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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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3세
왕, 군주, 역사적 인물, 군사 지도자 + 카테고리
아케메네스 제국의 마지막 샤한샤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정복자와 맞서 제국의 명운을 건 사투를 벌였습니다. 거듭된 패배 속에서도 끊임없이 군대를 재건하며 제국을 지키려 했으나, 이소스와 가우가멜라 전투의 치명적 패배와 부하의 배신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2백 년 이상 오리엔트를 호령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영원한 몰락을 의미하며, 고대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장엄한 제국의 파멸을 상징하는 거대한 역사적 변곡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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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C

[왕가의 방계로 탄생]

아케메네스 왕조의 방계 혈족으로 훗날 다리우스 3세가 될 아르타샤타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족이었지만 직계 후계자는 아니었기에 젊은 시절에는 제위를 물려받을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출생은 훗날 무너져가는 거대 제국을 떠맡게 될 극적인 삶의 첫 장을 열었습니다.
아르타샤타의 아버지는 아르사메스이며, 어머니는 시시감비스로 둘 다 아케메네스 왕가의 고귀한 혈통을 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 등 고대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체격이 건장했던 것으로 묘사되며, 일찍부터 제국의 행정과 군사 부문에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카두시족과의 눈부신 전투]

아르타샤타는 페르시아의 변방을 끈질기게 위협하던 반항적인 부족인 카두시족과의 원정에 참전하여 눈부신 전공을 세웠습니다. 적의 가장 강력한 용사를 일대일 결투에서 단숨에 꺾는 엄청난 무용을 발휘하며 제국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 빛나는 전공은 그가 뛰어난 군사 지도자로서의 명성을 얻고 권력의 중심부로 다가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치하에서 벌어진 이 원정에서 그는 무력을 크게 인정받아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단번에 얻게 되었습니다. 고대 문헌들은 이 시기의 무용담이 훗날 그가 막강한 권력을 쥔 환관 바고아스의 눈에 띄어 제위에 오르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고 입을 모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총독 발탁]

뛰어난 군사적 능력을 입증한 아르타샤타는 제국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인 아르메니아의 사트라프(총독)로 전격 발탁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제국 전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핵심 통신망인 왕립 우편 제도를 감독하는 막중한 임무까지 함께 부여받았습니다. 변방의 총독이자 정보망의 총괄 관리자로서 제국 내정의 깊숙한 곳까지 통제력을 크게 넓혀나갔습니다.
일부 적대적인 그리스 역사가들은 그가 즉위하기 전 한낱 파발꾼에 불과했다고 폄하하기도 했으나, 실제 아케메네스 제국에서 왕립 우편 제도의 책임자는 황제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최고위 권력자였습니다. 이 직책을 거치며 그는 거대한 제국의 행정 시스템과 정보망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훗날 제국을 직접 통치할 역량을 단단히 다졌습니다.

[권신 바고아스의 핏빛 암살극]

강력한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군주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궁정의 절대 실세였던 환관 바고아스에 의해 처참하게 독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바고아스는 자신에게 철저히 순종할 꼭두각시를 왕좌에 앉히기 위해 황제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들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했습니다. 이 끔찍한 연쇄 암살 사건은 막강했던 페르시아 궁정을 극심한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바고아스는 제국의 권력을 완전히 자신의 손아귀에 장악하고자 했으나, 독립적이고 잔혹한 성향이 강했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눈엣가시였습니다. 이 충격적인 황제의 죽음 이후 이집트를 비롯한 제국 변방에서 연달아 반란이 일어나는 등 아케메네스 왕조의 통치 기반이 치명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왕 아르세스의 비극]

