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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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시, 도시, 행정 구역, 경제 중심지, 문화 중심지, 교통 요충지 + 카테고리

• 대한민국 동남부 내륙에 위치한 광역시입니다.• 역사적으로 경상감영 소재지이자 경상도의 중심지였으며, 6.25 전쟁 당시 임시 수도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섬유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현재는 첨단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높은 교육 수준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며,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교통 요충지 역할을 합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연표

BC 10k

[구석기 시대 인류 거주 추정]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인 좀돌날 석기가 발굴되어, 대략 2만~1만 년 전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구석기시대의 유물인 좀돌날 석기가 포함된 유적의 발굴로 미루어 대략 2만~1만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BC 2k

[선사시대 달구벌 성읍 형성]

선사시대에 달구화, 달구벌, 달불, 달성 등의 이름으로 성읍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이름들은 모두 '크고 넓은 벌판'을 의미하는 고유어의 음차 표기였습니다.

대구의 옛 이름엔 다벌(多伐), 달벌(達伐), 달불성(達弗城), 달구벌(達句伐), 달구화(達句火), 대구(大丘) 등이 있습니다. 모두 어딘가 비슷한 이름인데 한자의 뜻과는 관계없는 고유어의 음차이며, 이 가운데 물론 달구벌과 대구(大丘)가 가장 유명합니다. 달구벌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한 설명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중에 '달구'의 '달'에 "높다", "크다"의 의미가 있고, 신라의 계림사상에서 기원된 새로움 혹은 철기 문화의 상징인 '닭'에서 유래하였다는 연구자료가 있습니다. 그래서 달구벌은 대체로 '크고 넓은 벌판'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 달구화(達句火), 달구벌(達句伐), 달불(達弗), 달성(達城)으로 성읍이 형성되었습니다.

BC 1k

[청동기 시대 부족국가 형성]

청동기시대에 부족국가가 형성되어 지역 사회가 더욱 조직화되었습니다.

청동기시대 부족국가가 형성되었습니다.

108

[신라에 병합]

대구 지역이 신라에 병합되어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108년 신라에 병합되었습니다.

244

[달벌성 축성 시작]

달벌성 축성이 시작되어 26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261년(신라 첨해이사금 15년) 달벌성이 축조되었습니다. (244년 축성 시작)

500

[달구벌, 달구화현으로 칭해지다]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달구벌을 '달구화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지역의 행정 명칭 변화를 보여줍니다.

5세기말 - 6세기초 달구벌을 달구화현(達句火縣, 達弗城)이라 칭하였습니다.

689

[달구벌 천도 계획 좌절]

신라 신문왕 9년, 신라의 수도를 서라벌에서 달구벌로 천도하려 했으나 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이는 달구벌의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689년(신라 신문왕 9년) 신라의 수도를 서라벌에서 달구벌로 달구벌 천도계획하려 하였으나 귀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었습니다.

757

['대구현'으로 명칭 개칭]

신라 경덕왕 16년, 위화군이 수창군으로, 달구화현(達句火縣, 달구벌)이 지금의 명칭과 유사한 '대구현'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는 대구의 지명 기원에 중요한 사건입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으로, 달구화현(達句火縣, 達句伐)이라 칭하던 것을 대구현으로 개칭하였습니다. 양주 관하에 두었습니다.

927

[공산 전투 발생]

신라 경순왕 원년,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 사이에 공산 전투가 현재 팔공산 일대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는 고려 건국 과정의 중요한 전투 중 하나였습니다.

927년(신라 경순왕 원년) 후백제 견훤과 고려 고려 태조 왕건 사이의 공산 전투가 현재의 팔공산 일대에서 있었습니다.

940

[수창군, 수성군으로 개칭]

고려 태조 23년, 수창군이 수성군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는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 개편의 일환이었습니다.

940년(고려 태조 23년) 수창군을 수성군으로 개칭하였습니다.

1018

[행정 구역 양분 및 재편]

고려 현종 9년, 수성군, 장산군, 해안현과 대구현, 화원현, 팔리현, 하빈현으로 행정 계통이 양분되었고, 대구현 등은 성주군 관하에 두어졌습니다.

