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모리 아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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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배우, 아이돌, J-POP 아티스트 영화/드라마 배우

나카모리 아키나는 1980년대 일본 가요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독보적인 음악 스타일과 패션으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최연소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는 등 최정상에 올랐으나, 개인적인 고난과 건강 문제로 활동을 중단과 복귀를 반복했습니다. 그녀는 일본 대중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아티스트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 '가희'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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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65

[출생]

일본 도쿄도 오타구에서 나카모리 아키오와 나카모리 치에코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으며, 어머니의 영향도 컸다고 밝혔다.

1965년 7월 13일, 도쿄도 오타구에서 아버지 나카모리 아키오와 어머니 나카모리 치에코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위로는 두 명의 언니와 두 명의 오빠, 그리고 연년생의 여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정육점을 운영했으나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따로 살아야 했다. 6살 때 학교 수필에 장래희망으로 가수를 적을 만큼 노래에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어머니가 연예계를 동경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도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가수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밝혔다.

1978

['스타 탄생!' 첫 도전 실패]

13세에 니혼 테레비 예능신인 발굴 프로그램 '스타 탄생!'에 출연했으나, '나이에 비해 음색이 너무 어른스럽다'는 이유로 본선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13살이었던 1978년에 니혼 테레비에서 방영하던 예능신인 발굴 프로그램 '스타 탄생!'에 출연하여 이와사키 히로미의 '여름에 안기어'를 불렀으나 '나이에 비해 음색이 너무 어른스럽다'는 이유로 본선에서 탈락하였다.

1980

['스타 탄생!' 재도전 실패]

2년 후 '스타 탄생!'에 재도전하여 훗날 라이벌이 되는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렀으나, 심사위원의 혹평으로 다시 본선 탈락했다.

2년 후인 1980년에는 훗날 자신의 가장 큰 라이벌이 되는 신인가수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불렀을 때, 심사위원이 노래는 잘 부르는데 얼굴이 아이 같아서 차라리 동요를 부르는 게 낫다며 혹평하여 다시 한번 본선에서 떨어졌다.

1981

['스타 탄생!' 우승 및 데뷔 계약]

세 번째 도전 끝에 '스타 탄생!'에서 야마구치 모모에의 '몽선안내인'으로 방송사상 최고 점수(392점)를 얻으며 우승하여 연예계 데뷔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듬해인 1981년 7월 11일, 야마구치 모모에의 '몽선안내인'으로 세 번째 도전 끝에, 프로그램 방송사상 최고 점수인 392점을 얻으며 우승하게 된다. 이후 11개의 연예기획사와 레코드 레이블 사무소가 스카우트 의사를 밝혔고, 결전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연예기획사는 켄온과, 레코드 레이블은 워너 파이오니어와 계약을 맺었다.

1982

[가요계 데뷔]

싱글 '슬로우 모션'으로 정식 데뷔했다. 처음에는 부진한 성적을 거뒀지만, 이후 오리콘 차트에서 39주 동안 순위권을 유지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2년 5월 1일 '슬로우 모션'으로 정식 데뷔하게 된다. 이 때 그녀는 도시마엔에서 데뷔 이벤트를 열었고, 그 사회를 '스타 탄생!'의 방송사 니혼 테레비의 아나운서 토쿠미츠 카즈오가 진행했다. '슬로우 모션'은 소녀의 순정을 표현한 곡으로서 발매 초기에는 다른 아이돌들이 부르는 노래의 곡조와 그리 다를게 없던데다가, 나카모리가 당시 아이돌 중 가장 늦게 데뷔하였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려 부진한 성적을 거뒀으나, 이후 나카모리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오리콘 차트에 39주 동안 순위권을 유지하였다.

[반항적 이미지 '소녀A'로 인기 급상승]

두 번째 싱글 '소녀A'를 발표하며, 과격하고 어른스러운 가사로 기존 아이돌들과의 이미지 차별화를 꾀했다.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NHK에서 방송 불허를 받기도 했으나, 이 곡으로 인기의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1982년 7월 28일, 나카모리 아키나는 두 번째 싱글인 '소녀A'를 발표하였다. 당시 마츠다 세이코를 위시로 한 대부분의 여자 아이돌들이 지고지순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노래를 부르던 것과 달리, '소녀A'는 과격하고 어른스러운 가사로 기존 아이돌들과의 이미지 차별화를 꾀하였다. 이 곡과 함께 그녀는 여러 공중파 방송국의 심야 음악 프로그램인 '더 베스트텐'이나 '밤의 히트 스튜디오' 등에 처음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방송협회에서는 가사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음악방송 프로그램 출연과 곡의 방송을 불허한 적도 있었다. 전작인 '슬로우 모션'의 부진을 거울삼아 소속사인 켄온과 레이블인 워너 파이오니어에서는 적극적으로 마케팅 전략을 세웠고, 곡의 히트와 함께 나카모리는 이때부터 인기의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하였다.

