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연표
2004
[특정 정당 지지 발언]
노무현 대통령이 경인지역 언론사와의 합동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발언했다.이 발언은 특정 정당(열린우리당) 지지를 유도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정치적 중립성'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총선 지지 발언 논란]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며 공개적으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이는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고, 야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선관위, 중립의무 준수 요청]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노무현 대통령의 연이은 발언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판단하고, 대통령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 준수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이 국가 기관의 판단으로 이어진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노 대통령, 선관위 결정 반박]
노무현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중립의무 준수 요청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이는 야당의 반발을 더욱 키우며 탄핵 소추 논의를 본격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새천년민주당, 탄핵 발의 선언]
새천년민주당이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및 측근 비리에 대한 사과를 강력히 요구하며, 만약 사과하지 않을 시 탄핵을 발의하겠다고 선언했다.동시에 야당인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에 탄핵안 협조를 요청하며 정국의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졌다.
[청와대, 사과 요구 거부]
청와대는 야당의 사과 요구를 "부당한 정치적 정략적인 압력"으로 규정하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이는 야당의 탄핵 움직임에 더욱 기름을 붓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한나라당 의원 108명과 새천년민주당 의원 51명이 서명한 '대통령(노무현)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공식 발의되었다.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에 대한 최초의 탄핵소추안 발의로,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 창원의 로템 공장을 방문 중이었으며, 탄핵 소식을 접한 뒤 '지금 이 과정은 새로운 발전과 도약을 위한 진통'이라 말하며 예정된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했다.
[여야, 탄핵안 처리 대치]
탄핵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의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국회 의사당 내에서 격렬하게 대치했다.결국 1차 탄핵안 처리가 무산되며 국회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남상국 사장 투신 및 탄핵 급진전]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야당의 사과 요구를 다시 한번 거부하며,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 관련 의혹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이후 남 사장이 투신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자, 탄핵에 반대하던 자유민주연합이 당론을 자유투표로 선회하며 탄핵안 가결이 급진전되었다.
nan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거세게 항의했으나, 박관용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해 의원들을 끌어내며 투표가 강행되었다. 이는 전 국민적 충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헌재, 1차 변론 개시]
헌법재판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의 첫 변론이 시작되었다.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어, 대한민국 헌정사상 전례 없는 대통령 탄핵 심판이 본격적인 법적 절차에 돌입하며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헌재, 2차 변론 진행]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 2차 변론이 진행되었다.소추위원 측과 피청구인 측 변호사들은 탄핵의 절차적 정당성과 부당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며, 소추위원 측은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한 29명의 증인 신청을 요청했다.
[헌재, 3차 변론 및 증인 채택]
헌법재판소는 3차 변론에서 소추위원 측이 신청한 29명의 증인 중 4명만 채택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한 6명은 보류, 19명은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심판의 핵심 쟁점을 다룰 증인들의 출석 여부가 결정되며 심판의 방향에 관심이 쏠렸다.
[17대 총선, 탄핵 역풍]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탄핵 사태에 대한 국민적 반발, 이른바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며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인 152석을 획득하며 압승했다.이는 민주화 이후 여당이 최초로 원내 과반을 차지한 역사적인 선거였다.반면 탄핵을 주도했던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은 참패를 면치 못하며 정치 지형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탄핵 주역으로 불리던 박관용 국회의장, 최병렬 대표, 홍사덕 총무 등 야당 정치인들이 정계에서 물러나거나 낙마하는 등 국민의 심판이 이어졌다.
[헌재, 4차 변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 4차 변론이 진행되었다.이날 변론에서는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최도술과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 후보실 정무팀장 안희정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루어지며 핵심 쟁점에 대한 진술이 이어졌다.
[헌재, 5차 변론]
헌법재판소 5차 변론에서 전 대통령 제1부속실 행정관 여택수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었다.증인으로 소환되었던 롯데쇼핑 사장 신동인은 입원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아 일부 논란이 있었다.
[헌재, 6차 변론]
헌법재판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 6차 변론이 열렸다.심리가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양측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헌재, 최후 변론]
헌법재판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의 7차 최후 변론이 진행되었다.길고 길었던 법정 공방이 이날 마무리되며, 모든 국민의 시선은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에 쏠리게 되었다.
[조선일보, 탄핵 심판 오보]
조선일보에서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의 소수 의견을 공개하기로 했다는 오보를 냈다.이는 최종 판결을 하루 앞두고 큰 혼란과 논란을 야기하며 언론의 책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헌재, 탄핵 심판 기각 및 복귀]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했으나, 그 위반의 정도가 탄핵의 사유가 될 만큼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하며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이로써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지 64일 만에 대통령 직무에 전격 복귀했다.지상파 3사 및 YTN 등이 심판 과정을 생중계하며 전 국민적 관심을 증명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헌재는 노 대통령의 여당 지지 발언, 선거법 폄하, 국민투표 언급 등은 헌법 및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으로 보았으나, 국회 비하 및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조항은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이후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과 정당해산심판의 소수의견도 공개하도록 개정되었다. 노 대통령은 직무 복귀 후 지난 64일을 '역사를 성찰하고 자아를 재충전하며 국정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학습의 시간'이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