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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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대한민국 정치, 선거, 민주화, 국회, 현대사 + 카테고리

1987년 6월 항쟁 이후 탄생한 제6공화국의 첫 입법부를 구성하는 대장정이었습니다. 직선제 대통령 선거 이후 치러진 이 선거는 17년 만에 부활한 소선거구제와 '1노 3김'의 치열한 사파전이 맞물리며 한국 정치의 판도를 뒤흔들었습니다. 결과는 헌정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정국을 탄생시켰고, 이는 곧 권위주의 체제 청산과 청문회 정국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역주의라는 숙제를 남기기도 했으나, 의회가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견제하는 진정한 의회 민주주의의 서막을 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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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87

[제6공화국 헌법 공포]

6월 항쟁의 결실인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마침내 확정되어 세상에 공포됩니다. 이로써 제5공화국 체제가 공식적으로 마감되고 새로운 민주적 선거 절차를 위한 법적 토대가 마련됩니다. 정치권은 이제 새로운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 논의에 박차를 가합니다.

이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더불어 국정감사권의 부활을 골자로 하고 있어 입법부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국민들의 뜨거운 민주화 열망이 제도적으로 안착한 첫 번째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향후 국회의원 선거가 단순한 투표를 넘어 권력 구조 재편의 핵심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었으나 야권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됩니다. 여당의 승리로 끝난 대선 결과는 다가올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낳습니다. 유권자들은 이제 국회를 통해 정권을 견제하려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노태우 후보는 36.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으며, 이는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분열이 가져온 결과로 분석되었습니다.
패배한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총선을 통해 여당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정권 심판론'이 강하게 대두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총선이 대선의 연장전이자 제6공화국의 향방을 결정지을 분수령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1988

[선거구제 개편 협상]

여야는 새로운 국회 구성을 위해 기존 중선거구제를 유지할지 소선거구제로 바꿀지 논의를 시작합니다. 각 정당은 자신들의 지역적 기반과 지지율을 계산하며 한 치의 양보 없는 수 싸움을 벌입니다. 이 논의의 결과에 따라 향후 수십 년간의 한국 정치 지형도가 결정되는 중대한 국면입니다.

민주정의당은 안정적인 의석 확보를 위해 중선거구제를 선호했으나, 야당은 민의를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소선거구제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정치 신인들과 지역 기반이 탄탄한 야당 거물들에게는 소선거구제가 훨씬 유리한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선거구제 개편은 민주화의 척도로 여겨지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소선거구제 도입 합의]

여야는 마침내 1개 선거구에서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 도입에 전격 합의합니다. 17년 만에 부활한 이 제도는 정치적 선명성을 높이고 인물 위주의 선거를 가능케 합니다. 이는 대한민국 선거사에 있어 거대 담론보다 지역 밀착형 정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 합의로 인해 전국 224개 지역구에서 단 한 명의 승자만을 가리는 치열한 대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더 명확히 심판할 수 있게 했지만, 동시에 지역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13대 총선에서 여당의 과반 확보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었습니다.

[선거법 개정안 통과]

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선거를 위한 모든 법적 준비가 끝납니다. 지역구와 전국구를 합쳐 총 299석의 의석수가 확정되며 본격적인 선거 국면으로 돌입합니다. 각 정당은 즉시 전국적인 공천 작업과 선거 조직 정비에 착수합니다.

당시 선거법은 1당에게 전국구 의석의 절반을 우선 배분하는 등 여당에 유리한 조항이 일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소선거구제의 승부수를 믿고 법안 통과에 합의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 법의 통과는 곧 제6공화국 최초의 입법부 권력 투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야권 통합 논의 결렬]

평화민주당과 통일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벌인 통합 협상이 최종적으로 무산됩니다.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도 야권 세력이 각개전투를 벌이게 되면서 여당의 어부지리 승리 우려가 커집니다. 김대중과 김영삼 두 지도자의 주도권 싸움은 결국 독자 노선이라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양당은 지분 나누기와 공천권 배분을 두고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이 결렬로 인해 선거는 '1여 3야'의 4당 체제로 고착화되었으며, 각 당은 자신들의 확실한 지역 기반에 호소하는 전략을 선택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분열은 지역주의 정당 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신민주공화당의 부상]

김종필 총재를 중심으로 한 신민주공화당이 충청권 지지를 기반으로 강력한 제4세력으로 등장합니다. 과거 정권의 주역들이 대거 합류하며 보수 진영 내에서도 차별화된 입지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이로써 선거판은 예측 불가능한 다당제 대결 구도로 재편됩니다.

