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웨인 존슨
연표
1972
[드웨인 존슨 출생]
미국의 배우이자 프로레슬링 선수인 드웨인 더글러스 존슨이 캘리포니아주 헤이워드에서 태어났습니다. WWE에서는 '더 락'이라는 링네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드웨인 더글러스 존슨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헤이워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훗날 '더 락'이라는 링네임으로 WWE 프로레슬링계의 아이콘이 되었고, 할리우드에서는 최고의 수입을 올리는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1
[마이애미 대학교 입학 및 풋볼 선수 활동]
전액 장학금을 받고 마이애미 대학교에 입학, 마이애미 허리케인즈 풋볼팀 1군에 입단하며 촉망받는 풋볼 유망주로 활약했습니다.
드웨인 존슨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마이애미 대학교에 입학하여 미식축구팀 '마이애미 허리케인즈'의 1군에 입단했습니다. 그는 촉망받는 풋볼 유망주로서 활약을 펼쳤지만 부상으로 인해 다른 선수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됩니다.
1995
[대학교 졸업 및 CFL 활동]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범죄학과 생리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했습니다. 이후 부상으로 NFL 진출이 좌절되자 캐나다 CFL에서 잠시 활동했습니다.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범죄학과 생리학 일반 교양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한 드웨인 존슨은 부상으로 인해 NFL 팀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캐나다로 건너가 NFL의 2부격인 CFL에서 잠시 활동했으나, 보람을 찾지 못하고 프로레슬링으로 진로를 전환하게 됩니다.
1996
[WWE 데뷔 '록키 마이비아']
아버지 록키 존슨과 할아버지 하이 치프 피터 마이비아의 이름을 따 '록키 마이비아'라는 링네임으로 메디슨 스퀘어 가든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WWE에 데뷔했습니다.
드웨인 존슨은 아버지 록키 존슨과 할아버지 하이 치프 피터 마이비아의 유명한 레슬러 계보를 이어 1996년 11월 17일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록키 마이비아'라는 이름으로 WWE에 데뷔했습니다. 그는 데뷔 초 골더스트와 크러쉬를 제거하며 최후까지 살아남는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1997
['더 락'으로 링네임 변경 및 악역 전환]
부상 공백기 후 '더 락'으로 링네임을 변경하고 악역 스테이블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8월 11일, 부상으로 인한 공백기를 마치고 컴백한 드웨인 존슨은 링네임을 '록키 마이비아'에서 '더 락'으로 바꾸고 파룩의 승리를 도우며 악역 스테이블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에 가입했습니다. 이 시점부터 그의 엄청난 마이크웤과 운동신경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팬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98
["If you smell ~ what the rock is cookin!" 유행어 탄생]
한 인터뷰에서 그의 상징적인 유행어인 "더 락이 요리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1998년 3월 29일, '더 락'은 한 인터뷰에서 훗날 역사에 남을 그의 트레이드마크 유행어인 "If you smell ~ what the rock is cookin!"(더 락이 요리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겠나?)을 탄생시키며 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WWE 챔피언 등극]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공석이던 WWE 타이틀을 차지하며 챔피언에 등극, 빈스 맥맨의 코퍼레이션과 연합하며 명실상부한 메인 이벤터로 발돋움했습니다.
1998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공석 상태였던 WWE 타이틀을 두고 믹 폴리, 빅 보스 맨, 켄 샴락, 언더테이커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모두 물리치고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이는 빈스 맥맨의 코퍼레이션과의 은밀한 연합 관계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더 락'이 완벽한 메인 이벤터로서 WWE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99
[WWE 역사상 최고 시청률 기록]
그의 생일 파티 세그먼트가 WWE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엄청난 인기를 입증했습니다.
1999년 9월 29일, '더 락'의 생일 파티 세그먼트가 진행되었고 이는 WWE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는 당시 그의 폭발적인 인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2000
2000년 1월 23일 로얄 럼블에서 24번으로 등장한 '더 락'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WWE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대세임을 강력하게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2001
[영화 '미이라 2' 출연으로 배우 데뷔]
우연한 기회로 영화 '미이라 2'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디뎠고, 이 영화의 성공은 스콜피온 킹 주연을 따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드웨인 존슨은 2001년 영화 '미이라 2'에 마테유스 스콜피온 킹 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서 데뷔했습니다. 이 영화의 흥행으로 그의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이는 이후 영화 '스콜피온 킹'의 첫 주연을 맡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2
[영화 '스콜피온 킹'으로 배우로서 첫 성공]
영화 '스콜피온 킹'에서 첫 주연을 맡아 최고의 개런티를 받으며 흥행에 대성공,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습니다.
2002년, 드웨인 존슨은 영화 '스콜피온 킹'의 첫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는 첫 주연 배우로서 이례적으로 최고의 개런티를 받았으며, 영화는 역대 WWE 소속 슈퍼스타의 주연작 중 전례 없는 대박을 터뜨리며 그의 배우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확실하게 입증했습니다.
[헐크 호건과의 '아이콘 VS 아이콘' 매치]
레슬매니아 18에서 전설적인 헐크 호건과 '아이콘 VS 아이콘' 매치를 펼치며 역사에 남을 명장면을 연출했습니다.
