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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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역사, 항쟁 + 카테고리

고려가 몽골 제국의 침략에 맞서 약 30년간 펼친 눈물겨운 항쟁의 기록. 단순한 전쟁을 넘어 자주성을 지키려는 고려인의 피나는 노력과 함께 국토는 황폐해지고 수많은 문화유산이 소실된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최씨 무신정권의 역할부터 백성들의 저항 그리고 결국 강화가 성립되기까지 고려의 운명을 건 긴 싸움의 전말을 펼쳐 보인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1219

[몽골과의 첫 만남]

몽골에 쫓겨 고려 국경을 침범한 거란족(후요)을 고려와 몽골이 함께 진압하며 양국은 처음으로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몽골은 고려에 매년 공물을 요구하며 이후 관계 악화의 씨앗을 뿌렸다.

1231

[제1차 몽골 침입]

몽골 사신 저고여 피살 사건을 빌미로 몽골군이 고려를 처음 침략했다.

몽골은 고려를 남송 및 일본 정벌의 기지로 삼으려 했고, 수도 개경까지 진격했으나 귀주성 박서 장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고려는 결국 강화를 요청했고, 몽골은 감독관을 남기고 철수했다.

1232

[강화 천도]

최우는 몽골의 침입에 맞서 항복 주장을 묵살하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는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몽골을 자극하여 2차 침입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2차 몽골 침입과 살리타 사망]

강화 천도에 자극받은 몽골군이 2차 침입을 감행, 홍복원의 안내로 한강 이남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몽골의 총사령관 살리타가 김윤후 장군에게 사살되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자 몽골군은 급히 철수했다.

몽골군은 이후에도 약 30년간 총 7차례에 걸쳐 침입을 계속하며 고려에 항복과 황제 친조를 요구했지만, 고려는 강화도에서 끈질기게 항전했다. 이 시기 항전은 주로 농민들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관악산 초적과 충주 노예군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몽골군의 잔인한 보복으로 농촌은 황폐화되고 인구는 감소했으며, 황룡사 9층 목탑과 부인사 대장경 등 수많은 문화재가 소실되는 비극을 겪었다. 특히 고려의 뛰어난 인쇄술과 불심을 보여주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조판하며 국가적 역량을 결집했다.

1257

[최씨 정권의 몰락 시작]

대몽 항쟁이 장기화되면서 재정 악화와 통솔력 약화로 무신정권은 위기에 직면했다.

최우의 아들 최항이 사망하며 최씨 정권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1258

[최의 제거, 최씨 정권 종말]

최항의 뒤를 이은 최의가 김준에게 제거되면서, 약 60년간 고려를 지배했던 최씨 무신정권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이는 대몽 강화를 주장하는 문신 세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1259

[태자, 몽골에 입조]

최씨 정권 몰락 후 왕에게 권력이 돌아가면서 대몽 강화가 결정되었다.

태자(후일 원종)가 몽골에 입조하여 항복을 표하고, 강화도 성곽을 파괴하며 강화 의지를 피력했다.

[고려-몽골 강화 성립]

최씨 정권의 몰락과 몽골의 요구 조건 양보 속에, 몽케 칸 사망 직후 몽골에 파견된 고려 태자(원종)가 쿠빌라이를 만나 강화 조약을 성립시켰다.

쿠빌라이는 고려의 요구 6개 조항(왕국 존속 보장, 몽골군 철수 등)을 모두 수락하며 호의를 보였다.

1264

[친조 요구와 반몽 여론]

강화가 성립된 이후에도 몽골이 고려 왕의 친조와 일본 원정 병력 및 물자 지원을 요구하자, 무신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반몽 여론이 고조되며 원종의 강화론과 충돌했다.

1269

[임연, 원종 폐위]

김준이 살해되고 집권한 임연은 친몽 정책을 수행하는 원종을 독단적으로 폐위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몽골에 있던 세자(충렬왕)의 요청으로 몽골 지원을 받아 원종이 복위되었으나, 이는 몽골의 고려 내정 간섭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270

[삼별초의 항쟁 시작]

무신정권 종말 후 개경 환도 명령에 반대한 삼별초가 배중손을 중심으로 반기를 들었다.

원종의 아우 승화후 온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고 진도를 거점으로 삼아 몽골에 대한 마지막 항전을 시작했다.

[무신정권의 완전한 종말]

임연이 병사했으나 그의 아들 임유무가 집권하여 반몽 노선을 고수했다.

임유무는 개경 환도를 명하는 원종과 대립하다 살해되었고, 이로써 약 100년간 이어져 온 고려 무신정권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개경 환도가 결정되며 제정이 복고되었다.

1271

[진도 함락]

삼별초가 거점으로 삼았던 진도가 고려 조정의 진압군과 몽골 연합군에게 함락되었다.

김통정을 중심으로 한 잔여 세력은 제주도로 옮겨 항전을 이어갔다.

1273

[삼별초 항쟁 종결]

제주도로 옮겨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김통정의 삼별초 세력이 결국 고려-몽골 연합군에 의해 완전히 평정되었다.

이로써 몽골에 대한 고려의 약 50년에 걸친 대몽 항쟁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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