김종필 총재는 '중부권 대망론'을 내세우며 소외된 충청 민심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 중 민정당에 거부감을 느끼는 층을 흡수하며 캐스팅보트로서의 역할을 예고했습니다.
이 세력의 등장은 선거 후 정계 개편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게 됩니다.

[역대급 후보자 등록]

전국 224개 지역구에 총 1,000명이 넘는 후보자가 등록하며 선거 열기가 최고조에 달합니다. 평균 4.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새로운 국회에 진출하려는 인물들의 각축전이 벌어집니다. 제도권 밖 민주화 운동가들의 대거 출마도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민주정의당은 전 지역구에 후보를 냈으며, 야당들도 수도권과 자신들의 텃밭을 중심으로 정예 후보를 배치했습니다.
무소속 후보들도 대거 출마하여 지역구마다 치열한 다자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후보자 등록 마감과 함께 전국은 선거 벽보와 현수막으로 뒤덮이며 본격적인 투표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공식 선거운동의 시작]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정당 연설회와 후보자들의 거리 유세가 일제히 시작됩니다. 여당은 '국정 안정'을, 야당은 '5공 비리 척결'과 '정권 견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민심 잡기에 나섭니다. 유권자들은 자유로워진 분위기 속에서 각 당의 주장을 경청하며 투표 대상을 고민합니다.

당시 유세장은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드는 정치 축제의 장과 같았습니다.
야당 후보들의 거침없는 정부 비판 연설은 시민들에게 큰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야당 지지세를 결집시켰습니다.
민정당은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담보하기 위한 안정 의석 확보를 호소하며 중장년층 공략에 집중했습니다.

[미디어 선거의 대중화]

과거와 달리 TV 연설과 라디오 광고 등 방송 매체를 활용한 선거 운동이 비약적으로 늘어납니다. 안방까지 전달되는 후보자들의 목소리는 유권자들의 판단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는 정보 전달의 속도를 높이고 선거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유권자들은 이제 굳이 유세장을 가지 않고도 각 당의 정책을 비교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달변가인 야당 지도자들의 TV 연설은 젊은 층과 도시 거주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이미지 정치가 중요해지면서 후보자들의 태도와 발언 하나하나가 당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별 표심의 쏠림]

선거가 종반으로 향할수록 영남, 호남, 충청 등 지역별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가 극단적으로 쏠리기 시작합니다. 각 당 지도자들이 자신의 연고지를 방문할 때마다 결집력은 더욱 공고해집니다. 이는 정책 대결보다는 지역적 연대감이 선거를 지배하는 양상으로 흐르게 합니다.

평민당은 호남에서, 민주당은 부산·경남에서, 공화당은 충청에서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정권에서 누적된 지역 소외와 차별에 대한 저항 심리가 정치적으로 표출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13대 총선은 대한민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 구도를 고착화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당의 위기설 확산]

선거를 하루 앞두고 여당인 민정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할 수 있다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세게 부는 야풍이 예사롭지 않음을 감지한 여당은 비상이 걸립니다. 야권은 투표 독려를 통해 마지막까지 정권 견제론을 몰아붙입니다.

여론조사 결과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야당 후보들이 오차 범위 내에서 앞서가는 곳이 속출했습니다.
정부는 정국 혼란을 막기 위해 여당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으나, 5공 비리에 실망한 민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투표 전날까지도 정계는 여소야대라는 파격적인 결과가 실제로 일어날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제13대 총선 투표]

민주화 이후 처음 구성될 국회의 주역을 뽑기 위해 전 국민이 투표소로 향하며 75.8%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합니다. 유권자들은 각자의 신념을 담아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택합니다. 전국 각 투표소는 평온함 속에 새로운 역사를 향한 기대감이 감돕니다.

이번 투표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치러진 첫 선거였기에 무효표가 줄어들고 유권자의 의사가 더 명확히 반영되었습니다.
사건 사고 없이 차분한 분위기 속에 투표가 마감되었으며, 방송사들은 사상 최초로 과학적인 예측 조사를 도입해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국민들은 투표 결과가 가져올 변화에 주목하며 밤늦게까지 TV 개표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개표 결과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125석에 그치며 과반 확보에 참패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발표됩니다. 야 3당의 의석 합계가 여당을 압도하면서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정국이 공식 확정됩니다. 이는 국민들이 정권의 독주를 막기 위해 황금분할을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민정당은 원내 제1당은 유지했으나 과반에 25석이나 미달하며 입법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수도권에서의 참패와 지역구에서의 부진은 집권 여당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 결과로 인해 정부는 모든 정책 추진에 있어 야당의 동의를 구해야만 하는 새로운 정치 환경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평민당의 제1야당 부상]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평화민주당이 70석을 확보하며 통일민주당을 제치고 제1야당의 자리에 오릅니다. 호남에서의 압승과 수도권에서의 선전이 일궈낸 결과로, 김대중 총재는 화려하게 정국 중심부로 복귀합니다. 이변의 결과에 정계는 다시 한번 크게 술렁입니다.

