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 킹 콜
냇 킹 콜은 미국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가수입니다. 본명은 너새니얼 애덤스 콜스이며, '킹'이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어머니에게 오르간을 배우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고, '냇 킹 콜 트리오'를 결성하며 재즈계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뛰어난 피아노 실력과 매력적인 목소리로 가수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TV 고정 쇼를 진행하며 방송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시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연표
1919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가수 냇 킹 콜 출생]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너새니얼 애덤스 콜스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침례교회 목사였고, 어머니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습니다. 콜은 열두 살 때까지 어머니에게 오르간을 배우며 음악적 재능을 키웠습니다.
냇 킹 콜은 1919년 3월 17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너새니얼 애덤스 콜스라는 본명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침례교회의 목사였고, 어머니 펠리나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습니다. 콜은 열두 살 때까지 어머니에게 오르간을 배우며 음악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1930
[피아니스트 활동 시작 및 냇 킹 콜 트리오 결성]
1930년대부터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스윙 재즈 시대 말기에 걸출한 피아니스트로서 업적을 남겼습니다. 1939년에는 피아노, 기타, 베이스로 구성된 '냇 킹 콜 트리오'를 결성하여 빅밴드 시대에 혁신적인 편성을 제시하며 트리오 밴드 유행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1930년대부터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스윙 재즈 시대 말기의 걸출한 피아니스트로서 업적을 남겼습니다. 1939년 피아노, 기타, 베이스의 심플한 편성으로 이루어진 '냇 킹 콜 트리오'를 결성했으며 이는 빅밴드 시대에 있어서의 콜의 편성은 혁신적인 것으로서 트리오 밴드 유행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944
[가수로서 대중적 인기 얻기 시작]
피아니스트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특유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주목받아 가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44년 가수로서 발표한 〈Straighten Up and Fly Right〉가 크게 히트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콜은 피아니스트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애교있는 목소리가 높이 평가되어 가수로서도 활동하기 이르렀습니다. 1944년 가수로서 〈Straighten Up and Fly Right〉를 크게 히트시켰습니다.
1948
[가수 마리아 엘링턴과 결혼]
동료 가수 마리아 엘링턴과 결혼하여 다섯 아이를 두었습니다. 이 결혼은 그의 개인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1948년 3월 28일, 가수 마리아 엘링턴과 결혼하여 다섯 아이를 낳았습니다.
1950
[재즈에서 파퓰러 음악으로 활동 영역 확장]
1950년대 이후 재즈에서 파퓰러 음악으로 활동 중심을 옮겼습니다. 텔레비전에도 활발히 출연하며 더 넓은 대중적 인기를 확보했고, 〈Mona Lisa〉, 〈Stardust〉 등 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사랑받았습니다.
1950년대 이후에는 재즈에서 파퓰러계로 중심을 옮겼고, 텔레비전에서도 많이 출연하여 널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1950년 이후의 가창으로는 〈Mona Lisa〉, 〈Stardust〉, 〈(Get Your Kicks On) Route 66〉, 〈Too Young〉, 〈When I Fall in Love〉, 〈Nature Boy〉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Smile〉은 원래 희극왕 찰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의 주제곡(인스트루멘탈)이지만, 콜의 레코드를 위해 가사가 추가된 것입니다.
1953
[재즈 콘서트 'Cavalcade of Jazz' 참여]
재즈와 R&B 뮤지션들이 참여한 대규모 콘서트 'Cavalcade of Jazz'에 로이 브라운, 루이 암스트롱 등 당대 유명 아티스트들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53년에는 재즈와 R&B 뮤지션들이 참여한 콘서트 'Cavalcade of Jazz'가 개최되었는데 콜은 로이 브라운, 쇼티 로저스, 알 보스틱, 루이 암스트롱 등과 함께 했습니다.
1956
[정통파 재즈 앨범 《After Midnight》으로 재즈 뿌리로 회귀]
파퓰러 음악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56년 정통파 재즈 앨범 《After Midnight》을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재즈로 돌아와 깊이 있는 음악성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파퓰러음악계에서 인기인이었으나, 1956년에는 정통파 재즈 앨범 《After Midnight》을 발표하면서 재즈의 베이식으로 돌아왔습니다.
1958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TV 고정 호스트 프로그램 진행]
1958년 NBC 계열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TV 고정 호스트 프로그램인 《더 냇 킹 콜 쇼》를 방송하기 시작하며 인종적 장벽을 허물고 방송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1958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TV의 고정 호스트 프로그램 《더 냇 킹 콜 쇼》를 NBC 계열에서 방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쿠바 아바나에서 스페인어 앨범 《콜 에스파뇰》 녹음]
매니저가 히스패닉계였던 영향으로 1958년 쿠바의 아바나로 직접 가서 스페인어 앨범 《콜 에스파뇰》을 녹음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매니저가 히스패닉계였기 때문에 콜은 1958년에는 쿠바의 아바나로 날아가 《콜 에스파뇰》이라는 스페인어 앨범을 녹음했습니다.
1961
[싱글 〈Let There Be Love〉 영국 차트 히트]
1961년 발표한 싱글 〈Let There Be Love〉가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1961년 싱글 〈Let There Be Love〉가 영국에서 히트하였습니다.
1964
[생전 마지막 히트곡 〈L-O-V-E〉 발표]
1964년에 발표된 〈L-O-V-E〉는 그의 생애 마지막 주요 히트곡으로 기록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남아있습니다.
1964년의 〈L-O-V-E〉가 냇 킹 콜의 생전 마지막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1965
[폐암으로 45세 나이에 사망]
1965년 2월 15일,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망은 음악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그의 음악은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냇 킹 콜은 1965년 2월 15일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45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