을 쌓았습니다.

1985

[프로 바둑 기사 입단]

중국기원 소속의 정식 프로 바둑 기사로 입단했습니다. 입단 첫해에 파격적인 승단을 거듭하며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입단 직후 놀라운 성적을 거두어 같은 해에 곧바로 7단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남성 기사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승부를 겨룰 수 있는 독보적인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1986

[중국 여자 개인전 첫 우승]

중국 전국 개인전 여자부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자국 내 최고 여성 기사로 우뚝 섰습니다.
이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1989년까지 무려 4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중국 여자 바둑계에 적수가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0세 나이에 이룩한 압도적인 지배력이었습니다.

1988

[세계 최초 여성 9단 등극]

바둑 기사 최고의 단위인 9단(입신)으로 승단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여성을 통틀어 사상 최초의 기록입니다.
중국위기협회 역사상 9번째 9단이자 여성으로서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인정받았습니다. 바둑계의 성벽을 허문 이 역사적인 승단은 전 세계 바둑 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1989

[중국 퇴출과 일본 이주]

중국기원과의 불화로 인해 자국 내 활동이 어려워지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10년에 걸친 긴 떠돌이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천안문 사태 당시 연인이었던 장주주 9단과의 관계 등으로 인해 정치적 압박을 받았습니다. 일본으로 향했으나 일본기원의 폐쇄적인 정책으로 인해 정식 프로 기전에 참가하지 못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1990

[공식 9단 인가]

중국기원으로부터 9단 단위를 공식적으로 인가받았습니다.
이전의 기록을 행정적으로 확정한 것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여성 기사임을 서류상으로도 확고히 했습니다. 비록 타국에 머물고 있었으나 그녀의 위상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1992

[장주주 9단과 결혼]

일본 도쿄에서 동료 기사인 장주주 9단과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어려운 망명 생활 속에서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냉수 한 그릇 떠놓고' 올린 결혼식으로 회자되며, 훗날 바둑계를 대표하는 잉꼬 부부 기사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응씨배 4강 신화]

제2회 응씨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여성 최초로 세계 메이저 대회 4강에 진출하는 대이변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5단이었던 한국의 신동 이창호를 꺾으며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전 대국에 굶주려 있던 그녀는 4강에서 패배한 후 '더 이상 바둑을 둘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러워' 눈물을 쏟았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1993

[오청원 9단 문하 입문]

현대 바둑의 성인이라 불리는 오청원 9단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거장의 가르침을 받으며 바둑의 예술적 깊이를 한층 더했습니다.
오청원 9단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장의 조련을 거치며 그녀의 전투적인 바둑에 세련된 수읽기와 형세 판단 능력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1994

[제1회 보해배 우승]

한국에서 열린 제1회 보해배 세계여자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국제 여자 바둑 대회에서 자신의 압도적인 우위를 재확인했습니다. 이후 1996년과 1997년 대회까지 휩쓸며 대회 3승을 기록하는 등 여제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1999

[한국 활동 개시]

오랜 타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기원의 객원 기사로 위촉되어 본격적인 한국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차민수 9단의 적극적인 주선과 조훈현 9단의 배려로 한국행이 성사되었습니다. 실력을 키우고 싶어 하던 한국 여자 기사들의 환영 속에 정착하며 한국 여자 바둑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류국수전 우승]

제6기 프로여류국수전에서 정상에 오르며 한국 국내 대회 정복의 첫발을 뗐습니다.
입국 직후부터 거침없는 승전보를 전하며 한국 여자 바둑계를 평정하기 시작했습니다. 36세의 나이에도 전성기에 버금가는 강력한 파괴력을 과시했습니다.

2000

[국수전 타이틀 획득 (3.3 혁명)]

제43기 국수전에서 이창호와 조훈현을 연파하고 여성 최초로 메이저 기전 우승을 차지하는 '3.3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도전자 결정전에서 이창호를 꺾고, 결승에서 조훈현을 2-1로 제압하며 세계 바둑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남녀의 벽을 허문 이 우승은 훗날 '역사상 가장 찬란한 금자탑'으로 평가받습니다.

2003

[정관장배 우승 및 세계 제패]

제1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선수권에서 우승하며 통산 세계 여자 대회 7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 여성 기사들 가운데 그녀를 저지할 인물이 없음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공포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의 압도적인 커리어는 이 시기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2004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우승]

9단들만 참여하는 혼성 기전인 맥심커피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남성 기사들을 무너뜨렸습니다.
국수전 우승 이후에도 꾸준히 남성 최정상급 기사들과 대등하게 맞서며 결실을 보았습니다. 41세의 나이에도 식지 않는 승부욕과 완벽한 기량을 뽐낸 쾌거였습니다.

2006

[여류기성전 우승 (전관왕 달성)]

제1기 여류기성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당시 한국 내 모든 여류 기전의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하는 전관왕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여류국수전, 여류명인전 등에 이어 마지막 남은 기성전까지 정복하며 완벽한 '루이 천하'를 굳건히 했습니다. 한국 여자 바둑의 살아있는 교과서로서 후배들에게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

중국 국가대표팀에 복귀하여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여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47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부름을 받아 국가대표로 헌신했습니다. 결승에서 한국 팀에 아쉽게 패했지만, 여전한 기량으로 후배들과 경쟁하며 대회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2011

[중국 복귀와 한국 생활 마감]

13년간의 성공적인 한국 활동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고국인 중국으로 완전히 돌아갔습니다.
한국 생활을 '하루하루가 행복했다'고 회고하며 눈물어린 작별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남긴 기술적 유산과 승부사적 태도는 한국 여자 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26

[불멸의 여제로서의 현재]

63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서 반상을 지키며 바둑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거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록상 그녀의 커리어 절반에도 미치는 여성 기사가 드물 정도로 독보적인 위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상의 마녀', '철녀'라는 별명에 걸맞게 여전히 후배 기사들에게 강력한 영감을 주는 살아있는 전설로 남았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루이나이웨이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