1018년(고려 현종 9년) 수성군·장산군·해안현(解顔縣)과 대구현·화원현(花園縣)·팔리현(八里縣)·하빈현(河濱縣)으로 행정 계통이 양분되었습니다. 대구현 등은 성주군 관하에 두었습니다.

1143

[대구현, 현령관으로 승격]

고려 인종 21년, 대구현이 현령관으로 승격하면서 하빈현과 화원현을 영속하게 되어 지역 중심으로서의 지위가 강화되었습니다.

1143년(고려 인종 21년) 대구현이 현령관으로 승격하여 하빈현, 화원현을 영속하였습니다.

1203

[부인사 승려들의 반무신란 발생]

고려 신종 6년, 무신정권기에 부인사 승려들의 반무신란이 발생하여 사회적 혼란을 겪었습니다.

1203년(고려 신종 6년) 무신정권기에 부인사 승려의 반무신란이 있었습니다.

1232

[팔공산 부인사 대장경 소실]

고려 고종 19년,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팔공산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소실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232년(고려 고종 19년) 몽골 제국의 침입으로 팔공산 부인사의 초조대장경을 소실하였습니다.

1255

[공산성에서 항몽 투쟁]

고려 고종 42년, 공산성에서 몽골 제국에 대항하는 항몽 투쟁이 전개되었습니다.

1255년(고려 고종 42년) 공산성에서 항몽 투쟁하였습니다.

1394

[대구현, 주변 현 영속]

조선 태조 3년, 대구현이 수성현, 해안현, 하빈현을 영속하게 되어 행정적 영향력이 확대되었습니다.

1394년(조선 태조 3년) 대구현이 수성현·해안현·하빈현을 영속하였습니다.

1419

[대구군으로 승격]

조선 세종 원년 5월, 대구현, 수성현, 해안현, 하빈현 등 4개 현이 통합되어 '대구군'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는 대구 지역 행정구역의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1419년(조선 세종 원년) 5월 대구현·수성현·해안현·하빈현 이상 4개 현을 통합하여 대구군으로 승격하였습니다.

1466

[대구도호부로 승격]

조선 세조 12년, 대구군이 '대구도호부'로 승격되어 지역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1466년(조선 세조 12년) 대구군을 대구도호부로 승격하였습니다.

1590

[대구읍성 토성으로 축성]

조선 선조 23년, 대구 읍성이 토성으로 축성되어 지역 방어의 거점이 마련되었습니다.

1590년(조선 선조 23년) 대구읍성이 토성으로 축성되었다.

1592

[임진왜란 중 대구읍성 파괴]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중 대구읍성이 파괴되어 전쟁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592년(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중 대구읍성은 파괴되었다.

1601

[경상감영 대구로 이전 및 설치]

조선 선조 34년, 경상도 감영이 대구부로 이전 설치되면서 대구는 경상도의 중심 도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때 화원현, 경산현, 하양현이 대구부에 편입되었습니다.

1601년(조선 선조 34년) 경상도 감영을 대구부로 이전, 설치하였습니다. 화원현·경산현·하양현을 편입하였습니다.

1607

[경산현, 하양현 분리]

조선 선조 40년, 경산현과 하양현이 대구도호부 관할에서 분리되어 행정 구역이 재조정되었습니다.

1607년(조선 선조 40년) 경산현·하양현은 대구도호부 관할에서 분리되었다.

1658

[약령시 처음 개장]

조선 효종 9년, 약령시가 경상감영 안의 객사 주변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대구 약령시의 시초가 됩니다.

1658년(조선 효종 9년) 약령시가 경상감영 안의 객사 주변에서 처음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1684

[풍각현 일부 면 대구도호부에 편입]

조선 숙종 10년, 풍각현의 각북면 등 4개 면이 대구도호부에 편입되어 관할 구역이 확장되었습니다.

1684년(조선 숙종 10년) 풍각현의 각북면·각현내면·각초동면·각이동면 이상 4개 면이 대구도호부에 편입되었다.

