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num_of_likes 157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로알드 달
작가, 소설가, 아동문학 작가, 군인 + 카테고리

로알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은 영국 작가입니다. 대담하고 유쾌한 상상력으로 인간 심리를 날카롭게 묘사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경험과 2차 세계대전 파일럿 참전 등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습니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마법 같은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기숙학교의 가학적 체벌은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고, 2차 대전의 추락 사고와 첩보 활동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찰을 남겼습니다. 그는 아들의 비극적 사고 앞에서도 좌절 대신 의료 기구(WDT 밸브)를 발명해내는 집요함을 보였으며,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와 기술로 승화시켜 세상에 없던 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916

[로알드 달 탄생]

영국 웨일스에서 노르웨이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3살 무렵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어머니는 아이들의 영국식 교육을 위해 노르웨이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로알드 달은 1916년 9월 13일 영국 웨일스에서 노르웨이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3살 무렵 아버지가 별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영국식 교육을 받게 하려는 열망으로 노르웨이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머물렀습니다.

1920

[누나 아스트리의 죽음]

달이 3세였을 때, 7세였던 누나 아스트리가 맹장염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는 어린 달이 처음으로 마주한 죽음이자, 행복했던 가정에 닥친 첫 번째 비극이었습니다.

딸을 끔찍이 아꼈던 아버지 하랄드 달은 이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불과 몇 주 뒤 이어질 아버지의 죽음을 예고하는 전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결단]

누나가 사망한 지 불과 몇 주 뒤, 아버지 하랄드 달마저 폐렴으로 57세의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홀로 남은 어머니 소피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노르웨이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남기로 결단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은 세계 최고의 교육 시스템을 가진 영국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남편의 생전 소원을 지키기 위해, 친정이 있는 노르웨이로 귀국하는 대신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1924

[위대한 생쥐 소동 (The Great Mouse Plot)]

랜드프 대성당 학교 시절, 불친절한 사탕 가게 주인 프래챗 부인을 골탕 먹이기 위해 친구들과 공모하여 사탕 병에 죽은 생쥐를 숨겨 넣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교장에게 엉덩이를 피가 나도록 맞는 가혹한 체벌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죽은 쥐를 발견해 '고브스토퍼' 사탕 병 안에 넣는 대담한 장난을 쳤습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행해진 매질은 달에게 어른들의 권위에 대한 공포와 반감, 그리고 그것을 전복시키는 유머러스한 반항심을 동시에 심어주었습니다.

1925

[염소 똥 담배 사건]

노르웨이 여름 휴가 중, 거드름을 피우는 이복 누나의 약혼자가 미워 그의 파이프 담배에 말린 염소 똥을 채워 넣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담배를 피우며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 특유의 잔혹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9살 소년 달은 약혼자가 수영하러 간 사이 파이프 속 담배를 파내고 염소 똥으로 채웠습니다. 남자가 헛구역질을 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에서 그는 최고의 희열을 느꼈다고 회고했으며, 이는 훗날 자서전 『Boy』에 수록되었습니다.

1930

[초콜릿 공장의 꿈 (캐드버리 테스터)]

렙톤 스쿨 기숙사로 인근 캐드버리 공장의 신제품 초콜릿이 배달되어 학생들이 테스터로 활동했습니다. 달은 공장 내부의 비밀스러운 실험실을 상상하며 초콜릿 발명가의 꿈을 꾸었고, 이는 30년 뒤 명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당시 캐드버리는 경쟁사 라운트리와의 스파이 전쟁 때문에 공장 문을 닫고 있었는데, 달은 회색 상자에 담긴 초콜릿을 맛보며 하얀 가운을 입은 어른들이 설탕 솥 앞에서 실험하는 장면을 상상했습니다. 엄격한 기숙학교 생활 속에서 이 달콤한 상상은 유일한 해방구였습니다.

1938

[아프리카 쉘 입사]

22세 때 아프리카로 건너가 석유회사 쉘에 입사하여 탄자니아 등지에서 근무했습니다.

로알드 달은 22세 때(1938년경) 아프리카로 건너가 석유회사인 쉘에 입사하여 탄자니아 등지에서 일했습니다.

1939

[왕립공군(RAF) 자원 입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프리카 케냐에서 왕립공군(RAF)에 조종사로 지원했습니다. 198cm에 달하는 거구로 조종석에 앉기 힘들었으나 신체검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단 7시간 40분의 비행 훈련 후 단독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탄자니아에서 쉘 석유 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전쟁이 터지자 600마일을 이동해 입대했습니다. 조종석 덮개에 머리가 닿을 정도였지만 군의관의 묵인하에 입대했고, '타이거 모스' 훈련기로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1940

[리비아 사막 추락과 실명]

부대로 복귀하던 중 잘못된 좌표를 전달받아 연료 고갈로 리비아 사막의 황무지에 불시착했습니다. 기체가 전복되고 화재가 발생한 지옥 같은 상황에서 가까스로 탈출했으나, 두개골 골절과 코 함몰로 인해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구식 복엽기 '글로스터 글래디에이터'를 몰고 이동 중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병원에서 6개월간 입원하며 겪은 실명 상태의 공포와 환각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기괴한(macabre) 색채를 입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941

[전투기 에이스(Ace) 등극]

그리스와 시리아 전선에서 총 5기의 적기를 격추하여 공식적인 '에이스(Ace)'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비행 실력과 생존 본능으로 수많은 공중전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80비행대대 소속으로 활약하며 허리케인 전투기를 몰고 독일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그가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실전 경험을 갖춘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했습니다.