[첫 오리콘 주간 차트 1위 달성]

세 번째 싱글 '세컨드 러브'로 오리콘 주간 싱글차트에서 첫 1위를 차지했으며, 77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일본 가요계 톱스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1982년 11월 10일에 나온 '세컨드 러브'는 '슬로우 모션'을 이은 청순한 분위기의 발라드 곡으로서 나카모리에게 오리콘 주간 싱글차트 첫 1위의 영광을 안겨주었으며 77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톱스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듬해인 1983년 2월에는 자신의 첫 전국 콘서트 투어를 개최함과 동시에 네 번째 싱글 '1/2의 신화'를 발매했다.

1984

[아티스트로 전환, 음악성 인정]

이노우에 요스이 작사, 작곡의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을 발표하며 아이돌 이미지를 벗어나 아티스트로서의 전환점을 마련했으며, 63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나카모리 아키나는 그 해 11월에 발표한 유명 싱어송라이터 이노우에 요스이 작사, 작곡의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으로 아이돌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아티스트로서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 곡의 성공으로 역대 자신의 싱글 중 '세컨드 러브'에 이어 가장 많은 63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1985

['미 아모레'로 최연소 일본 레코드 대상 수상]

11번째 싱글 '미 아모레'를 발표하며 라틴 음악의 삼바 리듬을 가미한 곡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연말 제27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20세의 나이로 최연소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85년 3월, 나카모리 아키나는 자신의 11번째 싱글인 '미 아모레'를 발표하였다. 라틴 음악의 삼바 리듬을 가미한 이 곡은 큰 인기를 얻었고 더불어 라이벌로 회자되던 마츠다 세이코는 그 해 결혼을 발표하고 육아에 매진하면서 잠시 인기의 정점에서 내려와 있었다. '미 아모레'는 1985년 오리콘 연간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하는 등 히트하였고, 이어 그녀는 연말의 제27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20세의 나이로 대상을 차지하면서 최연소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1986

['DESIRE -정열-'로 2년 연속 일본 레코드 대상]

14번째 싱글 'DESIRE -정열-'을 발표하며 가요 인생의 최절정기를 맞이했다. 스스로 고안한 미국풍 기모노 의상과 봅 가발로 새로운 패션을 선도하며 2년 연속 일본 레코드 대상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듬해인 1986년 2월 3일에 발표한 14번째 싱글 'DESIRE -정열-'로 본인 가요 인생의 최절정기를 맞는다. 스스로 고안한 미국풍으로 어레인지한 기모노를 무대의상으로 입고 봅 가발을 쓰며 이전의 아이돌 가수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패션을 선도하였고 노래만 하는 아이돌을 넘어선 아티스트로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이 곡으로 그녀는 같은 해에 다시 한번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영예의 대상과 최고 아티스트상을 수상,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자 가수가 되었다.

1987

['난파선' 발표와 스캔들 불화설]

'난파선'을 발표, 단조 계열의 슬픈 발라드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연인 콘도 마사히코와의 불화설과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무대에서 자주 눈물을 보였다.

같은 해 9월 30일, 나카모리 아키나는 '난파선'을 발표, 이전까지는 시도한 적이 없는 단조 계열의 슬픈 발라드를 불렀다. 본래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가토 도키코가 이미 1984년에 내놓은 곡이었으나 가토가 나카모리에게 자신의 곡을 커버한 것을 부탁하여 발매한 것이었다. 이 노래 역시 큰 반향을 몰고 왔는데 당시 사귀고 있던 연인인 콘도 마사히코와의 불화설과 콘도와 다른 여성과의 스캔들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올 때였고 나카모리가 이 곡을 부르는 무대 도중에 눈물을 자주 보이는 것이 마치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하는걸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1989

[자살미수 사건 및 활동정지]

가족과의 불화와 연인 콘도 마사히코와의 갈등 끝에 그의 집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이후 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술받고 약 1년간 연예 활동을 중지했다.

