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마사히로
연표
1988
[다나카 마사히로 출생]
일본 효고현 이타미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투수와 포수를 겸하며 재능을 보였습니다.
효고현 이타미시 출신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연식 소년 야구팀 '고야노사토 타이거스'에서 야구를 시작했으며, 4번 타자 겸 포수로서 사카모토 하야토와 배터리를 이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효고 현 대회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보이스 리그팀 '다카라즈카 보이스'에서 경식 야구를 시작하며 투수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2005
[고교 야구 2연패 및 150km/h 기록]
고마자와 대학 부속 도마코마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제8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주전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대회 2연패 달성에 기여했습니다. 결승전에서는 150km/h를 기록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고마자와 대학 부속 도마코마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제87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 주전 투수로 등판하여 140km/h 전후의 속구와 고속 슬라이더, 포크볼을 주무기로 사용하며 팀의 대회 2연패 달성에 기여했습니다. 결승전에서는 2학년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150km/h를 측정했으며, 대회 종료 후 AAA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에 발탁되어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06
[라쿠텐 골든이글스 드래프트 1순위 지명]
고교생 드래프트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오릭스 버펄로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 4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라쿠텐이 교섭권을 획득했습니다.
2006년 9월 25일에 열린 고교생 드래프트에서 4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아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추첨 끝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교섭권을 획득했습니다. 이후 라쿠텐과 계약금 1억 엔, 연봉 1,500만 엔으로 가계약을 맺었으며, 등번호는 18번으로 결정되었습니다.
2007
[NPB 첫 등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첫 등판하여 프로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비록 6실점을 기록하며 고전했지만,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팀의 에이스로 발돋움했습니다.
2007년 3월 29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첫 등판하여 1과 2/3이닝 동안 6피안타 3탈삼진 1볼넷의 6실점을 기록했습니다. 팀은 4회에 동점을 만들면서 패전 투수는 면했습니다. 이후 4월 18일 소프트뱅크전에서 데뷔 첫 승리 및 첫 완투승을 달성했으며, 6월 13일에는 고졸 신인으로서 완봉승을 거두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NPB 신인왕 수상]
프로 데뷔 시즌인 2007년에 11승을 올리고 고졸 신인으로서 역대 4위의 196탈삼진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후 8년 만의 고졸 1년차 신인왕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7년 시즌에 186과 1/3이닝을 던져 11승을 올렸고, 고졸 신인으로서 역대 4위인 196탈삼진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마쓰자카 다이스케 이후 8년 만에 고졸 1년차 신인왕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소프트뱅크와의 맞대결에서 6경기 등판 중 5승을 거두는 등 특히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 발탁]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국제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했습니다. 쿠바와의 경기에서 첫 등판을 기록하며 일본 야구의 미래를 짊어질 투수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등번호 15번을 배정받았습니다. 첫 경기인 쿠바와의 경기에서 8회에 팀의 세 번째 투수로서 등판하여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정규 시즌에서는 9승에 그쳤지만, 고졸 신인으로서 40년 만에 2년 연속 150탈삼진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기여]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팀의 2연패 달성에 기여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의 경험을 쌓으며 기량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2009년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어 팀의 대회 2연패 달성에 기여했습니다. 정규 시즌 개막 이후 소프트뱅크와의 홈 개막전에서 완봉승을 거두는 등 4경기 연속 완투 승리를 기록하며 첫 월간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리그 2위 타이인 15승, 리그 3위 평균 자책점 2.33을 기록하며 에이스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2011
[NPB 투수 4관왕 및 사와무라상 수상]
2011년 시즌 NPB 역사에 남을 만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최다승, 최우수 평균 자책점, 최우수 투수, 최다 완봉 등 투수 부문 4관왕을 차지했으며, 퍼시픽 리그 역대 2위인 1.27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처음으로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리그 최고 투수로 인정받았습니다.