바고아스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권력을 구축하려던 젊은 새 황제 아르세스마저 즉위 2년 만에 또다시 바고아스에게 비참하게 독살당하고 말았습니다. 황실의 핏줄이 무참히 끊기면서 제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극심한 지도력 공백 사태에 휩싸였습니다. 궁정의 지배자가 된 바고아스는 새로운 허수아비를 찾기 위해 왕실 방계의 족보를 다급하게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르세스는 바고아스의 강력한 영향력을 배제하고 친정을 시도하려 했으나, 제국의 모든 정보망을 장악하고 있던 권신을 당해내기에는 정치적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연이은 최고 통치자들의 끔찍한 비명횡사는 제국 고위층의 분열을 가속화시켰고, 훗날 서방의 마케도니아에게 침략의 명분과 기회를 제공하는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다리우스 3세의 극적인 즉위]

직계 혈통이 단절된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바고아스의 선택을 받은 아르타샤타가 마침내 제국의 새로운 지배자인 다리우스 3세로 옥좌에 올랐습니다. 오만한 권신은 그가 유순한 성품으로 얌전한 꼭두각시가 되어줄 것이라 중대한 착각을 하고 제위를 넘겼습니다. 핏빛 찬탈의 끔찍한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흔들리는 거대한 제국의 명운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즉위할 때 굳이 선택한 '다리우스'라는 왕명은 과거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위대한 대왕 다리우스 1세의 찬란한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의 표명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물려받은 제국은 권력 암투로 기력이 쇠해져 있었고, 서방의 위협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태였습니다.

[독살 음모의 통쾌한 역전]

자신의 뜻대로 조종당하지 않는 새 황제의 강경한 태도에 위협을 느낀 바고아스는 또다시 치명적인 독이 든 잔을 준비해 암살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사전에 충성스러운 정보망을 통해 음모를 철저히 파악한 다리우스 3세는 오히려 서슬 퍼런 태도로 바고아스에게 그 독배를 직접 마시도록 명령했습니다. 반역자의 처참한 최후와 함께 황제는 궁정 내부의 혼란을 단숨에 잠재우고 진정한 일인자의 권력을 움켜쥐었습니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 등 역사가들의 생생한 기록에 따르면, 다리우스 3세는 바고아스가 웃으며 건넨 독배를 받아든 직후 반역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잔을 그대로 돌려주어 억지로 마시게 하는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이 단호하고 극적인 숙청 작업은 그가 만만한 허수아비 군주가 아님을 만천하에 입증하며 권력의 기틀을 다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소아시아 전격 침공]

페르시아의 혼란스러운 권력 교체기를 절묘하게 틈타 마케도니아의 국왕 필리포스 2세가 보낸 정예 선발대가 소아시아 국경을 넘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이들은 페르시아의 압제로부터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해방한다는 거창한 명분 아래 제국의 영토를 거침없이 유린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간 서방 세계를 간섭해 오던 아케메네스 제국에 대한 그리스의 거대한 복수극이 마침내 막을 올린 것입니다.
백전노장 파르메니온 장군이 이끄는 약 1만 명의 마케도니아 선발대는 소아시아 서부 연안에 강력한 교두보를 순식간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페르시아 제국 수뇌부 입장에서는 늘 있던 변방의 국지전 정도로 가볍게 치부되었으나, 훗날 세계 지도를 바꿀 거대한 대륙 간 전쟁의 치명적인 서막이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적, 알렉산드로스의 부상]

그리스 원정군의 총사령관 필리포스 2세가 갑작스러운 암살로 비명횡사하고,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는 대격변이 일어났습니다. 페르시아 황실에서는 서방의 위협이 허무하게 사라졌다고 안도했으나 이는 국가의 명운을 가를 최악의 오판이었습니다. 새롭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 젊은 왕은 아버지를 아득히 능가하는 불타는 야심과 천재적인 군사력으로 무장한 전신이었습니다.
초기 다리우스 3세는 마케도니아의 극심한 내부 혼란을 틈타 알렉산드로스의 잠재적 정적들에게 막대한 황금을 지원하며 분열을 조장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예상을 비웃듯 놀라운 속도로 발칸 반도의 반란을 모조리 진압하고 군대를 재정비하여, 심장부를 향한 거대한 진군을 선포했습니다.