1989년 2월, 콘도 마사히코가 뉴욕에서 마츠다 세이코와 밀회를 했다는 파파라치 보도가 나오며 스캔들로 번졌다. 나카모리는 언론 보도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으나, 오래도록 이어진 가족과의 불화와 콘도와의 갈등 끝에 그 해 7월 11일, 콘도의 집에서 왼쪽 손목의 신경을 칼로 그어 자살을 기도하였다. 친구의 빠른 대처와 신고로 병원으로 후송되어 6시간의 수술 후 몸을 추스르며 1년간 활동을 중지했다.

['금병풍 기자회견'과 관계 파국]

자살 미수 사건 이후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동석한 콘도 마사히코는 약혼 계획이 없음을 밝혔으며 두 사람의 연인 관계는 종료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콘도는 결혼 약속을 부인하며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끝났다.

콘도 마사히코는 나카모리에게 사과의 의미로 약혼을 제안했고, 나카모리는 그 말을 믿고 콘도와 함께 그 해 12월 31일에 약혼 기자회견을 열려 하였으나, 콘도의 소속사 자니즈 사무소의 입장 변화로 기자회견은 자살미수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으로 변질되었다. 이 기자회견은 NHK 홍백가합전의 시청률을 처음으로 30%대로 추락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90

[싱글 'Dear Friend'로 연예계 복귀]

자살미수 사건 1년 뒤 24번째 싱글 'Dear Friend'로 연예계에 복귀했다. 명랑하고 밝은 곡으로 오리콘 주간차트 1위를 다시 차지하며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자살미수 사건이 일어나고 1년 뒤인 1990년 7월에, 나카모리 아키나는 자신의 24번째 싱글 'Dear Friend'로 연예계에 복귀하였다. 나카모리는 연말의 기자회견 이후 줄곧 하와이에 머물며 몸을 추스르고 미국에서 녹음 작업을 마친 후, 새 싱글 활동을 위해 귀국했다. 불미스러운 일 이후로 복귀하여서인지 명랑하고 밝은 스타일의 곡으로 복귀하기를 원하였고 오리콘 주간차트에 다시 1위를 하는 등 나카모리의 인기가 아직 식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1992

[드라마 '솔직한 그대로' 주연으로 성공]

후지 테레비 드라마 '솔직한 그대로'의 주연을 맡아 연기자로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 드라마는 평균 시청률 26.4%, 최종회 31.9%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92년 후지 테레비에서 방영한 드라마 '솔직한 그대로'에서 주연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여러 드라마에도 주연 또는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고 연예오락 프로그램에도 자주 나오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나, 특히 '솔직한 그대로'는 평균 시청률 26.4%, 최종회에서는 31.9%의 시청률을 기록하여 드라마에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하였다.

1994

[커버 음반 '가희' 발표, 평론가 호평]

첫 커버 음반 '가희'를 발표하여 선배 가수들의 곡을 자신만의 색깔로 리메이크했다. 이 음반은 '일본 리메이크 앨범의 파이오니어'로 칭송받으며 평론가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1994년 3월에 처음으로 커버 음반인 '가희'를 발표하였다. 주로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풍미한 여성 가수들의 곡들을 자신의 색깔로 리메이크하였는데, 당시 메이저 가수로서는 선배 가수들의 곡을 커버한 일이 별로 없었지만 대중과 음악평론가들의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냈다. 이 음반은 2000년대 초반 일본 가수들의 리메이크 열풍이 불기 10여년 전에 발표한 작품으로서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일러 ‘일본 리메이크 앨범의 파이오니어(선구자)’로 칭했다. 이후 '가희'는 시리즈화되어 총 3개의 음반이 제작되었다.

1995

[어머니 사망 후 가족과 절연]

어머니 사망 후 금전 문제로 아버지와 형제들과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어머니의 장례식을 끝으로 모든 가족과 절연을 선언하며 험악한 관계로 치달았다.

싱글 '태초에, 여자는 태양이었다' 발매 직전, 어머니인 나카모리 치에코가 같은 해에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후 금전 문제로 다시 아버지와 언니, 오빠들과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어머니의 장례식을 끝으로 모든 가족과 절연을 선언하는 등 험악한 관계로 치달았다.

1996

[첫 디너쇼 투어 개최]

이듬해인 1996년, 처음으로 디너쇼 투어를 개최했다. 이후 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연말마다 주요 도시를 돌며 디너쇼 투어를 진행했다.