[아테네 전투 (The Battle of Athens)]

그리스 아테네 상공에서 RAF 허리케인 전투기 15기와 독일 루프트바페 200여 기가 맞붙은 치열한 공중전에서 생존했습니다. 동료들이 격추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여 살아남았으며, 전쟁의 참혹함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피레우스 항구의 전투'로도 불리는 이 날, 영국군은 1:10 이상의 수적 열세였습니다. 전설적인 에이스 팻 패틀이 전사한 이 전투에서 달은 생환했고, 이를 "끝없는 적기의 소용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1942

[워싱턴 D.C. 부임과 첩보원 변신]

추락 사고 후유증으로 비행 부적합 판정을 받고 주미 영국 대사관의 보조 항공 무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공식 업무 외에 영국 정보부(BSC)의 비밀 요원으로 포섭되어, 사교계의 이면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이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윌리엄 스티븐슨(코드명 'Intrepid')의 지휘 아래 미국의 참전을 유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테니스 실력과 화술을 무기로 헨리 월리스 부통령 등 정계 거물들에게 접근하여 친영 여론을 조성했습니다.

[작가 데뷔]

유명 작가 C.S. 포레스터의 요청으로 자신의 비행 경험을 메모로 적어 주었는데, 포레스터가 이를 수정 없이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기고했습니다. 이 글은 그를 일약 스타 작가로 만들었습니다.

포레스터는 인터뷰 대신 받은 달의 메모를 보고 "당신은 타고난 작가다. 내가 손댈 곳이 없다"며 감탄했습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극적으로 과장된 이 글은 그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천재성을 세상에 알린 데뷔작이 되었습니다.

1943

[미인계 첩보 활동 (Honey Trap)]

상류층 여성들과의 관계를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특히 고립주의자인 클레어 부스 루스 하원의원과 관계를 맺으며 그녀의 정치적 성향을 바꾸려 노력했습니다.

달은 스탠다드 오일 상속녀 밀리센트 로저스 등 유력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습니다. 루스 의원과의 관계는 상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으나, 그녀의 과도한 성적 요구에 지쳐 "임무 해제"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첫 아동 소설 《그렘린》 출판]

첫 아동 소설인 《그렘린》을 출판했습니다.

로알드 달은 1943년 첫 아동 소설인 《그렘린》(The Gremlins)을 출판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본드(007)의 영감이 되다]

당시 해군 정보부 소속이던 이안 플레밍과 교류하며 첩보 세계의 동지로 지냈습니다. 플레밍은 달의 대담한 활약상, 화려한 여성 편력, 그리고 잘생긴 외모에서 제임스 본드 캐릭터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플레밍은 달의 배짱과 스파이로서의 면모를 관찰하며 훗날 007 시리즈를 구상하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1953

[퍼트리샤 닐과의 결혼]

미국 배우 퍼트리샤 닐과 결혼하여 30년간 부부로 지냈으며, 다섯 아이를 두었습니다.

로알드 달은 1953년에 미국 배우 퍼트리샤 닐과 결혼하여 30년간 부부로 지냈으며, 슬하에 다섯 아이를 두었습니다.

1960

[아들 테오의 교통사고]

생후 4개월 된 아들 테오가 탄 유모차가 뉴욕에서 택시에 치이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아들은 두개골이 부서지는 중상을 입고 뇌에 물이 차는 수두증(Hydrocephalus)이 발병했습니다.

기존 치료 기구인 '홀터 밸브'는 뇌 찌꺼기에 의해 수시로 막히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밸브가 막힐 때마다 아들이 실명 위기와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을 보며, 달은 작가가 아닌 엔지니어의 사고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뛰어들었습니다.

1962

[WDT 밸브(Wade-Dahl-Till Valve) 발명]

장난감 제작자 스탠리 웨이드, 신경외과 의사 케네스 틸과 협력하여 뇌 찌꺼기에 막히지 않는 혁신적인 밸브를 발명했습니다. 이 기구는 전 세계 3,000여 명 아동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들은 기존 방식 대신 정교한 '칼날형 디스크'를 장착해 막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달은 특허 수익을 취하지 않고 전액 기부했으며, 정작 아들 테오는 상태가 호전되어 쓰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을 구했으니 되었다"며 만족해했습니다.

1964

[《찰리와 초콜릿 공장》 출판]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인 아동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은 이후 여러 차례 영화화되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로알드 달은 1964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아동 소설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을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983

[재혼]

퍼트리샤 닐과 이혼한 후, 펠리시티 크로슬랜드와 재혼했습니다.

로알드 달은 1983년 퍼트리샤 닐과 이혼한 후 펠리시티 크로슬랜드와 재혼했습니다. 말년에는 3대 대가족을 이루어 마법 같은 삶을 누리며 요리법과 일화를 책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1988

[《마틸다》 출판]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아동 소설 《마틸다》를 출판했습니다.

로알드 달은 1988년 독특하고 재치 있는 이야기로 사랑받는 아동 소설 《마틸다》(Matilda)를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여러 매체로 각색되었습니다.

1990

[로알드 달 사망]

영국 옥스퍼드에서 희귀 혈액 질환인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7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연필, 와인, 그리고 초콜릿과 함께 묻혔습니다.

로알드 달은 1990년 11월 23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희귀 혈액 질환인 골수이형성증후군으로 7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평소 초콜릿을 매우 좋아했던 그는 유언에 따라 연필, 와인, 그리고 초콜릿과 함께 묻혔다고 전해집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로알드 달
+ 사건추가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