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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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나폴레옹 전쟁, 프랑스 제1제국, 러시아 제국, 군사 원정 + 카테고리
나폴레옹 1세가 이끄는 대육군(Grande Armée)이 대륙 봉쇄령을 어긴 러시아 제국을 응징하기 위해 단행한 거대한 군사 원정입니다. 1812년 6월, 60만 명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다국적 군대가 니에멘강을 건너며 시작된 이 전쟁은 초반의 거침없는 진격과 모스크바 입성이라는 극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의 끈질긴 초토화 전술과 모스크바 대화재, 그리고 혹독한 '동장군(러시아의 겨울)' 앞에 참혹하게 무릎을 꿇고 맙니다. 굶주림과 추위, 코사크 기병대의 끊임없는 습격 속에 이어진 비참한 퇴각로는 대육군의 궤멸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습니다. 이 원정의 실패는 절대적이었던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정적 변곡점이 되었으며, 19세기 유럽의 지형도를 송두리째 뒤바꾼 세계사적 사건으로 영원히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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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10

[대륙 봉쇄령의 붕괴]

러시아 황제가 프랑스의 강력한 경제 제재망을 공식적으로 이탈하여 영국의 선박을 자국 항구에 받아들입니다. 이는 동맹 관계에 치명적인 균열을 내며 다가올 거대한 전쟁의 가장 핵심적인 불씨가 됩니다.
틸싯 조약 이후 유럽 전역에 강요되었던 대영국 '대륙 봉쇄령'이 러시아의 수출 경제에 극심한 타격을 주자, 알렉산드르 1세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중립국 및 영국의 무역선을 은밀히, 그리고 마침내 노골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를 명백한 조약 위반이자 자신에 대한 중대한 배신으로 간주하고 거대한 무력 응징을 결심하게 됩니다.

1812

[오스만 제국과의 평화]

남쪽 전선에서 오랜 기간 전쟁을 벌이던 러시아가 적국과 신속하게 평화 조약을 맺고 후방의 위협을 제거합니다. 이를 통해 국경에 묶여 있던 대규모 정예 병력을 서부 전선으로 집중할 수 있는 전략적 여유를 확보합니다.
부쿠레슈티 조약을 통해 러시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과의 기나긴 전쟁을 서둘러 마무리 지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오스만 제국과 스웨덴이 계속해서 러시아의 발목을 잡아주기를 내심 기대했으나, 러시아 외교관들의 발 빠른 대처 덕분에 치차고프 제독이 이끄는 주둔군 5만 명이 나폴레옹의 대육군에 맞서기 위해 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전쟁의 포고]

정복자가 군대를 향해 선언문을 낭독하며 제2차 폴란드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러시아를 향한 대대적인 진격을 공식화합니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다국적 군대가 출정 준비를 마칩니다.
나폴레옹은 빌코비슈키의 본부에서 대육군을 향한 일일 명령을 통해 러시아 원정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는 이 전쟁을 '제2차 폴란드 전쟁'이라 명명하며 폴란드의 해방과 동유럽의 새로운 질서 재편을 명분으로 내세웠고, 20개국에서 차출된 60만 명 이상의 병력이 그의 명령 아래 하나로 집결했습니다.

[니에멘강을 건너다]

엄청난 규모의 선발대가 국경의 강을 도하하며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디딥니다. 적의 맹렬한 저항을 예상했으나 텅 빈 대지가 이들을 맞이하며 불길한 서막이 오릅니다.
프랑스군을 주축으로 한 대육군의 주력이 폰툰 교량을 통해 리투아니아 국경을 흐르는 니에멘강을 세 군데에서 건넜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의 방어군이 국경에서 즉각적인 결전을 벌일 것이라는 나폴레옹의 예상과 달리, 러시아군은 바클라이 드 톨리의 지휘 아래 끝없이 넓은 내륙으로 계속해서 철수하는 이른바 '청야 전술(초토화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빌뉴스의 무혈 입성]

