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올리비에
연표
1907
로컨스 커 올리비에라는 본명으로 잉글랜드 서리 도킹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제럴드 올리비에, 어머니는 아그네스 루이스 크로켄든이다.
1922
[첫 연극 무대 데뷔]
스트랫퍼드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키오' 역으로 첫 무대에 올랐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키오' 역으로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1924
1924년부터 1989년까지 활발하게 연기 활동을 펼쳤다.
1926
1926년부터 1928년까지 버밍엄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1930
질 에스몬드와 결혼했으나 1940년에 이혼했다.
1935
올드빅 극단에서 활동하며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단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39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을 원작으로 한 영화 '폭풍의 언덕'에서 남자 주인공 히스클리프 역으로 열연했다.
1940
질 에스몬드와 이혼 후, 비비언 리와 결혼했으나 1961년에 이혼하게 된다.
1942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왕립해군에 중사 계급으로 종군했다.
1947
영국 연극 부흥에 전력을 기울인 공로로 기사에 서임되어 'Sir' 칭호를 얻었다.
1949
[영화 '햄릿'으로 아카데미 2관왕]
제작, 주연, 감독을 맡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그가 제작, 주연, 감독한 영화 '햄릿'은 큰 성공을 거두며 제2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셰익스피어 연극을 영화로 옮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1961
비비언 리와의 이혼 절차를 마치고 조앤 플로라이트와 결혼하여 남은 생을 함께 했다.
1970
[남작 작위 수여]
연극과 영화 예술에 대한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남작 작위(Baron Olivier of Brighton)를 수여받았다.
영국 연극과 영화계에 미친 막대한 영향과 기여로 남작 작위에 올라 귀족의 반열에 올랐다. 공식적으로는 '브라이턴의 올리비에 남작'으로 불리게 되었다.
1980
[대수술과 영화 '오! 인천' 출연]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대수술을 받고 회복했으나, 막대한 수술비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영화 '오! 인천'에 출연하게 되었다.
대규모 수술 후 생활고를 겪게 되었고, 문선명이 파격적인 개런티를 제시한 영화 '오! 인천'에 출연을 결정했다.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하며 그의 필모그래피에 오점으로 남았다.
1989
82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는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