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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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연표
1958
1958
[달을 향한 첫 번째 도전]
소련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충돌하는 것을 목표로 한 탐사선을 쏘아 올리며 계획의 성대한 서막을 엽니다. 하지만 야심 찬 첫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탐사선은 지구 궤도에 도달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실패한 이 임무에 대해서는 당시 대중에게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습니다.미국 등 서방 세계에서는 이 첫 번째 실패한 탐사선을 '루나 1958A' 등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루나 E-1 No.1'으로 명명되었던 이 충돌선은 소련 우주 탐사 역사에서 공식적인 루나 번호를 부여받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출처: 위키백과](https://en.wikipedia.org/wiki/Luna_programme)
1958
[연이은 발사 실패]
첫 번째 실패 이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달 충돌선 발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로켓 결함으로 인해 탐사선은 우주 궤도 진입에 실패합니다. 달로 향하는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입니다.내부적으로 'E-1 No.2'로 불린 이 임무 역시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우주 경쟁 초기, 기술적 한계와 촉박한 일정 속에서 겪어야 했던 연속된 뼈아픈 좌절의 기록 중 하나입니다.
1958
[세 번째 좌절]
해를 넘기기 전, 세 번째로 달 충돌선을 발사하며 달 정복에 대한 끈질긴 집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앞선 두 번의 시도와 마찬가지로 궤도 진입에 실패하며 임무는 또다시 수포로 돌아갑니다. 연달아 발생한 발사체 문제는 우주 계획 진행에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E-1 No.3' 충돌선의 발사 실패입니다. 당시 달 충돌 임무의 성공률이 극히 낮았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성공적인 탐사를 위해서는 우주발사체 기술의 획기적인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켰습니다.
1959
1959
[인류 최초의 인공행성 탄생]
네 번째 도전 끝에 궤도 진입에 성공한 탐사선은 당초 목표였던 달 충돌에는 실패하고 달을 스쳐 지나갑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지구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난 인류 최초의 우주선이 되어 태양 주위를 도는 인공행성이 됩니다. '메치타'라고도 불렸던 이 탐사선은 우주 탐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이 탐사선이 바로 '루나 1호'입니다. 원래는 'E-1 No.4'로 명명된 충돌선(Impactor)이었으나 궤도 오류로 달 충돌을 놓쳤습니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지구-달 시스템을 벗어난 첫 번째 인공물이라는 거대한 우주 탐사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1959
[다시 가로막힌 우주의 벽]
루나 1호의 절반의 성공 이후, 개량된 탐사선을 통해 다시 한번 달 충돌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발사 단계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지구 궤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주 개발 초창기의 높은 장벽을 다시금 뼈저리게 확인하게 됩니다.내부적으로 'E-1A No.1'으로 분류된 임무였습니다. 이로써 계획이 시작된 이후 총 여섯 번의 달 충돌 시도 중에서 완벽하게 성공한 것은 아직 단 한 번도 없게 된 셈이었습니다.
1959
[인공물, 최초로 달에 닿다]
마침내 탐사선이 달 표면의 '부패의 늪' 지역에 정확히 충돌하며 인류의 피조물이 사상 처음으로 다른 천체에 도달하는 역사적 위업을 달성합니다. 오랜 실패를 딛고 일궈낸 이 성과는 소련 우주 기술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인류의 달 정복을 향한 거대한 이정표가 세워졌습니다.이 역사적인 탐사선은 '루나 2호(E-1A No.2)'입니다. 이 충돌의 성공은 초기에 시도된 여섯 번의 달 충돌 임무 중 유일한 성공 사례입니다. 치열한 우주 경쟁에서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쾌거였습니다.
1959
[달의 숨겨진 뒷면을 보다]
달을 근접 비행하는 탐사선이 발사되어, 지구에서는 영원히 볼 수 없었던 달의 뒷면을 사상 처음으로 촬영해 전송합니다. 인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가 흐릿한 흑백 사진을 통해 베일을 벗습니다. 이는 천문학 역사에 길이 남을 혁명적인 시각적 혁명이었습니다.이 놀라운 업적을 세운 탐사선은 '루나 3호(E-2A No.1)'입니다.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이 아닌 단순한 근접 비행(Flyby) 방식이었음에도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1960년까지 시도된 세 번의 플라이바이 임무 중 유일한 성공작입니다.