대선 3위에 그쳤던 김대중 총재가 제1야당의 수장이 됨으로써 야권 내 주도권은 평민당으로 급격히 이동했습니다.
통일민주당은 부산·경남을 석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석수에서 밀려 제2야당으로 내려앉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평민당의 부상은 향후 국회 운영에서 강력한 대여 투쟁과 비리 척결 요구의 엔진이 되었습니다.

[야권 주도권의 강화]

승리한 야 3당은 긴밀한 공조를 통해 국회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 회의에 돌입합니다. 여소야대의 힘을 바탕으로 과거 정권의 비리를 규명하고 민주적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의 요구에 밀려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됩니다.

야 3당은 국회의장단 선출과 상임위원장 배분에서 의석 비율에 따른 공정한 분배를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과거 여당이 독점하던 국회 운영 방식이 무너지면서 진정한 다당제 협치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야권의 거물들은 각자의 지지 기반을 확인하며 차기 대권을 향한 포석을 닦았습니다.

[제13대 국회 공식 개원]

제13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며 민주화 이후 첫 입법부의 막이 장엄하게 오릅니다. 299명의 의원들은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국회 의사당으로 입성하여 의정 활동에 들어갑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거수기 국회를 넘어 살아있는 토론의 장으로 거듭납니다.

이날 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노무현, 이해찬 등 훗날 대한민국 정치를 이끌어갈 수많은 신진 인사들이 초선 의원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국민들은 새로 구성된 국회가 지난 세월의 적폐를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국정감사법 부활 제정]

유신 정권 이후 사라졌던 국정감사 제도를 부활시키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됩니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되찾은 셈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권력의 균형을 맞추는 중대한 법적 진보였습니다.

야당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법안이 처리되었으며, 정부 관료들은 국회의 매서운 감시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국정감사의 부활은 곧 권력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직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법 제정 이후 국회는 매년 정기적으로 정부 부처를 감사하며 민의를 전달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5공 비리 특위 구성]

여소야대 국회의 첫 대형 사업으로 제5공화국 비리 조사 특별위원회가 야권 주도로 구성됩니다. 과거 정권의 부정부패와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합니다. 이는 성역 없는 수사를 원하는 국민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한 국회의 응답이었습니다.

평민당, 민주당, 공화당은 각각의 위원을 배치하며 여당을 압박했고, 여당인 민정당은 방어적인 태도로 합류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부터 정치 자금 의혹까지 모든 사안이 조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이 특위의 출범은 곧 대한민국을 뒤흔들 청문회 정국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사상 첫 국회 청문회]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국회 청문회가 개최되어 전국에 TV로 생중계됩니다. 서슬 퍼런 전직 정권의 실세들이 증언대에 서는 장면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의회 민주주의의 강력한 힘이 만천하에 증명됩니다.

청문회장에는 일해재단 비리와 관련된 재벌 총수들과 정부 고위 관료들이 줄지어 출석했습니다.
초선이었던 노무현 의원은 날카로운 질의와 서류 투척으로 단숨에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으며,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폭발시켰습니다.
국민들은 TV 앞에 모여 앉아 권력이 심판받는 과정을 지켜보며 진정한 민주화의 시작을 실감했습니다.

1990

[3당 합당과 정계 개편]

여소야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노태우의 민정당이 김영삼의 민주당, 김종필의 공화당과 전격적인 합당을 선언합니다.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탄생으로 13대 총선이 만든 여소야대 정국은 인위적으로 종식됩니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거대한 논란과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옵니다.

이른바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투표로 보여준 민의를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바꿨다는 거센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 합당으로 제1야당인 평민당은 순식간에 고립되었으며, 국회는 다시 거대 여당 중심의 체제로 돌아갔습니다.
13대 총선의 결과로 나타난 다당제와 여소야대의 실험은 2년 만에 멈췄지만, 그 기간 동안 이루어낸 민주화 성과는 한국 정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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