1736

[대구읍성 석성으로 축조]

조선 영조 12년 4월, 대구읍성이 석성으로 축조에 들어가 이듬해 6월 완공되었고, 11월에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1736년(조선 영조 12년) 대구읍성이 석성으로 4월에 축조에 들어가 이듬해 6월 완공하고, 11월 선화당에서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1750

[대구(大邱) 명칭 사용 시작]

조선 영조 26년, 유생 이양채가 '구(丘)'자가 공자의 휘자에 저촉된다며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개칭할 것을 상소했습니다. 이후 정조와 헌종 때는 대구(大丘)와 대구(大邱)를 혼용하다가 철종 이후 대구(大邱)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750년(조선 영조 26년) 유생 이양채가 '구(丘)'자가 대성 공자의 휘자에 저촉되므로 피해야 한다(피휘)며,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개칭할 것을 상소하였습니다. 정조·조선 헌종 때는 대구(大丘)와 대구(大邱)로 혼용하다가 조선 철종 이후에는 대구(大邱)만 사용하였습니다.

1895

[대구부 대구군으로 강등]

조선 고종 32년 6월 23일,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되면서 대구도호부가 대구부 대구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1895년 6월 23일(조선 대한제국 고종 32년 음력 윤5월 1일) 팔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되어, 대구도호부가 대구부 대구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1896

[경상북도 대구군으로 개편]

건양 원년 8월 4일,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경상북도 '대구군'이 되었습니다. 이는 근대적인 행정 구역 체계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1896년(건양 원년) 8월 4일 13도제가 실시되어, 경상북도 대구군이 되었다.

1899

[대구 최초 근대 중등교육기관 '달성학교' 설립]

광무 3년 7월, 대구 최초의 근대 중등교육기관인 달성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학교는 후일 경북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교육의 요람이었습니다.

1899년(광무 3년) 7월 대구 최초 근대 중등교육기관 달성학교(1916년 대구고등보통학교 계승, 1950년 경북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로 분리, 1970년 경북중학교 폐교, 현 경운중학교 계승)가 설립되었다.

1902

[여성 교육기관 '신명여자소학교' 개교]

애덤스 선교사에 의해 신명여자소학교가 여성 교육기관으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대구 여성 교육의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1902년(광무 6년) 애덤스 선교사에 의해 신명여자소학교가 여성교육기관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1905

[달성공원 조성]

달성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광무 9년) 달성공원이 조성되었다.

1906

[일제 통감부 이사청 설치]

광무 10년, 일제 통감부 이사청이 설치되어 일제의 식민 지배 체제가 구축되기 시작했습니다.

1906년(광무 10년) 일제 통감부 이사청이 설치되었다.

[대구읍성 성벽 철거 및 관풍루 이전]

광무 10년 10월, 대구읍성 성벽이 대구군수 겸 관찰사 서리 박중양에 의해 황제의 윤허 없이 철거되었고, 경상감영의 포정문 문루인 관풍루는 달성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1906년(광무 10년) 10월 대구읍성 성벽이 대구군수 겸 관찰사 서리였던 박중양에 의해 황제의 윤허없이 철거되었다. 또한, 경상감영의 선화당 정남쪽에 위치했던 포정문(布政門)의 문루인 관풍루를 지금의 달성공원으로 옮겼다.

[대구군 일부 면 청도군으로 이속]

광무 10년 9월 24일, 대구군 소속 각북면 등 4개 면이 청도군으로 이속되어 행정 구역이 재편되었습니다.

1906년(광무 10년) 9월 24일 대구군 소속 각북면·각현내면·각초동면·각이동면 이상 4개 면은 청도군으로 이속하였다.

1907

[대구 최초 영화관 '금좌' 개관]

광무 11년, 대구 최초의 영화관인 금좌(錦座)가 현재 태평로2가에 문을 열어 12년 동안 번창했습니다.

1907년(광무 11년) 대구 첫 영화관 금좌(錦座)가 현재 태평로2가에 문을 열어 12년 동안 번창하였다.

[여자중등학교 '신명여학교' 개교]

광무 11년, 애덤스 선교사의 부인 부르엔에 의해 여자중등학교인 신명여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여성 교육 확대에 기여했습니다.

1907년(광무 11년) 애덤스 선교사의 부인 부르엔(Marda Bruen)에 의해 여자중등학교로 신명여학교가 문을 열였다.

