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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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 황족, 군주 + 카테고리

나루히토는 일본의 제126대 천황이자 아키히토 상황의 장남입니다. 그는 전후에 태어난 첫 천황이며,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최초의 천황으로 기록됩니다. 황태자 시절부터 국제적인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특히 물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2019년 아키히토 상황의 생전 퇴위 후 '레이와' 시대를 열며 즉위했으며, 이는 약 202년 만의 생전 퇴위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황후 마사코와의 사이에 장녀 아이코 내친왕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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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60

[제126대 나루히토 천황 탄생]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궁내청 병원에서 아키히토 당시 황태자와 미치코 당시 황태자비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전후(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태어난 첫 천황이자, 석사 학위를 보유하고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최초의 천황이 됩니다.

1960년(쇼와 35년) 2월 23일 오후 4시 15분, 당시 아키히토 황태자 친왕과 미치코 황태자비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도쿄도 지요다구 고쿄(황궁) 내에 있는 궁내청 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미치코 황후의 임신에 즈음하여 모자 수첩이 발행되고 일본 황거 내의 산전(産殿)에서 출산하는 대신, 궁내청 병원에서 출산하는 등, 그동안 일본 황실의 관례와는 다르게 태어나 일본 국민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나루히토는 전후(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태어난 첫 천황이자, 석사 학위를 보유하고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최초의 천황입니다.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 명명]

태어난 지 6일 만에 명명 의식이 거행되어 할아버지인 쇼와 천황으로부터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별칭과 본명 모두 《사서오경》의 『중용』에 나오는 글귀를 전거로 한 것입니다.

나루히토가 태어난 지 6일 만인 2월 29일에 명명 의식이 거행되어 할아버지인 쇼와 천황이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浩宮徳仁親王)'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별칭인 '히로노미야'와 본명인 '나루히토' 모두 《사서오경》의 『중용』 제32장의 내용을 전거로 한 것입니다.

1967

[가쿠슈인 초등과 입학 및 피겨 스케이팅 시작]

가쿠슈인 초등과에 입학하여 이나다 에쓰코의 지도로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대학생 때는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쇼와 42년) 4월, 가쿠슈인 초등과에 입학한 나루히토는 이나다 에쓰코의 지도에 따라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생 때는 이를 바탕으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습니다.

1980

[성년식 거행 및 대훈위 국화대수장 수상]

만 20세에 성년식을 치르고, 같은 해 11월 30일 대훈위 국화대수장을 받았습니다.

1980년(쇼와 55년) 2월 23일, 만 20세에 성년식을 치렀습니다. 같은 해 11월 30일에는 대훈위 국화대수장(大勲位菊花大綬章)을 수여받았습니다.

1982

[가쿠슈인 대학 졸업 및 인문학 전공]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대부분의 황족이 자연과학을 전공했던 것과 달리, 나루히토는 역사학, 중세의 교통·유통사 등 인문학·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1982년(쇼와 57년) 3월,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였고 가쿠슈인 대학 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황족들은 생물학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을 전공하였지만 나루히토는 역사학, 중세의 교통·유통사 등 인문학·사회과학에 가까운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1983

[옥스퍼드 대학교 유학]

1983년부터 1985년에 걸쳐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에 유학하여 템스강의 수운사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이는 일본 황실 최초의 해외 유학 경험이었습니다.

1983년(쇼와 58년)부터 1985년(쇼와 60년)에 걸쳐, 옥스퍼드 대학교 머튼 칼리지에 유학하여 템스강의 수운사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1988년(쇼와 63년)에는 가쿠슈인 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박사 전기 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1986

[오와다 마사코와의 첫 만남]

일본을 방문 중인 스페인 공주 환영 다과회에서 당시 외무성에서 근무하던 오와다 마사코(현 마사코 황후)를 처음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훗날 두 사람의 결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1986년(쇼와 61년) 10월 18일, 일본을 방문 중이었던 스페인 공주 루고 여공작 엘레나와의 환영 다과회에 참석했을 때 일본 외무성에서 근무하던 오와다 마사코를 알게 되었습니다.