1960
1960
[멈춰선 근접 비행 시도]
루나 3호의 엄청난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후속 근접 비행 탐사선이 발사대에서 솟아오릅니다. 하지만 발사 과정에서 다시 결함이 발생하며 궤도 진입에 실패합니다. 여전히 안정적이지 못한 발사체 기술의 한계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습니다.'E-3 No.1'으로 명명된 이 탐사선은 달의 뒷면을 추가로 정밀하게 촬영하여 전송할 목적이었으나 실패로 끝났습니다. 우주를 향한 길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960
[이틀 연속 발사 실패]
전날의 뼈아픈 실패를 만회하고자 지체 없이 또 다른 근접 비행 탐사선이 연속으로 발사됩니다. 그러나 마치 데자뷔처럼 이번 발사 역시 궤도에 오르지 못한 채 참담한 실패로 마무리됩니다. 이로써 달 근접 비행을 통한 추가 사진 촬영 계획은 당분간 완전히 중단됩니다.이 임무는 'E-3 No.2' 탐사선의 발사였습니다. 이틀 연속 발사라는 과감한 시도였으나 두 번 모두 실패함으로써, 달 탐사 프로그램은 발사체의 신뢰성 확보라는 시급한 과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1963
1963
[지구 궤도의 덫]
두 번째 달 연착륙선이 우주로 향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지구 궤도에조차 제대로 진입하지 못하는 참사가 발생합니다. 발사체의 초기 결함이 계속해서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됩니다. 달 표면에 안착하겠다는 거창한 꿈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집니다.'E-6 No.3' 착륙선 발사 실패입니다. 연착륙선은 충돌선보다 훨씬 무겁고 복잡한 시스템을 갖춰야 했기에 발사체인 '몰니야' 로켓의 강력한 성능과 신뢰성이 절실히 요구되었습니다.
1963
[연착륙을 향한 험난한 첫걸음]
단순히 달에 부딪히는 것을 넘어 달 표면에 안전하고 부드럽게 내려앉기 위한 '연착륙' 임무가 처음으로 시도됩니다. 그러나 묵직한 탐사선을 실은 발사체는 지구 저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실패를 맞이합니다. 새로운 차원의 탐사 목표가 마주한 거대한 기술적 벽이었습니다.연착륙을 목표로 한 'E-6' 시리즈의 첫 번째 발사인 'E-6 No.2' 임무입니다. 부서지지 않고 달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감속 기술이 필수적이었으며, 이는 13번에 걸친 길고 고통스러운 도전의 시작점이었습니다.
1963
[경로를 벗어난 루나 4호]
마침내 발사에 성공한 연착륙선이 지구를 벗어나 달을 향해 날아가며 희망을 안깁니다. 그러나 비행 도중 필수적인 궤도 수정 기동에 실패하면서, 목적지인 달 표면에 착륙하지 못하고 그대로 스쳐 지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진일보한 성과 속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습니다.이 탐사선이 '루나 4호(E-6 No.4)'입니다. 우주 공간에서 탐사선의 자체 추진 시스템을 이용해 비행 궤도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기술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명확히 보여주는 실패 사례로 남았습니다.
1964
1964
[침묵 속의 발사 실패]
거의 1년 만에 달 연착륙선이 다시 발사대에 오르지만, 이 역시 우주 궤도 진입에 실패하며 허무하게 터져버립니다. 서방 세계에는 철저히 숨겨진 채 내부 기록으로만 남은 수많은 실패 중 하나입니다. 우주 개발을 둘러싼 치열한 냉전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E-6 No.6' 탐사선의 실패입니다. 당시 소련은 궤도 진입에 실패한 탐사선은 자랑스러운 '루나'라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국제 사회에는 발사 사실 자체를 은폐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1964
[계속되는 발사체의 한계]
불과 한 달 뒤 연이어 발사된 연착륙선 또한 우주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철저한 실패로 귀결됩니다. 로켓 발사체의 신뢰성 문제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달 표면 착륙을 위한 기술적 병목현상이 최고조에 달합니다.'E-6 No.5' 탐사선 발사 실패입니다.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체를 찍어내 발사하는 소련의 자본력과 추진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로켓 공학의 높은 진입 장벽을 시사합니다.