[그라니코스 강 전투의 뼈아픈 실책]

알렉산드로스의 무시무시한 본대가 소아시아를 본격 침공하자, 페르시아의 현지 총독들이 그라니코스 강에서 연합 방어선을 구축하고 맞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군의 폭풍 같은 기병 돌격에 페르시아군 진형이 허망하게 붕괴되며 뼈아픈 대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황제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직접 출전하지 않은 대가는 소아시아 전체의 상실이라는 참담한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이 전투에 앞서 페르시아 측의 뛰어난 그리스인 용병 대장 멤논은 적의 보급을 끊는 초토화 작전을 강력히 건의했으나, 자신의 영지에 막대한 피해가 가는 것을 극도로 우려한 지방 총독들이 이를 묵살하면서 대패를 자초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결정적 승리를 통해 페르시아 내부로 거침없이 진격할 수 있는 든든한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이소스 전투의 치명적 패주]

제국의 절체절명 위기를 직감한 다리우스 3세가 마침내 막강한 대군을 직접 이끌고 이소스에서 알렉산드로스와 역사적인 격돌을 벌였습니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비좁은 지형의 불리함과 적의 맹렬한 쐐기꼴 기병 돌파에 황제의 친위대 방어선이 무참히 뚫려버렸습니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다리우스 3세는 전장을 내버려 둔 채 황급히 도주했고, 지휘관을 잃은 페르시아 대군은 끔찍한 대학살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전투 직전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드로스의 배후를 기습적으로 차단하는 탁월한 전략적 기동을 보여주었으나, 정작 좁디좁은 전장에서는 페르시아 대군의 장점을 단 하나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황제가 화려한 전차를 버리고 말로 갈아타 허겁지겁 도망치는 굴욕적인 모습은 마케도니아군의 사기를 하늘 높이 찌르게 만들었고 제국의 위신을 회복 불능으로 추락시켰습니다.

[황실 가족의 비참한 포로 전락]

황제가 허둥지둥 전장을 무책임하게 이탈하는 바람에, 후방 군영에 남아있던 그의 늙은 어머니, 아내, 그리고 어린 자녀들이 고스란히 적군의 포로가 되는 사상 초유의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절대 권력자의 가장 고귀한 혈육들이 적장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사실은 제국 전체에 거대한 심리적 충격과 절망을 주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들을 정중하게 예우했지만, 이는 다리우스 3세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가장 고통스러운 치욕이 되었습니다.
황태후 시시감비스와 황후 스타테이라, 그리고 공주들은 알렉산드로스의 예상치 못한 관대하고 정중한 대우에 오히려 깊이 감복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전대미문의 포획 사건은 다리우스 3세가 알렉산드로스에게 협상을 비굴하게 애걸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인질극의 도구가 되었으며, 황제의 도덕적 권위를 바닥까지 무너뜨렸습니다.

[절박하고 굴욕적인 평화 제안]

포로가 된 가족을 되찾고 제국의 절반이라도 건지기 위해 다리우스 3세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막대한 몸값과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거대한 영토를 모두 넘기겠다는 파격적인 조약을 애타게 제안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딸과 정략결혼을 맺어 두 제국이 동맹을 맺자는 굴욕적인 내용까지 서신에 꾹꾹 눌러 담아 보냈습니다. 이는 사실상 대왕의 자존심을 버리고 페르시아가 패전국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처참한 외교적 항복이었습니다.
그가 가족의 대가로 제안한 1만 달란트라는 몸값은 당시 고대 세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노련한 부관 파르메니온은 이 훌륭한 조건이라면 당장 전쟁을 멈추고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조언했으나, 젊은 정복자는 한층 더 오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차가운 협상 거부]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 3세의 절박하고도 막대한 제안을 철저히 조롱하며, 자신을 동등한 대왕이 아닌 아시아의 유일무이한 군주로 무릎 꿇고 받들 것을 오만하게 요구했습니다. 협상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짐에 따라 두 군주는 제국의 완전한 멸망 아니면 정복이라는 피 튀기는 외나무다리에서 다시 마주쳐야만 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이제 국가의 존망을 건 최후의 영혼까지 끌어모은 결전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서슬 퍼런 답신을 통해 페르시아가 과거 그리스를 먼저 무자비하게 침공했던 역사적 원죄를 낱낱이 꼬집으며 자신의 정복을 지극히 정당한 신성한 복수로 규정했습니다. 이 외교적 결렬로 인해 다리우스 3세는 빼앗긴 서부 영토를 영원히 포기하고 메소포타미아 깊숙한 곳에서 동방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사활을 건 방어전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우가멜라의 멸망적 대결전]