2002년 3월 17일 레슬매니아 18에서 '더 락'은 WWE의 또 다른 전설인 헐크 호건과 '아이콘 VS 아이콘'이라는 세기의 대결을 펼쳤습니다. 이 경기는 프로레슬링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자 꿈의 매치로 기록되었습니다.
[WWE 통합 챔피언 등극]
영화 촬영 공백기 후 WWE에 컴백하여 벤젼스에서 커트 앵글과 언더테이커를 상대로 승리하며 WWE 통합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영화 촬영으로 몇 개월 동안 공백기를 가졌던 '더 락'은 2002년 여름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WWE에 컴백했습니다. 그해 7월 열린 '벤젼스'에서 커트 앵글과 언더테이커를 상대로 명경기를 만들어 내며 WWE 통합 챔피언에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2003
[본격적인 배우 활동 시작 및 프로레슬러 은퇴]
영화 '웰컴 투 더 정글'을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배우의 길로 들어섰으며, WWE에서는 '할리우드 기믹'의 악역으로 활동하며 현역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사실상 마무리했습니다.
2003년 영화 '웰컴 투 더 정글'을 시작으로 드웨인 존슨은 본격적인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WWE에서는 자신의 현 상황을 살린 '할리우드 기믹'이라는 악역으로 돌아와 헐크 호건, 스티브 오스틴, 빌 골드버그 등 초 슈퍼스타들과 대립하며 사실상 현역 선수로서의 프로레슬링 커리어를 마무리했습니다.
2007
[영화 '게임 플랜' 성공으로 할리우드 탑스타 등극]
코미디 가족영화 '게임 플랜'이 박스오피스에서 대박을 터뜨리며 배우 경력의 제2의 전성기를 가져왔고, 할리우드 A급 탑스타로서의 명성을 확립했습니다.
액션 배우에서 노선을 살짝 틀어 코미디 가족영화에 손길을 뻗은 드웨인 존슨은 2007년 영화 '게임 플랜'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달성하며 예산 2200만 달러로 1억 5천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 그의 배우 경력에 제2의 전성기를 가져왔고 할리우드 A급 탑스타로서의 명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1
[WWE 복귀 (쇼 호스트)]
프로레슬링 은퇴 후 7년 만에 WWE에 레슬매니아 쇼 호스트로 대망의 컴백을 했으며, 레전드 기믹으로 돌아와 엄청난 흥행을 몰고 왔습니다.
프로레슬링 현역 선수 생활을 마친 지 정확히 7년이 흐른 2011년 2월 14일, 드웨인 존슨은 레슬매니아를 앞두고 쇼 호스트로서 WWE에 대망의 컴백을 했습니다. 그는 레전드 기믹으로 복귀하여 존 시나 등과의 대결을 통해 실제로 WWE에 엄청난 흥행을 몰고 왔습니다.
2013
['분노의 질주' 시리즈 성공 및 최고 흥행 배우 등극]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주연으로 출연하여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세계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2013년 할리우드 배우 중 가장 높은 흥행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드웨인 존슨은 2013년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주연으로 등장하며 각각 6억 달러, 8억 달러의 월드 와이드를 기록하는 등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 명실공히 세계적인 배우로 우뚝 섰습니다. 또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2', '지 아이조 2' 등의 성공으로 2013년 가장 높은 흥행 수입을 기록한 할리우드 배우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2017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 캠페인]
미국에서 그를 2020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시키려는 캠페인이 벌어졌고,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당시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를 앞지르기도 했습니다.
2017년 미국에서는 드웨인 존슨을 2020년에 열리는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시키는 캠페인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여론조사에서 당시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를 앞지르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9
드웨인 존슨은 2019년, 오랜 기간 교제해 온 로렌 하시안과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이들은 이미 두 딸을 두고 있었습니다.
2020
[가족의 코로나19 확진 및 회복 발표]
자신과 아내, 두 딸이 코로나19에 양성 반응을 보였으나 이후 모두 회복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가족 친구와의 접촉으로 감염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0년 9월, COVID-19 대유행 속에서 드웨인 존슨은 자신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두 딸이 모두 COVID-19에 양성 반응을 보였으며, 이후 회복되었다고 개인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밝혔습니다. 그는 가족 친구들과의 접촉 후에 이 병에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2021
2021년 드웨인 존슨은 차기 제임스 본드 배우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공개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는 아널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타 스탤론의 계보를 잇는 근육질 배우로서 자신의 강점을 어필했습니다.
2022
[장녀 WWE 데뷔]
장녀 시몬 알렉산드라 존슨이 '에이바 레인'이라는 링네임으로 WWE 프로레슬러로 데뷔하며 4세대 레슬러 가업을 이었습니다.
드웨인 존슨의 장녀 시몬 알렉산드라 존슨이 2022년 FIFA 월드컵 직전에 '에이바 레인'이라는 링네임으로 WWE 프로레슬러로 데뷔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큰 키와 건장한 체격을 가진 그녀는 존슨 가문의 4세대 레슬러로서 프로레슬링 계에 입문했습니다.
2022년 7월, 드웨인 존슨의 뛰어난 영화계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별이 헌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