1965
1965
[저궤도에 갇힌 코스모스 60호]
새롭게 발사된 연착륙선이 오랜만에 지구 궤도에 오르는 데 성공하지만, 달을 향해 가속하지 못하고 저궤도에 그대로 갇혀버립니다. 며칠 후 궤도를 잃은 탐사선은 지구 대기권으로 추락하여 파괴됩니다. 달로 가는 길목에서 또 한 번 쓰라린 좌절을 맛봅니다.이 탐사선은 실패한 달 탐사 목적을 숨기기 위해 일반적인 위성을 뜻하는 '코스모스 60호(E-6 No.9)'로 대외에 발표되었습니다. 발사 후 5일 만에 추락하며 임무는 최종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1965
[가중되는 압박감]
다시 한번 달 연착륙선 발사가 시도되나 지구 궤도 진입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여 임무가 허무하게 중단됩니다. 벌써 수차례 반복되는 실패에 프로젝트를 이끄는 과학자들의 피로감과 정치적 압박감이 극심해집니다. 성공을 향한 돌파구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E-6 No.8' 탐사선의 발사 실패 건입니다. 미국의 아폴로 계획이 무서운 속도로 진척되는 가운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연착륙 임무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아 소련 수뇌부의 위기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1965
[속도를 줄이지 못한 루나 5호]
오랜만에 탐사선이 무사히 발사되어 달 표면에 접근하는 데 성공하지만, 치명적인 오작동이 발생합니다. 착륙 직전 역추진 로켓을 점화해 속도를 줄여야 하는 감속에 실패하면서 '구름의 바다' 지역에 산산조각 나며 충돌해 버립니다. 연착륙의 핵심 기술에서 치명적 한계를 노출합니다.'루나 5호(E-6 No.10)'의 추락 사고입니다. 기체가 파괴되지 않고 부드럽게 표면에 내려앉기 위해서는 정밀한 역추진 타이밍과 유도 제어 시스템의 완벽한 조화가 필요함을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1965
[달을 빗겨 날아간 루나 6호]
직전 실패를 보완하여 빠르게 탐사선을 다시 쏘아 올렸으나, 이번에는 우주 공간에서의 궤도 수정 모터가 제멋대로 작동하여 목적지인 달을 비켜 날아가 버립니다. 한 가지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오는 극심한 기술적 난항의 연속입니다. 연착륙은 기약 없이 미뤄집니다.'루나 6호(E-6 No.7)'의 비행 궤도 이탈 사건입니다. 로켓 모터가 정해진 시간에 꺼지지 않고 계속 연소되는 바람에 계획된 비행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1965
[통제 불능의 루나 7호]
착륙을 위해 다시 달에 접근하던 탐사선의 자세 제어 시스템이 착륙 직전 갑자기 먹통이 되어버립니다. 균형을 잃은 탐사선은 무방비 상태로 '폭풍의 대양' 지역으로 곤두박질치며 산화합니다. 수많은 실패 데이터가 쌓였음에도 완벽한 착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루나 7호(E-6 No.11)'의 실패입니다. 역추진 로켓을 점화하기 직전 기체의 자세를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감각 기관에 해당하는 시스템이 고장 나면서 발생한 비극이었습니다.
1965
[아쉬운 충돌, 루나 8호]
그 해의 끝자락, 야심 차게 준비한 마지막 연착륙 시도마저 직전과 똑같이 자세 제어 장치의 결함으로 인해 '폭풍의 대양'에 요란하게 추락하며 끝이 납니다. 착륙 직전의 아주 미세한 오차가 탐사선 전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달 표면 안착의 꿈은 결국 이듬해로 넘어갑니다.'루나 8호(E-6 No.12)' 역시 전작인 7호와 동일한 제어 불량 이유로 파괴되었습니다. 이로써 무려 11번에 걸친 연착륙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는 우주 개발 역사상 보기 드문 뼈아픈 기록을 남겼습니다.
1966
1966
[인류 최초의 달 연착륙 성공]
발사 후 며칠 뒤, 마침내 탐사선이 '폭풍의 대양'에 사뿐히 내려앉으며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다른 천체에 연착륙하는 거대한 대기록을 작성합니다. 오랜 실패와 좌절 끝에 얻어낸 눈물겨운 결실이었습니다. 곧이어 전송된 달 표면의 생생한 사진은 전 세계를 흥분으로 물들였습니다.이 위대한 우주선은 '루나 9호(E-6 No.13)'입니다. 착륙 직후 흑백 입체 파노라마 사진 5장을 전송하여, 달 표면이 푹 꺼지는 두꺼운 먼지로 덮여 착륙선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기존 과학계의 깊은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켰습니다.