제국의 모든 역량을 쥐어짜 모은 다리우스 3세의 어마어마한 대군이 넓은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마케도니아군과 제국의 명운을 건 최후의 핏빛 격돌을 벌였습니다. 치명적인 낫 전차를 활용하기 위해 전장까지 정성껏 평탄하게 다져놓았으나, 알렉산드로스의 천재적인 기만 전술에 페르시아군 중앙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적장의 맹렬한 돌진이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오자, 황제는 또다시 군대를 버리고 전장을 탈주하는 용서받지 못할 과오를 범했습니다.
이 웅장한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는 인도, 박트리아, 스키타이 등 제국 동방의 온갖 맹렬한 전투 코끼리와 중무장 정예 기병을 총동원하여 전면적인 포위 섬멸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의 기발한 대각선 진형과 치밀한 중앙 돌파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리며, 압도적인 우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허리가 꺾이는 회복 불능의 참패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에크바타나로의 처절한 도주]

가우가멜라의 궤멸적인 패배 직후, 다리우스 3세는 소수의 패잔병만을 이끌고 아르벨라를 거쳐 메디아의 험준한 산악 요새인 에크바타나로 처절하게 도망쳤습니다. 황제가 전장을 비겁하게 버린 대가는 바빌론과 수사 같은 막대한 황금을 품은 제국의 핵심 수도들이 줄줄이 적의 손에 떨어지는 끔찍한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황제는 깊은 산속에서 동방 사트라프들의 구원병을 애타게 기다리며 숨죽여야만 했습니다.
그가 방어에 유리한 바빌론으로 후퇴하지 않은 이유는 알렉산드로스의 진격로를 동방의 험준한 산악 지대로 유인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려는 전략적 목적도 있었다고 역사가들은 분석합니다. 그러나 이미 두 번이나 최고 사령관으로서 전장을 무책임하게 이탈한 비겁한 군주를 향해, 남아있던 귀족들과 군사들의 충성심은 돌이킬 수 없이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무산된 반격의 헛된 꿈]

에크바타나에 은신한 쫓기는 황제는 박트리아 총독 베수스를 비롯한 동부 국경의 군대들을 다급하게 규합하여 알렉산드로스에게 다시 한번 맞서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기세로 추격해 오는 무적의 군대에 대한 짙은 공포와, 이미 황제에게 깊이 실망한 부하들의 바닥을 치는 사기로 인해 군대 재건은 끔찍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제국을 다시 세우려던 반격의 불씨는 타오르기도 전에 허무하게 사그라들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제국의 상징인 페르세폴리스 궁전을 무자비하게 불태운 후 무서운 속도로 에크바타나를 향해 진군해오자, 다리우스 3세는 더 이상 그곳에서 항전할 수 없음을 절망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목숨을 건 전투를 포기하고 더 동쪽인 박트리아 방면으로 끝없는 후퇴를 결정해야만 했고, 이는 부하들의 결정적인 분노와 불만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베수스의 비열한 쿠데타]