1987

[국사행위 임시 대행]

쇼와 천황의 요양과 당시 황태자였던 아버지 아키히토의 외국 방문이 겹치면서 10월 10일까지 국사행위 임시 대행에 처음으로 올랐습니다.

1987년(쇼와 62년) 10월 3일부터 10월 10일에는 쇼와 천황의 요양과 당시 황태자였던 아버지 아키히토의 외국 방문이 겹치면서 처음으로 국사행위 임시 대행에 오른 적도 있습니다.

1989

[황태자 책봉]

쇼와 천황이 사망하면서 나루히토의 아버지 아키히토가 천황으로 즉위했고, 나루히토는 황위 계승 1순위인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1989년(쇼와 64년) 1월 7일, 쇼와 천황이 병으로 사망하면서 나루히토의 아버지인 아키히토가 차기 천황에 즉위하게 되어 나루히토는 황위 계승 1순위인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1991

[입태자례 거행]

만 31세가 되는 날에 입태자례(立太子禮)를 치르면서 공식적으로 일본 황실의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아키히토의 천황 즉위식 이후 1991년(헤이세이 3년) 2월 23일, 만 31세가 되는 날에 입태자례(立太子禮)를 치르면서 본격적인 일본 황실의 황태자가 되었습니다.

1993

[오와다 마사코와 정혼 발표]

황실 회의에 의해 일본의 외교관이었던 오와다 마사코와 정혼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으며, 두 사람의 합동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1993년(헤이세이 5년) 1월 19일, 황실 회의에서 나루히토와 오와다 마사코의 혼인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으며 이날 두 사람의 합동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다음 날부터 여러 기업들이 혼인 축하 광고를 신문에 게재하는 등 온 나라가 축하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마사코 황후와의 결혼]

오와다 마사코와 혼인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었으며, TV 중계 최고 시청률이 79.9%를 기록하는 등 일본 국민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습니다.

1993년(헤이세이 5년) 6월 9일, 혼인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혼인 의식 생중계의 평균 시청률은 30.6%, 혼인 기념 카퍼레이드의 TV 중계 최고 시청률은 79.9%를 기록하며 둘의 혼인은 일본 국민들의 엄청난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각지에서 연등 행렬, 불꽃놀이, 떡메치기, 국영 공원 무료 개방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2001

[장녀 아이코 내친왕 출생]

결혼 8년 만에 외동딸 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이 태어났습니다. 당시 황실의 대가 끊길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에 더욱 큰 기쁨이었습니다.

마사코 황태자비가 임신이 되지 않자 아키히토 천황은 황실의 대가 끊길까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어렵게 임신이 되어 8년 후인 2001년(헤이세이 13년) 12월 1일, 외동딸 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이 태어났습니다.

2004

[마사코 황태자비 관련 발언 파문]

유럽 3개국 순방을 앞둔 회견에서 "마사코의 경력과 이에 근거한 마사코의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라고 발언하며 황실과 궁내청 간의 불화를 시사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4년 5월 10일, 유럽 3개국 순방을 앞둔 회견에서 "마사코의 경력과 이에 근거한 마사코의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라고 발언했습니다. 이 발언은 황태자 부부와 황실·일본 궁내청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같은 해 7월에 마사코 황태자비가 요양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식 발표된 이후에는 나루히토 혼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2007

[유엔 명예 총재 취임 (일본 황족 최초)]

유엔 '물과 위생에 관한 자문 위원회' 명예 총재로 취임했습니다. 이는 일본 황족이 유엔 등 상설 국제기구의 직위에 오른 최초의 사례로, 국제적인 물 문제 해결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2007년 11월 1일에는 유엔 '물과 위생에 관한 자문 위원회' 명예 총재로 취임하였습니다. 일본 황족이 유엔 등 상설 국제기구의 직위에 오른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2007년 3월 정기 건강 검진에서 십이지장에 염증이 발견되어 6월에 내시경 시술을 받은 바 있습니다.

2013

[유엔 본부 물과 재해 관련 특별 회의 기조 연설]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물과 재해에 관한 특별 회의'에서 영어로 기조 연설을 했습니다. 이 회의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 세계적인 수해 증가에 따라 유엔에서 처음 개최된 것이었습니다.