1966
[궤도선 발사의 첫걸음]
표면 연착륙의 극적인 성공에 고무되어 이번에는 달의 궤도를 계속해서 도는 인공위성 형태의 '궤도선'을 처음으로 발사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탐사선은 지구 저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이틀 만에 불타 없어집니다. 달 주위를 도는 비행 역시 만만치 않은 험난한 도전임을 입증합니다.이 최초의 궤도선 임무는 실패로 인해 '코스모스 111호(E-6S No.204)'로 명명되었습니다. 달 궤도선은 달 중력장에 부드럽게 진입(LOI)하기 위한 매우 정교한 추진력 통제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1966
[달의 첫 인공위성, 루나 10호]
실패를 딛고 한 달 만에 재발사된 탐사선이 마침내 달의 중력권 궤도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며 인류 최초의 달 인공위성이 됩니다. 표면 착륙에 이어 궤도 비행마저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며 우주 경쟁의 압도적 우위를 선점합니다. 달의 신비로운 화학적 성질과 방사선 환경을 지구로 보내오기 시작합니다.소련의 '루나 10호(E-6S No.206)'가 만들어낸 쾌거입니다. 이로써 단 몇 달 만에 소련은 인류 최초의 연착륙(9호)과 최초의 달 궤도선(10호)이라는 기념비적인 우주 탐사 타이틀 두 개를 모두 휩쓸었습니다.
1966
[본격화된 궤도 과학 탐사]
궤도선의 성공을 발판 삼아 새로운 과학 탐사선이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달 궤도에 순조롭게 안착합니다. 이를 통해 달의 중력장 이상 현상을 정밀하게 관측하고 표면의 감마선 방출을 측정하는 등 고도화된 과학 실험이 펼쳐집니다. 무인 탐사를 통한 데이터 수집 기술이 한층 무르익습니다.성공적으로 심층 과학 임무를 수행한 '루나 11호(E-6LF No.101)'입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궤도선 임무들은 총 8회 시도 중 6회 성공이라는 75%의 높은 성공률을 보이며 기술적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게 됩니다.
1966
[정밀한 달 지도의 완성]
달 표면을 가까이서 고해상도로 촬영할 임무를 띤 새로운 궤도선이 우주로 쏘아 올려집니다. 이 탐사선은 달의 생생한 지형 이미지를 텔레비전 시스템을 통해 지구로 쉴 새 없이 전송하며 정밀한 지도를 그리는 데 일조합니다. 인류는 망원경을 넘어 달의 구석구석을 선명하게 파악하게 됩니다.고해상도 이미징 능력을 갖추고 활약한 '루나 12호(E-6LF No.102)'입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 또한 유인 착륙 지점 선정을 위해 루나 오비터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달 표면 정밀 지도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1966
[완벽해진 연착륙 기술]
그해 겨울, '폭풍의 대양' 지역에 또 다른 착륙선이 매우 안정적이고 부드럽게 연착륙하는 데 성공합니다. 단순한 사진 촬영을 넘어 탑재된 로봇 팔 장비를 이용해 달 토양의 단단함을 직접 찔러보는 등 물리적 실험을 본격적으로 수행합니다. 착륙 기술의 완벽한 신뢰성을 전 세계에 재확인시킵니다.성공적으로 연착륙한 '루나 13호(E-6M No.205)' 임무입니다. 착륙 후 길게 뻗은 토양 관입기와 방사선 밀도계를 토양에 꽂아 넣어, 훗날 우주비행사가 걷더라도 달 표면이 푹 꺼지지 않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1968
1968
[고도화된 궤도 중계망 구축]
심우주 통신 기술을 시험하고 지구와 달 사이의 질량 분포 등을 연구하기 위해 발사된 궤도선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개시합니다. 이는 향후 시도될 복잡한 유인 탐사나 거대한 무인 로버 운용을 대비하여 통신 중계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달을 향한 발걸음이 더욱 체계화됩니다.안정적으로 달 궤도를 비행한 '루나 14호(E-6LS No.113)' 임무입니다. 소련의 독자적인 유인 달 탐사를 염두에 두고 달의 미세한 중력장을 매핑하고 통신 네트워크 신뢰성을 극대화하는 중요한 기반 닦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69
1969
[첫 무인 로버의 비극적 폭발]
인류 최초로 달 표면을 바퀴로 굴러다니며 탐사할 거대 무인 로버를 실은 거대한 로켓이 불을 뿜으며 솟아오릅니다. 하지만 야심 찬 발사 직후 로켓 발사체가 공중에서 대폭발을 일으키며 귀중한 로버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이동형 탐사라는 혁신적인 시도는 뼈아픈 좌절로 첫 페이지를 엽니다.역사상 첫 번째 '루노호트(무인 로버)' 탐사 차량 발사 시도(E-8 No.201)였습니다. 막대한 탑재량을 자랑하는 새로운 발사체 '프로톤-K' 로켓을 사용했으나, 궤도 진입에 실패하며 탐사선이 파괴되었습니다.