끝없이 계속되는 굴욕적인 도주 행각에 분노한 제국의 귀족들과 박트리아 총독 베수스가 마침내 무능한 황제에게 반기를 들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대제국 페르시아의 황제는 황금빛 족쇄에 단단히 묶여 초라한 마차에 감금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던 측근들이 다급해진 나머지 알렉산드로스에게 바칠 협상 카드로 황제를 인질 삼은 가장 비열한 배신이었습니다.
황제의 친척이기도 했던 권력자 베수스와 기병대장 나바르자네스는 패배만 일삼는 다리우스 3세를 강제로 폐위하고, 자신들이 직접 마케도니아군과 맞서거나 더 나은 조건으로 협상하겠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뻔뻔하게 정당화했습니다. 그리스 출신 용병대장 파트론이 황제에게 반역의 음모를 미리 알리며 결사 항전과 호위를 자청했으나, 다리우스 3세는 이미 운명을 체념한 듯 제국민들의 손에 처벌받겠다며 이를 씁쓸히 거절했다고 전해집니다.

[황제의 참혹하고 비극적인 최후]

알렉산드로스의 무시무시한 추격대가 코앞까지 들이닥치자, 비열한 인질극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달은 베수스 일당은 포로로 잡힌 황제의 몸을 무참히 난자하고 뿔뿔이 도망쳤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더러운 짐마차에 홀로 버려진 다리우스 3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외롭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무능했지만 끝까지 제국을 지키려 했던 아케메네스 왕조 마지막 황제의 최후는 이토록 허망하고 처절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반역자들은 다리우스 3세에게 함께 말로 갈아타고 황급히 도망칠 것을 강요했으나, 황제가 이를 끝내 거부하자 투창으로 몸을 여러 번 찌른 뒤 짐마차에 잔인하게 유기했습니다. 이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산 채로 넘겨주지 않기 위한 무자비한 조치였으며, 이 처참한 암살을 끝으로 2세기가 넘게 오리엔트의 거대한 영광을 누렸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은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적군이 건넨 마지막 물 한 모금]

버려진 마차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던 황제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페르시아 병사가 아닌 적군인 마케도니아의 평범한 병사 폴리스트라투스였습니다. 다리우스 3세는 타는 듯한 목마름을 호소하며 그가 건네준 물 한 모금을 달게 마시고는, 알렉산드로스에게 자신의 가족을 보살펴준 것에 대한 깊은 감사의 유언을 남기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거대한 제국의 피비린내 나는 몰락 속에 피어난 작고 처연한 인간적 교감의 순간이었습니다.
플루타르코스의 가슴 먹먹한 기록에 따르면 황제는 이름 모를 병사에게 생명수 같은 물을 얻어 마신 후, 마지막 순간에 적장에게 크나큰 빚을 지고 떠난다며 자비를 베풀어준 알렉산드로스에게 잊지 못할 감사를 꼭 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직후 현장에 도착한 알렉산드로스는 이미 굳게 숨을 거둔 옛 제국의 늙은 황제 위로 자신의 고귀한 겉옷을 벗어 덮어주며 진심 어린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전해집니다.

[페르세폴리스의 장엄한 국장]

황제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특별한 명령으로, 다리우스 3세의 유해는 화려하게 치장되어 제국의 잿빛 옛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로 엄숙하게 이송되었습니다. 그는 생전의 영광스러운 지위에 걸맞게 아케메네스 왕조 위대한 선대 황제들의 곁에 묻히며 군주로서의 마지막 예우를 완벽하게 받았습니다. 정복자의 손에 의해 거행된 이 웅장한 국장은 페르시아 제국의 기나긴 피의 역사에 진정한 마침표를 찍는 거대한 상징적인 장례식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 3세를 페르시아의 전통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매장함으로써 자신이 아케메네스 왕조의 합법적이고 영광스러운 후계자임을 온 세상에 과시하려 하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습니다. 또한 황제를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하려 한 베수스 일당을 세상 끝까지 끈질기게 추격하여 잔혹하게 처형함으로써, 죽은 적장에 대한 복수를 자신의 손으로 완벽하게 대신 완성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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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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