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고골
연표
1809
카자크 후손인 아버지와 신앙심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훗날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이자 극작가로 성장하게 된다.
1818
그는 1828년까지 네진 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1828
고향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서 꿈을 펼치려 했으나, 원하는 직업을 얻지 못하며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1829
[첫 시집 실패와 소각]
'V. 알로프'라는 필명으로 시집 《간츠 큐헬가르텐》을 자비출판했으나 혹평을 받고 직접 모두 구입해 소각했다.
문학가로서의 첫 시도가 대중의 비판을 받자, 그는 큰 충격을 받고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없애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1831
[명성 획득과 푸시킨과의 만남]
우크라이나의 전통 문화와 민속을 토대로 한 소설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를 출판하여 큰 명성을 얻었으며, 이때부터 알렉산드르 푸시킨을 사귀었다.
실패를 딛고 고향의 이야기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러시아 문학계의 거장 푸시킨과의 만남은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푸시킨은 그의 대작의 많은 소재에 영감을 주었다.
1834
문학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학문 분야에서는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짧은 기간의 교수 생활을 마감했다.
1836
[희극 《감찰관》 상연과 해외 피신]
희극 《감찰관》을 상연했으나 지배 세력의 공격을 받고 로마로 피신했으며, 이 시기에 소설 《코》와 《마차》도 발표했다.
사회의 부패를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이 진보 세력의 찬사를 받았으나, 기득권층의 반발로 인해 그는 고국을 떠나 로마로 망명하게 된다.
1842
[『죽은 영혼』 1부 등 걸작 발표]
로마에서 체류하며 명작인 《죽은 영혼》 제1부를 완성하고 출판했으며, 이와 함께 소설 《외투》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러시아 문학에 큰 획을 그었다.
해외 체류 중에도 끊임없이 창작 활동을 이어가며 러시아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는 대작을 세상에 내놓았고, 이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된다.
1848
[건강 악화와 귀국, 종교적 번민 시작]
건강을 해친 상태로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죽은 영혼』 2부 집필에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종교적 고뇌 속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순례를 떠났다.
재집필 중이던 작품의 방향성에 대한 회의와 깊어지는 신앙심으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1852
[『죽은 영혼』 2부 원고 소각과 사망]
광신적인 종교적 영향으로 『죽은 영혼』 2부 원고를 불태우고, 극단적인 사순절 단식 끝에 향년 42세로 사망했다.
신부의 명령에 따라 오랜 고뇌 끝에 완성하려던 작품을 스스로 파괴했으며, 이어지는 단식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