1969
[아폴로와의 숨 막히는 경주]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날아가던 그 역사적인 순간, 소련은 무인 토양 샘플 귀환선을 기습적으로 발사합니다. 미국 우주비행사보다 먼저 달 토양을 싣고 지구로 돌아오려는 숨 막히는 첩보 작전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달 표면 하강 도중 산에 정면충돌하며 극적인 대역전극의 기회를 허무하게 놓치고 맙니다.역사적으로 매우 극적인 사연을 가진 '루나 15호(E-8-5 No.401)'입니다. 미국의 닐 암스트롱 일행이 달 표면을 걷고 있을 때 급히 하강을 시도하다 추락했습니다. 달 토양 최초 확보를 둘러싼 두 초강대국의 피 말리는 긴장감을 상징합니다.
1970
1970
[최초의 무인 토양 귀환]
여러 번의 뼈아픈 실패를 딛고 발사된 무인 탐사선이 '풍요의 바다'에 무사히 착륙하여 로봇 팔로 흙을 파내어 캡슐에 밀봉합니다. 그리고 달 표면을 힘차게 박차고 날아올라 지구로 성공적으로 귀환합니다. 인간이 직접 가지 않고도 우주 천체의 샘플을 가져오는 무인 로봇 기술의 진가를 전 세계에 증명합니다.인류 최초로 완전 로봇화된 토양 샘플 귀환 임무에 성공한 '루나 16호(E-8-5 No.406)'입니다. 무려 11번에 걸친 샘플 귀환 시도 끝에 얻어낸 첫 성공 사례로, 달 토양 샘플이 9월 24일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1970
[달 위를 달린 루노호트 1호]
대형 무인 로버를 싣고 날아간 탐사선이 '비의 바다'에 안착하고, 마침내 탐사 차량이 경사로를 타고 내려와 달 표면을 주행하기 시작합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 외의 다른 행성에서 바퀴를 굴리며 이동한 차량입니다. 수개월 동안 먼 거리를 이동하며 수만 장의 고해상도 사진을 지구로 쏟아냅니다.'루나 17호(E-8 No.203)'가 성공적으로 '루노호트 1호'를 전개한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이 로버는 무려 322일 동안 10.5km를 주행하며 2만 장 이상의 영상 이미지와 파노라마를 전송하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습니다.
1972
1972
[험준한 산악 지대 샘플 채취]
과거의 평탄한 착륙지와는 완전히 다른 험준하고 위험한 산악 지형에 두 번째 무인 샘플 채취선이 착륙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바위가 많은 험난한 지형의 단단한 흙을 파내어 지구로 돌려보내며 한층 진보된 정밀 제어 기술을 자랑합니다. 인류에게 달의 복잡한 지질학적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단서를 선물합니다.'풍요의 바다' 인근의 거친 산악 지대에 착륙하여 성공적으로 샘플을 가져온 '루나 20호(E-8-5 No.408)' 임무입니다. 인간의 발길이 닿기 힘든 위험천만한 지역을 탐사하는 데 있어 무인 우주선의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973
1973
[경이로운 오프로드 주행, 루노호트 2호]
두 번째 개량형 무인 로버를 실은 거대 탐사선이 달 표면 분화구 근처에 무사히 안착합니다. 전작보다 훨씬 빠른 속도와 첨단 장비를 갖춘 이 로버는 마라톤 거리에 맞먹는 엄청난 거리를 달리는 경이로운 주행 기록을 세웁니다. 극한의 우주 환경에서 작동하는 무인 기계 시스템의 놀라운 내구성을 뽐냅니다.'루나 21호(E-8 No.204)'가 성공적으로 '루노호트 2호'를 달 표면에 내려놓은 임무입니다. 이 로버는 약 4개월 동안 무려 42km를 거침없이 누볐으며, 이 압도적인 주행 기록은 수십 년 동안 깨지지 않는 외계 천체 오프로드의 신기원이 되었습니다.
1976
1976
[위대한 대장정의 피날레]
달의 '위기의 바다'에 착륙한 마지막 탐사선이 땅속 깊숙이 드릴을 회전시키며 귀중한 토양 샘플을 채취한 후 지구로 무사히 귀환합니다. 이 완벽한 임무를 끝으로, 인류 역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거대한 무인 달 탐사 프로그램이 찬란했던 대장정의 막을 내립니다. 이후 달을 향한 인류의 발걸음은 수십 년의 긴 겨울잠에 들어갑니다.루나 계획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비행, '루나 24호(E-8-5M No.413)' 임무입니다. 착륙하여 샘플을 확보하고 8월 22일에 지구로 귀환했으며, 이로써 1958년부터 18년 동안 쉼 없이 이어진 소련의 웅장한 달 탐사 서사시가 영광스럽게 마무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