[국채보상운동 전개]

광무 11년 2월, 대구에서 김광제, 서상돈 등이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여 전국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는 국권 수호를 위한 민족 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이었습니다.

1907년(광무 11년) 2월 대구에서 김광제, 서상돈 등이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여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1908

[경상감영 건물 파괴 및 약령시 이전]

융희 2년, 경상감영의 객사와 주요 건물이 파괴되었고, 약령시가 현재의 남성로로 이전되었습니다.

1908년(융희 2년) 경상감영의 객사와 주요 건물이 파괴되었고, 약령시를 현재 남성로로 이전하였다.

1909

[십자도로 개통]

경상북도관찰사로 부임한 박중양에 의해 십자도로(포정동에서 서문로에 이르는 동서 도로와 종로에서 대안동에 이르는 남북 도로)가 개통되었습니다. 공사비는 국고에서 지원되었습니다.

1909년 경상북도관찰사로 부임한 박중양은 이른바 십자도로(포정동에서 서문로에 이르는 동서 도로와 종로에서 대안동에 이르는 남북 도로)를 개통하였으며, 공사비는 국고에서 지원됐다.

1910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융희 4년 8월 29일,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한일 병합 조약으로 병합하며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910년(융희 4년) 8월 29일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한일 병합 조약 병합했다.

[대구군, 대구부로 개칭]

융희 4년 10월 1일, 대구군이 '대구부'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개편의 일환이었습니다.

1910년(융희 4년) 10월 1일 대구군을 대구부로 개칭하였다.

1911

[대구면 설치]

일본 제국은 11월 14일, 동상면과 서상면을 통합하여 대구면을 설치했습니다.

1911년 11월 14일 일본 제국은 동상면과 서상면을 통합해 대구면을 설치하였다.

1913

[대구역 건립 및 전기 도입]

대구역이 건립되었고, 322호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하여 근대 문물이 도입되었습니다.

1913년 대구역이 건립되었다. 322호에 전기가 들어왔다.

1914

[대구부 및 달성군 개편]

4월 1일, 대구부가 분해되어 도시 지역인 대구면만 대구부로 남고, 대구면을 제외한 대구부의 나머지 면과 현풍군이 달성군으로 개편되었습니다.

1914년 4월 1일 대구부를 분해하여, 도시 지역인 대구면만 대구부로 남기고, 대구면을 제외한 대구부의 나머지 면과 현풍군이 달성군으로 개편되었다.

1915

[조선국권회복단 조직]

1월 15일, 서상일 등 영남 지역 인사들이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3.1 만세운동 시 대구 지역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1915년 1월 15일 서상일 등은 영남지역 인사들과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는데 3·1 운동에서 대구지역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7

[대봉정 신설 및 행정 구역 편입]

4월 1일,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과 봉덕동의 일부가 대구부에 편입되어 대봉정이 신설되었습니다.

1917년 4월 1일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과 봉덕동의 각일부를 대구부에 편입해 대봉정을 신설하였다.

1919

[독립만세운동 발생]

3월 8일, 대구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1919년 3월 8일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1920

[대한민국 최초 시내버스 운행 시작]

7월 1일, 대한민국 최초의 시내버스가 대구에서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대구역을 기점으로 시내 각 방향 및 팔달교, 동촌까지 운행하며 대중교통의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1920년 7월 1일 대한민국 최초의 시내버스가 운행되었다. 대구역을 기점으로 시내 각 방향으로 물론이고 팔달교 및 동촌까지 운행하였다.

1923

[서문시장 현재 위치로 이동]

서문시장이 현재의 자리로 이동하여 대구의 대표적인 상업 중심지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23년 서문시장이 현재의 자리로 이동하였다.

[대구자혜의원, 경북도립 대구의원으로 변경]

대구자혜의원이 경북도립 대구의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경북대학교병원의 전신으로, 지역 의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23년 대구자혜의원은 경북도립 대구의원이 되었다. 이것이 경북대병원의 전신이다.

1927

[장진홍 의사 의거 및 신간회 대구지회 조직]

10월 16일, 장진홍 의사가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켰으며, 동시에 신간회 대구지회가 조직되어 민족 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습니다.

