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올리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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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영화 감독, 영화 프로듀서 영화/드라마 배우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영화 감독, 프로듀서. 셰익스피어 연극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으며, 뛰어난 발성과 외모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영국 연극 부흥에 기여했고, 기사 작위와 남작 작위를 받았다. 아카데미상 등 다수의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며 연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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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07

[로런스 올리비에 출생]

잉글랜드 서리 도킹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로컨스 커 올리비에라는 본명으로 잉글랜드 서리 도킹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제럴드 올리비에, 어머니는 아그네스 루이스 크로켄든이다.

1922

[첫 연극 무대 데뷔]

스트랫퍼드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키오' 역으로 첫 무대에 올랐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키오' 역으로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1924

[본격적인 배우 활동 시작]

본격적으로 전문 배우 활동을 시작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나갔다.

1924년부터 1989년까지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펼쳤다.

1926

[버밍엄 극단 활동]

버밍엄 극단에서 활동하며 연기력을 키웠다.

1926년부터 1928년까지 버밍엄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1930

[질 에스몬드와 결혼]

배우 질 에스몬드와 첫 결혼을 했다.

질 에스몬드와 결혼했으나 1940년에 이혼했다.

1935

[올드빅 극단 합류]

존 길구드와 함께 올드빅 극단에 참여하며 극단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올드빅 극단에서 활동하며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단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39

[영화 '폭풍의 언덕' 출연]

소설 '폭풍의 언덕'을 각색한 영화에서 히스클리프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을 원작으로 한 영화 '폭풍의 언덕'에서 남자 주인공 히스클리프 역으로 열연했다.

1940

[비비언 리와 재혼]

배우 비비언 리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질 에스몬드와 이혼 후, 비비언 리와 결혼했으나 1961년에 이혼하게 된다.

1942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영국 왕립해군 중사로 복무하며 국가에 봉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왕립해군에 중사 계급으로 종군했다.

1947

[기사 작위 서임]

전후 파괴된 올드빅 극단의 재건과 영국 연극 부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영국 연극 부흥에 전력을 기울인 공로로 기사에 서임되어 'Sir' 칭호를 얻었다.

1949

[영화 '햄릿'으로 아카데미 2관왕]

제작, 주연, 감독을 맡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그가 제작, 주연, 감독한 영화 '햄릿'은 큰 성공을 거두며 제2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셰익스피어 연극을 영화로 옮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1961

[조앤 플로라이트와 재혼]

비비언 리와 이혼 후, 배우 조앤 플로라이트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비비언 리와의 이혼 절차를 마치고 조앤 플로라이트와 결혼하여 남은 생을 함께 했다.

1970

[남작 작위 수여]

연극과 영화 예술에 대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남작 작위(Baron Olivier of Brighton)를 수여받았다.

영국 연극과 영화계에 미친 막대한 영향과 기여로 남작 작위에 올라 귀족의 반열에 올랐다. 공식적으로는 '브라이턴의 올리비에 남작'으로 불리게 되었다.

1980

[대수술과 영화 '오! 인천' 출연]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대수술을 받고 회복했으나, 막대한 수술비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영화 '오! 인천'에 출연하게 되었다.

대규모 수술 후 생활고를 겪게 되었고, 문선명이 파격적인 개런티를 제시한 영화 '오! 인천'에 출연을 결정했다.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하며 그의 필모그래피에 오점으로 남았다.

1989

[로런스 올리비에 사망]

82세의 나이로 영면했으며, 영국을 대표하는 위인들을 기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8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는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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