원정군이 별다른 전투 없이 리투아니아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임시 정부를 세웁니다. 하지만 보급선의 한계가 벌써부터 드러나며 화려한 입성의 이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대육군은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버리고 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무혈입성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곳에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민족주의자들의 지지 기반을 다지려 했으나, 끔찍한 비포장도로와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보급 마차가 뒤처지면서 식량 부족과 이질 등의 전염병이 창궐하여 진격 초기부터 심각한 비전투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오스트로브노 전투]

러시아군 후위대와 프랑스군 전위대가 마주치며 치열한 기병전이 벌어집니다. 원정군이 전술적 승리를 거두며 적을 몰아내지만, 적의 주력을 섬멸하려는 목표는 이번에도 달성하지 못합니다.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조아생 뮈라가 이끄는 프랑스 기병대와 오스테르만-톨스토이의 러시아 4군단이 오스트로브노 일대에서 치열하게 격돌했습니다. 프랑스군은 러시아군을 비테브스크 방향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러시아군은 질서 정연하게 퇴각을 완료하여 나폴레옹이 그토록 원하던 결정적인 병력 섬멸전은 다시 한번 허무하게 무산되었습니다.

[텅 빈 비테브스크 점령]

황제가 큰 결전을 기대하며 도시에 입성하지만, 적은 또다시 밤을 틈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습니다. 지친 병력의 휴식과 보급을 위해 진격을 잠시 멈추고 향후 전략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바클라이 드 톨리가 이끄는 제1서부군이 바그라티온의 제2서부군과 합류하기 위해 비테브스크를 몰래 빠져나가 스몰렌스크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폴레옹은 텅 빈 도시에 입성한 후 극심한 피로와 질병에 시달리는 병력들을 재정비하기 위해 약 보름 동안 뼈아픈 휴식을 취해야 했고, 원정의 장기화 가능성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제1차 크라스노이 전투]

러시아군 보병 사단이 대규모 프랑스 기병대의 맹공을 방진을 짜고 결사적으로 막아냅니다. 기습을 통해 적의 배후를 치려던 작전이 지연되면서 전황은 프랑스군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뮈라와 네 원수가 이끄는 강력한 프랑스 선봉대가 스몰렌스크 남쪽 크라스노이 근처에서 네베로프스키 장군의 러시아 27보병사단과 마주쳤습니다. 러시아 보병들은 압도적인 수적 열세 속에서도 빽빽한 밀집 방진을 형성하여 프랑스 기병대의 무자비한 파상 공세를 끝끝내 견뎌내며 스몰렌스크로 철수하는 놀라운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화염에 휩싸인 스몰렌스크]

양군의 주력이 마침내 성벽을 낀 거대한 요새 도시에서 격돌하여 엄청난 포격전이 벌어집니다. 도시는 잿더미로 변하고 적은 또다시 밤을 틈타 강 너머로 물러나며 기나긴 소모전의 양상을 띱니다.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벌어진 스몰렌스크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적을 완전히 궤멸시키고자 견고한 성벽을 향해 대규모 포격을 퍼부었고 도시는 끔찍한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바클라이 드 톨리는 도시를 방어하던 군대의 철수 시간을 벌어준 뒤 목교를 불태우고 드니프로강 북쪽으로 전면 퇴각하여 프랑스군은 잿더미가 된 빈 껍데기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발루티노의 혈투]

퇴각하는 적의 꼬리를 잡기 위해 추격대가 필사적인 공격을 감행합니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며 양측 모두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나, 적의 주력 부대는 간발의 차이로 포위망을 빠져나갑니다.
미셸 네 원수의 3군단이 철수하는 러시아군의 후위를 발루티노(Valutino) 언덕 부근에서 맹렬히 공격하며 격렬한 전투가 발생했습니다. 장 안도슈 쥐노 장군의 프랑스 군단이 제때 우회 기동을 완수하여 러시아군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면 대승을 거둘 수 있었으나, 그의 우유부단한 머뭇거림 탓에 바클라이 드 톨리의 주력군은 치명적인 포위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모스크바 쪽으로 달아났습니다.