2011년 시즌 전반기에는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고전했지만 후반기에 승수를 늘려 최종적으로 19승 5패를 기록했습니다. 퍼시픽 리그 사상 최초로 연간 3차례 월간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으며, 투구 이닝은 처음으로 200이닝을 넘긴 226과 1/3이닝, 탈삼진은 241개에 달했습니다. 평균 자책점 1.27은 퍼시픽 리그 역대 2위 기록입니다. 최다승, 최우수 평균 자책점, 최우수 투수, 최고 승률 등 투수 부문 4관왕을 차지하고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처음으로 수상하며 베스트 나인, 골든 글러브상 등 다수의 개인 타이틀을 석권했습니다.
2012
[사토다 마이와 결혼]
탤런트 사토다 마이와 혼인 신고서를 제출하며 결혼했습니다. 앞서 1월 26일 약혼을 발표했습니다.
2012년 1월 26일 탤런트 사토다 마이와의 약혼을 발표했으며, 시즌 개막을 앞둔 3월 20일에 혼인 신고서를 제출하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 해에 허리 부상으로 잠시 전력에서 이탈하기도 했으나, 8월 26일 닛폰햄과의 경기에서 프로 입단 후 첫 연장 10회 무볼넷 완봉승을 거두는 등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이 경기부터 다음 시즌에 걸친 연승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 표명]
라쿠텐과 3년 12억 엔 규모의 계약을 갱신하며 장기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2012년 12월 22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 3년 12억 엔+성과급 지급으로 계약을 갱신했습니다. 이 계약에서 다나카는 “장래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겠다는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에 조만간 전하려고 생각했었다”며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했습니다. 이는 일본 야구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3
[NPB 무패 24승 및 일본시리즈 우승]
2013년 시즌은 다나카의 전설적인 해로 기억됩니다. 개막 이후 24연승을 포함해 시즌 무패 24승이라는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을 달성했으며, 작년부터 이어진 30연승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습니다. 팀의 창단 첫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정규 시즌 MVP, 사와무라상 등 주요 상을 모두 휩쓸었습니다.
2013년 시즌, 다나카는 경이로운 활약을 펼쳤습니다. 개막 이후 24연승을 달성하며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을 세웠고, 2012년 8월 26일부터 포스트 시즌을 포함한 30연승을 기록하며 기네스 세계 기록으로 인정받았습니다. 9월 26일에는 시즌 첫 중간 계투로 등판하여 팀의 창단 9년 만의 첫 리그 우승을 결정지었으며, 일본 시리즈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7차전 구원 등판하여 팀의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는 헹가래 투수가 되었습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최다승, 최우수 평균 자책점, 최고 승률 투수 부문 타이틀을 획득하고, 만장일치로 정규 시즌 MVP와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으며, 두 번째 사와무라상을 수상하는 등 최고의 한 해를 보냈습니다.
2014
[뉴욕 양키스 입단 및 MLB 진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다나카는 뉴욕 양키스와 7년 총액 1억 5,500만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을 맺고 입단했습니다. 이는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역대 5위의 높은 계약액으로, 그의 가치를 증명하는 계약이었습니다.
2013년 시즌 종료 후 메이저리그 도전을 공식 표명한 다나카 마사히로는 새로운 포스팅 시스템 협정 하에 2014년 1월 22일, 뉴욕 양키스와 7년 총액 1억 5,500만 달러의 계약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투수로서 메이저리그 역대 5위에 해당하는 높은 계약액으로, 4년째 종료 후 옵트아웃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로써 다나카는 라쿠텐 출신 선수 중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인 선수가 되었습니다. 등번호는 19번으로 결정되었습니다.
[MLB 첫 등판 및 첫 승리]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 등판 겸 첫 선발로 나섰습니다. 7이닝 3실점(2자책점)의 투구로 미일 통산 100승째가 되는 메이저리그 첫 승리를 거두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2014년 4월 4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 등판 겸 첫 선발로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1회초 선두 타자에게 홈런을 허용했지만, 이후 안정감을 되찾아 7이닝 동안 6피안타 3실점(2자책점) 8탈삼진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첫 승리를 따냈습니다. 이는 그에게 미일 통산 100승째가 되는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MLB 첫 완봉승 및 첫 안타]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 완봉승을 거두었으며, 동시에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첫 안타도 기록했습니다. 투타 양면에서 활약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4년 5월 14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9이닝 동안 4피안타 무실점의 뛰어난 투구로 메이저리그 첫 완봉승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일본인 투수로서 역대 7번째 기록입니다. 또한, 9회 세 번째 타석에서는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첫 안타를 기록하며 투타 겸업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미일 통산 34연승 기록 중단]
시카고 컵스전에서 메이저리그 첫 패전 투수가 되며, 2012년 8월 26일부터 이어져 오던 미일 정규 시즌 34연승 기록이 마감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압도적인 연승 행진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었습니다.