1927년 10월 16일 장진홍이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신간회 대구지회가 조직되었다.

1932

[대구 최초 백화점 '이비시야' 등장]

대구 최초의 백화점인 이비시야 백화점이 등장했습니다. 이는 근대 상업 시설의 발전과 도시 생활의 변화를 상징합니다.

1932년 대구 최초의 백화점 이비시야 백화점이 등장하였다. 현재의 동성로 성내1동 LG패션자리이다.

1938

[달성군 일부 지역 대구부에 편입]

10월 1일, 달성군 수성면, 달서면 일부, 성북면 일부가 대구부에 편입되어 도시의 행정 구역이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1938년 10월 1일 달성군 수성면, 달서면 일부(감삼동 제외), 성북면 일부(동변동·서변동·연경동 제외)을 대구부에 편입하였다.

[대구부 출장소 설치]

11월 2일, 옛 수성면, 달서면, 성북면 지역에 대구부 동부출장소, 서부출장소, 북부출장소가 각각 설치되어 행정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1938년 11월 2일 옛 수성면, 옛 달서면, 옛 성북면 지역에 대구부 동부출장소·서부출장소·북부출장소가 각각 설치되었다. (3출장소)

1941

[대구 약령시 폐쇄]

대구 약령시가 폐쇄되어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 시장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습니다.

1941년 대구 약령시가 폐쇄되었다.

1942

[태극단 학생독립운동 발생]

대구공립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태극단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 일제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1942년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공립상업고등학교 학생들 중심으로 태극단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다.

1945

[대구역 열차 충돌 참사]

9월 29일, 대구역에서 열차 충돌 참사가 발생하여 73명이 사망하고 120여명이 중상을 입는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습니다.

1945년 9월 29일 대구역에서 열차끼리 충돌하여 73명이 사망하고 120여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1946

[대구 10.1 사건 발생]

10월 1일, 대구 10.1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미군정 시기 민중들의 저항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1946년 10월 1일 대구 10·1 사건이 일어났다.

1947

[일본식 동명 한국식으로 개정]

4월 1일, 일본식 동명이 한국식 동명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이는 해방 이후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줍니다.

1947년 4월 1일 일본식 동명이 한국식 동명으로 개정되었다.

1949

[대구부, 대구시로 개칭]

8월 15일, 대구부가 '대구시'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근대 도시로서의 행정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이었습니다.

1949년 8월 15일 대구부에서 대구시로 개칭하였다.

1950

[6.25 전쟁 중 임시 수도 역할]

6.25 전쟁이 발발하자, 7월 16일부터 8월 17일까지 대구가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육군본부와 주한 미8군 사령부가 이전 설치되어 국가 안보의 최전선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50년 7월 16일 6.25전쟁으로 인해 8월 17일까지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가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육군본부 주한 미8군 사령부가 이전 설치되었다.

1951

[대구시 남부출장소 설치]

6월 9일, 대구시 남부출장소가 설치되어 행정 편의를 도모했습니다.

1951년 6월 9일 대구시 남부출장소가 설치되었다. (4출장소)

1952

[동인동, 삼덕동, 칠성동 분동]

1월 16일, 동인동, 삼덕동, 칠성동이 분동되어 행정 구역이 더욱 세분화되었습니다.

1952년 1월 16일 동인동, 삼덕동, 칠성동이 분동하였다. (87법정동)

1953

[대구시 중부 및 종로출장소 설치]

4월 1일, 대구시 중부출장소와 종로출장소가 설치되어 지역 행정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1953년 4월 1일 대구시 중부출장소·종로출장소를 설치하였다. (6출장소)

1958

[달성군 일부 지역 대구시 편입]

1월 1일, 달성군 동촌면, 월배면, 성서면, 가창면, 공산면이 대구시에 편입되어 시역이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1958년 1월 1일 달성군 동촌면, 월배면, 성서면, 가창면, 공산동공산면을 편입하였다. 동촌출장소 등을 설치하였다. (11출장소 148법정동)

1960

[2.28 대구 학생의거 발생]

2월 28일,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이 2.28 학생의거를 일으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이 의거는 4.19 혁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은 2·28 대구 학생의거2.28학생의거를 일으켰다. 이 의거는 4·19 혁명4.19의거로 연결되었다.

