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연표
1875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왕국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레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였다.
1886
1886년부터 1891년까지 육군 유년 학교에서 군인 교육을 받았으나 중퇴하고, 프라하, 뮌헨, 베를린 등의 대학에서 철학 및 역사학을 공부했다.
1894
11월 시집 《삶과 노래(Leben und Lieder)》를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897
뮌헨에서 만난 연인 루 살로메의 조언에 따라 본명인 레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마리아 릴케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로 이름을 바꾸었다. 루 살로메와의 만남은 그의 제2기 생애의 시작으로, 그의 문학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1899
뮌헨에서 만난 루 살로메에게 감화받아 러시아 여행을 떠났으며, 러시아의 자연과 소박한 슬라브 농민들 속에서 《나의 축제를 위하여》,《사랑하는 신 이야기》,《기도 시집》,《형상 시집》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1902
이후 파리로 건너가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비서가 되었다. 로댕의 이념인 모든 사물을 깊이 관찰하고 규명하는 능력을 기르며,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07
《신시집》과 《로댕론》을, 1908년 《신시집 제2부》를 발표했다. 이어 1909년에는 파리 시대의 불안과 고독, 인간의 발전을 아름답게 서술한 유일한 장편소설인 《말테의 수기》를 발표하며 그의 문학적 성숙을 보여주었다.
1913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릴케는 작품 활동을 중지하고 10년간 침묵의 시기를 보냈다. 이는 그의 생애와 작품 활동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1923
10년간의 침묵 끝에 스위스의 고성에서 그의 문학적 여정을 장식하는 최후의 대작인 《두이노 비가》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를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시대의 순수한 영혼의 부르짖음으로 높이 평가된다.
1926
죽음 직전에 백혈병으로 진단받았고, 입속 궤양과 위장 통증 등으로 고생했다. 스위스 발몽 요양소에서 사망했다.
1927
스위스 비스프 서쪽에 있는 라론 공동 묘지에 묻혔다. 그는 자신의 비문으로 "장미, 오 순수한 모순, 욕망, 이렇게도 많은 뚜껑 아래에서 아무도 잠을 자지 않는다."라는 시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