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2세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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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는 기원전 1313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그는 약 90세까지 살며 이집트의 위대한 통치자로 군림하게 된다.
람세스 2세는 26세의 나이에 파라오로 즉위하여 무려 64년간 통치했다. 그의 치세 동안 이집트는 리비아, 누비아, 팔레스타인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고대 이집트의 전성기를 누렸다.
[거대 건축물 건설]
람세스 2세는 아부심벨 신전, 카르나크 신전, 라메세움 등 이집트 전역에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여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알리고 이집트의 위용을 과시했다.
람세스 2세는 파라오로서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아부심벨 신전, 카르나크 신전, 라메세움 등 수많은 거대한 건축물을 이집트 전역에 세웠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현재까지도 람세스 2세의 위대한 통치를 증명하는 유산으로 남아있다.
[누비아 원정 및 전승 기념비 건립]
람세스 2세는 나일 제1 강을 넘어 누비아로 원정을 떠나 성공적인 전승을 거두었으며, 이를 기념하는 비석들을 많이 세웠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의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나일 제1 강 너머의 누비아 지역으로 원정을 떠났다. 그는 이 원정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수많은 전승 기념비를 세웠다. 누비아는 훗날 이집트에 동화되어 본가 이집트의 쇠퇴를 구원하는 왕조를 세우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출애굽기 파라오 추정 논란]
일부 성서학자들은 구약 출애굽기의 파라오를 람세스 2세로 추정하며, 그가 건설한 도시와 셈족 거주지의 변화 등을 근거로 삼으나 이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다.
성경의 출애굽기에서는 파라오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지만, 일부 성서학자들은 람세스 2세를 출애굽기의 파라오로 추정한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비돔과 라암셋 등의 도시, 그리고 셈족이 거주하던 아바리스가 버려진 시기 등을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아바리스가 버려진 이유에 대한 다른 해석이 있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람세스 2세 시대의 대규모 셈족 축출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람세스 3세나 4세 등 다른 파라오를 출애굽의 파라오로 보는 주장도 존재한다.
[카데쉬 전투 발발]
람세스 2세가 직접 출정하여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와 역사적인 카데쉬 전투를 벌였다. 이집트군은 거짓 정보에 속아 고전했으나, 전투 결과는 양측 기록이 달라 논란이 있다.
람세스 2세는 치세 전반기에 히타이트와 팔레스타인을 두고 세력을 다투었고, 기원전 1274년에는 직접 카데쉬 전투에 참전하여 히타이트의 무와탈리 2세와 맞섰다. 이집트군은 주력 군단이 괴멸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히타이트 세력을 팔레스타인에서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이 전투의 결과에 대해서는 양측의 기록이 달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세계 최초의 이집트-히타이트 평화 조약 체결]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와의 장기간 전쟁 끝에 세계사 최초의 평화 조약으로 평가받는 협정을 체결하고 휴전했다. 그는 히타이트 왕녀를 왕비로 맞이하며 평화 시대를 열었다.
카데쉬 전투 이후에도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서로 상대를 완전히 물리치지 못한 채 장기간 전쟁을 이어갔다. 결국 람세스 2세의 재위 21년째인 기원전 1268년, 양국은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휴전에 돌입했다. 이 조약은 세계사에서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평가받으며,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녀를 왕비로 맞이하여 평화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23년경, 약 90세의 고령으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으로 이집트 제19왕조는 후임 파라오인 메르넵타에게로 이어졌으며, 람세스 2세의 위대한 치세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