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연표
1925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다]
20세기 세계 최고의 바리톤으로 손꼽히는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교장 테너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았습니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는 1925년 5월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장이자 테너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자라며 재능을 키웠다. 처음에는 테너를 지망했으나 음성이 바리톤으로 변하였다.
1936
[11세, 지휘 콩쿠르 입상]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는 11세의 나이에 지휘 콩쿠르에 입상하며 그 잠재력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는 11세 때 지휘 콩쿠르에 입상하며 음악적 재능을 조기에 드러냈다.
1940
[15세, 바흐 칸타타 논문 발표]
15세의 어린 나이에 '바흐의 칸타타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깊이 있는 음악적 통찰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라이즈너의 노래를 듣고 가수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15세 때 '바흐의 칸타타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냈다. 이후 라이즈너의 노래를 들은 후 가수가 되기를 결심하고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서 헤르만 바이젠보른에게 사사했다.
1943
1943년 1월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에서 가곡 가수로 데뷔했다.
1944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및 포로 생활]
베를린음대 재학 중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 국방군으로 참전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 포로로 잡혀 2년간 미국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습니다.
1944년 베를린음대에서 퀸터 바이젠보른에게 사사하던 중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 국방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포로로 잡혀 미국의 포로로 2년을 보냈다.
1947
[슈베르트 '겨울의 여행'으로 명성 얻기 시작]
전쟁이 끝난 후 베를린 리아스 방송국에서 녹음한 슈베르트의 '겨울의 여행'이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프라이부르크에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에 출연하여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베를린 리아스 방송국에서 녹음한 '겨울의 여행'이 널리 알려졌다. 같은 해 프라이부르크에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에 출연하여 명성을 얻었다.
1948
[베를린 시립가극장 계약 및 오페라 성공]
베를린 시립가극장과 전속 계약을 맺고 오페라 무대에서도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피가로와 볼프람 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48년부터 베를린 시립오페라의 가수가 되었다. 많은 곡 중 특히 피가로와 볼프람 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50
[에든버러 음악제에서 국제적 활약]
에든버러 음악제에서 오토 클렘퍼러의 지휘로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공연하며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에 에든버러 음악제에서 오토 클렘퍼러의 지휘로 '대지의 노래'를,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독일 레퀴엠'을 불렀다.
1951
[잘츠부르크 음악제 명연 기록]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거장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지휘로 말러의 '죽은 아기를 그리는 노래'를 공연하여 역사적인 명연으로 녹음되었습니다.
1951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지휘로 '죽은 아기를 그리는 노래'를 공연했다. 이 녹음은 명연으로서 레코드에 남아 있다.
1955
[바이로이트 출연 후 세계적 명성 확립]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출연한 이후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며 독일 가곡 분야에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55년에 바이로이트에 출연한 이후 전 세계에 걸쳐 활약하였다. 특히 독일 가곡의 분야에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2005
2005년 폴라음악상을 수상하며 음악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2
[노환으로 영면하다]
20세기 최고의 바리톤으로 손꼽히는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는 87세의 나이로 노환으로 사망하며 음악계에 큰 슬픔을 안겼습니다.
2012년 5월 18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사망은 20세기 음악계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큰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