[러시아군의 새 사령관 취임]

끊임없는 후퇴에 지치고 분노한 여론에 떠밀려 러시아 황제가 군의 총사령관을 전격적으로 교체합니다. 국민적 영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마침내 적을 상대로 한 거대한 결전이 임박했음을 알립니다.
영토를 내주며 퇴각만 거듭하는 바클라이 드 톨리의 전략에 군부와 귀족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알렉산드르 1세는 노련한 명장 미하일 일라리오노비치 쿠투조프를 새로운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쿠투조프 역시 후퇴 전략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끓어오르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 모스크바 서쪽 근교에서 나폴레옹의 군대와 피할 수 없는 정면 승부를 벌이기로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셰바르디노 보루 전투]

다가올 대결전을 앞두고 적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초전이 벌어집니다. 맹렬한 돌격 끝에 적의 외곽 거점을 탈취하며 본대의 유리한 전개 고지를 확보합니다.
보로디노 대전투를 앞두고 프랑스군은 러시아군 좌익의 거추장스러운 돌출부인 셰바르디노 보루를 집중적으로 타격했습니다. 캄팡 장군이 이끄는 사단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치열한 백병전 끝에 보루를 완전히 장악했고, 이로써 나폴레옹은 며칠 뒤 벌어질 본 전투를 위해 군대를 넓게 전개할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피로 물든 보로디노 전투]

모스크바를 눈앞에 두고 두 제국의 모든 전력이 맞붙은 단일 전투 사상 가장 참혹한 혈투가 펼쳐집니다. 양측 합쳐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끝에 수비군이 물러서며 진격로가 완전히 열리게 됩니다.
모스크바 강 근처 보로디노에서 나폴레옹의 13만 대군과 쿠투조프의 12만 방어군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라예프스키 대보루'와 '바그라티온의 화살보'를 둘러싼 처절한 포격전과 육박전으로 인해 프랑스 원수들과 러시아 명장들이 대거 전사하는 등 양측 합쳐 무려 7만 명 이상의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고, 쿠투조프가 밤을 틈타 모스크바 남쪽으로 철수하며 전투는 프랑스군의 피로 얼룩진 씁쓸한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모스크바 텅 빈 입성]

길고 험난했던 원정 끝에 마침내 제국의 상징적인 심장부에 발을 들이지만, 적의 황제는 항복 사절을 보내지 않습니다. 거리는 텅 빈 유령 도시처럼 비어있어 승리의 영광 대신 알 수 없는 불안감만이 엄습합니다.
나폴레옹과 그의 대육군은 러시아의 신성한 심장인 모스크바에 마침내 당당히 입성했습니다. 크렘린궁에 들어선 나폴레옹은 알렉산드르 1세가 마땅히 항복 조약을 맺으러 올 것이라 고대했으나, 도시의 총독 로스톱친은 이미 인구의 대부분을 소개시키고 식량 창고를 텅 비운 채 도시를 완벽한 유령 도시로 만들어 놓아 침략자들에게 커다란 당혹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수도를 집어삼킨 대화재]

입성 당일 밤부터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무서운 불길이 솟아오릅니다. 적군의 거처를 없애려는 극단적인 초토화 작전으로 수백 년 된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며 원정군은 쉴 곳을 잃고 맙니다.
모스크바 점령 직후인 14일 밤부터 시작된 원인 모를 불길이 18일까지 나흘 동안 도시 전체를 맹렬하게 집어삼켰습니다. 로스톱친 총독이 미리 조직한 방화범들이 체계적으로 불을 질렀으며 소방용 펌프마저 모두 치워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군대는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던 도시의 4분의 3 이상이 잿더미로 변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고 혹독한 겨울을 날 귀중한 숙영지와 보급품을 통째로 잃어버렸습니다.