1963

[구제 실시 및 5개 구 신설]

1월 1일, 대구시 공산출장소 등 일부 지역이 달성군으로 환원되었고, 동시에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중구, 동구, 서구, 남구, 북구 등 5개 구가 설치되며 현재의 광역시 행정 체계의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1963년 1월 1일 대구시 공산출장소(서변동·동변동 제외)가 달성군 공산동공산면으로, 가창출장소(파동 (대구)파동 제외)가 가창면으로, 성서출장소가 성서면으로, 월배출장소가 월배면으로 환원되었다.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중부출장소 등이 중구 (대구광역시)중구·동구 (대구광역시)동구·서구 (대구광역시)서구·남구 (대구광역시)남구·북구 (대구광역시)북구로 승격하였다. (5구 101법정동)

1965

[동 행정구역 개편]

2월 1일, 동 행정구역 개편으로 행정동의 수가 89개로 줄었습니다.

1965년 2월 1일 동 행정구역 개편으로 행정동의 수가 89개로 줄었다. (5구 89행정동 106법정동)

1976

[동촌출장소 대구시 직속으로 승격]

8월 1일, 동구 동촌출장소가 대구시 동촌출장소로 승격되어 행정 기능이 강화되었습니다.

1976년 8월 1일 동구 동촌출장소가 대구시 동촌출장소로 승격하였다.

1980

[수성구 분리 신설 및 동촌출장소 폐지]

4월 1일, 수성구가 동구에서 분리 신설되었고, 동촌출장소는 폐지되었습니다. 이로써 대구의 행정 구역은 6개 구로 재편되었습니다.

1980년 4월 1일 수성구 (대구광역시)수성구]]가 동구 (대구광역시)동구]]에서 분리·신설되었고, 동촌출장소를 폐지하였다. (6구)

1981

[대구직할시 설치]

7월 1일, 경상북도 대구시, 달성군 월배읍, 성서읍, 공산면 및 칠곡군 칠곡읍, 경산군 안심읍, 고산면 일원이 편입되어 '대구직할시'가 설치되었습니다. 이는 대구가 광역시로 발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81년 7월 1일 경상북도 대구시, 달성군 월배읍·성서읍·공산동공산면]] 및 칠곡군 칠곡읍]], 경산시경산군]] 안심읍]]·고산동 (대구)고산면]] 일원을 편입하여 '''대구직할시'''가 설치되었다.

1983

[어린이회관 개관]

11월 15일, 어린이회관이 개관하여 아동들을 위한 교육 및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1983년 11월 15일 어린이회관을 개관하였다.

1984

[대구 인구 200만 명 돌파]

7월 중순, 대구의 인구가 200만 명을 돌파하여 대도시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1984년 7월 중순 대구 인구 200만명 돌파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

6월 27일,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대구와 서남부 지역 간의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습니다.

1984년 6월 27일 광주대구고속도로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1988

[달서구 설치]

1월 1일, 서구 및 남구의 일부를 관할로 '달서구'가 설치되어 대구는 7개 구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1988년 1월 1일 서구 (대구광역시)서구]] 및 남구 (대구광역시)남구]]의 일부를 관할로 달서구]]가 설치되었다. (7구)

1991

[성서 초등학생 5명 실종 사건 발생]

3월 26일, 성서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전국적인 안타까움과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91년 3월 26일 성서 초등학생 실종 사건성서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구직할시의회 개원]

7월 8일, 지방자치제도의 부활로 대구직할시의회가 개원하여 시민들의 자치 참여가 확대되었습니다.

1991년 7월 8일 지방자치제도의 부활로 대구광역시의회대구직할시의회]]가 개원하였다.

[대구 도시철도 1호선 기공]

12월 7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기공식이 거행되어 대구 지하철 시대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1991년 12월 7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기공

1992

[동화사 남북통일발원 약사여래 석조대불 완공]

11월 27일, 동화사 남북통일발원 약사여래 석조대불이 완공되었습니다. 이는 통일을 염원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1992년 11월 27일 동화사 남북통일발원 약사여래 석조대불이 완공되었다.

