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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
승려, 풍수지리설 대가 + 카테고리

- 신라 말기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우뚝 선 승려 - 고려 건국의 정신적 기틀을 마련 왕건에게도 지대한 영향 - 독창적인 음양지리설과 비보설로 한국 사상사에 큰 발자취 - 사후에도 예언서와 비기가 전해지며 대중적 흥미를 유발 - 고려 시대 국사 왕사로 추봉되며 깊은 존경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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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827

[풍수설의 대가, 도선 탄생]

신라 말기의 승려이자 풍수설의 대가인 도선이 전라남도 광주 영암군에서 태어났다.

신라 말기 승려이자 풍수설의 대가인 도선이 827년에 전라남도 광주 영암군에서 김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은 훗날 한반도의 역사와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칠 인물의 시작이었다.

842

[화엄사에서 출가 및 수학]

15세에 승려가 되어 월유산 화엄사에서 불도를 공부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도선은 15세가 되던 해 월유산 화엄사에서 승려로 출가하여 불도를 깊이 공부하며 깨달음을 얻는 데 전념했다. 이는 그의 사상적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시기였다.

850

[혜철 대사에게서 깨달음]

23세에 동리산의 혜철 대사를 찾아 깨달음을 얻고, 천도사에서 구계(불교 의식)를 받았다.

수도 행각 중 동리산의 혜철 대사를 찾아 무설설 무법법을 배워 크게 깨달았다. 23세가 되던 해 천도사에서 불교의 구계 의식을 받아 승려로서의 정식 법맥을 잇게 되었다.

875

[헌강왕의 부름을 받아 궁중 방문]

신라 헌강왕이 도선의 명성을 듣고 궁중으로 모셨으나, 도선은 얼마 후 다시 산으로 돌아와 수도에 전념했다.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년)이 도선의 높은 명성을 듣고 궁중으로 모셨다. 도선은 왕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주었으나, 속세에 머무르지 않고 얼마 후 다시 산으로 돌아가 수행을 이어갔다.

898

[효공왕 시호 추증과 증성혜등탑 건립]

도선 입적 후 신라 효공왕이 '요공선사'라는 시호를 내렸고, 제자들이 옥룡사에 '증성혜등탑'을 세워 스승을 기렸다.

도선 입적 직후 신라 효공왕(재위 897~912년)은 도선에게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을 기리기 위해 희양현 옥룡사에 '증성혜등(證聖慧燈)'이라 명명된 탑을 세웠다.

[풍수설의 대가 도선, 입적]

신라 말기의 승려이자 풍수설의 대가 도선이 옥룡사에서 입적하였다.

신라 말기의 승려이자 풍수설의 대가 도선이 898년 3월 10일 전라남도 광주 희양현 옥룡사에서 제자들에게 '인연으로 와서 인연이 다하여 떠나는 것이니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입적했다. 그는 옥룡사에서 생을 마칠 목적으로 수행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1095

[고려 숙종, 도선에게 '왕사' 호 추증]

고려 숙종은 도선을 '대선사'로 추증하고 '왕사'의 호를 추가하여 그의 위업을 기렸다.

고려 숙종(재위 1095~1105년)은 도선을 '대선사'로 추증하고 '왕사'의 호를 추가하여, 그의 높은 덕망과 국가에 미친 영향력을 기렸다. 이는 도선의 사상이 고려 시대에도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1122

[고려 인종, 도선을 '선각국사'로 추봉]

고려 인종은 도선을 '선각국사'로 추봉하며 그의 사상적 중요성을 인정했다.

고려 인종(재위 1122~1146년)은 도선을 '선각국사(先覺國師)'로 추봉하여, 그가 남긴 풍수지리설과 사상이 국가 운영에 미친 영향을 높이 평가하고 기렸다.

1146

[고려 의종, 도선 비 건립]

고려 의종은 도선을 기리는 비를 세워 그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고려 의종(재위 1146~1170년)은 도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비를 세워, 그의 사상과 영향력을 영원히 기억하고 존경하도록 했다. 이는 도선이 고려 시대 내내 중요한 인물로 존경받았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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