2013년 3월 6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물과 재해에 관한 특별 회의'에서 영어로 기조 연설을 했습니다. 이 회의는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등 세계적인 수해의 증가에 따라 유엔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것이었습니다.

2016

[국사행위 임시 대행 (내각 각료 인증식)]

아버지 아키히토 천황이 필리핀 방문으로 국내 부재 상태가 되자 국사행위 임시 대행을 맡아 내각 각료의 인증식을 치렀습니다.

2016년 1월 28일에는 아버지 아키히토 천황이 필리핀을 방문하면서 국내 부재 상태가 되자 국사행위 임시 대행을 맡으면서 내각 각료의 인증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2019

[제126대 일본 천황 즉위 및 레이와 시대 개막]

아버지 아키히토 상황의 생전 퇴위에 따라 제126대 천황으로 즉위하며 '레이와'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약 202년 만이자 메이지 시대 이후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생전 퇴위 즉위이며, 역대 천황 중 두 번째로 고령에 즉위한 사례입니다.

2019년 4월 30일, '천황 퇴위 특례법'에 따라 제125대 천황 아키히토가 퇴위하고 다음 날인 5월 1일,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이 제126대 천황에 즉위하였습니다. 연호는 레이와(令和)입니다. 전임 아키히토는 같은 날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120대 닌코 천황 이후 약 202년 만이자 메이지 시대 이후 헌정 사상 처음으로 천황의 생전 퇴위에 따라 즉위한 천황이 되었으며, 즉위 시점의 나이도 59세로 역대 천황 중 2번째로 고령에 즉위하였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 접견]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를 황궁에서 접견했습니다. 특히 마사코 황후는 과거 외교관 경험을 살려 통역 없이 영어로 멜라니아 여사와 대화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9년 5월 27일에는 나루히토 천황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마사코 황후와 멜라니아 여사가 15분 동안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마사코 황후는 과거 외교관으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영어로 멜라니아와 대화를 나누어 주목받았습니다. 이날 궁중 만찬회에서 환영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즉위 예의 의식 거행]

황궁 정전에서 천황 즉위 예의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는 천황의 공식적인 즉위를 대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2019년 10월 22일, 황궁 정전에서 즉위 예의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당초 즉위일인 5월 1일과 즉위식이 열리는 10월 22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축하 어열 의식 퍼레이드]

태풍 하기비스 피해 복구로 인해 당초 10월 22일에서 연기된 퍼레이드를 11월 10일 거행했습니다. 무개차를 이용해 고쿄에서 아카사카 어용지까지 진행하였으며 약 19만 명이 참석했습니다. 황궁 앞 광장에서 아카사카 어용지까지 무개차를 이용하여 진행하였습니다.

[대상제 거행]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 동안 천황 즉위 직후 붕어한 선대 천황에게 예를 올리는 궁중 제사 의식인 '대상제'를 치렀습니다.

2019년 11월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 동안 나루히토는 천황이 즉위 직후 붕어(崩御)한 선대 천황에게 예를 올리는 궁중 제사 의식인 '대상제'를 치렀습니다.

[모든 즉위 관련 의식 종료 ('현소 무악 의식')]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무악을 연주하는 '현소 무악 의식'에 임함으로써, 5월 1일 즉위 후 약 7개월간 진행된 모든 즉위 관련 의식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2019년 12월 4일, 나루히토 천황과 마사코 황후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무악을 연주하는 '현소 무악 의식'에 임했습니다. 이 의식은 나루히토가 천황에 즉위한 지난 5월부터 계속되어 온 천황 즉위 관련 의식 중 마지막 행사로, 황사(황태제)가 된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과 그의 부인 기코 친왕비를 비롯해 다른 황족도 참석했습니다. 이로써 5월 1일 천황 즉위와 함께 황위 계승의 예(禮)로써 세 종류의 신기(神器) 중 하나를 전달받는 '검새 승계 의식'을 시작으로 약 7개월 간 진행된 즉위 관련 의식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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