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고다드
연표
1882
[로켓의 선구자, 로버트 고다드 탄생]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게 될 로버트 고다드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과 우주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로버트 허칭스 고다드(Robert Hutchings Goddard)는 1882년 10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5살부터 과학에 흥미를 느꼈고, 16살에는 H.G. 웰스의 고전 SF인 《우주 전쟁》(1898)을 읽고 우주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1899
[앵두나무 위에서 우주를 꿈꾸다]
16살에 H.G. 웰스의 '우주 전쟁'을 읽고 우주에 대한 흥미를 키운 고다드는 앵두나무 위에서 내려올 때 우주 비행 개발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이날을 개인적인 기념일로 삼을 정도로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1899년 10월 19일, 고다드는 뒤뜰의 높은 앵두나무에 죽은 가지를 잘라내려고 올라갔는데, '나는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올라갈 때와는 다른 소년이었다. 마침내 존재가 매우 뜻깊게 여겨졌다'고 훗날 기록했습니다. 나무 위에서 그는 한 평생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우주 비행의 개발에 전념하기로 결심하였고, 이날을 개인적인 기념일로 삼았습니다.
1907
[비행기 안정화 아이디어, 학술지에 실리다]
학부생이던 고다드는 비행기의 균형을 맞추는 자이로 안정기에 대한 기사를 써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투고했고, 이는 같은 해 출판되었습니다. 그는 비행 중인 항공기를 자동으로 안정시키는 방법을 자신이 최초로 제안했다고 믿었습니다.
고다드는 학부생이던 1907년에 자이로 안정기를 사용하여 비행기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에 대한 내용의 기사를 써서 'Scientific American'에 투고하였고, 이는 그 해에 출판되었습니다. 고다드는 당시 비행중인 항공기를 자동으로 안정시키는 방법을 자신이 최초로 제안했다고 훗날 수첩에 기록했습니다.
1909
[액체 연료 로켓의 씨앗을 뿌리다]
고다드는 당시 주류였던 화약 로켓보다 효율적인 액체 수소와 산소를 이용한 액체 연료 로켓의 가능성에 대해 처음으로 글로 남기며, 현대 로켓 기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1909년 2월, 고다드는 처음으로 액체 연료 로켓의 가능성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는 본래 사용되고 있던 화약 로켓과는 상이한 방법을 써서 로켓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했는데 액체 수소를 연료로, 산소를 산화제로 쓰는 방법에 대하여 글을 적었습니다. 고다드는 그러한 액체 추진제를 이용하면 효율이 50%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19
[달 비행 가능성을 제시한 혁신적 논문]
고다드는 '초고공 도달 방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달 비행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 논문은 로켓 공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진공에서 로켓이 날 수 없다'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1919년 고다드는 《A Method of Reaching Extreme Altitudes》라는 논문을 출판하며 달 비행의 가능성에 대해 집필했습니다. 이 논문은 로켓이 초고공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과 달 비행의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제시했지만, 당시 주류 과학계와 대중으로부터는 진공에서 로켓이 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1920
["고다드는 고등학교 지식도 없다!" 뉴욕타임스의 혹평]
고다드의 달 비행 가능성 논문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진공 상태에서 로켓을 추진시킬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고다드가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합니다. 이는 고다드가 생전에 겪은 수많은 비난 중 하나였습니다.
1920년 1월 12일, 뉴욕타임스는 고다드의 획기적인 논문 《초고공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서 진공 상태에서는 로켓을 추진시킬 물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날아갈 수 없는 것을 누구라도 알고 있다고 극렬하게 비판했습니다. 기사에서는 '고다드가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라고 비난하며 그의 이론을 조롱했습니다.
1926
[인류 최초, 액체 연료 로켓 '네루' 하늘로]
로버트 고다드는 매사추세츠주 어번에서 '네루'라는 이름의 액체 연료 로켓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립니다. 인간 팔만한 크기의 이 로켓은 2.5초 만에 41피트를 상승하며 액체 연료 추진의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입증한 역사적인 사건이 됩니다.
1926년 3월 16일, 로버트 고다드는 매사추세츠주 어번의 에피 아줌마 농장에서 최초의 액체 연료 로켓을 쏘아 올렸습니다. '네루'라고 명명된 로켓은 인간의 팔만한 크기로, 2.5초 만에 41피트를 상승했습니다. 이는 액체 연료 추진의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증명한 중요한 실험이었습니다.
1929
[로켓 실험 소동, 고다드 매사추세츠주 떠나다]
로켓 실험 중 발생한 소란으로 인해 소방서에 신고가 접수되고, 신문들은 '달 로켓이 목표를 잃었다'는 과장된 기사를 게재합니다. 이 사건으로 매사추세츠주 내에서의 로켓 발사 실험이 금지되자, 고다드는 새로운 실험 장소를 찾아야 했습니다.