[타루티노 전투의 기습]

화재의 잿더미 속에서 무의미한 평화 협상을 기다리던 중, 남쪽 외곽에 주둔하던 부대가 적의 기습 공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습니다. 이는 휴전의 희망을 완전히 박살 내고 철군을 결심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쿠투조프의 러시아군이 모스크바 남쪽 타루티노 근처(빈코보)에 진을 치고 헐벗고 있던 뮈라의 프랑스 전위 기병대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휴전을 기대하며 방심하고 있던 뮈라의 부대는 막대한 장비와 병력 손실을 입은 채 가까스로 도주했으며, 이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알렉산드르 1세에게 평화 협상 의지가 전혀 없음을 확실히 깨닫고 눈이 내리기 전 모스크바를 버릴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모스크바 철수 명령]

식량은 고갈되고 겨울의 추위가 엄습하자 마침내 황제는 빈손으로 철군을 지시합니다. 승리 없는 패주로 기록될 기나긴 지옥의 퇴각로가 시작되며 부대의 사기는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모스크바에 입성한 지 불과 35일 만에, 나폴레옹은 수많은 부상병들을 모스크바에 버려둔 채 약 10만 명으로 쪼그라든 병력과 쓸모없는 약탈품만을 싣고 크렘린을 나섰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황폐화시켰던 스몰렌스크 경로를 피해, 식량과 마초가 아직 풍부하게 남아있는 남쪽 칼루가 방향의 새로운 경로를 통해 안전하게 겨울 숙영지로 후퇴하려 계획했습니다.

[파리의 쿠데타 시도]

황제가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 고전하는 사이, 제국의 수도에서 황제의 전사 소문과 함께 체제 전복 시도가 발생합니다. 반란은 신속히 진압되지만, 독재 정권의 취약성을 여실히 노출합니다.
공화주의자 클로드 프랑수아 말레(Claude-François Malet) 장군이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전사했다는 가짜 문서를 정교하게 조작하여 파리에서 병력을 동원하고 주요 장관들을 체포하는 등 정부 장악을 시도했습니다. 반란은 불과 몇 시간 만에 허술함이 들통나며 진압되었으나, 훗날 이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자신의 권력 기반이 부재 시 얼마나 모래성처럼 흔들릴 수 있는지 깨닫고 부대를 버려둔 채 급거 귀국을 결심하는 강력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말로야로슬라베츠 전투]

풍요로운 남쪽 길로 우회하려던 계획이 적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갑니다. 치열한 시가전 끝에 마을을 점령하지만, 전략적 이점을 상실하고 초토화된 낡은 길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게 됩니다.
외젠 드 보아르네가 이끄는 이탈리아 군단이 남하를 가로막는 독투로프의 러시아 군단과 말로야로슬라베츠에서 격돌하여 마을의 주인이 8번이나 바뀔 정도의 끔찍한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전투 자체는 프랑스군의 승리였으나, 러시아군 주력이 남쪽 경로를 단단히 틀어막자 나폴레옹은 어쩔 수 없이 이미 자신이 다 태워버려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북쪽의 낡은 스몰렌스크 가도로 방향을 돌리는 최악의 결정을 내리고 맙니다.

[차스니키 전투의 위협]

북쪽 측면을 지키던 군단이 적군의 반격에 밀려 패배하며 퇴각로 전체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습니다. 원정군의 철수 루트를 차단하려는 적의 포위망이 점점 더 숨통을 좁혀오기 시작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끄는 맹렬한 러시아 북부군이 프랑스의 빅토르 군단과 우디노 군단을 차스니키에서 공격하여 패퇴시켰습니다. 이 뼈아픈 패배로 인해 프랑스군의 든든한 북쪽 측면 방어선이 뚫리면서, 주요 보급 기지인 비테브스크가 러시아군에 함락되었고 본대의 유일한 서쪽 퇴로가 끊길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에 본격적으로 노출되었습니다.

