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크리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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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스승 레우키포스와 함께 '원자론(Atomism)'을 체계화한 인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우주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입자인 '원자(atom)'와 텅 빈 공간인 '허공(void)'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현대 과학의 기초가 되는 물질관을 수립했습니다. 트라키아의 압데라에서 태어난 그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아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 등지를 여행하며 당대의 지식을 섭렵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행복을 '유쾌함(Euthymia)'으로 정의하고 쾌활한 마음 상태를 중시하여 '웃는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비록 그의 저작은 단편적으로만 전해지지만, 인식론, 윤리학, 수학, 생물학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방대한 탐구는 후대 에피쿠로스 학파와 현대 과학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연표
BC 5C
일부 설에 따르면 기원전 490년경에 태어났다는 주장도 있으나, 주로 기원전 460년경에 태어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의 아버지는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를 접대할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페르시아 군대에게 호의를 베푼 대가로, 크세르크세스는 마기(Magi)와 같은 학자들을 남겨두었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이들로부터 천문학과 신학을 배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상속받은 100 탈란트의 거금을 여행 경비로 사용했습니다.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이집트, 페르시아, 에티오피아, 인도 등지를 방문하며 견문을 넓혔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신관들로부터 기하학을 배웠으며, 스스로 선을 긋고 증명하는 데 있어 이집트의 측량사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습니다.
당시 법은 유산을 낭비한 자의 장례를 금지했으나, 그는 자신의 저작인 '대우주 체계(Great World System)'를 법정에서 낭독하여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시민들은 감동하여 그를 무죄로 방면하고 500 탈란트를 주었습니다.
레우키포스로부터 원자론의 기초 개념을 전수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사상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후대 학자들은 누구의 공적인지 구별하기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원자론(Atomism) 정립]
우주의 만물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Atom)'와 '허공(Void)'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을 완성했습니다.그는 원자들이 크기와 모양이 다르며, 이들의 결합과 분리가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일으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 대한 대응이자 현대 물질 이론의 선구적 사상입니다.
[허공(Void)의 실재성 주장]
존재하지 않는 것(허공)도 존재하는 것(원자)만큼이나 실재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운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빈 공간이 필수적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 엘레아 학파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입니다.
"나는 아테네에 갔으나 아무도 나를 알지 못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알고 있었으나, 소크라테스는 그를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학적 발견 (원뿔과 각뿔)]
원뿔과 각뿔의 부피가 밑면과 높이가 같은 원기둥과 각기둥 부피의 3분의 1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이 업적은 훗날 아르키메데스에 의해 언급되었습니다. 비록 엄밀한 증명은 후대에 이루어졌으나, 그의 수학적 통찰력이 뛰어났음을 보여줍니다.
나무를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묶은 솜씨를 보고 감탄하여 그를 가르쳤습니다. 프로타고라스는 훗날 유명한 소피스트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영혼이 평온하고 균형 잡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는 절제와 균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를 강조했습니다.
감각은 주관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원자와 허공의 세계를 이해하는 이성은 참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관습에 의하면 달콤함이 있으나, 실재하는 것은 원자와 허공뿐이다'라는 말이 유명합니다.
어떤 세계에는 해와 달이 없고, 어떤 세계는 우리보다 크며, 생명체가 없는 세계도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현대의 다중 우주론과 유사한 혁신적인 사상입니다.
"폭군의 치하에서 번영하는 것보다 민주주의 안에서 가난한 것이 낫다"고 말하며, 법과 질서 안에서의 자유를 중시했습니다.
BC 4C
['웃는 철학자'라는 별명 획득]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세상을 조소하는 태도로 인해 '웃는 철학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그는 항상 명랑한 태도를 유지했으며, 인간의 헛된 노력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이는 비탄에 잠긴 헤라클레이토스('우는 철학자')와 자주 대비되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와의 만남]
데모크리토스의 잦은 웃음을 미친 것으로 오해한 시민들이 의성 히포크라테스를 불러 진단을 의뢰했습니다.히포크라테스는 대화 후 그가 미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 일화는 후대에 널리 회자되었습니다.
정원에 있는 불타는 거울을 이용해 시력을 잃게 했다고 전해지나, 이는 사실이라기보다는 그의 집중력을 강조하기 위한 후대의 과장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플라톤의 적대감]
동시대의 철학자 플라톤은 데모크리토스의 사상을 매우 싫어하여 그의 책을 모두 태워버리고 싶어 했다고 전해집니다.플라톤은 자신의 저작에서 데모크리토스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유물론적 사상이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정면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그는 매일 따뜻한 빵(또는 꿀)의 냄새를 맡으며 생명을 며칠간 연장했고, 축제가 끝난 후 냄새 맡기를 멈추고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의 장례는 국가 공공장례로 치러졌습니다. 그의 사상은 이후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에 의해 계승되어 서양 유물론의 뿌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