1929년에 행해진 로켓 실험 때 많은 구경꾼이 모여 소방서에 신고되는 소란이 발생했습니다. 찾아온 신문 기자들에게 고다드는 과장된 기사를 싣지 않도록 간절히 부탁했지만, 우스터의 지방 신문은 '달 로켓은 238,799.5 마일의 목표를 잃었다'라는 표제로, 달을 목표로 한 로켓이 실패해 공중에서 폭발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실제로는 실험이 성공했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매사추세츠주 내에서의 로켓 발사 실험이 금지되었습니다.
1930
[찰스 린드버그의 지원으로 로즈웰로 이전]
찰스 린드버그의 추천과 지원으로 고다드는 뉴멕시코주 로즈웰로 실험장을 옮기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그의 로켓 개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929년 로켓 실험 소동 이후, 이 뉴스를 통해 로켓 연구에 흥미를 느낀 찰스 린드버그의 추천으로 새로운 자금을 원조받아, 1930년에 뉴멕시코주 로즈웰로 실험장을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35
[시속 885km 로켓 비행 성공]
고다드는 로켓을 시속 885km(550마일)로 비행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시킵니다. 이는 그의 로켓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1935년에 고다드는 자신이 개발한 로켓을 시속 885킬로미터(550마일)로 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시켰습니다.
1939
[제2차 세계 대전, 해군 로켓 연구 시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고다드는 미국 해군을 위해 로켓 공학 연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해군은 그의 연구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치 독일이 그의 연구에 큰 흥미를 보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고다드는 미국 해군을 위해서 로켓 공학의 연구를 했습니다. 하지만 해군은 그의 연구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함재기를 단거리의 활주로에서 발진시키기 위한 보조 로켓이었습니다. 짓궂게도, 그의 연구에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나치 독일이었습니다.
1945
[V-2 미사일에서 자신의 흔적을 발견하다]
고다드는 메릴랜드주 애너폴리스의 해군 연구소에 보관된 독일 V-2 탄도 미사일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습니다. 설계 세부 사항은 달랐지만, V-2의 기본 설계가 자신이 개발한 로켓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연구가 도용되었음을 확신합니다.
1945년 봄, 고다드는 독일 V-2 탄도 미사일이 그가 계약 근무했던 메릴랜드주 애너폴리스 소재의 해군 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군이 하르츠 산맥의 미텔베르크 공장에서 발사되지 않은 로켓을 획득하여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철저한 관찰 후, 고다드는 독일인들이 자신의 연구를 훔쳤음을 확신했습니다. V-2는 고다드가 만들고 실험했던 가장 성공적인 로켓들보다 훨씬 더 기술적으로 진보되어 있었지만, 기본 설계는 고다드의 로켓 중 하나와 비슷했습니다.
[로켓의 아버지, 로버트 고다드 별세]
현대 로켓의 선구자 로버트 고다드가 62세의 나이로 후두암으로 사망합니다. 그는 생전에 214개의 특허를 얻었지만, 대부분의 업적은 살아 있을 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로버트 고다드는 1945년 8월 10일 후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고안·발명한 것들에 대해 214개의 특허를 얻었지만,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던 성격 탓에 그의 생전에는 그것들이 주목을 받는 일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의 사후에 이루어졌습니다.
1959
[고다드 우주 비행 센터 설립]
고다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 산하에 고다드 우주 비행 센터가 설립됩니다. 이는 그의 사후에도 그의 유산이 인류의 우주 탐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1959년에 로버트 고다드를 기념하여 고다드 우주 비행 센터가 설립되었습니다.
1960
[미국 정부, 고다드의 로켓 특허 매입]
로버트 고다드 사후 15년이 지난 1960년, 미국 정부는 그의 미망인으로부터 고다드가 남긴 214개의 로켓 관련 특허 전부를 100만 달러에 매입하며 그의 업적을 뒤늦게 인정합니다.
1960년, 미국 정부는 고다드의 모든 특허를 그의 미망인으로부터 100만 달러에 매입했습니다.
1969
[달 착륙 전날, 뉴욕타임스 고다드에게 공식 사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바로 전날, 뉴욕타임스는 49년 전 고다드의 로켓 이론을 비판했던 사설을 철회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합니다. '진공 상태에서도 로켓을 추진할 수 있음이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뉴욕타임스는 잘못을 후회한다'고 밝히며 그의 선구적인 업적을 뒤늦게나마 인정했습니다.
1969년 7월 17일,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있기 바로 전날에 뉴욕타임스는 49년 전에 발표한 고다드에 대한 사설을 철회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고다드의 실험을 보다 진보한 실험과 조사라면서 '17세기의 아이작 뉴턴의 실험 결과를 확인했고, 대기 중에서와 마찬가지로 진공 상태에서도 로켓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게 확인되었다. 뉴욕타임스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잘못 해석하고 있던) 잘못을 후회한다'라는 사설을 발표하며 그의 업적을 뒤늦게 인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