[뱌즈마의 지옥불]

퇴각하는 군대의 후미가 적의 정규군과 코사크 기병대에게 단절되어 처참한 타격을 입습니다. 규율이 무너진 군인들이 무기를 버리고 달아나며 대육군의 질서가 본격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스몰렌스크로 향하는 험난한 퇴각로에서 밀로라도비치의 러시아군이 루이 니콜라 다부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 후위대를 뱌즈마 부근에서 단절시키고 강력히 포위 공격했습니다. 네 장군과 외젠의 결사적인 구원 덕분에 완전한 부대 섬멸은 면했으나 끔찍한 사상자가 발생했고,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병사들의 군기가 완전히 무너져 부대가 오합지졸의 무리로 전락하는 불행한 기점이 되었습니다.

[스몰렌스크 재입성]

끔찍한 행군 끝에 막대한 식량이 있을 거라 기대했던 거점에 도착하지만, 물자는 턱없이 부족하여 병사들을 절망에 빠뜨립니다. 통제력을 잃은 굶주린 군대가 창고를 약탈하며 아비규환이 펼쳐집니다.
혹독한 눈보라와 영하의 날씨를 뚫고 잔존 병력이 스몰렌스크에 힘겹게 도착했으나, 관리 부실과 물류 시스템의 마비로 인해 기대했던 대규모 보급품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배고픔에 이성을 잃은 병사들이 군기를 무시하고 남은 식량 창고를 무질서하게 약탈하면서 지휘 체계는 마비되었고, 나폴레옹은 여기서 재정비할 희망을 버리고 나흘 뒤 다시 지옥의 철군 길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스몰랴니 전투]

북쪽 방어선을 회복하기 위해 공세를 펼치지만 적군의 견고한 방어에 막혀 큰 손실을 입고 후퇴합니다. 측면의 지속적인 붕괴는 퇴각하는 본대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11월 13일부터 14일까지 빅토르와 우디노의 프랑스 군단이 비트겐슈타인의 러시아 북부군을 밀어내기 위해 스몰랴니 인근에서 과감한 선제공격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뼈를 깎는 강렬한 추위 속에서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끝내 뚫지 못하고 철수함으로써, 대육군의 북쪽 퇴로를 넓게 보호하려던 나폴레옹의 계획은 또다시 뼈아픈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제2차 크라스노이 전투의 비극]

길게 늘어진 퇴각 대열의 허리를 적의 대군이 맹렬하게 끊어 공격합니다. 황제의 친위대까지 투입되는 혈투 끝에 본대는 가까스로 빠져나가지만, 후방 부대는 사실상 궤멸적인 타격을 입습니다.
스몰렌스크를 떠나 길게 늘어져 이동하던 쇠약한 프랑스군을 쿠투조프의 대규모 러시아군이 11월 15일부터 18일까지 크라스노이 일대에서 집요하게 요격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아껴두었던 제국 근위대까지 투입하여 결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서쪽으로 도주하는 데 성공했으나, 뒤처져 있던 외젠, 다부, 네의 군단은 차례로 각개격파당하며 엄청난 병력과 대포를 상실하는 대참사를 겪었습니다.

[최후의 후위대, 네의 기적]

본대와 완전히 끊어져 전멸 위기에 처했던 후방 사령관이 얼어붙은 강을 건너 극적으로 살아서 합류합니다. 영웅적인 생환은 지옥 같은 퇴각로에서 잠시나마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줍니다.
크라스노이 전투에서 본대와 단절되어 겹겹이 포위된 네 원수는 항복 권유를 단호히 거부하고, 남은 3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적의 허를 찔러 방향을 튼 뒤 살얼음이 언 드니프로강을 한밤중에 목숨을 걸고 건넜습니다. 무수한 추격과 극한의 추위를 기적적으로 이겨내고 오르샤에서 마침내 본대와 극적으로 재합류하며 그는 나폴레옹으로부터 '용자 중의 용자'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베레지나강의 사투]

