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번스타인
연표
1918
[레너드 번스타인 탄생]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우연히 피아노 공연을 듣고 곧장 음악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937
[음악 교육의 시작]
하버드 대학교에서 음악을,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원에서 지휘를 본격적으로 배우며 지휘자, 작곡가, 피아니스트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1943
[뉴욕 필 데뷔, 센세이션]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발탁된 후, 갑작스럽게 아픈 브루노 발터의 대역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즉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며 지휘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이 성공은 그를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지휘자 중 세계적 명성을 얻은 최초의 인물로 만들었다. 또한 주요 미국 관현악단을 지휘한 최초의 미국인 지휘자라는 기록도 세웠다.
1944
[뮤지컬 '온 더 타운' 발표]
첫 뮤지컬 '온 더 타운'과 발레 '팬시 프리'를 작곡하며 작곡가로서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는 그의 다재다능한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49
[메시앙 교향곡 세계 초연]
올리비에 메시앙의 대작 '튀랑갈릴라 교향곡'을 세계 최초로 초연하여 현대 음악사의 중요한 장을 열었다.
1951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와 결혼]
칠레 출신 배우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그녀는 그의 음악 활동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1954
[청소년 콘서트 시리즈 시작]
공영 텔레비전을 위한 '청소년을 위한 연주회'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는 그가 최초의 고전 음악 지휘자로 대중 매체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고전 음악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9년까지 이어진 이 시리즈는 그의 뛰어난 교육자적 면모를 보여주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1957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발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발표하며 작곡가로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를 사로잡으며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1976
[사생활 갈등과 별거]
여러 동성애 관계가 알려지며 아내 펠리시아와 별거에 들어갔다.
이 시기 작가 톰 코스런과 동거하는 등 복잡한 개인사를 겪었다.
번스타인의 전기 작가는 그가 '성적으로는 남성을, 감성적으로는 여성을 원했다'고 언급하는 등, 그의 양성애적 성향은 평생 지속된 개인적 고민의 원천이었다.
1977
[아내의 병간호]
별거 중이던 아내 펠리시아가 폐암 진단을 받자, 그녀에게 돌아와 임종을 지키며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었다.
1978
1989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 공연]
베를린 장벽 붕괴 기념식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하며 역사적 순간을 만들었다.
이때 '환희의 송가' 가사 중 '환희(Freude)'를 '자유(Freiheit)'로 바꾸어 불러 전 세계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공연은 20개국 이상에 생중계되며 약 100만 명의 시청자에게 감동을 안겼다. 번스타인은 “나는 베토벤이 우리에게 그 사람의 축복을 내렸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1990
[마지막 지휘 무대]
텡글우드에서 벤저민 브리튼의 와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지휘하며 생애 마지막 공식 무대를 장식했다.
그의 열정적인 지휘는 마지막까지 변함없었다.
[레너드 번스타인 타계]
하루 100개비에 달하는 흡연으로 폐렴에 시달리던 그는 7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의 유해는 뉴욕 브루클린의 그린우드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