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킨
연표
1971
[로이 킨 탄생]
불굴의 정신과 뛰어난 리더십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축구선수 로이 킨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황금기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 됩니다.
로이 모리스 킨은 아일랜드 코크에서 태어나, 훗날 세계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 평론가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의 불굴의 정신과 성공에 대한 열망은 선수 경력 내내 빛을 발했습니다.
1989
로이 킨은 잉글랜드 축구 시스템에서 견습 선수로 발탁되지 못하자, 고향 아일랜드의 코브 램블러스에서 프로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곳에서 그의 재능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1990
코브 램블러스에서의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로이 킨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현 프리미어리그) 소속 팀인 노팅엄 포리스트로 이적하며 잉글랜드 축구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이후 노팅엄 포리스트에서 풀 멤버스컵 우승(1991-92)을 경험했습니다.
199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및 데뷔]
375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하며, 팀의 데뷔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는 맨유 황금기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노팅엄 포리스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던 로이 킨은 1993년 여름 375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합류했습니다. 그는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홈 데뷔전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 시즌에 첫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는 맨유에서의 화려한 경력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1997
[맨유 주장 취임과 부상]
팀의 정신적 지주 에리크 캉토나의 뒤를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 완장을 찼지만,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무릎 십자 인대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감했습니다.
1997-98 시즌부터 로이 킨은 팀의 전설적인 공격수 에리크 캉토나의 뒤를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하지만 1997년 9월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알프잉에 홀란에게 무리한 태클을 가하다가 무릎 십자 인대가 손상되는 큰 부상을 입고 시즌을 조기에 마감해야 했습니다. 이 부상은 그의 선수 생활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99
[맨유 역사적인 트레블 달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사적인 트레블(프리미어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 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챔피언스리그 결승에는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유벤투스와의 준결승에서 영웅적인 활약으로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1998-99 시즌, 로이 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프리미어리그, FA컵,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한 역사적인 트레블 달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유벤투스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그는 헤딩골을 포함한 영웅적인 활약으로 팀의 3대2 역전승을 이끌었으나, 이 경기에서 받은 옐로카드로 인해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이 해 발롱도르 6위, PFA 올해의 선수 등 수많은 개인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았습니다.
2002
[2002 월드컵 '사이판 사건']
2002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의 사이판 전지훈련 중 당시 믹 매카시 감독과의 심각한 불화로 팀을 떠나 홀로 귀국하는 초유의 '사이판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2002 FIFA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은 사이판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장 로이 킨은 훈련 시설 및 준비 과정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며 당시 감독이었던 믹 매카시와 심각한 언쟁을 벌였습니다. 이 불화는 결국 킨이 팀을 떠나 홀로 귀국하는 '사이판 사건'으로 비화되었고,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행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5
[맨유와 결별 및 선수 은퇴]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후, 유명했던 '키노게이트' 사건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상호 계약을 해지하고 오랜 세월 몸담았던 팀을 떠나 셀틱으로 이적했습니다. 이후 국가대표팀에서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05년 9월,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로이 킨은 이후 구단 방송 인터뷰에서 동료 선수들을 강하게 비판하는 '키노게이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상호 계약 해지에 합의하며 12년간의 맨유 생활을 마감하고 셀틱으로 이적했습니다. 같은 해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이 2006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06년 5월,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유와의 은퇴 경기를 끝으로 정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2006
[선덜랜드 감독 부임 및 승격]
선수 은퇴 직후 풋볼 리그 챔피언십(2부 리그) 소속 선덜랜드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첫 시즌 만에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키며 성공적인 감독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로이 킨은 2006년 5월 선수 생활을 마감한 직후인 8월, 풋볼 리그 챔피언십 소속 팀인 선덜랜드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그는 감독 첫 시즌인 2006-07 시즌에 팀을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끌며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키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 활약으로 LMA 챔피언십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2008
[선덜랜드 감독직 사임 및 코치 활동]
선덜랜드의 리그 순위가 하락하자 구단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감독직에서 사임했습니다. 이후 입스위치 타운 감독직과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애스턴 빌라, 노팅엄 포리스트 등에서 수석 코치로 활동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시킨 선덜랜드의 감독으로 활동하던 로이 킨은 2008년 12월 5일, 팀의 리그 순위가 18위로 하락하자 구단주 나이얼 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감독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2009년 입스위치 타운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2011년까지 활동했습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맡았고, 2014년에는 애스턴 빌라, 2019년에는 노팅엄 포리스트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2021
로이 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프리미어리그 7회 우승을 포함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리그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뛰어난 기량과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인정받아 2021년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는 2004년 이미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