이전부터 디너쇼를 열어보고 싶다고 의사를 밝힌 적이 있던 나카모리 아키나는 이듬해인 1996년, 처음으로 디너쇼 투어를 개최했고 이후로도 활동을 중단할 때까지 연말마다 주요 도시를 돌며 디너쇼 투어를 진행하였다.

2002

[데뷔 20주년, 유니버설 뮤직 이적]

데뷔 20주년을 맞아 유니버설 뮤직 재팬으로 레이블을 옮겼고, 싱글 'The Heat ~musica fiesta~'와 앨범 'Resonancia'를 발매했다. 이때 한국 가수 이상민이 음반 제작에 참여했다.

2002년에는 데뷔 20주년을 맞이해 음악 프로덕션 라쿠코보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매니지먼트 업무를 모두 소속사인 FAITH에 이관했다. 이어서 레코드 레이블을 @ease에서 다시 유니버설 뮤직 재팬으로 옮기고 41번째 싱글인 'The Heat ~musica fiesta~'와 20번째 정규 음반 'Resonancia'를 발매했는데, 이때 새 레이블 사무소인 유니버설 뮤직은 이번 음반에서의 그녀의 콘셉트를 '일본의 제니퍼 로페즈'라고 소개하였다. 또한 이 싱글과 음반의 제작에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룰라의 멤버인 이상민이 대표로 있던 상마인드 엔터테인먼트도 참가하여, 나카모리는 싱글을 서울에 위치한 상마인드 뮤직 스튜디오에서 녹음과 편곡 작업을 거쳤으며 랩 피쳐링은 상마인드 소속의 그룹 엑스라지가 담당하였다.

[커버 앨범 '가희2' 발표 및 홍백가합전 출장]

커버 앨범 '-ZEROalbum- 가희2'를 발표하며 라이벌 마츠다 세이코와 동경하던 야마구치 모모에의 곡을 수록해 화제가 되었다. 또한 14년 만에 NHK 홍백가합전에 다시 출장했다.

이어서 가희 시리즈의 두 번째 음반인 '-ZEROalbum- 가희2'를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에는 라이벌로 불리던 마츠다 세이코의 '유리빛의 지구'나 동경하던 야마구치 모모에의 '코스모스'등이 수록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 음반은 히트하여 7년만에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톱10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1988년 이후 14년 만에 제53회 NHK 홍백가합전에 다시 나가기도 했다. 이 날 방송에서는 1984년에 발표한 본인의 10번째 싱글곡으로 자신의 곡을 새로 셀프커버한 '장식이 아니야, 눈물은'을 불렀다.

2004

[사설 레이블 '가희 레코즈' 설립 및 한국 드라마 OST 참여]

유니버설 뮤직 재팬 산하에 사설 레코드 레이블 '가희 레코즈'를 설립했다. 한국 드라마 '올인'의 주제가 '처음 그 날처럼'을 커버한 싱글 '붉은 꽃'을 발매하며 주목받았다.

2004년, 나카모리는 레이블인 유니버설 뮤직 재팬 산하에 사설 레코드 레이블인 가희 레코즈를 설립, 이후부터 그녀의 싱글과 음반은 모두 가희 레코즈의 명의로 출시되었다. 나카모리는 사설 레이블을 만든 이유로 '팬들과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내가 느끼거나 생각한 것을 정보 또는 작품으로서 팬들에게 곧장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했다'라고 밝혔다. 한편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올인'의 주제가 '처음 그 날처럼'을 커버한 싱글 '붉은 꽃'을 발매하였다. 그러나 곡만 수입한 것일 뿐 멜로디의 분위기와 가사는 원곡과는 달랐으나 이후 '올인'이 NHK BS2 위성 채널에서 수입되어 방영되자 원곡에 가까운 가사를 덧붙여 '처음 만난 그 날처럼'으로 새로 발매하였고 주제가로서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하였다. 이 곡들로 나카모리는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는데 일본의 중량감 있는 메이저 가수가 자국 드라마가 아닌 해외 드라마의 주제가를 부르는 일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2010

['Crazy Love' 발매 및 건강 이상설]

자신의 생일인 7월 13일, 48번째 싱글 'Crazy Love'를 디지털로 배포했다. 파칭코 홍보 행사에서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으로 건강 이상설에 휩싸였다.

