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빗슈 유
연표
1986
다르빗슈 유는 1986년 8월 16일 일본 오사카부 하비키노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일본인이고 아버지는 이란인 전직 축구 선수이다. 그는 어린 시절 아이스하키와 야구를 병행하다가 야구의 길로 들어섰다.
1993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으며, '젠 하비키노 보이즈' 팀에 소속되어 전국 대회 8강 진출, 세계 대회 3위 등의 성적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2004
2004년 11월 17일,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인기 투수로서 주목받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단독 1순위로 지명되었다. 이후 계약금 1억, 연봉 1500만, 성과급 5천만 엔이라는 고졸 신인으로서 최고 조건으로 가계약을 맺었다.
2005
[NPB 첫 등판 및 첫 승리]
1군 첫 등판이자 첫 선발 경기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8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2005년 6월 15일, 1군 첫 등판이자 첫 선발 경기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8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14경기에 등판하여 5승(5패)을 기록했다.
2006
[일본 시리즈 우승 및 아시아 시리즈 제패]
일본 시리즈에서 팀의 44년 만의 우승을 이끌고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아시아 시리즈 결승전에서도 승리 투수가 되어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2006년,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를 거쳐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 팀의 44년 만의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며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어진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라뉴 베어스와의 결승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10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어 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성장했다.
2007
[사와무라상 및 퍼시픽 리그 MVP 수상]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고, 최다 탈삼진, 골든 글러브상, 베스트 나인 타이틀을 석권하며 사와무라상과 퍼시픽 리그 MVP를 수상했다. 같은 해 배우 사에코와 결혼을 발표했다.
2007년,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으며, 15승 5패, 평균자책점 1.82를 기록하며 최다 탈삼진, 골든 글러브상, 베스트 나인 타이틀을 석권했다.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에이지상과 퍼시픽 리그 MVP까지 선정되며 21세 최연소 MVP 기록을 세웠다. 또한 배우 사에코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삭발 투혼]
베이징 올림픽 쿠바전 패전 이후 동료들과 삭발을 하였습니다. 예선 리그 첫 경기인 쿠바전에서 4이닝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된 후 삭발을 했습니다. 예선 리그 쿠바전에서 4이닝 4실점으로 패전한 후 삭발했습니다. 이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결정에 따라 예정되어 있던 준결승 선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2008년 12월 19일, 여배우 사에코와 하와이 호놀룰루 시내에 마련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다르빗슈의 아버지와 같은 해 3월 태어난 장남, 가족 외에도 후지이 슈고, 가와사키 무네노리 등 많은 동료 선수들이 참석해 축하했다.
2009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에 출전하여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승리투수가 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9년 3월,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의 선발 3인방으로 출전했다.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승리투수가 되었고, 대회 통산 2승 1패, 평균자책점 2.08, 최다인 20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둘째 아이 소식과 기술서적 출간]
소프트뱅크전 완투승 후 히어로 인터뷰에서 둘째 아이 임신 소식을 알렸다. 또한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일본 야구계에 환원하기 위해 '다르빗슈 유의 변화구 바이블'을 출간했다.
2009년 7월 15일, 소프트뱅크와의 경기에서 완투승을 따낸 후 히어로 인터뷰에서 둘째 아이를 얻었다고 밝혔다. 그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이어가며 개인 통산 60승째를 올렸다. 또한 자신의 기술을 일본 야구계에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10종류의 구종 잡는 방법과 투구법을 직접 해설한 '다르빗슈 유의 변화구 바이블'을 출간했다.
2010
[4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 및 사회 공헌 활동 인정]
이나오 가즈히사 이래 4년 연속 평균자책점 1점대를 달성하며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차지했다. 구제역 피해 농가에 기부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골든 스피릿상을 수상했다.
2010년, 시즌을 통해 안정된 피칭을 계속하며 4년 연속 평균자책점을 1점대로 달성, 2년 연속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과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석권했다. 또한 구제역 피해를 당한 아내의 본가가 있는 미야자키현 축산 농가에 지원금을 보내고 아웃카운트 1개당 기부하는 등 사회 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골든 스피릿상을 수상했다.
2011
[동일본 대지진 성금 5천만 엔 기부]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발생 후 일본적십자사를 통해 5천만 엔을 기부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다르빗슈는 일본적십자사를 통해 5천만 엔이라는 거액을 성금으로 기부하며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복구 활동에 힘을 보탰다.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MLB 도전 발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했고, 텍사스 레인저스가 포스팅 시스템 사상 최고 금액인 5,170만 3,411달러로 교섭권을 얻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다르빗슈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포스팅 시스템을 행사하며 메이저 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뉴욕 양키스 등 여러 구단이 영입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12월 20일 텍사스 레인저스가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웃도는 포스팅 시스템 사상 최고 금액인 5,170만 3,411달러로 교섭권을 획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2
[MLB 정식 계약 및 이혼]
텍사스 레인저스와 6년 총액 6,0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으며, 같은 날 사에코와 이혼했다고 밝혔다.
2012년 1월 18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6년 간 5,600만 달러를 포함한 인센티브 400만 달러의 총액 6,000만 달러에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 등번호는 NPB 시절과 같은 11번으로 정했다. 또한 같은 날 전 부인 사에코와 이혼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MLB 첫 등판 및 첫 승리]
시애틀 매리너스전에서 메이저 리그 진출 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여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2년 4월 9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진출 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했다. 첫 회에 4실점을 기록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으나, 5와 2/3이닝 동안 8피안타 5실점을 기록하고도 타선의 지원을 받아 메이저 리그에서의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4월 한 달 동안 4승 무패, 평균자책점 2.18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월간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3
[9회 2아웃 퍼펙트 게임 무산]
휴스턴과의 원정 경기에서 9회 2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갔으나, 마지막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대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2013년 4월 3일, 휴스턴 미닛메이드파크에서 열린 휴스턴과의 원정 경기에서 9회 투아웃까지 26명의 타자를 1루에 내보내지 않으며 완벽한 투구를 이어갔다. 그러나 마지막 타자인 마윈 곤잘레스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아시아 투수 첫 퍼펙트 게임'이라는 대기록 작성에 아쉽게 실패했다. 그는 곧바로 교체됐고, 8.2이닝 1안타 14삼진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7
2017년 7월 말, 다르빗슈는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이로써 그는 당시 다저스 소속이었던 류현진 선수와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다저스 이적 후 디비전 시리즈에서 호투하며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포스트시즌 승리 투수가 되기도 했으나, 월드시리즈에서는 부진하며 팀의 준우승에 그쳤다.
2018
2018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떠나 시카고 컵스로 이적하며 새로운 팀에서 활약을 시작했다.
2021
2021년, 다르빗슈는 시카고 컵스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이적하여 현재까지 샌디에이고의 선발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2023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베테랑으로서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젊은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었고, 마운드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