2014년 5월 20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동안 8피안타 4실점(3자책점)의 투구로 메이저리그에서의 첫 패전 투수가 되었습니다. 이 패배로 2012년 8월 26일부터 계속된 미일 정규 시즌에서의 연승 기록은 34에서 중단되었습니다. 이는 NPB 28승, MLB 6승을 포함한 기록으로, 야구 역사상 매우 특별한 연승 기록이었습니다.
[오른쪽 팔꿈치 인대 부상]
오른쪽 팔꿈치 위화감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었고, 이로 인해 올스타전 출전을 포기했습니다. 다음날 팔꿈치 인대 부분 파열 진단을 받으며 선수 생활에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2014년 7월 9일, 오른쪽 팔꿈치에 위화감을 호소하며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올스타전 출전도 포기했습니다. 그 다음날 오른쪽 팔꿈치 인대 부분 파열 진단을 받아 전치 6주의 소견을 받았습니다. PRP 요법이라는 보존적 치료로 회복을 목표로 재활 훈련을 강행했으며, 9월 21일 복귀전을 치르며 시즌 13승을 올렸습니다.
2015
[미일 통산 1500탈삼진 달성]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미일 통산 1500탈삼진을 달성했습니다. 꾸준한 활약으로 빅리그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2015년 9월 8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지미 파레디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미일 통산 1500탈삼진을 달성했습니다 (NPB: 1238개, MLB: 262개). 이 해 그는 24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2승 7패, 평균 자책점 3.51을 기록하며 데뷔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습니다. 시즌 종료 후에는 오른쪽 팔꿈치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2016
[장남 출산]
부인 사토다 마이가 뉴욕 소재 병원에서 장남을 출산하며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다나카는 훈련을 멈추고 뉴욕으로 향해 가족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2016년 2월 15일, 뉴욕 소재의 병원에서 부인 사토다 마이가 아들을 출산했으며,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시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훈련 중이던 다나카는 훈련을 중단하고 뉴욕으로 이동하여 가족과 함께했습니다. 이 해 그는 2년 연속 개막전 선발로 나섰으며, 메이저리그 커리어 최다인 14승을 기록했습니다.
2017
[MLB 데뷔 후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시애틀 마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10승을 거두며, 일본인 투수 사상 처음으로 데뷔 시즌부터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2017년 8월 27일, 시애틀 마리너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10승을 달성하며 일본인 투수 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부터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같은 해 9월 2일에는 메이저리그 통산 50승을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인 투수 사상 가장 빠른 시기에 50승에 도달한 것이었습니다. 9월 14일에는 미일 통산 150승도 달성했습니다. 비록 정규 시즌 방어율은 높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뛰어난 투구를 선보이며 에이스의 면모를 과시했습니다.
[뉴욕 양키스 잔류 결정]
시즌 종료 후 예상과 달리 계약에 포함된 옵트아웃 조항을 포기하고 뉴욕 양키스에 잔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양키스 팬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습니다.
2017년 시즌 종료 후, 다나카 마사히로는 계약에 포함된 옵트아웃 조항을 실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11월 4일에 옵트아웃을 포기하고 뉴욕 양키스에 잔류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비록 정규 시즌 방어율이 4.74에 달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포스트시즌에서 2승 1패, 방어율 1.44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팀에 대한 기여도를 증명했습니다.
2021
[라쿠텐 골든이글스 복귀]
7년 동안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친정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복귀했습니다. 일본 프로야구로 돌아와 다시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시즌을 끝으로 뉴욕 양키스와의 7년 계약이 만료된 다나카 마사히로는 2021년부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다시 합류하여 일본 프로야구 무대로 복귀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쌓은 경험과 기량을 바탕으로 친정팀의 에이스로서 활약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