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고 헤이하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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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해군, 제독 + 카테고리

막말 사쓰마번의 번사이자 메이지 시대의 일본 해군 대장으로, '동양의 넬슨', '군신'이라 불리며 일본 제국 해군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영국 유학을 통해 국제법을 습득하고 침착한 판단력을 길렀으며,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일본의 해군 강국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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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848

[사쓰마번에서 출생]

사쓰마번의 번사 가문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무예를 좋아했으며, 본명은 사네요시였습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1848년 1월 27일 사쓰마번(지금의 가고시마현)의 작은 마을인 '가지야'에 있는 번사 가문에서 도고 사네토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헤이하치로는 통칭이며 본래 이름은 사네요시였습니다. 그의 가문은 13세기부터 시마즈씨의 가신 집안이었고, 이런 전통의 영향으로 도고도 무예를 좋아했습니다.

1862

[사쓰에이 전쟁 참전]

대포 다루는 기술을 배운 후, 아버지와 함께 사쓰에이 전쟁에 참전하여 첫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이후 자신의 능력을 더는 반항으로 낭비하지 않고 제대로 발휘하려고 대포를 다루는 기술을 배웠습니다. 1862년 아버지 사네토모와 사쓰에이 전쟁에 참전하며 군인으로서의 첫 실전 경험을 했습니다.

1868

[보신 전쟁 참전]

일본 내부의 정치적 격변기인 보신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사쓰에이 전쟁 참전 이후, 도고 헤이하치로는 1868년경 일본의 정치적 전환점이었던 보신 전쟁에도 참전하게 됩니다. 이 전쟁은 메이지 유신을 둘러싼 신정부군과 구 막부 세력 간의 내전이었습니다.

1869

[하코다테 전쟁 참전]

일본의 마지막 내전인 하코다테 전쟁에 참여하여 실전 경험을 이어갔습니다.

보신 전쟁에 이어, 도고 헤이하치로는 1869년경 일본의 마지막 내전으로 평가받는 하코다테 전쟁에도 참전했습니다. 이 전쟁은 구 막부 세력의 잔존 세력과 신정부군 간의 전투로, 도고는 이 시기에도 군인으로서의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1871

[영국 해군 유학 시작]

해군 장교로서 7년간 영국 포츠머스에 관비로 유학하며 해군학과 상선 학교에서 지식을 쌓았습니다. 당초 철도 기술자를 희망했으나 해군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1871년부터 1878년까지 해군 장교로서 영국 포츠머스에 관비로 유학했습니다. 그는 당초 철도 기술자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오쿠보 도시미치의 반대와 사이고 다카모리의 도움으로 해군 유학이 결정되었습니다. 다트머스 왕립 해군 사관학교 입학은 불허되었으나, Gosport의 버니 아카데미에서 해군학을 배우고 상선 학교인 우스터 협회에서도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1878

[영국 유학 종료 및 '침묵의 제독'으로 변모]

7년간의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유학 중 '수다쟁이'라는 평가를 듣고 과묵하게 변모하여 훗날 '침묵의 제독'으로 불렸으며, 국제법을 습득해 위기 상황에서 침착한 판단력을 발휘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878년 영국 유학을 마친 도고 헤이하치로는 귀국했습니다. 유학 초기 '수다쟁이'라는 오쿠보 도시미치의 평가를 듣고 과묵해지기 위해 노력한 결과, '침묵의 제독'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한, 유학 중에 국제법을 철저히 공부해 청일 전쟁 시 영국 상선 격침 논란에서 국제법 위반이 아님을 증명하는 등 훗날 그의 중요한 판단력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1893

[하와이 쿠데타 개입]

하와이 왕국에서 미국인 농장주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일본인 보호를 명목으로 순양함 나니와를 이끌고 호놀룰루 군항에 정박하여 쿠데타 세력을 위협했습니다.

1893년 하와이 왕국의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미국과의 불평등 조약 철폐를 시도하자, 미국인 농장주들이 해병대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타도하고 '임시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일본은 일본인 보호를 이유로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끄는 순양함 나니와 외 2척을 하와이에 파견하여 호놀룰루 군항에 정박시켜 쿠데타 세력을 위협했습니다. 당시 여왕을 지지하는 원주민들과 하와이 주재 일본인들은 이를 기뻐했습니다.

1894

[청일 전쟁 참전 및 '고쇼우호 사건']

청일 전쟁에서 순양함 '나니와'의 함장으로 활약하며 호토오키 해전, 황해 해전 등 주요 해전에서 공을 세웠고, 정선 경고에 불응한 영국 상선을 국제법에 의거해 격침시켜 명성을 얻었습니다.

1894년에 발발한 청일 전쟁에서 도고 헤이하치로는 순양함 '나니와'의 함장으로 참전하여 호토오키 해전(고쇼우호 사건), 황해 해전, 아카이에이 해전에서 활약했습니다. 특히 '고쇼우호 사건'에서는 정선 경고에 불응하는 영국 상선 '고쇼우호'를 국제법적 판단에 따라 격침하여 그의 침착한 판단력과 국제법 지식을 보여주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후 소장으로 진급하여 상비함대 사령관이 되었고, 연합함대 제1유격대 사령관으로서 호우코쇼섬 공략전에도 참가했습니다.

1904

[러일 전쟁 승리 주역]

러일 전쟁에서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으로서, 대함거포주의에 매몰된 러시아 발트 함대를 격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일본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1904년에 발발한 러일 전쟁에서 도고 헤이하치로는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으로서 해군 강국인 러시아의 발트 함대에 맞섰습니다. 당시 러시아 해군이 '대함거포주의'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일본은 폭발력과 화재 유발 능력이 뛰어난 '시모세' 화약을 개발한 포탄으로 무장했습니다. 도고는 이 포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고, 영일동맹으로 인한 러시아 해군의 긴 해로도 패인 중 하나로 작용하며, 일본의 예상 밖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1934

[도쿄에서 사망]

86세의 나이로 도쿄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순수한 군인으로서 일생을 마치며 '군신'이자 '동양의 넬슨'으로 기억됩니다.

도고 헤이하치로는 1934년 5월 30일 86세의 나이로 일본 제국 도쿄부 도쿄시 고지마치구 반쵸(지금의 도쿄도 지요다구)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순수한 군인으로서 일생을 마쳤으며, '군신', '동양의 넬슨'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육지에는 오야마, 바다에는 도고'라는 말도 그를 기리는 표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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