얼음물과 적군의 완벽한 포위망 사이에 갇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가교 공병들의 초인적인 희생으로 다리가 놓입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 속에서 부대의 잔존 세력이 강을 건너 탈출에 성공합니다.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남북에서 좁혀오는 러시아군의 거대한 포위망에 갇힌 나폴레옹은, 얼음이 떠다니는 영하의 베레지나강에 에블 장군이 이끄는 가교 공병들을 투입하여 목숨을 건 다리 건설을 지시했습니다. 공병들이 얼음물 속에서 줄줄이 동사하며 완성한 두 개의 다리를 통해 전투원들이 치열한 교전 끝에 기적적으로 도하에 성공했으나, 뒤처진 수만 명의 비전투원과 부상병들은 끊어진 다리 뒤편에서 익사하거나 코사크 기병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하는 생지옥을 맛보았습니다.

[황제의 전격적인 탈출]

본국에서 발생한 쿠데타 미수 소식과 붕괴하는 제국을 수습하기 위해 지도자가 무너져가는 군대를 버려두고 홀로 파리로 은밀히 떠납니다. 이 결정으로 남겨진 병사들의 일말의 희망마저 완전히 사라집니다.
스모르고니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파리에서 말레 장군이 자신의 전사 소문을 퍼뜨리며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급보를 상기하고, 제국의 정치적 붕괴를 막고자 남은 부대의 지휘권을 뮈라에게 떠넘긴 채 썰매를 타고 은밀하게 파리로 떠났습니다. 황제가 자신들을 혹한 속에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병사들은 극심한 배신감과 절망에 빠졌고 남은 퇴각로는 완벽한 통제 불능의 와해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빌뉴스에서의 대혼란]

시작점이었던 도시로 돌아왔으나 밀려드는 적의 공세에 도시는 통제력을 잃고 생존을 위한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막대한 군자금과 식량을 거리에 내버린 채 끔찍한 패주가 이어집니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가혹한 날씨 속에 굶주린 잔존 병력들이 빌뉴스에 도착했으나 총사령관을 맡은 뮈라의 지휘 체계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코사크 기병대가 도시 외곽에 들이닥치자 극도의 공포에 질린 장교와 병사들은 보급 창고와 엄청난 양의 프랑스군 금괴가 실린 마차들을 거리에 팽개쳐둔 채 폰나르 고개를 향해 앞다투어 짐승처럼 달아나는 최악의 추태를 보였습니다.

[대육군의 처참한 종말]

원정의 출발지였던 강을 다시 건너 귀환한 병력은 처음에 비하면 한 줌도 되지 않는 비참한 몰골이었습니다. 반년 만에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전쟁의 사실상 마침표가 찍힙니다.
최후의 후위대를 끈질기게 지휘하던 네 원수가 마지막 병사 한 명까지 강을 건너보낸 뒤 자신도 코브노 부근에서 꽁꽁 얼어붙은 니에멘강을 건너 퇴각했습니다. 6월에 위풍당당하게 강을 건넜던 60만 대군 중 무사히 살아서 폴란드 국경을 넘어 돌아온 전투 병력은 불과 수만 명에 불과했으며, 이는 나폴레옹 무적 신화의 영원한 종언을 전 세계에 알리는 끔찍하고도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타우로겐 협약의 배신]

억지로 동맹에 끌려왔던 프로이센 사령관이 독단적으로 러시아군과 중립 협정을 맺고 군대를 물립니다. 이는 프랑스의 패권이 무너졌음을 상징하며 전 유럽이 반기를 드는 신호탄이 됩니다.
대육군의 좌익을 담당하여 억지로 참전 중이던 프로이센의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 장군이 나폴레옹의 몰락을 직감하고, 독단적으로 러시아 측과 타우로겐(Tauroggen)에서 비밀 중립 조약을 전격 체결했습니다. 이 협약으로 인해 프랑스군의 얇은 북쪽 방어망이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이듬해 국왕 주도의 프로이센이 프랑스에 등을 돌리고 제6차 대프랑스 대동맹이 결성되는 결정적인 정치적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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