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쥔
연표
1969
[레이쥔 출생]
레이쥔은 중국 후베이성 셴타오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샤오미 테크의 창업자로 세계적인 IT 기업을 이끌게 됩니다.
레이쥔은 1969년 12월 16일 중국 후베이성 셴타오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전자회사 중 하나인 샤오미 테크의 창업자가 됩니다.
1989
[우한대학 컴퓨터공학과 입학]
대학 입학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우한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으며, 2년 만에 모든 과정을 이수하는 뛰어난 학업 능력을 보였습니다.
1989년 대학 입학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우한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레이쥔은 남다른 학업 능력을 바탕으로 2년 만에 모든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1990
[백신90 개발]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신 프로그램 '백신90'을 개발했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IT 기술 역량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대학 시절, 레이쥔은 중국에 컴퓨터 바이러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친구들과 백신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백신은 '백신90'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으며, 당시 백신 하나에 50위안(약 9천원)을 받았습니다.
[중문 워드프로세서SW 회사 '싼써' 창업 실패]
대학 재학 중 친구들과 중문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 회사 '싼써'를 창업했으나, 기술 유출 및 도용 문제로 인해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대학 시절 레이쥔은 친구들과 함께 중문 워드프로세서SW 회사 '싼써'를 창업했으나, 기술 유출과 도용으로 인해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하게 됩니다.
1992
[킹소프트 입사]
졸업 후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IT 기업 킹소프트에 개발부 매니저로 입사했습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하는 워드프로세서 및 오피스 프로그램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졸업 후 베이징으로 이동한 레이쥔은 과학 연구소를 떠나 IT업체인 킹소프트에 개발부 매니저로 입사하게 됩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습에 대항하는 워드프로세서와 오피스 프로그램 등 SW 프로그램 개발에 힘을 쏟았습니다.
1998
[킹소프트 CEO 취임]
킹소프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과 사업 운영을 거듭한 끝에, 1998년 킹소프트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며 그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WPS 실패와 게임SW의 성공을 거듭하며 레이쥔은 1998년 킹소프트의 CEO가 되었습니다.
2000
[베이징시 인민정부 고문 위촉]
베이징시 인민정부 고문으로 위촉되어, 기술 산업을 넘어 정부 자문 역할까지 수행하며 그의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2000년 레이쥔은 베이징시 인민정부 고문이 되었습니다.
2007
[킹소프트 사장직 사임]
킹소프트 CEO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나며, 이후 새로운 사업 도전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샤오미 창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98년 킹소프트의 CEO가 됐지만, 2007년 갑자기 사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2009
[중국 스마트폰 사업 구상 시작]
중국 휴대폰 회사를 운영하는 황장을 만나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잠재력을 인지하고 사업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황장과는 뜻이 맞지 않았지만, 이는 샤오미 창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2009년 레이쥔은 중국산 휴대폰 회사를 운영하는 황장을 만나게 되어 레이쥔은 황장의 회사에서 중국 스마트폰을 만들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하였지만 황장과 생각이 맞지 않았습니다.
2010
[샤오미 창립]
베이징에서 '좁쌀'을 뜻하는 샤오미(小米)를 창립하며 스마트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예고했습니다. 쌀죽을 먹으며 사업을 논한 것이 사명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0년 4월, 베이징에서 레이쥔은 샤오미를 창립하였습니다. 쌀죽을 먹으며 사업을 논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어진 사명이 ‘좁쌀(샤오미小米)’입니다.
2013
2013년 레이쥔은 인민대표가 되었습니다.
2014
[포브스 선정 중국 부호 순위]
미국 포브스 지에 따르면 레이쥔의 재산은 41억 달러에 달하며, 중국 부호 19위, 세계 375위에 오르며 그의 사업적 성공을 입증했습니다.
미국 포브스 지에 따르면 2014년 8월 현재 레이쥔의 재산은 41억 미국 달러에 이르며, 부호 순위에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19위, 세계순위 375위에 올랐습니다.
2015
[인도 시장 진출]
인도 뉴델리에서 스마트폰 '미4i'를 출시하며 인도 시장에 공식 진출했습니다. 이는 샤오미의 글로벌 확장을 위한 중요한 첫 시도였습니다.
글로벌 시장 확장의 첫 시도로, 2015년 3월 23일 레이쥔은 인도 뉴델리에서 스마트폰 ‘미4i’를 출시했으며, 인도에서 ‘넥스트 차이나’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2018
[샤오미, 중국 1위, 세계 3위 스마트폰 판매 기록]
창업 후 불과 10여 명 규모의 팀으로 시작했던 샤오미는 애플, 삼성, 화웨이 등 거대 기업들과의 경쟁을 뚫고 중국 스마트폰 판매 1위, 세계 판매량 3위를 달성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샤오미가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했을 때 성공을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애플, 삼성, 화웨이 3대 기업이 스마트폰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었고, 중소 규모 중국 기업 간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오미는 10여 명 규모의 팀으로 시작해 2년 6개월 만에 중국 스마트폰 판매 1위, 세계 판매량 3위를 차지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샤오미 하드웨어 순이익률 5% 약속]
샤오미 IPO를 앞두고 모교인 우한대학에서 런칭 행사를 열고, 샤오미의 하드웨어 사업 순이익률이 5%를 초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파격적인 약속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사용자 중심 경영 철학을 공식화한 것입니다.
IPO에 앞서 2018년 4월 25일 레이쥔은 모교인 우한대학에서 런칭 행사를 열었고, 이사회에서 승인한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샤오미의 하드웨어 사업이 결코 5%를 초과하지 않는 세후 순이익률을 가질 것이며, 마진이 5%를 넘으면 초과분을 사용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레이쥔은 좋은 기업은 돈을 벌고, 위대한 기업은 사용자의 마음을 얻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2019
[샤오미, 포춘 500대 기업 선정]
샤오미는 공식적으로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명단에 468위로 이름을 올리며, 설립 9년 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샤오미는 공식적으로 포춘이 선정한 500대 명단에 468위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