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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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인, 감독, 행정가 + 카테고리

김호는 1970년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을 이끈 축구 국가대표 출신 감독이자 행정가입니다.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1994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으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 초대 감독으로 K-리그 FA컵 AFC 챔피언스리그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팀을 아시아 최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대전 시티즌 감독과 대표 이사를 역임했으나 구단 운영 방식과 관련해 여러 논란과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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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

1944

[김호, 통영에서 태어나다]

김호는 1944년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훗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축구 감독이자 행정가로 활약하게 됩니다.

1944년 11월 24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태어났다. 훗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 행정가를 지내게 된다.

1964

[국가대표 및 실업팀 선수 활동 시작]

김호는 1964년 제일모직 축구단에 입단하며 선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해병대, 양지, 상업은행 등 다양한 팀에서 활약하며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었습니다.

1964년 제일모직 축구단에 입단하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해병대 축구단(군 복무), 양지 축구단, 상업은행 축구단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여 활약하였으며, 1965년부터 1973년까지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 획득]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던 김호는 1970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축구의 영광을 함께했습니다.

1970년 방콕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선수 경력 중 주요한 성과 중 하나이다.

1975

[동래고등학교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 시작]

선수 은퇴 후, 김호는 1975년 동래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 1975년 동래고등학교 감독직을 맡으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였다.

1982

[한일은행 축구단 감독 부임]

김호는 1982년 한일은행 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하여 1987년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한일은행 축구단 감독으로 활동했다.

1987

[대한민국 B팀 감독 활동]

김호는 1987년 잠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 감독을 역임했습니다.

1987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B팀 감독을 맡았다.

1988

[현대 호랑이 감독으로 프로 데뷔 및 리그 준우승]

1988년 현대 호랑이(현 울산 HD) 감독으로 부임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부임 첫해 팀을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나, 1990년 성적 부진으로 사임했습니다.

1988년 조중연 감독의 후임으로 현대 호랑이(현 울산 HD 축구단) 사령탑에 부임하며 프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으로 팀 이미지가 실추된 상황에서 부임 첫해 리그 준우승을 거두며 팀을 정상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울산으로 연고지 정착 첫해인 1990년, 6개 팀 중 5위를 기록하며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고 사임하였다.

199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전임감독 부임]

1992년 7월, 김호는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으로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부임하여 한국 축구의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1992년 7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임감독으로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부임했다. 이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993

[북한전 라커룸 홍명보 폭행 논란]

1993년 북한과의 경기 전반전 종료 후, 김호 감독은 라커룸에서 당시 선수였던 홍명보에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가했다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도하의 기적이 일어났던 1993년 북한전 전반전이 끝난 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라커룸에서 당시 선수였던 홍명보를 폭행했었다고 한다.

1994

[1994년 FIFA 월드컵 참가 및 최고 성적 달성]

김호 감독은 1994년 FIFA 월드컵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하여, 조별리그 2무 1패를 기록하며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한국의 월드컵 최고 성적을 달성했습니다.

1994년 FIFA 월드컵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다. 당시 조별리그 2무 1패로 2002년 FIFA 월드컵 이전까지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으로선 월드컵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

1995

[수원 삼성 블루윙즈 초대 감독 부임 및 아시아 최강팀 건설]

월드컵 이후 김호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2003년까지 팀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K-리그 2회, FA컵 1회, AFC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을 이끌며 수원을 아시아 최강팀 반열에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5년 2월 22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2003년 10월 15일까지 팀을 이끌었다. K-리그 2회, FA컵 1회, AFC 챔피언스리그 2회 등 무수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아시아 최강팀 중 하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2007

[대전 시티즌 감독 부임 및 플레이오프 진출]

2007년 7월, 김호는 대전 시티즌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임명되어, 팀 역사상 최초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등 좋은 성적을 이끌었습니다.

2007년 7월, 최윤겸 감독 폭행 사건으로 어수선하던 K-리그 대전 시티즌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임명되었다. 팀 역사상 최초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좋은 성적을 이끌었다.

2008

[감독 통산 200승 달성 및 비극적인 가족사]

2008년, 김호 감독은 통산 200승을 달성하며 '명예 대전시민'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큰아들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해 며느리와 손자를 잃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는 200승 달성 소감을 가족에게 바쳤습니다.

2008년 대전 시티즌 감독 재임 시절, 감독 통산 200승을 기록하고 '명예 대전시민'으로 선정되었다. 5월에는 큰아들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해 아들이 크게 다치고 며느리와 손자를 잃는 아픔을 겪었으며, 200승 달성 소감으로 “며느리와 손자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였다.

2009

[대전 시티즌 감독직 불명예 퇴진]

2009년, 김호 감독은 시즌 초반 부진과 에이전트 비리 사건, 구단과의 마찰 등으로 대전 시티즌 감독직에서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2008 시즌에 리그 13위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한 후, 2009년에도 시즌 초반 부진을 거듭하다가 에이전트 비리 사건을 비롯한 구단과의 마찰로 시즌 중반 감독직에서 불명예 퇴진하였다.

2010

[김두관 경남 도지사 후보 지지 선언]

2010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김호는 무소속 김두관 경남 도지사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선거운동에 참여했습니다.

2010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무소속 김두관 경상남도지사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선거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고향 통영중학교 총감독 부임]

대전 시티즌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김호는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가 통영중학교의 총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전 시티즌 감독직에서 불명예 퇴진한 이후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가 모교 통영중학교의 총감독으로 활동하였다.