2010년 7월 13일, 나카모리는 48번째 싱글 'Crazy Love'를 디지털 다운로드로 배포했다. 같은 날 자신을 주제로 한 두 번째 파칭코 게임인 'CR 나카모리 아키나 가희전설 ~ 사랑도 두 번째라면~' 홍보행사에 나타난 그녀는 눈에 띄게 수척해진 얼굴과 몸으로 여러 기자들로부터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으나 본인은 괜찮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건강 악화로 무기한 활동정지]

소속사와 레코드 레이블이 과로와 피로 누적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를 이유로 나카모리 아키나의 연예계 활동 무기한 정지를 발표했다. 2010년 10월 28일 과로와 피로 누적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연예계 활동 무기한 중단을 발표하였습니다. 건강 악화로 무기한 활동을 정지했습니다. 건강 악화로 무기한 활동 정지를 발표했습니다. 소속사는 정확한 병명을 밝히지 않았으나 일각에서는 '대상포진'을 원인으로 보도했습니다.

2014

[4년 만의 신곡 'SWEET RAIN' 발표]

'Crazy Love' 출시 이후 3년 9개월 만에 신곡 'SWEET RAIN'의 녹음 및 발매를 확정했다. 공식적인 복귀 선언은 아니었지만,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2014년 6월에는 자신이 소속되었던 워너 뮤직 재팬과 현 레이블인 유니버설 뮤직 재팬이 합작, 데뷔부터 2010년까지 자신이 부른 곡들을 추린 베스트 음반 '올타임 베스트 -오리지널-'과 '가희' 시리즈의 베스트 음반을 발매하며, 또한 컨디션에 따라 4년만에 신곡을 녹음해 수록할 것이라 발표하였다. 2014년 7월 10일, 'Crazy Love' 출시 이후 3년 9개월만에 신곡 'SWEET RAIN'을 녹음, 발매하는 것을 확정하였고, 먼저 7월 16일에 디지털 다운로드로 발매할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나 신곡을 발매하는 것과 달리, 나카모리는 아직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정식으로 복귀를 선언하지 않았다.

[NHK 홍백가합전 컴백 무대]

제65회 NHK 홍백가합전에 특별 게스트로 참가하여 미국 뉴욕 스튜디오에서 신곡 'Rojo -Tierra-'를 부르며 대중 앞에 4년 2개월 만에 컴백했다.

2014년 12월 31일, 제65회 NHK 홍백가합전에 특별 게스트로서 참가하며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춘지 4년 2개월만에 컴백했다. 그러나 나카모리가 레코딩 일정 차 미국에 체류 중이어서, 홍백가합전이 열리는 NHK 홀에 직접 참가하지 않고 미국 뉴욕의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신곡인 'Rojo -Tierra-'을 불렀다. 또한 2015년 1월 9일에는 나카모리의 근황과 그녀의 'Rojo -Tierra-'공연 준비 과정 등을 촬영한 'SONGS 스페셜 - 나카모리 아키나 가희 부활'이 방송되었는데 여기에서 나카모리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북돋아주기 위해 신곡을 녹음하기로 결정했다 하며, 연내 발매 목표로 'DIVA' 이후 6년 만에 오리지널 앨범도 제작중이라고 밝혔다.

2015

[복귀 싱글 'Rojo -Tierra-' 발매]

싱글 앨범 'Rojo -Tierra-'를 초회한정판과 통상판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했으며,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8위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톱10에 진입했다.

2015년 1월 21일, 'Rojo -Tierra-' 싱글 앨범이 초회한정판과 통상판 두 개의 버전으로 나뉘어 출시되었으며 2월 2일자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에 8위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싱글 차트 톱10에 안착했다. 이어서 커버 앨범 '가희4 -My Eggs Benedict-'는 2월 9일자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 5위에 올랐고 본인의 발매 앨범 중 통산 37번째로 오리콘 차트 TOP10에 진입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2017

[앨범 '明菜' 및 'Cage' 발매]

앨범 '明菜'와 새로운 커버 앨범 'Cage'를 발매했다. '明菜'는 오리콘 앨범 차트 9위에 오르며 1만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2017년에는 앨범 明菜과 새로운 커버 앨범 Cage를 발매하였다. 明菜는 오리콘 앨범 차트 9위에 오르며 1만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커버 앨범 Cage의 경우, 80년대의 디스코, 유로비트 등 서양 댄스 히트곡들을 커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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