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울리히
연표
1963
프로 테니스 선수 토르벤 울리히와 론 울리히의 아들로 덴마크 겐토프테 시에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프로 테니스 선수 아이너 울리히였고, 할머니는 유대교 집안이었던 율리 메이어였다.
1973
[딥 퍼플 콘서트 관람과 음악적 영감]
9살의 라스 울리히는 아버지를 따라 코펜하겐 스타디움에서 열린 딥 퍼플 콘서트를 관람하고 리치 블랙모어의 퍼포먼스에 매혹되어 음악의 길을 결심했다.
1973년 2월, 라스 울리히의 아버지는 친구들을 위한 딥 퍼플 콘서트 티켓을 구했고, 한 친구가 불참하자 9살의 울리히에게 티켓이 주어졌다. 그는 리치 블랙모어의 연주에 깊이 빠져들었으며, 다음날 앨범 'Fireball'을 구매했다. 이 경험은 그가 로큰롤과 헤비메탈 커리어를 걷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75
딥 퍼플 콘서트 이후 헤비메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2~13세였던 라스 울리히는 할머니를 졸라 루드위그 드럼 셋을 구입하며 본격적으로 드럼 연주를 시작했다.
1980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
테니스 훈련을 위해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지만, 테니스보다는 드럼 연주에 더욱 몰두했다.
1980년 여름, 테니스 수업의 일환으로 가족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그는 프로 테니스 선수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테니스를 쳤지만, 드럼 연주에 대한 열정이 훨씬 강했다.
1981
[메탈리카 결성]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어 밴드 결성을 시도했고, 이를 통해 보컬/기타리스트 제임스 헷필드를 만나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를 창립했다.
1981년, 영국 헤비메탈 밴드 다이아몬드 헤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라스 울리히는 미국으로 돌아와 지역 신문에 밴드를 결성하겠다는 광고를 냈다. 이 광고를 보고 연락한 제임스 헷필드와 함께 메탈리카를 결성하며 헤비메탈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위대한 여정을 시작했다.
1997
1997년, 의사 스카일라 새튼스타인과 결혼했다. 그녀는 영화 배우 맷 데이먼과 약혼했던 사이로, 영화 "굿 윌 헌팅"의 여주인공 모델이기도 했다. 이 결혼을 통해 두 아들 마일즈(1998년생)와 레인(2001년생)을 얻었다.
1998
1997년 스카일라 새튼스타인과 결혼 후, 1998년 8월 5일 첫 아들 마일즈를 품에 안았다.
2000
2000년 4월, 라스 울리히는 메탈리카를 대표하여 냅스터의 음악 파일 불법 공유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당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음악 산업 전반에 걸쳐 저작권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냅스터 고소 사건]
밴드를 대표하여 미국 상원 재판소에 냅스터와 30만 명의 사용자를 상대로 서비스 중단을 요구하는 공식적인 고소를 제기했다.
2000년 7월, 라스 울리히는 메탈리카를 대표하여 미국 상원 재판소에 냅스터와 약 30만 명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음악 파일 공유 서비스 중단을 요구하는 정식 고소를 제기했다. 비록 승소하여 냅스터의 음악 파일 공유는 중단되었지만, 이로 인해 많은 팬들과 대중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디지털 시대 저작권 문제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례로 남았다.
2001
스카일라 새튼스타인과의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 2001년 5월 6일 둘째 아들 레인을 맞이했다.
2004
2004년, 이혼 후 덴마크 영화배우 코니 닐슨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2007년 셋째 아들 브라이스를 얻었다.
2004년 3월, 7년간 이어져 온 의사 스카일라 새튼스타인과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했다.
2007
코니 닐슨과의 교제 중이던 2007년 5월 21일, 셋째 아들 브라이스를 얻었다.
2017
2017년, 라스 울리히는 덴마크 왕실로부터 다네브로 훈장 6등급(Ridder af Dannebrog)을 수훈하며, 음악 분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는 그의 모국에서의 명예로운 업적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