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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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외교관, 비행사, 영화 감독, 가명 작가 + 카테고리

로맹 가리는 프랑스의 외교관, 비행사이자 소설가로, 본명과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두 번의 공쿠르상을 수상한 유일무이한 인물입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며 치열하게 글을 썼고, 복잡한 사생활과 함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이중적인 문학적 삶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흥미와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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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14

[로맹 가리, 리투아니아에서 출생]

러시아 제국의 빌나(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로만 레이보비치 카체프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리투아니아 유대인으로, 아버지는 사업가, 어머니는 배우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 출신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카멜레온' 같은 면모를 보였습니다.

1914년 5월 21일 러시아 제국의 빌나(현재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로만 레이보비치 카체프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리투아니아 유대인으로, 아버지는 사업가로 1925년에 가족을 떠나 재혼하였으며, 어머니는 배우였다. 그는 '카멜레온'이나 '스파이'에 자주 비유될 정도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의 출신에 대해 다양한 버전이 이야기를 풀어왔다. 자신의 친부가 유명한 러시아의 무성 영화 배우인 이반 모주힌이라는 주장도 한 바 있다.

1935

[단편 소설로 문단 데뷔]

문예지 그랭구아르에서 단편 '폭풍우'가 당선되면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이는 로맹 가리라는 위대한 작가의 첫걸음이었습니다.

1935년 2월 15일 문예지 그랭구아르에서 단편 <폭풍우>가 당선이 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2차대전에 참전했다.

1940

['로맹 가리'로 개명하고 레지스탕스 활동]

나치 프랑스 점령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레지스탕스 단체인 자유 프랑스군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로맹 가리'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는 그의 삶과 문학 세계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나치의 프랑스 점령 이후 영국으로 건너간 가리는 레지스탕스 단체인 자유 프랑스군의 일원으로 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활동하였다. 프랑스 공군의 로렌 비행중대 대위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로맹 가리로 이름을 바꾼 것도 이때이다. 전쟁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샤를 드 골 장군으로부터 받은 레지옹 도뇌르 무공 훈장을 비롯해 많은 훈장을 받았다.

1944

[레슬리 블랜치와 결혼]

보그(Vogue)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일곱 살 연상의 레슬리 블랜치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은 그의 사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30세였던 1944년, 보그 (잡지)의 편집장인 일곱 살 연상의 여인 레슬리 블랜치와 결혼했다.

1945

[첫 장편 《유럽의 교육》 발표 및 비평가상 수상]

전쟁 중 집필한 첫 장편소설 《유럽의 교육》을 발표하고 프랑스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1945년에 《유럽의 교육》을 발표하고 프랑스 비평가상을 수상하여 명성을 얻었다.

1952

[UN 프랑스 대표단 근무]

뉴욕에 있는 UN 프랑스 대표단에서 프랑스 외교관으로 근무했습니다. 그의 다채로운 경력 중 하나였습니다.

종전 직후에는 불가리아와 스위스에서 프랑스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1952년에는 뉴욕에 있는 UN 프랑스 대표단에서 일했다.

1956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 수상]

장편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습니다.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가 되어 할리우드와도 가까워졌습니다.

1956년에는 장편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의 총영사가 되어 할리우드를 가까이 하게 된다.

1958

[가명으로 작품 발표 및 영화계 진출]

'포스코 시니발디'라는 가명으로 <비둘기를 안은 남자>를 발표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소설 《하늘의 뿌리》를 영화화한 '천국의 뿌리'의 각색에 참여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습니다.

1958년 ‘포스코 시니발디’라는 이름으로 <비둘기를 안은 남자>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1958년 《하늘의 뿌리》를 영화화한 작품 '천국의 뿌리'의 각색에 참여하면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1960

[《새벽의 약속》 출간]

장편 《새벽의 약속》을 출간하여 대중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1960년에 장편 《새벽의 약속》을 출간하여 인기를 얻었다.

1961

[레슬리 블랜치와 이혼, 진 세버그와 동거]

레슬리 블랜치와 이혼하고, 이후 배우 진 세버그를 만나 동거를 시작하며 복잡한 개인사를 이어갔습니다.

1961년 레슬리 블랜치와 이혼하고 여배우인 진 세버그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1962

[진 세버그와 재혼 및 아들 출생, 단편상 수상]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미국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해에 24살 연하의 배우 진 세버그와 재혼하고 아들 알렉상드르 디에로 가리를 얻었습니다.

1962년 그는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미국에서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1962년 24살 연하의 진 세버그와 재혼하였으며 그해 아들 알렉상드르 디에로 가리가 태어났다. 1962년에는 ‘샤탕 보가트’ 라는 이름으로 <스테파니의 얼굴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1963

[장편소설 《레이디L》 발표]

레슬리 블랜치를 모델로 한 장편소설 《레이디L》을 발표했습니다.

1963년에는 레슬리 블랜치를 모델로 한 장편소설인 《레이디L》을 발표했다.

1968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영화화]

자신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영화로 각본, 연출, 제작까지 맡았으나, 이후 영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1968년에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바탕으로 각본, 연출을 맡았으며 아내인 진 세버그를 주인공으로 영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제작하였다.

1970

[《흰 개》 발표 및 진 세버그와 이혼]

소설 《흰 개》를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진 세버그의 요청으로 그녀와 이혼하며 파란만장한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1970년에는 《흰 개》를 발표했다. 이후 진 세버그는 FBI의 감시를 받으면서 정치적으로 공격받았으며 로맹 가리와도 갈등을 겪었다. 1970년 진 세버그의 요청으로 그들은 이혼했다.

1973

[영화계 은퇴 및 《마법사들》 발표]

'킬'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고 감독했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영화계를 떠났습니다. 이 시기에 소설 《마법사들》도 발표했습니다.

1973년에는 '킬'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고 감독하였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영화계를 떠났다. 《마법사들》도 발표했다.

1974

['에밀 아자르' 가명으로 <그로칼랭> 출간]

60세가 되던 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소설 <그로칼랭>을 출간하여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가명은 신인 작가로 큰 관심을 모았고, 당시 가리의 조카의 아들이 에밀 아자르의 행세를 했습니다.

그가 60세가 되던 해인 1974년에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그로칼랭>을 출간하여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며 에밀 아자르는 신인 작가로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가리의 조카의 아들인 폴 파블로비치가 에밀 아자르의 행세를 하였다.

1975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공쿠르 상 수상]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두 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여 다시 한번 공쿠르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한 작가가 공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역사상 유일한 기록으로, 문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후 1975년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여 공쿠르상을 다시 한 번 수상하였다.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가면의 생》, <솔로몬 왕의 고뇌>를 출판하여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1956년에는 본명으로, 1975년에는 가명으로 수상해 역사상 공쿠르 상을 2회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다.

1979

[전 부인 진 세버그 사망]

전 부인인 여배우 진 세버그가 약물 투여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로맹 가리의 삶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1979년 진 세버그는 약물 투여로 생을 마감했다.

1980

[마지막 작품 <연> 출간]

마지막 작품인 <연>이 출간되었습니다.

마지막 작품으로 1980년 <연>이 출간되었다.

[권총 자살로 생 마감]

66세의 나이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1년 후 1980년 12월 2일 그는 66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81

['에밀 아자르'와의 동일 인물임 밝혀짐]

사후에 출간된 유고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 인물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충격적인 고백은 그의 위대한 문학적 사기극을 세상에 공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사후 로맹가리의 유고인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로맹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이었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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