2013

[예원예술대학교 축구부 기술고문 활동]

김호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예원예술대학교 축구부의 기술고문으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기여했습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예원예술대학교 축구부의 기술고문으로 활동했다.

2015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 부임 및 미흡한 일처리 논란]

2015년 6월, 김호는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미흡한 일처리 능력과 도덕적 해이 등으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2015년 6월 용인시축구센터의 총감독으로 부임하였으나, 미흡한 일처리 능력과 도덕적 해이 등의 이유로 논란이 일었다.

2016

[용인 FC 유소년 총감독 활동]

김호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용인 FC에서 유소년 총감독을 역임하며 유소년 축구 발전에 힘썼습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용인 FC의 유소년 총감독으로 활동했다.

[용인시의회, 김호 총감독 퇴진 주장]

2016년, 용인시의회에서 박남숙 의원이 용인시축구센터 김호 총감독의 퇴진을 주장하며 그의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이 공개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2016년 용인시의회 박남숙 의원이 제211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김호의 퇴진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는 용인시축구센터 운영 논란과 관련이 있다.

2017

[대전 시티즌 대표이사 선임 및 감독 선임 논란]

2017년 11월 1일, 김호는 대전 시티즌의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10년 만에 대전에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측근인 이기범 감독을 내정했다가 팬들의 반발로 고종수 감독으로 선임하는 등 초반부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2017년 11월 1일 대전 시티즌의 대표 이사로 선임되며 대략 10년 만에 대전에 복귀했다. 용인시축구센터에서 함께 했던 이기범 감독을 대전의 감독으로 내정했으나, 팬들의 거센 반발로 이기범 감독 선임을 취소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고종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2018

[브루노 등 선수들에게 계약 해지 강요 논란]

2018년 1월, 김호 대표이사는 브루노를 비롯한 일부 선수들에게 12월 중순부터 계약 해지를 강요하고 숙소 입소 및 훈련에서 배제하여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에 제소되는 등 논란을 겪었습니다.

브루노를 비롯한 일부 선수들에게 12월 중순부터 계약 해지를 강요하고 숙소 입소와 훈련 등에 배제하면서 7,8명의 대전 선수들이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에 제소를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대전 시티즌 방만한 구단 운영 및 측근 인사 논란]

김호 대표이사는 감독, 코치, 사무국장 등 주요 보직에 측근 인사를 대거 기용하고, 전지훈련 용역업체도 측근 업체로 선정하는 등 방만한 구단 운영으로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유소년팀 지원 예산을 축소하고 선수단 규모를 무리하게 늘리는 행보로 팬들의 반발을 샀고, 청와대 청원에까지 이어졌습니다.

감독부터 시작해서 코치, 사무국장, 심지어는 유소년 지도자까지 지나치게 자신들의 측근 인사로만 구성하였으며, 전지훈련 용역업체 역시 자신의 측근 인사인 에이전트 K씨가 운영하는 업체인 AI스포츠를 전지훈련 용역업체로 선정했다. 대전시에서 유소년팀 지원을 위한 예산을 추가로 지원했으나 명확한 이유도 없이 유소년 지도자와 계약을 미뤄 축구계의 집단 반발을 샀으며, 끝내는 유소년 지도자의 숫자를 줄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정을 선보이며 큰 비난을 받아 대전팬들이 대전시티즌 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선수단 규모를 60명 가까이로 늘리는 무리수를 두었으며, 이기범 감독의 아들인 이지호를 영입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면서 팬들과 마찰을 빚었으며, 이러한 김호의 행정이 청와대 청원에 올라오기도 하였다.

[이사회 직원 사퇴 및 시의회 예산 삭감 사태]

2018 시즌 종료 후 김호 대표이사의 구단 운영에 반발하여 이사회 직원이 퇴사하였습니다. 대전 시의회는 1억 7천만 원의 예산과 6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전액 삭감하였습니다. 김호는 당초 시에 보고하기로 한 개혁방안 대신 이사회를 상대로 경영개선계획을 설명하고 선수 모집을 추진하였습니다.

2018시즌이 종료된 뒤 대전 시티즌 이사회 직원들이 김호의 사임을 촉구하면서 대거 사퇴, 김호의 방만한 구단 운영은 다시 구설수에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대전 시의회는 예결특위를 개최해 대전시티즌이 요청한 추가경정예산 6억 원을 전액 삭감했으며, 시의회 차원에서도 김호의 사퇴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아산 무궁화전 심판실 난입 및 폭언 논란]

2018년 4월 14일, 아산 무궁화 FC와의 경기 종료 후 김호 대표이사가 심판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판실에 난입하여 고성을 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4월 14일 아산 무궁화 FC와의 경기 종료 후에는 심판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판실에 난입해 고성을 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다시 논란이 일었다.

2019

[신인 선수 선발 불법 의혹 및 경찰 수사 의뢰]

2019년 1월, 대전 시티즌 신인 선수 선발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대전시는 선수 선발 과정의 부정 의혹 등을 이유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신인 선수 선발 테스트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으며, 결국 대전시가 대전시티즌을 선수선발과정에서 부정의혹 등을 이유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대전 시티즌 대표이사직 사퇴]

논란이 계속되던 김호는 결국 2019년 2월 17일 대전 시티즌 대표이사직에서 사퇴하며, 그의 대전 복귀는 불명예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계속되는 논란과 비판 속에 2019년 2월 17일 김호는 대전 시티즌 대표이사직에서 사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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