1995

[대구광역시로 개칭]

1월 1일, 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되면서 '대구직할시'가 '대구광역시'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는 지방 분권과 자율성 강화의 상징이었습니다.

1995년 1월 1일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대구광역시로 개칭하였다.

[달성군 대구광역시로 편입]

3월 1일, 달성군 전역이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시역이 885.6km²로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이는 대구광역시의 위상과 규모를 증대시키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1995년 3월 1일 달성군 전역을 경상북도로부터 편입하였다. 시역은 885.6 km2로 확장되었다. (7구 1군)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 발생]

4월 28일,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101명이 사망하는 등 대규모 인명 피해를 냈습니다. 이 사고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나 101명이 사망하였다.

1996

[대구 인구 250만 명 돌파]

12월, 대구의 인구가 250만 명을 돌파하여 지속적인 도시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1996년 12월 대구 인구 250만명 돌파

[논공면, 논공읍으로 승격]

9월 1일, 달성군 논공면이 논공읍으로 승격되어 지역 행정 구역의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1996년 9월 1일 달성군 논공읍논공면]]이 논공읍으로 승격

[대구 도시철도 2호선 기공]

12월 19일, 대구 도시철도 2호선 기공식이 거행되어 도시철도망 확장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96년 12월 19일 대구 도시철도 2호선 기공

1997

[다사면, 다사읍으로 승격]

11월 1일, 달성군 다사면이 다사읍으로 승격되어 행정 구역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1997년 11월 1일 달성군 다사읍다사면]]이 다사읍으로 승격

[대구 도시철도 1호선 개통]

11월 26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진천~중앙로)이 개통되어 대구에 지하철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습니다.

1997년 11월 26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진천역진천]]~중앙로역 (대구)중앙로]]) 개통 - 대구의 지하철 시대 개막

1998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완전 개통]

5월 2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중앙로~안심)이 완전 개통되어 도시철도망이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1998년 5월 2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중앙로역 (대구)중앙로]]~안심역안심]])이 완전 개통되었다.

2002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연장 개통]

5월 10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대곡~진천)이 연장 개통되어 시민들의 교통 편의가 더욱 증진되었습니다.

2002년 5월 10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대곡역 (대구)대곡]]~진천역진천]])이 연장 개통되었다.

[한일월드컵 미국전 대구에서 개최]

6월 10일, 한일월드컵 미국전이 대구월드컵스타디움에서 개최되어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2002년 6월 10일 한일월드컵 미국전 대구월드컵스타디움에서 열림

[한일월드컵 터키전 대구에서 개최]

6월 29일, 한일월드컵 터키전(3, 4위 전)이 대구월드컵스타디움에서 개최되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한일월드컵 터키전 대구월드컵스타디움에서 열림 (한일월드컵 3, 4위 전)

2003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발생]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발생하여 192명의 사망자와 14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 전반의 안전 시스템을 재검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발생으로 192명의 사망자와 14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개막]

8월 21일부터 8월 31일까지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대구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대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3년 8월 21일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개막하여, 8월 31일 폐막하였다.

2005

[대구 도시철도 2호선 개통]

10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2호선(문양~사월)이 개통되어 대구의 도시철도망이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2005년 10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2호선(문양역문양]]~사월역사월]])이 개통되었다.

2008

[경제자유구역 지정]

4월 25일, 동구 등 6개 지구의 대구광역시, 구미시 등 5개 지구의 경상북도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받아 지역 경제 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얻었습니다.

2008년 4월 25일 동구 (대구광역시)동구]] 등 6개 지구의 대구광역시, 구미시]] 등 5개 지구의 경상북도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받았다.

2009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기공]

7월 24일,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기공식이 거행되어 또 다른 도시철도 노선 건설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2009년 7월 24일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기공

2011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 대한민국에서는 FIFA 월드컵, 하계 올림픽과 함께 국제 스포츠 3대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는 7번째 국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1년 8월 27일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개막하여, 9월 4일 폐막하였다. 이는 1991년 일본 도쿄, 2007년 일본 오사카에 이어 아시아 국가로서는 2번째로 개최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일본, 독일에 이어 FIFA 월드컵, 하계 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국제 스포츠 3대 이벤트를 모두 개최하는 7번째 국가가 됨으로써 세계적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012

[대구 도시철도 2호선 영남대까지 연장 개통]

9월 19일, 대구 도시철도 2호선이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영남대학교까지 연장 개통되어 대구와 경산 간의 연계 교통이 강화되었습니다.

2012년 9월 19일 대구 도시철도 2호선이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영남대학교]]까지의 연장구간이 개통하였다. (사월역사월]] ~ 영남대역영남대]])

[제93회 전국체육대회 개최]

10월 11일부터 10월 17일까지 제93회 전국체육대회가 대구에서 성공적으로 열렸습니다.

2012년 10월 11일부터 10월 17일까지 제93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다.

[지상파 아날로그 TV 방송 종료]

11월 6일, 지상파 아날로그 TV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 방송 시대로 전환되었습니다.

2012년 11월 6일 지상파 아날로그 TV방송이 종료되었다.

2013

[세계에너지총회 개최]

10월 13일부터 10월 17일까지 세계에너지총회가 대구에서 개최되어 에너지 산업의 중요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2013년 10월 13일 ~ 10월 17일 2013년 세계에너지총회세계에너지총회]]가 열렸다.

2015

[제7차 세계 물 포럼 개최]

4월 12일부터 4월 17일까지 제7차 세계 물 포럼이 대구에서 개최되어 물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논의에 기여했습니다.

2015년 4월 12일 ~ 4월 17일 세계 물 포럼제7차 세계 물 포럼]]이 열렸다.

[대구 도시철도 3호선 개통]

4월 23일, 대구 도시철도 3호선(칠곡경대병원~용지)이 개통되어 도시철도망이 더욱 확충되었습니다.

2015년 4월 23일 대구 도시철도 3호선(칠곡경대병원역칠곡경대병원]]~용지역용지]])이 개통되었다.

2016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연장 개통]

9월 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대곡~설화명곡)이 연장 개통되어 시민들의 교통 접근성이 더욱 향상되었습니다.

2016년 9월 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대곡역 (대구)대곡]]~설화명곡역설화명곡]])이 연장 개통되었다.

2018

[유가면, 유가읍으로 승격]

3월 1일, 유가면이 유가읍으로 승격되어 행정 구역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8년 3월 1일 : 유가면이 유가읍]]으로 승격

[옥포면, 현풍면 읍으로 승격]

11월 1일, 달성군 옥포면과 현풍면이 옥포읍, 현풍읍으로 승격되어 지역 행정 구역의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2018년 11월 1일 달성군 옥포면]], 현풍면]]이 옥포읍]], 현풍읍]]으로 승격

2023

[군위군 대구광역시로 편입]

7월 1일, 군위군 전역이 경상북도에서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로써 대구는 7개 구 2개 군으로 구성된 광역 도시로 더욱 성장했습니다.

2023년 7월 1일 군위군]] 전역을 경상북도]]로부터 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편입]]하였다. (7구 2군)

2024

[대경선 개통]

12월 14일, 대경선(구미~경산 구간)이 개통되어 지역 간 광역 철도 교통망이 확충되었습니다.

대경선 : 2018년 4월 구미 ~ 경산 구간 공사에 들어가고 2024년 12월 14일에 개통했다. 2, 3단계로 나누어져 있고 밀양과 김천까지 공사를 할 계획이고 서대구역을 복합환승센터로 건설해 KTX와 SRT가 개통된다.

[중앙선 복선 전철화 구간 완공 및 군위역 이전 통합]

12월 20일, 중앙선 복선 전철화 구간이 완공되어 군위역으로 이전 통합되었습니다.

2023년 7월 1일부터 군위군]]이 대구광역시에 편입되면서 2024년 12월 20일부터 중앙선]] 복선 전철화 구간이 완공되어 군위역]]으로 이전 통합되었다.

2026

['대구경북특별시' 출범 예정]

2026년 7월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행정 통합 체제인 '대구경북특별시'가 출범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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